[수필]양수리이야기...

네로 | 2002.01.17 10:05:34 댓글: 0 조회: 1074 추천: 0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447
어떻게 인연이 되다보니 허구헌날 노가다에서 용접봉만 휘두르다가 그만 한국의 한 사회단체에서 일하게 된지도 반년이 넘었다.내가 일하는 단체의 사무국장님의 댁이 양수리라는곳에 있어서 자주는 아니고 가끔 동행해서 신세질때가 있는데 하도 멋진곳에서 유유자적하게 사셔서 나도 언젠가는 본받고싶은 마음이다.

양수리라는곳은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한시간쯤 가면 도착할수 있는 남양주시에 자리잡고있는데(국장님은 지프차를 운전해서 기차역까지 가신뒤 기차를 바꿔타고 출근하신다,퇴근할때는 반대로,세상에..)강변역에도 양수리를 가는 버스가 있어서 아무때나 생각만 나면 찾아갈수 있는곳이다.

양수리(兩水里)는 일명 두물머리라고도 하는데 이름에서 알다시피 두개의 강물이 합류하는 여울목에 자리잡아서 생긴 이름이다. 워낙 경관이 수려해서 촬영지로도 자주 씌이는데 드라마"전원일기"에 나오는 양촌리가 바로 양수리를 모델로 한것이고 촬영지도 양수리이다.

전원일기는 거의 20년째 연속으로 방영되고있는 장수드라마다.한국의 드라마는 불륜이나 사랑의 줄다리기,내지는 가정갈등이나 금전문제가 주된 내용이고 촬영장소도 주로 도시인데 오직 전원일기만은 흙냄새가 푹푹 나는 시골을 다루었고 보기드물게 풋풋함과 소박함이 묻어나고있다. 나오는 캐릭터들도 복실이나 일용엄니같은 시골틱한 인물들이다. 수많은 농민들을 위한 거의 유일한 드라마라고나 할가? (한국의 농민들은 서럽다.눈길을 돌려주는이가 없어서.)

두물머리에서 만나는 강은 각기 남한강과 북한강인데 수량(水量)이 워낙 풍부해서 맞은편 강둑이 안보일정도로 넓다. 호수로 착각할만큼 넓은 수면위로는 항상 엷은 안개가 부유스름하게 끼여있는데 주변의 푸른 산과 어우러지면 그 신비하고 아름답기가 짝이 없다.

두물머리에서 차를 30분정도 더 달리면 약간은 외딴곳에 자리잡은 국장님집이 나타난다.주변에는 거리도 식당도 매점도 없고 오직 높은산과 울창한 숲뿐이다. 그밖에 다른이들의 별장도 띠염띠염 볼수 있고.

100평에 가까운(중국식대로 계산하면 300평방미터정도) 큰집에다가 여느별장과 다름없이 훌륭하게 지었지만 그것보다 멋있는것은 뜰안이다.

앞뜰에는 울타리 하나 없이 그냥 잔디밭으로 꾸민 마당이 있고 마당한가운데는 플라스틱의자 몇개와 탁자가 놓여져있는데 그위에는 파라솔(遮陽傘)대신 등나무덩쿨이 시원한 그늘을 던져주고있다.

마당에는 커다란 바윗돌이 하나 있는데 일부러 갖다놓은것인가 물으니 그건 아니고 마당을 만들때 엄청 큰돌이 있어서 버리려다가 너무 단단히 박혀있어서 포기한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마당에 박혀있는 바위돌이 잔디밭이 주는 인위적이고 딱딱한 느낌을 없애주면서 지칠때면 당장이라도 그위에 걸터앉고싶게 만든다.역시 자연은 개조하기보다는 같이 어울리는게 순리라는 생각이 든다.

마당에는 그밖에도 소나무로 지은 정자가 있는데 옆에서는 대추나무가 자라고있어서 정자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안주가 부족하다싶으면 즉석에서 손을 길게 뻗쳐 채취 및 식용이 가능했다.정자안에는 부채나 막걸리그릇대신에 커다란 컬러티비와 타자기가 놓여져있고 모기장으로 쭈욱 감싸져있었다.여름에는 아예 정자에서 사신다는...

마당앞 터밭에는 깻잎으로부터 시작해서 땅콩,고구마,고추,오이등 내가 이름을 아는 거의 모든 야채를 기르고있었다.물론 "무우"도 있었다. 싱싱한 고구마넌출이며 희한하게 생긴 땅콩을 나는 처음봤다. 연변에서는 재배를 하지 않으니까.기후가 추워서 그런까닭이라고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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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에서 국장님집을 찾아갈때마다 야밤에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는것이 거의 관습으로 되여있는데 그날도 어두컴컴할때 찾아가서 말린지 3년이나 됐다는 바싹마른 장작으로 이글이글한 숯불을 지펴놓은뒤 (틀림이 없다,장작이 마르다못해 거의 솜처럼 가벼웠다.) 바리바리 싸갖고간 돼지고기를 석쇠위에 올려놓고 지글지글 굽기 시작했다.

처음순서는 국장님의 주특기인 폭탄주다.(사실은 종이컵에 맥주와 소주를 섞어부은 사이비 폭탄주,제작과 집행감독에 국장님.)이윽고 고기가 익자 워낙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동안 너무 굶주려서 그런지는 확실치 않지만 모두들 식욕이 불끈불끈 솟구쳐서 엄청난 량의 고기를 먹었다.

집주변에는 인가가 워낙 없다보니 공기속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가끔 불찌가 탁탁 튀것이 소리만 날뿐, 어찌나 조용한지 소주를 잔에 따르니 쪼르르륵 하고 깊은 계곡에서 샘물이 흘러나오는듯한 맑고 깊은 소리가 울려퍼진다. 술병을 좀 더 가파롭게 기울이니 공기가 술병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둥둥"하는 소리가 나는데 나의 심장박동수와 주파수가 같은 모양인지 가슴이 막 공명현상을 일으키며 짜릿해나고 떨린다.(취해서 그런가?*@@*)

술도 거의 바닥나고 숯불도 사그라질무렵 국장님이 "우리 별이나 보자."라는 한마디와 함께 위에 걸려있는 전등을 껐다.순간 누군가 갑자기 먹물을 쏟아부은듯 아무것도 안보인다.밤에도 매일 조명으로 훤한 도시에서 살다보니 어둠마저 낯설고 신기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마치 검은 벨벳에 수많은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듯 무수한 별들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보인다.

"이건 카시오페아성좌" "저건 물병자리" "오리온성좌는 어디에 있지?" 다들 목이 아프도록 뒤로 젖히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별자리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가슴속에 맺혀있고 답답하고 응어리가 졌던 모든것이 순간 확 풀리는것이 느껴졌다.

그날 밤이 깊도록 별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과 일상의 번뇌가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조금이나마 깨달은것 같다.그리고 자연과 함께 한다는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것인가를 알게 되였고....

멀지않은 장래에는 숲과 가깝고 별이 보이는  그런곳에서 건강한 육체와 마음을 가꾸면서 살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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