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난한 사람들.

네로 | 2002.01.17 10:12:16 댓글: 0 조회: 1147 추천: 1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462
상상속의 한국은 발달하고 부유한 나라였다.그래서 다들 잘살고 걸인(거지라는 말이 있으나 너무 비하적이므로)은 당연히 없을줄 알았다.자본주의에서는 실업자들도 실업구제금같은걸 타먹을수 있다고 알았으니까.하지만 한국에도 걸인은 있었다.그리고 퍼그나 적지 않았다.

지하철에 가면 걸인들을 심심찮게 만날수 있는데 계단에 꿇어앉아있거나 엎드려있는데 얼굴은 거개 가리고있다.옆에는 모자나 종이박스가 있는데 동전속에 드물게 천원짜리 지페도 보인다.

걸인들을 측은해하며 동전을 놓아주는 이들을 보면 거개가 젊은 아가씨들이나 앳된 청년이다. 마음씨가 약한 할머니들도 가끔 혀를 차며 동전 한잎씩 놓아주고 뒤돌아보며 가신다.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아저씨들이나 화려한 옷차림을 한 아줌마들은 다 못본척하고 지나간다.아마 가까이 가기조차 싫었으리라,젊은 사람들은 순수하고 동정심이 많아서 도와주려 하고,나이가 들면 자비의 마음이 많아져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게 되나부다. 한창나이의 사람들은 바쁜 삶을 살아서 그만큼 여유가 없고 각박한 세상살이에 마음도 그만큼 척박해져서 그런가부다.

한국의 걸인들은 거개가 옷도 너무 루추하게 입지 않고 주동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서 구걸하지도 않는다. 중국의 걸인들과 확연히 구별된다.아마 자존심세고 싫은소리 못하는 한민족의 특성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의 걸인들은 다르다.동정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옷이라기보다 넝마에 가까운 옷을 입고 사람만 만나면 악착스럽게 구걸한다.웬만큼한 재간이 아니면 한번 찍힌 이상 돈을 내놓아야 한다.한번은 할빈에 간적이 있는데 기차역에서 걸인을 만났다.

기차역에는 표를 사기 위하여 길다랗게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는데 그 걸인은 제일 뒤로부터 세금을 거두듯이 한명한명 돈을 받아내는것이였다.특히 수단이 너무 고명하여 만약에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애처로운 목소리로<제발 도와주십시오,집에서는 어린것이 굶어가고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때국이 줄줄 흐르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몸을 사정없이 밀착해온다.

표를 사기 위해서 줄에서 빠지면 안되였으므로 피해서 달아날수도 없는 상황이라 거개가 오만상을 찌프리면서 마지못해 주머니를 더듬어서 한잎씩 던져주지 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불결하고 게을러보이는데다가 교활하기까지 한 걸인이 너무나도 싫어서 한푼도 주기 싫었지만 더러운 몸뚱이가 나한테 매달려들것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쳤다.

싱갱이질을 하다보니 나한테까지 오는데는 퍼그나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내차례는 돌아왔다.내뒤의 사람도 어김없이 20전을 뜯기였다.오늘따라 수입이 퍼그나 짭짤한지 그의 얼굴에는 얄풋한 미소까지 피여오른다. 그가 재빨리 표정관리를 하고(최대한 애절하고 비통한 표정으로)나한테 손을 내밀때쯤 번개같이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으니 나는 걸인을 향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에 아직도 쥐여져있는 20전짜리 지페를 가리켰다.

<이건 두사람몫입니다.>

순간 걸인은 화들짝 놀라더니 얼굴이 일그러진다.하지만 그도 처음당하는 일이라 당황한지 얼른 앞으로 자리를 옮겨 구걸을 계속해나간다.슬쩍 뒷사람을 훔쳐보니 표정이 상당히 떫다.ㅋㅋㅋ

연변은 작은곳이라 그런지 걸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특히 조선족중에는 걸인이 거의 없다.비록 생활이 째지게 가난하여 굶고사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으련만,남한테 손을 내밀어 구걸로 살아가느니 죽음을 선택하는것이 조선족이다.

10여년전,연변의 어느 도시에 량식배급소에 다니는 직원이 있었다.하루는 그가 슬그머니 자루에 옥수수를 담아 집에 가져가려다가 그만 들켰다.아마 집에 가져다가 사료로 쓰려고 그런 모양이였다. 당연하게 그는 따끔하게 욕을 먹었고 다시는 안그러겠다는 다짐을 하고야 집에 돌아갈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틀,사흘이 지나도 다시 출근하지 않았다.무단결근까지 하니까 화가난 배급소의 책임자가 그의 집을 찾아갔을때에는 그는 이미 안해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온집식구가 독약을 먹고 자살한뒤였다.

나중에 가마솥을 열어보니 설익은 통옥수수가 밑에 눌어붙어있었다. 장기간 병석에 누워있는 안해와 학교를 다녀야 하는 조무래기들때문에 얼마안되는 월급으로 먹고살수가 없어서 부득불 배급소의 옥수수를 집으로 몰래 가져가야만 했던것이다. 그나마 비싼 입쌀에는 감히 손을 대지 않고...

그러다가 들키게 되니 자책감과 수치스러움,그리고 자신에 대한 무능함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온집식구가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다가 죽음을 선택했으리라...

친구한테 이 이야기를 듣게 되자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다.그때는 옥수수쌀도 식탁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였고 되였고 굶주리는 사람이 더이상 없는줄 알았는데 우리주변에는 아직도 먹을것이 없어서 죽음의 길로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국의 걸인들,중국의 걸인들,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이다.그리고 먹을것이 없어서 옥수수를 훔친 배급소의 직원도 당연히 가난한 사람이다.

하지만 더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바로 우리들이다. 아파트를 사느라고 5만원을 빚졌는가 하면 한국으로 나오는 경비를 마련하느라고 오느라고 10만원을 꾼다. 빚한푼 없이 말끔하게 살아온 그네들과 비하면 우리야말로 도움을 받아 마땅한것이다.

그럼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가? 있다.중국에서는 수백만원씩 은행빚을 지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승용차를 타고다니고 연회에 참가하는 기업가들이 있다.그야말로 가난의 극치일듯싶은데 이웃나라 한국에는 재벌이라고 부르는 더 가난한 무리가 있다.재벌그룹들은 거개가 부채비율(負債比率)이 300%,400%이상이라고 한다.한국정부와 은행 역시 정이 많아서 가난한 회장님들을 위해 거금을 팍팍 쏟아붓고있으나 아직 턱이 없이 모자란다고 한다.

참 세상은 넓고 가난한 사람은 많다.주변을 보면 가난한사람들 천지이고...돈을 많이 벌수록 부족하니 나도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차피 가난을 면하기가 어려울듯 싶다.그냥 앞으로도 현상태나마 유지하게 해주고 제발 재벌같은 극심한 가난속에는 빠지지 말았으면 하고 기도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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