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신문이 무서워~

네로 | 2002.04.18 10:13:59 댓글: 0 조회: 996 추천: 1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509
퇴근하려고 사무실문을 잠그려다가 문밖의 휴지통에서 낯이 익은 얼굴을 보았다.바로 김학철 선생님이였다.주어서 보니 김학철선생님의 부고소식과 더불어 그분의 인생역정을 그린 기사가 실린 신문이였다.존경하는 김학철선생님의 얼굴이 휴지통에 버려진다는것이 서글펐지만 당연한거라 하지 않을수가 없다.신문은 어차피 보고나서 휴지통으로 버려지고 나중에 재활용돼서 다른용도로 씌이기 마련이니까...

생각해보니 그얼마나 우리의 사랑을 받고 존경하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신문에만 나면 다 나중에는 휴지통에 버려지는 운명을 면치 못했다.뉴스인물의 비애라고나 할가?앞으로 나는 책에는 나오더라도 신문에는 나지 않을것을 결심했다.내얼굴도 휴지통에 버려진다면 너무 기분나쁠것 같았다.(아니..성냥갑만큼한 토막기사라도 좋으니 제발 내달라...ㅎㅎㅎ)

신문은 이토록 잔인하다,

내가 처음으로 구독해서 읽은 신문은 소학교다닐때 보던 <소년아동보>였다. 일반신문의 절반크기고 딸랑 4면짜리... 연변에서 발행되는 어린이용 조선말신문이였는데 매주 수요일날 아침이 그렇게 기다려질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선생님께서 소년아동보를 한아름 안고와서 우리들에게 나눠주었고 신문구독시간을 따로 할애해주었다.

신문에는 동요 동시와 더불어 학생들의 작문이며 연변내 소학교뉴스와 간단한 국내외시사같은것도 실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내가 좋아한건 연재소설과 만화섹션이였다. 순식간에 다 읽고 아쉬운 마음으로 혀를 감빨며 한번내지 두번은 더 읽곤 했다. 다 읽은 신문은 곱게 접어 책가방에 넣고 집에 돌아가서 신문걸이에 걸어두었다.

중학교를 올라가니 학생들을 위한 신문이 없어졌다. 아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중학생은 아마도 어정쩡한 세대인것 같다. 어린이용독물을 보기에는 너무나 컸고 성인용글을 보기에는 아직 미숙한때인데 그들을 위한 신문이나 잡지마저 없다니..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유일하게 볼수있는 외국신문은 북조선의 <로동일보>였다. 연변에는 조교(외국에서 사는 북조선인)들이 퍼그나 살고있는데 그들의 집앞에는 <로동일보>라는 글자를 쓴 신문함이 의례 달려있다. 로동일보의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다만...

직장에 들어가니 신문과 가까워지게 되였다. 중국의 여느 사무직이 그러하듯 아침은 더운 차 한잔과 신문으로 여유있게 시작되는데 조선족과 한족이 같이 근무하므로 두가지 말로 된 신문을 종류별로 퍼그나 주문했었다.그런데 볼수 있는 신문은 많아진 반면에 재미는 훨씬 떨어졌다.어차피 뉴스는 며칠뒤면 잊혀지기 마련이고...사설이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글쓴이마저 동감이 가는지에 대해 의문이고,게다가 성인용신문은 만화나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0%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메이져신문은 일부러 딱딱한 기사와 재미없는 글만을 골라서 만든것이 아닐가 하는 의심이 갈 정도로..

일반인들이 좋아하고 기꺼이 자기돈을 털어서 구입하는 신문은 따로 있었다.
그중에서 인기 일순위는 당연히 <텔레비젼신문>이였다. 텔레비젼이 보급되면서 만들어진 신문인데 처음에는 텔레비젼프로그램시간표만 나오던것이 나중에는 스타소개와 드라마줄거리,생활정보와 같은 취미위주로 편성되여갔다. 그렇다할만한 소일거리라고는 텔레비젼시청이 거의 전부인 서민들에게 당연히 환영받을수밖에 없었고 텔레비젼신문도 두둑한 후원을 받는 정부기관지와는 달리 수익을 자부담해야 했으므로 독자들의 취미를 최대한 유발할수 있는 기사를 싣기에 노력했다. 쓰잘데기없는 정치이야기같은것과는 인연이 멀어져서 반갑긴 한데 거의 여백을 찾아볼수 없을만큼 각종 광고가 덕지덕지 구석마다 붙혀져있는것은 아주 아름답지가 못했다.

이밖에 <종합참고>라고 부르는 신문도 퍼그나 재미있었다. 국내외신문에서 스크랩해서 모은 기사들로 이루어졌는데 종합참고를 통해서 바깥소식과 그나마 넓게 접할수 있었고 유익한 각종 상식을 쌓아갈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재선간<리더스다이제스트와 비슷한 의미...>이라는 중문판신문은 순수문학만을 다루는 신문이였다.

이밖에 연변에는 독보조라는 희한한 집단이 있다.(독보조?독이있는 보조? 그게 아니고 신문을 읽는 모임이라는 뜻의 讀報組이다.) 노인들의 신문읽기모임인데 옛날에는 노인중에서 문맹이 많이 있었기에 마을의 노인들이 같이 모이고 그중에서 글을 아는 노인이 신문을 큰소리로 읽어주군 했다.독보조는 신문읽기와 더불어 기타 취미활동도 같이 하는 노인협회비슷한 조직인데 당연히 독보조조장쯤 되는 노인들은 인기짱이였고 권력도 막강했는데 요즘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워낙 없어져서 모여서 같이 신문읽을 일은 없어졌다. 굳이 글을 모른다더라도 그부분을 텔레비젼이 보태줄수 있으니까... 따라서 독보조라는 이름도 노인협회로 다 바뀌여져부렸고.

중국에서 갑A리그와 갑B리그가 활성화되고 연변에 축구열기가 더해갈때쯤 조선문판으로 된 <축구신문>이 탄생했다. 13억인구를 가진 중국에 고작 12개밖에 없는 갑A팀중에 인구가 불과 수백만밖에 안되는 연변의 축구팀이 당당히 끼였다는것은 전 연변인민의 자랑이였다.  더구나 조선족들이 긍지를 느끼는것은 팀원들은 거의 전부가 조선족이였다. 한두명의 아프리카용병을 제외하고...

한부에 1원이라는 퍼그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축구신문은 불티나게 팔렸으며 심지어 가정주부인 큰형수님도 축구신문의 열정적인 애독자였다. 퇴근길에 축구신문 한장 들고 집에 들어오면 서로 먼저보기 위한 사투가 벌어졌으니,연변팀이 갑A에서 밀려나간 요즘에도 축구신문이 왕년의 인기를 유지하고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한국에 온다음 신문에서 처음 띄이는것이 화려한 천연색칼라와 책을 방불케 하는 두터운 부피였다. 그때까지 보아온 중국신문은 거개가 흑백신문이고 인쇄잉크냄새가 진하게 나는 아직 걸음마단계라고나 할가? 경제차이를 한눈에 실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신문을 배달하는 소형승합차가 회사앞에서 잠간 속도를 늦추는가싶더니 차창안에서 휙!하고 신문이 마당으로 던져진다. 그러다보니 신문배달하는 아저씨를 뵌적이 한번도 없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그럼 비오는날 당신이 어떻게 하나 보자? 설마 물투성이바닥에 던지고 가진 않겠지?> 그런데 비오는날 아침에도 휙!하고 신문뭉테기가 날아들어온다. 눈여겨보니 신문은 비닐봉지안에 넣어져있었다.

중국에서는 신문사나 대리점에서 신문을 배달하는것이 아니고 우체부가 일임한다. 파란옷을 입고 파란자전거를 타고다니는 우체부의 자전거뒷바퀴양측에는 커다랗고 무거운 신문주머니가 하나씩 붙어있다. 우체부는 편지와 더불어 신문을 일일이 가정마다 배달하며 신문을 구독하는 집에서는 나무로 된 신문함을 따로 만들고 겉에다가 구독하는 신문의 이름을 적어놓군 했다.그렇지 않은 집에는 문고리같은데 신문을 깔때기모양으로 말아서 조심스레 꽂아놓는다. 한국처럼 마당안에 휙~ 던져넣었다간 큰일난다.

한국신문을 펼쳐들면 가장 희한한것들이 반라의 미녀가 요염하게 웃고있는 각종 유흥업소광고들... 그리고 음란전화서비스광고...고리대광고같은것들이였다. 게다가 천지신명을 업고 영험하기 이를데 없다는 무속인(사주를 보거나 액을 막아준다는 무당이나 기타 등등의 미신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광고도 풀컬러사진으로 버젓이 광고하는것을 볼수가 있다.자본주의는 과연 달랐다!

신문기사는 사회,정치,경제가 퍼그나 비중을 차지하고 해외소식도 빠질수가 없다. 중국과 사뭇 다른점이라면 정부나 대통령도 과감히 비판하는 기사가 버젓이 실린다는 점이다. 혀를 쯧쯧 차며 감탄하다가 문득 발견한게 있다면 한국신문도 다루지 못하는 기사가 있으니 사회체제를 반대하는 기사는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미군문제나 기타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은 알아서 회피하는것 같고 날카로워보이는 사론도 거개가 사회의 풍조에 맞춰서 나오는거라 한국의 신문도 정치와 여론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었다. 그래도 훨씬 앞선 언론의 자유가 부럽다.

내가 보기 좋아하는 신문은 스포츠신문인데 거기에는 따분한 뉴스나 경제에 대한 장광설이 없는 편이고 만화가 줄줄이 있는데다가 기사도 퍼그나 재미있어서 심지어 가끔 사서 보기도 한다는,아이러니컬하게도 스포츠신문을 구입해서 스포츠섹센은 하나도 안본다는 점이다. 스포츠신문에서 야구나 골프가 제일 비중있게 다뤄지는데 아쉽게도 이 두가지에 대해서 잘 모르거니와 취미도 없다보니...

스포츠신문에서 두번째로 많이 다뤄지는건 연예가 뒷소식이다. 이러쿵저러쿵 말썽도 많은데 신빙성이 떨어지는 기사도 많고 제목도 거개가 과장되고 원색적이라 별로 믿음을 사지 못한다. 오죽하면 911테러때 신문가판대에서 무역빌딩이 무너졌다는 기사를 보고도 사람들이 웃으며 다 지나쳤다고 한다.양치기소년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맨날 <승냥이가 왔어요!>라고 호들갑을 떨다가 승냥이가 진짜로 왔을때는 오히려 마을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한번은 주말이라 집에 누워서 늘어지게 자고있는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서 문을 열고보니 전혀 낯선 사람이였다. 그는 자신이 XX일보의 지점장이라면서 신문을 구독하기를 요구했다. 그냥 주면 모를가? 한마디로 딱 잡아뗐지만 그는 문고리를 딱 틀어잡은째 자사의 신문을 구입해야 하는 수백가지의 이유를 열변했다. 그래서 회사에가면 각종 신문이 많으니 구태여 집에서까지 주문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집에서 오히려 시간낭비를 하지말고 신문을 많이 보고 보고또 봐야 한다면서 아무튼 신문을 사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을 잡도리였다.  잔등에 식은땀이 날지경으로 당황해났지만 결정적인 한마디로물리칠수가 있었다. <저 문을 닫을게요.> 그리고는 잽싸게 문을 잠그고 집구석에숨었다. 어차피 말로는 그사람을 설복할수 없으니 이런경우에는 줄행랑이 최고... 신문이 무서워!
추천 (1) 선물 (0명)
IP: ♡.99.♡.22
22,954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774
돌이
2002-06-14
5
596
돌이
2002-06-14
5
1074
돌이
2002-06-14
5
935
돌이
2002-06-14
5
1101
jade
2002-06-12
2
961
우창이
2002-06-11
1
758
우창이
2002-06-10
0
791
실이
2002-06-08
0
870
jade
2002-06-07
4
1106
jade
2002-06-06
1
1425
이쁜공주
2002-06-06
2
961
네로
2002-06-05
1
1216
네로
2002-05-24
1
2551
네로
2002-05-24
1
1206
네로
2002-05-24
1
1138
네로
2002-05-24
1
1434
네로
2002-05-15
1
1043
네로
2002-05-11
0
1124
네로
2002-05-08
1
994
네로
2002-04-29
1
895
네로
2002-04-23
0
1102
네로
2002-04-18
1
996
네로
2002-04-09
1
831
네로
2002-03-22
0
1007
네로
2002-03-20
1
907
네로
2002-03-12
0
1295
네로
2002-03-12
2
1897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