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간의 전쟁-다시 대사관앞에서.....

네로 | 2002.05.24 12:26:34 댓글: 1 조회: 1207 추천: 1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517
이튿날,나는 서류를 챙겨들고 다시 대사관문앞에 나타나 어슬렁거렸다. 25일이 자진신고마감일이라서 태평스럽게 번호표를 나눠주는 24일까지 기다릴수가 없었기때문이다. 오늘은 번호표를 나눠주지 않아서 그런지 전날보다 사람이 훨씬 적었다. 어제 번호표를 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꾸역꾸역 대사관으로 들어가고있었다.

대사관의 중국식대문앞에는 어제 붙여놓은 포스터가 그대로 있었다. 다만 24일이라고 쓴 날자가 23일로 고쳐져있었다. 아무래도 마감일전날에야 번호표를 나눠준다는건 무리라고 판단했나보다.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일루의 희망을 안고 지나가는 경찰관한테 물었다.

"오늘은 번호표를 탈수 없나요?"
"번호표를 타려면 저기에 가서 줄을 서세요."

경찰관의 손길이 가리키는곳을 보니 퍼그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뙤약볕에 오래 쬐여서 그런지 사람들은 지쳐있는 모습이였다.
다들 번호표가 23일에야 발급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나처럼 일루의 희망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이리라.

나도 줄을 서려고 다가가는 순간 일대소동이 일어났다. 줄앞끝에 섰던 사람들이 주먹을 쥐고 줄뒤끝으로 달려간다. 알고본즉슨 표를 줄앞이 아니라 줄뒤끝부터 준단다.

줄앞에 섰던 사람들은 화가 꼭뒤까지 치밀어 따지고들었다.
<이런법이 어디있어요?>
<당신들이 하도 밀고닥치니까 사고가 날가봐 그랬어.>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경찰아저씨가 대답했다.

줄앞에 서있던 사람들은 원성이 자자한 반면에 줄뒤끝에 서있던 사람들은 내색은 안하지만 웬떡이냐는 표정이다. (나도 좀전에 줄섯더라면 먼저 표를 받는건데...)속으로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나는 줄뒤끝으로 변해버린 앞쪽에 섰다.

<모두 앉으세요!>
투덜거리며 모두 엉거주춤 쭈크려앉는다. 몸집이 뚱뚱한 몇몇 아줌마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앉느라고 허둥댄다. 앉지 않다가는 무슨 험한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모두 길쪽으로 돌아서요!>
앉은채 모두 길쪽으로 몸을 돌린다. 참으로 희한한 광경이 아닐수가...
중국대사관이 위치한곳은 명동의 번화가라 지나치는 행인이 워낙 많아서 앉은 사람들 모두가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지나는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거나 눈길한번 주지 않고 못본듯이 걸어간다.너무 감사했다.

<이번엔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서요!>
모두들 쭈크린채 돌아앉느라고 난리다, 워낙 빽빽하게 모여있은터라 그게 쉽지가 않다.

<이거 뭐 똥개 훈련시키나?> 옆에 있는 아줌마가 얼굴이 붉어지며 원망한다.
한마디 삐쳤다.<아주머니.참으세요, 오죽이나 재미있으면  저분들도 저러겠습니까?>
아주머니도 한심한지 피씩 웃었다. <우리야 어쩌겠소? 시키는대로 해야지.>

<서류를 안갖고 온새끼들은 당장 나와!> 나오는 사람이 안보인다. 그러자 목소리가 더 높아진다.<당신들 진짜 개새끼처럼 굴거야? 나오랄때 얼른 나와!>어느새부터인가 말투는 반말로 변했고 "당신"이라는 말대신"새끼"라는 표현을 써가는 경찰. 사람들은 쭈크리고 앉은채 무표정하다. 어차피 이런말은 한국에 와서 처음듣는게 아니였다!

<당신들을 생각해서 임시로 번호표를 만들어주기까지 하는데 이런식으로 나올거야? 내가 땡볕에서 이고생을 하는게 안보여요?> 하지만 그분의 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땡볕에서 서고 쭈크리기를 반복하면서 기합을 받는건 안보이나부다.

좀 지나자 손에 번호표를 든 경찰이 다가오더니 줄앞에 선다.
<아니,뒤쪽부터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나이든 경찰은 웃으면서 말했다.

<먼저줄선사람부터 줘야지 뒤쪽부터 주는법이 어디있어요? 이런방법을 쓴건 뒤에서 자꾸 밀면 앞사람이 다칠가봐 그런거예요. 당신들 의료보험도 안되잖아,병신되고싶어?>

<한번 말해봐요,당신들 의료보험 안되는거 맞지?>

나는 앞줄이 뒤줄로 변한뒤에 줄을 섰는데 뒤꽁무니가 다시 앞줄로 변하는통에 생각지 않게 재빨리 번호표를 받아낼수 있었다. 허구픈 웃음을 지으면서 그사이 몇번 속았는지를 게산해보았다.

24일에 준다던 번호표를 23일에 준다고 하고,실지로는 21일에도 번호표를 나눠주는데 뒤줄부터나눠준다고 속이고 다시 앞줄로 나눠주니 번호표 한번 발급하는데만 자그만치 거짓말을 네번이나 한다. 그들은 선수였다. 아무리 질서유지차원이라지만 약속을 어기는걸 이정도로 밥먹듯한다면 누가 이후에도 경찰을 믿겠는가?

번호표를 받은뒤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실내에는 여권발급신청을 하러온 불법체류자들로 꽉 차있었다. 밝고 화사한 길거리의 옷차림과는 달리 거개가 어두운색의 옷을 입고있고, 땡볕에 그슬려서 얼굴마저 시커매서 실내가 더욱 어두워보인다. 여자들도 많지만 생머리는 보이지 않는다. 짧은 퍼머머리가 대부분... 하루에 10시간이상을 중노동하는 여자에겐 생머리가 사치다.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밝은색의 옷이 사치이듯이...

창구에서는 대사관직원들이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서류를 작성하고 질문에 답변하고, 질문은 항상 똑같았다.

<여권은 언제 나오나요?>
<여기서 수속을 마친뒤에 어디로 가야하죠?>

간단한 안내서라도 작성해서 나눠줬으면 편리할텐데 일일이 대답하느라고 창구의 아가씨는 목까지 쉬여서 보는 사람이 안쓰럽다. 게다가 실내가 워낙 복잡해서 고함치듯이 말해야 하니 오죽하랴? 붉은 도장을 세류에 받은뒤 나는 뛰듯이 대사관을 빠져나왔다. 아직 가야할곳이 남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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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 (♡.176.♡.120) - 2002/08/08 09:43:28

참 , 고생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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