剪灯 4

xingyu | 2013.11.27 23:09:55 댓글: 4 조회: 941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1992128


                              (  1  )

 

 

   " 명월이 안에 있는가. "

 

 행수기생 정암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료 위에 죽은듯이 드러누웠

명월이가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가채를 내리고 길게 땋은 머리태를 드

리우고 있는 어깨가 갸냘프다.워낙 흰 살결이 희다못해 더 창백해보인다.행

수 정암에게 윗자리를 내주려 일어서는 명월이 몸이 바람에 나붓기듯  휘청

거린다.

 

 " 아서라. 몸이 이리 부실하여서야... 쯧쯧. "

 

 정암이 휘청이는 명월이를 제자리에 주저앉히며 기색을 살펴보았다.

 

 " 날이 궂어서 병이 도진겐가, 그간 몸이 더 축난것 같으이. "

 " 명진스님은 평안하시온지요... "

 

 몸이 부실한것이 어디 하루이틀 일이던가. 매번 행수 정암에게 걱정만 끼

치는 듯하여 명월이는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정암은 만면에 화색이 돌아

신수가 훤해보였다. 정연암에 다녀오면 늘 평온한 모습이다.

 

 " 그 사람이야 늘 그렇지. 별탈이야 있겠는가. 아침저녁 염불

 을 게을리 않고 중생을 구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오. 탈이라면

 오입질이 탈이겠지... "

 

 그 사람이라... 정암은 늘 명진스님을 그 사람이라 불렀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사연들이 오갔는지 알 수 없지만 명진스님을 그 사람이라 부르는 정

의 목소리엔 늘 애틋함이 묻어있었다. 정암이란 이름 또한 정연암에서 따

것이였다.

 곡차를 마시고 세속의 여인네들과 거리낌없이 정사를 나누는 명진스님을

두고 사람들은 파계승 혹은 땡중이라 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명진스님은

그런것에 개의치 않았다. 문장에도 능통하고 여러 악기를  두루 다를뿐  아

라 의술에도 뛰여났다. 하여 한적한 산속에 암자를 두고 있음에도 사람 발

이 끊이질 않았다. 혹자는 학문을 논하고자 혹자는 음율의 가르침을 받고

혹자는 병을 고치러 암자로 들어갔다. 명월이도 그 때 명진스님이 아니였

다면 진작에 황천에 있을 몸이였다.

 

 " 오입질도 탈이라 할 수 있을가. 불법에 그 사람만큼 능통한

 자 없으니 계집질이나 곡차만 아니였다면 진작에 성불하였을

 몸이지. "

 

 명월이 시중을 드는  아이 달래가 찻상을 들이자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정암

은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 명진스님이 그리 성불하시면 형님이 서운하지 않겠습니까? "

 " 하하하. "

 

 정암은 명월이의 농짓꺼리가 맘에 들었는지 박장대소하였다.

 

 " 옳거니. 이제 명월이 자네 말을 들으니 내 문뜩 깨달은 바가

 있네. 이제부터 굳이 성불하려 불공 들일 필요가 없을듯 하이.

 이 내 한몸 바쳐 명진스님이 성불한다면 나 또한 성불한것이

 아니겠는가. "

 

 명월이의 창백한 얼굴에 웃음기가 피여올라 보기가 훨 나았다. 정암이 온

화한 얼굴로 명월이를 바라보며 두 손을 꼭 잡아준다.

 

 " 농을 하는것 보니 아직 살만한가 보이. "

 " 큰 방에 좌의정대감이 드셨다네. 새로 부임된 도제조대감을 위

 해 연을 벌리는 듯하이. 이번엔 자네 얼굴을 꼭 봐야겠다 벼르고

 있으니 어쩌면 좋을지... 자네 정 내키지 않으면 내 여차  둘러대

 볼가나. "

 " 아닙니다, 형님. 지난번에도 그냥 돌려보내서 노여움을 많이

 샀는데... 괜히 형님만 난처해질것입니다. 곧 채비를 하고 나간

 다고 그러셔요. "

 " 자네 몸도 안 좋은데 괜히 내가 미안하이. "

 " 그런 말씀 마셔요. 형님의 은공에 비하면 너무 미미한것들이라,

 ... ... "

 " 은공이라니. 다 인연이 닿아 그리된것이고 부처님의 뜻이려니..."

 " 그럼 내 그리 알고 큰 사랑채에 이를터이니 준비하고 나오게나."

 

 입김만 불어도 날아갈듯 초췌한 명월이. 허약한 사람을 괜히 청루로 끌어들

인게 아닌가싶은 생각에 행수 정암은 발걸음이 무겁다.

 언젠가 정암이 명진스님에게 물었다.

 

 " 어찌하여 저 아이의 출가를 막으시는겝니까? "

 " 출가할 상이 아니요. 정암이 데리고 있는것이 나을듯 싶구려. "

 " 하오면 스님은 어찌 유독 저 아이만을 멀리 하시는겝니까. 제가

 사내라도 벌써 마음이 동했을것입니다. "

 " 내 아직 성불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구려. 나무아미타불. "

 

 정암은 짐짓 정색을 하며 염주를 들고 일어서던 명진을 떠올리며 입가에 웃

음을 띄운다.

 

 

 

                                   (  2  )

 

 

 가채를 올리고 나니 무거웠던 머리가 자칫하면 앞으로 기울어질듯 싶었다.

에 연지를 두어번 바르고 나서야 혈색이 도는듯 보였다. 연회에 가는

자처럼 보일 수는 없는 법. 면경에 여러번 얼굴을 비추어보는 명월이다.

 

 " 참으로 고와요. 상아님처럼 고우십니다. "

 

 면경속에 주먹만한 얼굴 하나 더 나타난다. 달래였다. 이목구비가 오목하니

쁘고 붙임성이 좋은 아이였다. 몇해전 장터에서 허름하고 찢겨진 옷차림에

때국물이 흐르는 이 아이를 명월이는 기방으로 데리고 왔다.  이제 볼살이 제

법 오른 모습이 귀엽다.

 

 " 그리하냐. 어서 거문고를 챙기거라. "

 

 치마자락을 휘여잡고 툇마루로 나오니 들어치는 비바람에 온몸이 오싹하니

소름이 돋아났다. 제 키만한 거문고를 거뜬히 들고 앞장선 달래 뒤를 따라 편

문을 지나니 장구소리며 웃고 떠드는 소리로 왁자지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조정에서 내노라하는 대감들이 기녀 하나씩 곁에 붙이고

앉아서 흥건히 취해 있었다.

 

 " 어허, 이게 누군가. 명월이 아니던가. "

 

 내심 명월이 오기를 기다렸던 좌의정 윤대감이 크게 반색을 하였다.

 

 " 늦게 들어 황송하옵니다. "

 " 아닐세. 와준것만 해도 고마우이... "

 " 그러게나말일세. 조선팔도 풍류객들 사이에선 도성가서 절세가인

 명월이를 못보면 한이요, 그 거문고소리를 못 들으면 천추의 한이

 고 한다오. "

 

 도총관영감이 좌의정을 거들고 나섰다. 도제조 대감도 혀를 내둘렀다.

 

 " 과연 명불허전이로세. 내 명성만 들어봤지 가까이에서 보긴 처음이

 라서... 어서 한 곡조 뜯어보거라. "

 

 가냘픈 손가락사이에 낀 술대가 거침없이 현을 당겼다튕기며 깊고 격조높은

곡조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어찌 여린 몸으로 힘 차고 깊은 음색을 낼 수 있

는지... 좌의정 윤대감은 뭐에 홀린듯 명월이의 손짓과 몸짓만 바라본다.

 그동안 기녀들이 따라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마시고 거나하게 취해버린 도

총관영감이 기어이 그 흥을 깨고야 만다.

 

 " 좌의정대감. 이제 도제조대감도 합세했으니 이번 기회에 여세

 를 몰아 소론들을 쓸어버리심이... 세자책봉에 반대했던 우의정

 은 물론이고 거기에 동조하는 호조판서 허윤도 역모죄로... ... "

" 어허! 이 사람이. 정사를 논하는 자리가 아닐세. "

 

 도제조대감이 도총관에게 언질을 주자 행수기생 정암이 도총관 시중을 들던

계화에게 슬쩍 눈치를 주었다.

 

 " 도총관나리 오늘 술맛 좋은가보옵니다. 많이 취하신듯 하오니

 제가 뫼시겠사옵니다. "

 

 호조판서 허윤의 역모라... 도총관이 자리를 떴으나 명월이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음율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기어이 툭하고 현을 끊고 말았다.

명진스님에게 거문고를 배우면서 수도 없이 현을 끊어먹었지만 기방 들어와서

는 처음 있는 일이라 명월이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당혹스럽긴 정암도 매한가

였다. 현을 끊어먹는 일은 흔히 불길함을 예견하는 나쁜 징조로 받아들여졌기

에. 더구나 거사를 앞둔 인사들 앞에서 이런 실수를 하다니...

 

 " 몸이 좋지 않은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나왔더니...

 종래로 이런 적이 없었사온데 다 제 불찰이옵니다, 대감마님. "

 " 개의치 말게. 오히려 내가 고맙네, 출타했던 혼이 이제야 돌아

 온듯 하이. 허허."

 

 과연 노론의 수장다운 면모였다. 싸늘했던 분위기를 웃어넘기는 좌의정 윤대감

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평온한 모습이다. 가기(歌妓)와 무기(舞妓)가 들어오

자 술자리는 다시 흥겨워졌다.

 기생 애심이가 온갖 아양을 떨며 좌의정 윤대감의 환심을 사려했건만 윤대감은

명월이가 채워주는 잔만 비워줄 뿐이다. 명월이는 속이 울렁거리고 몸뚱이가 천

근만근이였지만 그래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낸다.

 어느덧 술자리가 파하고 몇몇 대감은 인사불성이 된 인사들만 남겨 두고 기방을 

나섰다. 그새 비는 그치고 밤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 살펴가시옵소서. 대감마님... "

 

 머리 숙여 인사를 올리던 명월이가 그만 휘청거리며 마주보던 윤대감 품에 안겨

버린다. 좌의정 윤의성은 솜같이 가볍고도 푸근한것을  품에 안았다. 미풍에 실려

오는 여인의 향기에 남아있던 취기가 사라지는듯 하다. 가슴깊은 곳에서 연정과

연민이 뒤섞여 올라왔다. 윤의성은 그 이상야릇한 기분에 휩싸여 한동안 할말을

찾지 못하였다. 허나 이내 지켜보는 눈들을 생각하며 명월이를 치켜세웠다. 청사

초롱에 비친 명월이 얼굴이 곱디곱다.

 

 " 허허. 몸이 허약하기 이를데 없군. 몸조리 잘 하게나. "

 " 송구하옵니다. 대감마님. "

 

 가마 타고 윤대감이 어둠속으로 사라지자 명월이도 다시 기방 대문을 넘어섰다.

 

 " 여우같은것! "

 

 기생 애심이였다. 명월이 고것이 윤대감 품에 안기는것을 보고나니 오장육부가 뒤

틀리는 듯했다. 지방관기 출신인 애심이는 용모가 빼어나며 가무와 악기에도 재주

가 남달랐다. 그럼에도 어찌 사람들이 명월이만 찾는지... 기방에 온것도 애심이가

먼저였는데 행수어른이 명월이를 더 감싸고 도는것도 그러하고.

 이는 분명 그 땡중이 부린 술수일게야. 애심이는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명진스님을

떠올렸다. 명월이 그것이 몸을 추스린다고 암자에 들어갔다 땡중을 꼬드겨 남정네들

휘여잡는 비결을 터득한것이 분명하다고 애심이는 생각을 했다. 기생팔자 첩살이로

펼것이면 이왕지사 실세 있는 좌의정 윤대감이 낫지 않을가 내심 마음을 다잡고  공

을 들이고 있는 터에 정작 윤대감 마음은 명월이한테 가 있으니. 애심이는 속이 타다

못해 숯검댕이가 되버렸다.

 

 애심이가 뭐라하든 명월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처로 향한다. 내딛는 걸음마다

허공이다. 

추천 (1) 선물 (0명)
나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어른아이다......
IP: ♡.159.♡.18
예의채 (♡.149.♡.162) - 2013/11/28 17:47:23

xingyu님.님의글을 고맙게 보고 있습니다.닉게명이 싱위.혹시 우병석씨가 아닌지 ?맞다면 저와
련계를 답시다. 오래 찾고 있는 중이였습니다. 한마을에 살던 옛 친구입니다2375244812@qq.com

xingyu (♡.159.♡.18) - 2013/12/03 19:57:32

이를 어쩌지요..ㅎ 애석하게도 저는 님이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루빨리 지인과 상봉하길 바랍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빛바랜 (♡.232.♡.199) - 2013/11/28 22:59:16

3기에서 시간이 많이 흘렀나본데...
명월의 그간 일들을 기다려봅니다
아직 추측만 하기에는 내공이 모잘라네요 ㅎㅎ
기다립니다^^

xingyu (♡.159.♡.18) - 2013/12/03 19:58:44

내공이 모자라다니 너무 겸손하십니다 ㅋㅋ

22,954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771
Blue07
2013-12-22
1
895
해피투데이
2013-12-22
0
507
금독수리
2013-12-22
0
878
금독수리
2013-12-22
0
1283
여자의맘
2013-12-20
4
2215
여자의맘
2013-12-20
1
1953
닝멍77
2013-12-19
3
1202
킹마더
2013-12-18
4
1799
여자의맘
2013-12-18
2
2163
짱 부자
2013-12-16
2
1069
여자의맘
2013-12-16
1
2221
Blue07
2013-12-14
2
1211
여자의맘
2013-12-14
1
2219
여자의맘
2013-12-13
1
2562
xingyu
2013-12-13
3
900
MtotheK
2013-12-12
0
1194
여자의맘
2013-12-12
2
2327
여자의맘
2013-12-11
1
2745
여자의맘
2013-12-10
0
3219
후회없다
2013-12-06
2
1482
후회없다
2013-12-06
0
4127
행복하네
2013-12-05
4
1531
Blue07
2013-12-04
4
1568
xingyu
2013-12-03
3
892
특별한사람
2013-12-03
3
2465
고소이
2013-12-02
3
825
권영주
2013-12-02
8
1278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