奴婢之愛 (43)

해피투데이 | 2014.06.13 23:27:38 댓글: 0 조회: 1416 추천: 0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193298


43  
오도리족 족장 울량기

 

<우루~ 우우~룰루~>…

이것은 말을 탄 한 무리의 괴한들이 이미 포획된 사슴 한마리를 두고 빙빙 돌아가면서 질러대는 괴성이었다. 뿔이 유난히도 예쁜 사슴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는지 선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채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댔다. 거칠기 그지없는 사내들은 무슨 축제라도 여는 듯 목청껏 고함을 질러댔고 박비를 대동하여 낯선 환경에 도착한 도살수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 듯 같이 고함을 질러댄다.

<우루~ 우우~ 우우룰루~>

그러면서 옆 가장자리에 묶여있던 말에 올라타서 그들과 합류한다. 열심히 뛰는 말들과 축제를 즐기는 사내들은 새로 나타난 객주를 보고 통쾌하게 웃으면서 더 열심히 달린다. 도살수도 혈기 넘치는 사내답게 힘차게 달렸고, 박비는 그들의 모습을 점도록 쳐다보았다.

그렇게 사슴을 중심으로 원형의 달리기를 한참 하던 그들은 남쪽방향을 바라보면서 1열로 나열하여 섰다. 그러자 사슴은 본능적으로 그들과 등을 돌려 정신없이 뛰기 시작한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런 사슴을 향하여 맨 중앙에 섰던 기골이 장대한 괴한이 있는 힘껏 활을 당기어 화살을 날린다.

쓔웅-

화살은 빠른 속도로 날아가서 사슴의 등 짝에 꽂혔고, 화살에 맞은 사슴은 비틀비틀 거리다가 결국에는 쓰러지고야 만다. 그러자 사내들의 큰 환호성과 함께 숨이 간들간들 붙어있는 사슴을 통째로 가마 속에 넣어 팽시킨다. 이어서 덩실덩실 춤추는 광경들이 연출되었고 활 시위를 당겼던 괴한이 도살수를 데리고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박비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보게 아우, 요즘은 어찌하여 소식이 이리도 뜸했던가?>

괴한이 도살수를 의자에 앉히면서 하는 말이었다. 도살수는 멋쩍게 웃어 보이고는 박비를 소개시켜주었다.

<형님, 오늘은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서 왔습니다. 우리 아래 동리에 사는 머슴인데 총기가 남다른 애입니다. 저와 같은 무지랭이와는 차원이 틀린 아이지요.>

도살수가 박비를 가르켜 소개시켜주자 괴한은 껄걸 웃으면서 박비를 번쩍 들어서 자신의 옆 의자에 앉힌다. 나이 어린 박비는 별 다른 저항도 못한 채 괴한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반갑다. 나는 여기 오도리족의 족장 울량기라 한다. 도살수는 나와 의형제를 맺은 조선의 영웅이니라. 도살수가 칭찬하는 자이니 너는 기필코 범상치 않는 아이일 것이다. 하하하…>

괴한은 자신을 오도리족의 족장이라 소개하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오도리 족은 두만강 유역에자리잡은 작은 부족민으로써 건주여진의 세력권에 속해있는 작은 규모의 집단체였다. 유목민인 여진족은 넓은 만주벌판에 기반을 두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각자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으면서 적절한 협동과 적절한 경쟁을 통하여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익혀왔다. 명나라의 강력한 통제 속에 있는 이들은 각 부족이 자체의 주체성에만 의존한 채 철저히 분산되어 있는 상태였다. 전투에 남다른 기질이 있는 이들이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서 통합될 때 그 힘은 어마어마한 거였다. 과거 아골타를 중심으로 형성된 금나라가 송나라에게 크나큰 치욕을 안겨준 것은 중원의 한족들에게는 잊지 못할 치욕이었다. 그리하여 명나라에서는 이들이 힘을 키우지 못하게끔 애당초부터 알게 모르게 외압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찬이십니다.>

박비는 공손하게 답변하였다.

<어리지만 제법 선비 티가 나는구나. 조선은 선비를 지향하는 군자의 나라라 하지. 신분을 떠나서 배움을 즐기는 자는 모두가 군자라 할 수 있지. 그래 네 스승은 누구더냐?>

박비에게서 범상치 않는 기운을 느꼈는지 족장 울량기가 겸허해진다. 무지하게만 보이던 변발의 사내가 자세를 바로 하여 고쳐 앉으니 그 품위가 제법 고상해 보였다. 더덕지기 옷에 도끼나 활을 들고 살생만을 일삼아 야수처럼 보이던 그 모습이 일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만 같았다.

<앎을 앎으로써 알게 해주고, 경험으로써 앎을 실천하게 해주는 이는 모두 제 스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비는 어려서부터 어버이처럼 믿고 따르던 스승의 정체에 대해 에둘러 얘기했다.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를 원하는 스승 김시습의 부탁 때문이었다.

<앎을 앎으로써 알게 해준다? ~ 이를 다른 말로 해석하면 이미 배우고 익힌 이치를 그 이치에서만 정지시키지 말고 그 이치를 통한 또 다른 이치를 탐구하라는 얘기인 것 같은데쉽게 말해서 세상만물을 정지의 상태로 보지 말고 변화의 상태로 받아들여서 부단히 연구하라는 말이 일 터! 또 다른 하나, 경험으로써 앎을 실천하게 해준다라는 말은 세상을 사색의 범주가 아닌 경험의 범주로 받아들여 그 경험과 대립과 긴장과 경계의 연계성을 밝혀내서 또 다른 앎을 밝혀내고 그럼으로써 세상을 좀 더 자연스럽게 순화시켜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구나.>

<쉽게 말하면 ()하여 ()하는, 다시 말해서 변화를 쟁점에 두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특정기준이 없는 대립의 경계성을 강조하는 ()()을 설명하는 얘기이지요.>

제법 해박한 울량기의 해석에 박비도 기분좋게 맞장구를 쳤다.

<허허허자네는 똑똑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위험한 인물이구만!>

울량기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비는 울량기의 그 말 뜻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끝없는 역사적 검증을 거쳐 새로이 탄생된 ()유학, 유학의 대가 주희가 집대성하였다 해서 주자학 또는 성리학이라고도 불리우는 신유학은 조선의 건국이념으로써 엄격하기 그지없는 신분사회를 지탱하는 강력한 이론체계이었다. (), 원어의 의미는 씨앗이라는 뜻이기도 한데 주나라 이전의 상나라는 上帝에 대한 믿음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였다. 인간이 세상의 근본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세상의 근본이었고 믿음이었다. 천자는 상제를 대변하는 절대적 권위자였고 백성을 다스리는 절대적 권력자였다. 그 권위와 권력은 당시의 경제상황으로부터 나온 거였다. 농업을 삶의 기반으로 삼는 당시 상황에서 하늘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와 믿음은 절대적이었고, 자신들의 운명도 하늘의 뜻에 귀결될 것이라며 상제에 대한 강한 신앙심을 보여주었다. 그 믿음과 신뢰는 정신과 영혼을 지배한다고 믿는 신앙심으로부터 나온 거였다. 상제는 하늘의 왕으로서 이 땅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백성들의 삶도 지배했다. 그런 상제는 이 땅 위에 자신을 대신하는 유일한 天子(하늘의 아들)를 책봉하여 자신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과시하게 하였다. 땅 위의 모든 인간들의 정신과 영혼을 지배하는 상제, 그의 힘은 대단한 것이어서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자비와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은덕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늘 변함없이 일관된 자세로 지상의 인간들을 이끌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상제를 대신한 천자에게는 무한한 능력도, 무한한 자비도, 무한한 사랑도, 무한한 은덕도 없었다. 그리고 숭고하지도 않았다. 천자가 상제를 대신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상제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천자의 정당성이자 당위성이었는데 그것이 허물어지자 땅 위에 사는 인간들은 처음으로 상제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었다. 세상의 근본은 어쩌면 추상 속의 사유 속에 있는 하느님이 아닌 인간 자체의 경험과 인간 자체의 생활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하느님이 무너지고 자연과 인간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시기가 도래된 것이다. 좀 더 긍정적으로 얘기하자면 인간정신의 새로운 도약이자 인간의 새로운 진화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도기가 바로 주나라였다. 자연과 인간의 연계성을 설명함으로써 등장한 것이 유학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 자연 속의 씨앗이 스스로의 힘으로 싹을 트이고 생명체로 자라 꽃으로 피어 열매로 맺기까지의 모든 과정 속에서 인간은 순수한 자연의 힘을 보았고, 인간도 인간 내면에서는 씨앗처럼 참고 인내하려는 ()이 있을 거라고 정의하였다. 거기에서 한 단계 상승하여 열매를 통하여 후대로 번식되는 씨앗은 열매를 맺어준 꽃과 그 생명에 감사해야 한다는 논리로 ()라는 관계론을 도출하였다. 상하구분을 원칙으로 하는 효는 자연스레 국가통치의 수단인 ()으로 연결되었고, 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보편화하기 위하여 도입한 것이 인간특유의 ()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중심에는 군자와 소인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하였고, 소인 위에 군림하는 군자의 당위는 로써 해결되었다. 조선이 엄격한 신분사회로 유지될 수 있는 것도 강력한 이분법을 요구하고 있는 유학의 이론적 근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박비는 이분법을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도학을 내세워 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 말, 정도전의 역성혁명만큼이나 과감한 발상이었다.

<도덕경의 핵심은 有無相生이야, 기준을 두지 않고 경계의 모호성을 강조하는 학문이란 얘기지. 말인 즉 구분이 없다는 것이지. 특정기준을 둔 구분이 발생하는 순간 선과 악, 정과 부라는 극과 극이 발생하는 것이지. 바로 이분화 된 모순이 형성된다는 것이지. 그런데 노자의 이론은 이런 구분법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대립하되 그 경계가 모호해야만 상생할 수도 상극할수도 있다는 것이지. 심지어는 이런 이론을 확대하여 구분 없는 세상에서 자발성 적인 주체행위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야만이 가장 건강한 세상이 된다고 말을 하지. 조선의 사회제도와는 엄격하게 대치되는 정치이념이지. 그러니 자네를 위험하다 할 수밖에…>

박비가 달리 대답하지 않자 울량기가 흥이 나서 말했다. 도살수는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울량기의 새로운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였다.

<, 이만 일어나자. 지금쯤 사슴고기도 다 익혔을 텐데 가서 탁주나 한사발 하자꾸나.>

울량기가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박비와 멍해 있는 도살수를 이끈다.

<대장, 대장~>

울량기가 기분이 좋아서 자리에서 일어설 때 변방에 있던 탐색군의 다급한 속보가 들려온다. 따뜻하게 물들어가는 봄철에 땀에 흠뻑 젖은 탐색군이 천막안으로 들어오면서 울량기에게 예를 갖추면서 보고를 올린다.

<대장! 조선군이 국경을 넘은 채 우리 오도리족으로 침공하고 있습니다.>

<? 무어라?>

<동네 왈패나 산적들이 아닌 정규군이었습니다. 어림잡아 수 천명은 되는 대규모의 정예군입니다. 예전에 저들의 세종 때에 제작하였던 신기술의 화포로 무장한 채 무자비로 침입하고 있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에서 선제공격이라니? 그것도 불의습격이라니?>

울량기는 화가 나서 주먹으로 탁상을 내리쳤다. 그러자 탁상은 힘없이 무르앉았다. 기골이 장대한 만큼 힘도 천하장사인 듯 했다.

<비상이다. 지금 바로 전군을 규합시킨다!>

울량기는 한 종족의 대장답게 침착하게 명령을 하달하고는 갑옷을 챙겨 입는다. 곁을 지키던 부하가 조선복장을 한 도살수와 박비를 쳐다보자 울량기는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다가 전투 직전의 제1명령을 내렸다.

<나의 손님들이다. 작전기간 정중히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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