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인연(8)

카풋치노 | 2017.06.10 23:14:37 댓글: 12 조회: 2849 추천: 4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3388193
호텔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오후 네시쯤이라 야외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않았다.
게다가 싸늘한 계절인지라 야외수영장을 사용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인공 모래사장에서 애들이 모래를 밟으며 즐기는 모습이랑
선베드에 비스듬히 누워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모습과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그런 조용하고 느린 삶의 휴양지 같은 느낌이 난다.

선우가 자기방에서 나오기전에 나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즐겁게 뛰여노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선우와 나는 호텔방 두개를 잡았고 각자 자기방을 체크한후 야외수영장 부근에서 만나기로했던것이다.

네다섯살쯤 돼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모래를 작은 용기에 퍼담고있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용기에 모래를 퍼담고 다차면 들고 걸어가 옆쪽으로 쌓아올린다.
탑을 쌓는거 같아보였다. 조금 더 커보이는 남자아이가 모래가 찬 용기를 들고 걸어가면 여자아이가 옆에서 아장아장 따라다닌다.
쌓아올린 모래탑위로 갑자기 여자아이가 넘어졌다. 작은탑이 무너졌다.남자아이는 달려가서 무너진 탑과 여자아이를 번갈아보더니 모래가 묻은 여자아이의 옷을 작은 손으로 탈탈 털어주었다.
그리고 두아이는 다시 모래놀이를 시작한다.

<애들이 참 귀엽네요.> 갑자기 옆에서 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기척두 없이...놀래라~> 선우는 내옆에 서서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조만할때 어린 소은씨도 귀여웠을거같아요~>
<뜬금없게 ...>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저 어릴때 귀엽지않았어요.지훈이가 맨날 얼굴이 까맣다고 놀려줬었는데...>
<아...>조용한 침묵이 흐른다.어색한 분위기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훈이와 어른이 돼서 다시 만났을때 지훈이가 나한테 했던 첫마디가 머였는지 아세요?
"너는 왜 얼굴이 까만게 그대로야? 하나두 안컸네, 이소은 ~오빠봐바라,멋있게 잘 변했지?" 그러면서 내 머리를 ... >
깊은 생각에 빠져 얘기하고있는데 갑자기 선우가 내앞에 다가오더니 내 머리를 쓰담쓰담 한다.
<이소은,이제 당신앞에 서있는 사람을 봐요~주변을 둘러보다보면 또다시 새로운 추억이 생길테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하는 남자에게 빠져들게 되여 나도모르게 고개를 쳐들고 선우의 쌍거플이 없는 큰눈을 쳐다보았다.
세상이 멈춰버린듯 우리는 그렇게 한참 마주보고있다.내머리를 만지는 선우의 부드러운 손길때문인지 처음으로 이남자땜에 마음이 떨린다.
그냥 보아도 잘생긴 사람이 이렇게 가깝게 보고있으니 더 잘생겨보인다.이런 야릇한 분위기에 담겨져 더 빛나고 아름다워보이나보다.
낯설고 무섭다,이런 느낌이...

나는 선우의 눈길을 피해 초점없이 먼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선우는 내볼을 양손으로 잡더니 고개를 돌려 시선을 다시 자기한테 맞춘다.
잘생긴 남자의 눈과 코와 입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전쟁을 하고 있고 얼굴이 화끈화끈 타오른다.
초콜렛은 순식간에 기분을 업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마음을 즐겁게 만들지만 과다섭취하면 몸에 해롭고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몸에 독이 된다.
초콜렛같이 달콤한 느낌을 주는 이남자는 역시 위험한 존재이다.

선우의 입술이 점점 가까이 닿으려고하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 내쉬였다.
휴~
선우도 쑥스러운듯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옆으로 비켜선다.

<얘들아~이제 그만 놀고 들어가자~ 놀이기구들 잘 챙기고 씻으러 가야지~>
아이들의 엄마인듯 보이는 여자가 놀이중인 애들을 데리고 간다.
어른의 뒤를 따라 손을 잡고 걸어가던 두아이가 우리곁을 지나가면서 깨잘깨잘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높게 쌓았지? 오빠가 다음에 더 높게 쌓아주게~>
<응응, 저거보다 훨씬 높게 해줘,눈사람처럼 만들어줘,>
<바보야,모래인데 눈사람을 어떻게 만들어?>
<눈사람 못만들어? 엄마~모래는 눈사람 못만든대, 흐흐~나 눈사람 만들어줘~~> 어린 여자아이는 서운한듯 눈물을 흘리며 엄마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은씨는 머 갖고싶거나 지금 하고싶은거 없어요?>
<없어요.> 한치의 망설임도없이 대답했다.
<생각도 안하고 빨리두 대답하네.>
<진짜 생각나는게 없어서요,지금은 휴식일이니 그냥 놀고 쉬는거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걸요.>
<그럼 따라와봐요~>
<어디가요?>
<소은씨 말처럼 그냥 놀러요.>
선우는 나를 끌고 어디론가 간다.

호텔에서 걸어서 오분도 안되는 가까운 곳에 도착하니 쇼핑상가가 보였다.
안에 들어서니 사람이 많았고 커피숍도 보이고 옷가게도 보이고 음식점들도 보인다.
그리고 영화관도 있었는데 영화관옆에는 아이들이 게임하는 장소인듯 보이는 곳이있다.
선우는 나를 데리고 오락실안에 들어간다.거기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여러종류의 다양한 게임기에서 놀고있다.
<이런데 좋아해요? 아무생각없이 노는 장소에 딱 접합한데...나두 이런데 와본지 오래됐어요.
상가에 볼일이 있어서 왔을때 지나가다 봤었는데 어른들이 애들이랑 즐겁게 노는걸 보니 나도 언젠가 애가 있으면 데려와야겠다 생각했어요.오늘 그 소원을 이뤘네 ~>
<오늘 내가 선우씨 애 역할인가요?>
<이렇게 애먹이는 딸이 있었음 좋겠네.>
<참나~>
<너무 시끄러우면 커피숍에 가거나 영화보거나 하고싶은거 선택해봐요.>

내가 어릴때에도 이런곳과 비슷한 오락실이 있었다.그때는 공부시간외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는 촉박한 시간과 경제상황의 한계로 지나가면서
한번쯤 들여다볼뿐 나도 놀면서 즐기려는 생각은 엄두도 못냈었다.지금 이렇게 들어서니 감회가 새롭다.
몸에 피로를 풀고 기분전환하는데 괜찮은 장소인듯하다.오락기의 종류는 많고 대부분 어린 아이들에게 어울릴거 같았고 어른들도 재미로 놀기에 괜찮아보인다.
동전모양의 칩을 넣고 노는 게임기들인데 그중 격투기 게임기에 눈이 향했다.

<우리 시합할가요?>
나는 선우에게 격투시합을 요청했다. 내말이 떨어지자 바로 칩을 구매하고 나보다 더 신나서 게임기를 선택하고 시작하려는 선우다.
<모든 게임에는 내기가 있는 법이죠?~ 우리도 내기해볼가요? 지면 머해줄건데요?>
<칫, 꼭 나를 이길거라는 그 자신감은 어디서 생긴거죠?>
<소은씨 설마 게임 고수? 여전사 머 그런 컨셉이에요?>
<유치해, 게임이나 합시다.>
선우의 말장난은 자제시키지않으면 끝이 없다.

나는 게임기에 적힌 규칙을 자세히 훍어보았다.처음 만져보는건데 재밌어 보인다.
초보자인 내가 첫판은 졌다.한판의 경험으로 게임률을 조금 알게됐고 점차 익숙해가며 점점 실력이 나아졌다. 좀 나아졌다 생각들때 둘째판도 끝났고 선우에게 또 졌다.
<3승2패전이면 이미 진건데 더 하겠어요?>
<쓸데없는 소리말고 빨리 시작해요.> 쓸데없이 나의 승부욕이 발동해서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나를 보며 선우는 웃음을 감추지못한다.
그리고 한참뒤…
<아싸,1승~~>
<인정,확실히 늘었네. 어어,,또 할려구?>
<왜? 질가바 두려워요?>

그렇게 나의 떼고집으로 게임은 계속 되였고 6전3승3패로 무승부로 격투기를 끝냈다.
<여자한테 졋다고 자손심 상해할가바 내가 봐준거에요 .그만 합시다.>
나는 엉덩이를 탈탈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우는 어이없다는듯이 날 보면 웃었고 나도 같이 덩달아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인형뽑기 기계가 옆에 한줄로 쫙 놓여있다. 여러가지 색갈의 귀엽고 예쁜 동물인형과 갓난애기를 꼭 닮은 애기인형도 있다.
인형뽑기는 아이들뿐만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하고있다. 대부분 성공못해서 아쉬워하는 모습들이였으나 한번 두번씩 동전을 넣고 뽑기를 즐긴다.
동전을 넣고 나도 뽑기를 했다.
한번,두번,세번째까지도 실패다.
<원래 이런거 잘 성공못해요, 봐봐요, 성공하는 사람 몇명없죠…>
옆에 다른 사람들을 핑계삼아 나의 실패를 만회해본다.
<어떤게 맘에 들어요?>
자신있게 얘기하며 선우가 도전한다.
알록달록한 삐에로 인형위에 집게가 멈추고 집게다리 2개가 목을 잡고 나머지 1개가 머리를 감싸더니 들어올린다.
보통은 들어올릴때 떨어지던데 선우의 손놀림에 삐에로는 그대로 집게에 잡혀 입구쪽으로 떨어진다.
<와우~대박! 어떻게 한번에!>
선우는 턱을 살짝 들어올리며 뿌듯하게 나를 내려보며 웃는다.
옆에 서서 구경하던 꼬마가 부러운듯 내손에 들려있는 인형을 쳐다본다.
나는 선우와 눈을 마주치며 꼬마를 향해 웃어보였다.
<괜찮죠?> 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하는 선우.
나는 선우가 뽑은 인형을 어린꼬마에게 양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게임실을 나왔다.

상가안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건물로 돌아갔다.

해질무렵이 되니 호텔주위를 둘러산 야외 수영장쪽 경치가 더 아름답다.
밝은 가로등 불빛을 빌어 보이는 수영장부근에 아름다운 인공 모래사장과 주위의 선베드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나무와 화초,
아름다운 꽃들로 이루어진 광경에 눈이 황홀하다.
음료수를 시켜놓고 살랑살랑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선우와 나는 각자 음료수 한잔씩 시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여기도 정말 아름답네요, 덕분에 좋은 경험들을 하게 됐어요.>
선우에게 감사한 일들이 자꾸 생기고 예전에 불편하게 느껴졌던 선우가 이제는 많이 편해지고 익숙해졌다.
<저도 소은씨 덕분에 오랜만에 휴식해서 좋았어요. 사실 이도시로 온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돌아보지못했어요.
적응하는 과정이라 일이 많고 바쁘기도 해서 여기에 있는 친구들도 아직 다 만나보지못했거든요.
그와중에 그래도 소은씨를 만나게 된건 아주 신기한 인연이에요. 바삐 사느라 친구들도 자주 못봤었는데 소은씨는 자주 만날수 있고 이렇게 여행도 같이 다니게 돼서 너무 좋네요.>

사람과 사람의 인연,우리사이에 우연한 만남이 생기게 된게 어찌보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지 모르지만 이사람이 나에게 전해지는 마음은 결코 거짓이 아님을 느낄수있다.
내가 받아들일수없는건 남녀간의 정이지만 그선을 초과하지않으면 편안한 친구가 되기에는 괜찮은 사람임이 틀림없다. 선우는 꽤 멋진 사람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런저런 사소한 얘기를 많이 나눴고 선우는 이도시에 오기전에 고향에서 살던 일들이랑 현재 자신의 직장일에 관해 나에게 들려주었다.
전에 대학교때부터 오래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이년전에 헤여지고 지금은 혼자라는 얘기도 해줬다.
자기는 솔로가 확실하다며 웃으며 얘기할때 나는 속으로 비웃어보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젊은 나이에 비해 직위가 상당히 높은 직장을 두고있었다. 괜찮은 정도라면 합당한 비유가 아닌거같고
나같이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좋은 직업을 갖고 있다.흔히들 말하는 상류층임이 분명하다.
선우는 그부분에 대해 더 상세한 얘기는 하지않았지만 간단히 자기의 직업에 대해 얘기해줘도 충분히 알수있었다.
갑자기 거리감이 생겨났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선우가 날 대하던 모습이랑 평소에 하던 행동들은 내가 생각해왔던 그런 사람들과 달랐고
그냥 그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였다. 늘 그래왔듯이 인간관계가 간단한 내게 그가 재벌2세든 상류층이던 일반인이던 그런건 상관없다.
만남이 가능하면 친구인거고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한것이다.주변의 환경이나 사람때문에 나에게 영향이 가는 일은 없으니까.

<내일 일어나면 연락줘요.여기 아침 제공이니 아침먹고 일찍 집에 데려다줄게요. 내일 하루는 집에서 푹 쉬세요.>




호텔의 아침 조식도 훌륭했다.

나는 빵과 커피를 들고 자리를 찾아 앉았고 선우도 간단한 음식을 들고 뒤따라 왔다.

<김선우~>
누가 선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쳐다봤더니 우리가 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어오는 Lin이 보였다.
옆에 날씬하고 이쁘게 생긴 여자한명이 동행하고 있다.
이런데서 아는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예상치못했던일이다.
호텔 휴양지에서 젊은남녀가 아침식사를 하고있는 장면은 누가봐도 야릇하게 느껴질거다. 나는 다소 어색했다.

선우는 우리쪽을 향해 걸어오는 두여인을 한번 쳐다보더니 아무대꾸도 없이 먹던 음식을 계속 흡입하고 있다.
마치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듯이 말이다. 분명히 내이름이 아닌 선우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고있었다.
<언니,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직장동료인 Lin에게 인사를 했다.
<그랭,소은이도 같이 있었네,그럴줄 알았엉~ 어떻게 오늘은 여기서 만나게됐넹 ㅎㅎ>
Lin은 나하고 얘기하면서 시선은 옆에 있는 선우에게로 향했다.
<머야,너~ 봤으면 아는척이라도 좀 하지~ 나보다 더 버릇없어 암튼!> 허물없이 얘기하는걸 보니 선우와 친한 사이인거 같다.
여행가는 열차안에서 Lin과 문자를 주고 받은후 선우가 내가 있던 곳으로 찾아오게 되여 예상은 했었다.
내 행로를 폭로하고 휴대폰번호도 노출시킨 사람이 Lin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지금 이순간에 확신하게 됐다.
<선우야,안녕~ 오랜만이네.> 이쁘게 생긴 여자가 선우에게 인사를 한다.
선우는 그제야 그녀를 쳐다보며 말한다.
<오랜만이네.> 선우의 말투는 짧고 굵다.
이 여자도 선우와 아는 사이인가보다.
<잘됏네,안그래도 너랑 할 얘기가 있었는데…>
나만 외래인인거 같아 자리를 피하려 했다.
< 저 먼저 일어날게요, 얘기들 나누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도 다 먹었어요. 같이 가요.> 선우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넌 잠간 우리랑 얘기해야겟는데, 가긴 어딜가~ 인화도 얼마만에 보는건데... > 회사에서도 성격이 쿨하기로 유명한 Lin은 덥석 선우의 팔을 잡으며 앞길을 막는다.
<미안해 선우야,갑자기 나타나서 방해했는지 모르겠네…> 인화라는 여자는 조심스럽게 얘기하며 선우의 눈치를 본다.
웬지 분위기가 이상해서 빨리 피해주고 싶었다.

선우는 잠간 머뭇거리더니 나에게 먼저 방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잠간이면 된다며 집에 데려다줄테니 방에가서 정리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그런 선우에게 대답을 하지않고 Lin에게 인사를 한후 그자리를 떠났다.
인화라는 여자의 옆을 스쳐지나갈때 그녀가 주의해서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 먼저 집에 가요.) 문자를 보내려다 다시 지워버렸다.
(저갈게요.) 에잇,이것도 이상한거 같아 다시 지워버리고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가 얘기없이 먼저 가는것도 예의는 아닌거 같아 다시 휴대폰을 찾아 문자를 보냈다.

_먼저 갈게요.고마웠어요.

택시를 잡아 타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가깝다고 하더니 정말로 십분이 좀 지나서 도착했다.
집에 도착할때까지 선우에게서 연락이 오지않았다.



아마도 친구들이랑 할 얘기가 많은가보지...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조용히 누워있으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몇일간 여행에서 벌어졌던 일...산을 내려오며 내손을 꼭잡던 모습...어제저녁 선우와 벤치에 앉아 밤늦게까지 얘기를 주고받던 일...
그리고 선우의 입술이 거의 닿으려고 하던 순간... 어!!! 헛생각들이 계속 몰려와서 휴식을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머리속이 산만해진다.
침대에서 일어나 집청소를 했다.내방안 곳곳을 쓸고 닦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청소와 주방 청소를 하고 빨래까지 끝내고 나니 점심시간이 다 돼갔다.
사놓았던 마지막 한개가 남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잠만 내려올수있어요?>
뜬금없이 나타나서 뜬금없이 내려오란다.
그리고 나는 그한마디에 잽싸게 4층 계단에서 내려가고 있다.순식간에 1층 계단까지 밟고나니 내 자신의 이런 모습이 낯설어 급한 걸음을 멈추었다.
왜 이러는거야? 마치 그가 부르기를 기다렸다는듯이 나타나자마자 급하게 만나러 달려가다니!

천천이 밖으로 걸어나가보니 바로 앞 나무밑에 서있는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불과 몇시간전에 봤던 얼굴인데 반갑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선우는 나를 쳐다보더니 엄숙하던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들고있던 커피를 내민다.
웬지 평소보다 침울해보이는 느낌이 난다.
<죄송해요.>
<머가요?>
<혼자 오게 해서...>
<내가 먼저 온건데 머가 미안해요,근데 무슨일 있으세요?>
<별일 아니에요.> 말하면서 얼굴이 굳어져보이는걸 보니 안좋은일이 생긴거같았다. 더 묻지않았다.
<고마워요.잘마실게요~>
커피를 받으며 좋아하는 날 보며 선우도 얼굴에 그제야 미소를 보인다.

<다음주 토요일에 혹시 시간있어요?>선우가 묻는다.
<음... 네>
<그럼 나랑 같이 결혼식에 갈래요?>
<누구결혼식?>
<아까 봤던 여자요,저 전여친의 결혼식...>
<아...> 그렇구나,그여자가 여자친구였던것이다.
어쩐지 느낌이 그랬다.
<좋아요, 가요~>
<정말이에요?>
<네, 같이가죠 머, 할일도 없는데...>
선우는 나를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더니 말한다.
<아니에요,장난이에요.내가 머하러 거기 참석하겠어요~그냥 해본 소리에요,죄송해요.진짜로 받아주니 괜히 미안해지네...
근데 전에도 느낀건데 소은씨는 궁금증이 너무 없어보여요. 머에 궁금해하는같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고...내게 머 먼저 물어본적이 없었던거 같아요.나에 대한 무관심인가?>
<그런가? 전여친 결혼식에는 왜 참가하냐구 물어볼가요? 아님 어떻게 내가 여행간 곳까지 찾아왔는지 물어볼가요? 음...아님 나를 어떻게 알아봤냐구 처음부터 물어볼가요?>
선우가 물어보기에 기다렸다는듯이 하고싶었던 얘기를 툭 털어놓았더니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선우의 의문에 대답했다.
<그런일들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묻지는 않아도 좀 깊게 생각해보면 이유는 다 찾을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우리가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보는 사이는 아니였죠.>
<그말은 지금은 꼬치꼬치 물어봐도 될 사이가 됐다는것처럼 들리는데요.> 선우가 웃으며 말한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나는 어이없다는듯이 피식 웃었다.
<총명한 여자는 피곤한데...근데 감추는게 없이 시원하게 말하는게 좋네요, 빙빙 돌리며 말하는것보다 말하지않아도 척척 다 알아내고 캐묻지도 않고,이해하는거 같아서 기분 좋은데요.>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선우의 얼굴이 드디여 환해진다.
<선우씨랑 나랑 그렇게 막 머 캐묻고 이해하고 하는 사이는 아닌같은데...>
<지금부터 해요 그런사이~궁금하면 꼬치꼬치 캐묻고 얘기하고 이해하고 그런 사이...>

바람이 살살 불며 남자의 짧은 앞머리를 스쳐지나간다. 비록 큰나무밑에 서있어 햇빛을 막았지만 남자의 얼굴에선 광채가 돈다.
잘생긴 외모와 분위기 있어보이는 이남자의 이런 말에 어린 여자들은 아마도 설레고 좋아서 어찌할바를 모르고 빠져들겠지...
나는?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고싶지만...

<맞다,내라면이 다 붇겠네...>
나는 이타이밍에 라면 생각이 났다.
<커피 잘 마실게요,그럼~>
선우가 사준 커피를 들어보이며 인사를 하는건 갈려는 의도다. 그러자 선우가 집방향을 바라보며 말한다.
<점심메뉴가 라면이에요?>
<라면이 땡겨서...>
<저두 같이 먹으면 안돼요? 점심 못먹었는데 나두 라면이 땡기네~>
라면이 한개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선우를 내집에,아니 정확히는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사는 비좁은 세방에 들이고 싶지않다는 사실에 바로 거절했다.
<선우씨 줄 라면도 없고 여자둘이 사는 방이라 죄송해요.>
선우는 피식 웃어보이며 말한다.
<라면이 다 불었겠네~ 소은씨 점심 못먹게 됐어요,저기 앞에 분식집에 가서 먹을가요?>
거절하자니 배가 고프고 한개밖에 없던 라면은 긴대화중에 희생됐을터라 먹고 오는게 좋을거 같았다.
선우랑 나는 이제 같이 마주앉아 밥을 먹고 대화하는 그런 편한 사이가 돼있었다.


초저녁부터 나는 잠자리에 들었고 달콤한 잠을 잤다.
눕자마자 잠이 솔솔 몰아왔고 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이튿날 아침에 눈을 떳을때 몸이 한결 가벼웠고 몸도 마음도 상쾌했다.


아침 출근길에 아파트단지를 나오니 입구에 익숙한 차가 서있다.
오늘의 하늘도 맑음이고 정말 예쁘다.
추천 (4) 선물 (0명)
IP: ♡.85.♡.131
마트로시카 (♡.111.♡.40) - 2017/06/11 05:24:40

재밌어요.. 잘보고갑니다

카풋치노 (♡.85.♡.131) - 2017/06/12 02:47:30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니수니수 (♡.112.♡.123) - 2017/06/11 10:12:25

드디어 기다리던 8집나왓네요~달달하게 데이트를 즐겻어요~ㅎㅎ

카풋치노 (♡.85.♡.131) - 2017/06/12 02:48:28

♧이번집도 기다려줘서 고마워염^^

SILK (♡.175.♡.96) - 2017/06/12 12:51:06

매끈한 글솜씨에 저도 모르게 빠져드네요. 잘보고 갑니다.행복한 하루 되세요.

카풋치노 (♡.246.♡.150) - 2017/06/12 14:03:14

감사합니다!
과찬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힘이 불꾼 솟습니다~~^&^
SILK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행운잎사귀 (♡.4.♡.66) - 2017/06/12 15:50:18

잘 보구 갑니다, 글 솜씨가 대단합니다,, 재밋게 쓰셔서 긴문장을 한숨에 다 보구 갑니다,

카풋치노 (♡.246.♡.150) - 2017/06/12 17:30:37

재밌게 봐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행운잎사귀님 매편마다 힘이나는 댓글들 주셔서 행복합니다☆
즐거운 한주 되시기를 바랍니당!

장백산00 (♡.226.♡.17) - 2017/06/13 13:31:05

드디어 올리셧네요..ㅎㅎㅎ
매일 기다립니다~ 잘보고갑니다

다음집도요~~~

카풋치노 (♡.246.♡.150) - 2017/06/13 16:30:34

기다려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ㅎㅎ

넵~~ 다음편에서 뵐게요^^

혼자사는남자 (♡.245.♡.83) - 2017/06/14 19:27:13

잘보구 갑니다

카풋치노 (♡.85.♡.131) - 2017/06/14 21:45:16

이번편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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