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前半生(2)

말가죽인생 | 2018.11.28 14:35:46 댓글: 3 조회: 2014 추천: 4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3778838
오늘도 시간돼서 올려본다. 읽는 사람은 좀 있는데 그것도 모이자의 열성팬들이 많으니 자작글도 들여다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걸 말해줄뿐 내가 쓴 글이 재미있어서 본것도 아닌거 같다. 하지만 용기내서 쓴 글인만큼 베스트에 오를 생각조차 해본적도 없었으니깐 맘
편하게 먹고 필가는대로 견지할데까지 적어보련다. 뭐 자신의 전반생을 돌이켜보는 좋은 기회일것도 같고 먼훗날 자기절로 들어가
보더라도 살짝 뿌듯함과 더불어 지나간 세월속의 나를 뒤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될수도 있을거 같아서 말이다.

죽을 고비 세번 넘긴 동년시절

다섯살때부터 기억이 좀씩 난다. 어릴때부터 병약하게 태여난데다가 난 뭐나 다 늦었다. 말도 늦게 번졌고 행동도 그닥 날렵한축이
아니였다. 심지어 좀 커서 부커치기 노는것도 엄청 굼떠서 항상 또래애들한테 몰리우기 십상이였다. 내가 네살되던 때 막헤는 나이로
다섯살때 녀동생이 태여났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녀동생을 낳는다고 한겨울에 난 바깥에 쫓겨났다. 외가집에서 태여나지 않았는지라
동생은 그 무서운 산파를 만나지 않아 개가죽 쓸 필요도 없었다. 향진의 의사가 와서 분만을 도와준거 같았는데 거의 분만할때 한시간
전쯤에 날 내쫓았다. 갈데 없던 나는 추위에 오돌오돌 떨다가 집에 들어가겠다고 집문을 엄청 걷어찬 기억밖에 안난다. 12월 초여서
너무 춥지는 않았기에 거의 한 시간 정도 견뎠다. 녀동생이 금방 태여난 모습도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냥 그 후부터는 항상 오빠니깐
양보하며 살아야 했다. 녀동생이 태여나 얼마 안돼서 난 유치원에 다녔고 그때부터 바깥출입을 시작했다. 그전에는 병약했던 관계로
항상 집주변에서만 놀았었다. 헌데 동네애들은 낸데 비하면 날아다닐 정도였다. 대여섯살인데도 온 동네를 주름잡으며 쏘다녔다. 그런
애들 소위 불량배(커서 다들 쌀개패됐다)들 뒤를 따라다니다가 큰 사고를 치고말았다. 여섯살짜리가 무슨 큰 사고를 쳤겠는가고 생각
하지만 ㅎㅎㅎ 본의아니게 사고쳤다. 내가 말했듯이 난 다섯살까지 거의 바깥에 나가 놀지 않았다. 여섯살때부터 유치원에 다녔었다.
울집앞에는 큰 대도랑(지금은 거의 말라 없어졌지만 동네중심을 육도하의 지류 그때는 한미터정도 넘는 다섯메터 정도 너비의 강)이
흘렀고 한참 걸어나가면 철길이 있었다. 철길을 불과 집에서 5분정도밖에 안 걸으면 도착하는 곳에 있었고 별 놀것이 없는 우리는
위험하다고 말리는 부모말들을 귀등으로 보내고 철길근처에 가서 놀기 좋아했다. 못된건 배워갖고 철길 레루사이에 대못을 가로 꽂아놓으면 기차가 지나면 납작하게 된다. 그걸 들고 칼이라고 장난질도 쳐댔고 레루위에 자그마한 철길옆의 자갈들을 놓기도 했었다.
글쎄 이런 짓들은 거개 열살 거의 될때 했던거 같다. 처음으로 철길에 놀러간 난 그해 여섯살이였고 또래들은 나보다 언녕 철길근처에
놀러다녔지만 난 모든것이 신기했다. 그날 한참 신나게 놀고 있는데 기차가 멀리서 경적을 울리며 달려왔다. 다른 애들은 경적소리를
들으며 얼른 도망갔지만 난 점점 다가오는 기차를 보고 신기하기도 하고 급박하게 눌러댄 기적소리에 놀랐을수도 있고 암튼 화물차가
내 앞 5메터 가까이에 와서 멈춰설때까지 그야말로 무식하게 용감하게 눈이 휘둥그래서 철길중간에 서있었던것이다. ㅠㅠㅠ
집가서도 욕먹은 기억도 별로 없다. 나의 첫 바깥구경인걸 알아서였을가? 이튿날엔가 철도국에서 사람이 울집 찾아왔다. 표창장
줄리는 없고 암튼 다 키운 애를 어쩌자구 그렇게 조심성없이 철길위에 혼자 내보냈는가고 울 부모님을 많이 닦아세웠던거 같다.
벌금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차여차해서 그 일은 해결됐지만... 난 기차를 세운 <영웅>이 됐다. 기막힌 일이지만 기차 세워놓은놈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진짜 울 동네에선 들어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첫 바깥출입 결과이고 첫번째 죽을 고비이다.
두번째는 공사유치원 일명 기관유치원이라고도 했다. 향정부 자식들이랑 두루두루 쌍발하는 사람들 자녀들이 많이 댕겼던거 같다.
허우대는 태여날때부터 컸다. 유치원에서도 허우대로 치면 거의 젤 큰 편이여서 넘버투 정도로는 지냈던거 같다. 헌데 젤 쎄다는 놈과
한번은 느티나무에 바라오르기 시합을 했는데... 그때 나이 일곱살이던지 하여간 학교붙을 날이 오라지 않았었다. 느티나무는 한메터
정도 자란뒤 여러 가지로 높이 올리 자란 거의 수령이 몇십년은 된 엄청 큰 나무였다. 그기를 각자 고른 가지를 타고 바라오르다가
종소리가 났던것이다. 하참...이쪽 가지에 오르던놈보다 잽싸게 빨리 오르겠다고 벼르면서 오르다보니 난 거의 나무 꼭대기에 오르고 있었다. 다섯메터는 되지 않았을가 생각된다. 겁도 없지...글쎄 지금도 고공 공포증은 없다. 이쪽놈은 종소리 듣고 얼마 올라가지
않았는지라 내려가서 교실로 달아갔고 구경하던 놈들도 다 들어가서 내만 남았다. 급한 김에 빨리 내려가려다가 발을 헛디뎠다. 난
5메터 되는 나무위에서 그대로 떨어지다가 하늘이 돌봐줘서인지 세가닥으로 자란 팔뚝만큼 실한 나무가지에 벌렁 들어누우면서 나무중턱에 걸려버린것이다. 애들은 다 교실로 들어가서 내가 떨어진걸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그때 내가 썻던 경찰모자(ㅎㅎㅎ 그때는
경찰모자라고 불렀다. 오각별이 척 달린 경찰모자 뚜리모재라기도 했었다.)가 벌렁 누웠던지라 땅에 떨어졌는데 때마침 원장선생님이
웬 모자가 나무에서 떨어지는가해서 다가와보셨다가 내 울음소리를 듣고 사다리를 놓고 올라와 날 구해줬던것이다. ㅠㅠㅠ
챙피사다. 죽을고비를 두번 다 이렇게 챙피산 일으 하다가 넘겼다.

나의 세번째 죽을고비는 학교가기전이니깐 그것도 일곱살때였다. 영양부족이여서인지? 하여간 난 태여나서부터 대여섯살까지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단다. 뭐 엄마말로는 생일날에도 대여섯번 병원에 갔단다. 내가 태여나서 세살때쯤부턴가 자주 병원에
가다보니 의사가 그러더란다. 내 입술이 파리하고 심장에서 잡음이 많은걸 보니 선천성 심장병인거 같다고... 헌데 책임감없는
의사가 울 엄마보고 에구 그집 아들 페품이꾸마. 페품 낳았으꾸마. 얘가 잘 살아서 일곱살까지나 살지? 이런 막소리를 해놔서.
엄마는 내가 학교가기전까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단다. 날때부터 개가죽 쓰고 살려놓았지 맨날 닝겔 맞히러 다녀야지...의사한테서
또 그런 말까지 듣고나니 더더욱 기막혔을것이다. 항상 불안불안하게 사시다가 일곱살 되던해에 울 집에서는 큰 맘 먹고 아빠
단위에서 돈 천오백원을 꿔가지고 하향지식청년으로 왔던 상해 사람과 연줄이 닿아서 아빠가 날 데리고 상해로 떠났다.
연변병원에서도 내가 수술해야 낫을거 같다고 진단내린뒤라 마지막 희망을 갖고 상해로 떠났던것이다. 문화대혁명이 갓 끝나고 80년
초반이라 의료기기들도 별로 발전못했었다. 그래도 그당시 중국에서는 상해쪽이 의료기술이 높았던거 같다. 그때 시계랑도 상해걸
차고 다니면 다 도깨비일때니깐. 동풍 시계던가? 하여간 그때 상해지식청년들이 연변에 많이들 하향해서 왔던 원인도 있겠지만
상해는 전 중국의 공업중심이였다. 거의 독보적이였던거 같다. 내가 일곱살 못넘긴다해서 아들을 잃을가 두려워서였던것도 있지만
자식위해 상해까지 길떠난 부모님께 지금도 감사드리며 살고있는건 사실이다.
아빠는 멜대에 큰 가방 두개를 양쪽끝에 달아매고 자리표도 없이 장춘에 갔다가 장춘에서 다시 상해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다. 헌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아빠는 멜대를 두 긴의자밑에 걸터놓고 거기에 앉아서 날 안고 재웠다. ㅠㅠㅠ 상해에 심장수술하러 간다고
말하니 일부 맘씨 좋은 사람들은 나를 좀씩 앉아가게 했던것도 같다. 근데 상해에 딱 도착하고나니 여관 들때부터 겁이 났다.
지금 생각해도 두렵지만 수술칼을 내 몸에 댄다고 생각하니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여관도 병원인줄로 알고 안
들어가겠다고 떼질썼다. 그때 감사하게 마중해준 상해분네 집에 가서도 한두밤 잤었는데 그집엔 딸이 둘이였다. 헌데 잘살았다.
집에 텔레비죤이 두개였고 방도 세개짜리였다. 여자애는 쑤좬이라 불렀는데 한어가 약한 나는 수건이라 불렀고 피아노도 칠줄
알고 춤도 잘 추더라. 참 거의 사십년 돼가지만 이렇게 삼사십년전에도 상해와 고향은 차이가 많이 났다.
울며 겨자먹기로 상해제1병원인지 하여간 심장수술 젤 잘한다는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머리 희끗희끗한 교수들이 맨날 들어와서는 내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열심히 듣더니 이틀뒤엔 아예 대여섯이 합동문진으로 들어와서는 동시에 청진기를 들이대고 듣더라.
겁이 안나겠는가? 의사 한명이 청진기 들이대도 겁나겠는데 주위에 여섯명이 일곱살짜리한테 청진기 다 들이대고 알아못들을 말을
해대는데... 아 이제는 끝이구나. 내 배를 가르고 심장을 당장 들어내는줄 알았다. 눈물이 났다. 그래도 소리내여 울면 검진하는데
영향있대서 소리도 못내고 숨죽여 울었다. 헌데 여섯명중 젤 년장자인 분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울 아빠보고 이런 기적같은
얘기를 했다. < 당신의 아들은 우리가 전면적으로 검사해보고 회의도 세번 해봤는데...최종 수술 안하는것이 낫다는 판단입니다.>
울 아빠는 믿어안져서 몇번이고 다시 물어봤다. 헌데 이 의사쌤은 아마 그때 상해에서 젤 권위인 심장전문가였던거 같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절대 수술하지 말것과 영양보충만 잘 시키고 하면 내 심장판막은 성인이 된후면 자연적으로 자라나서 개폐작용을 잘하게
될것이니 시름놓으라고 말하더란다. 심방내 잡음은 개의치 않아도 된다면서 안심하고 돌아가라더란다. 아이야 마야... 살았다.
어린 나였지만 아빠한테서 수술 안해도 된다는 말에 일단은 기뻐 날뛰였다. 헌데 이삼십년이 지난뒤 내가 심장 정밀검사를 했는데
판막이 자라난 자리를 진짜로 발견했다는것이다. 현대의학으로 채색촬영으로 자세히 봐준 의사가 하는말이 내 심장판막이 나이
들면서 해마다 조금씩 자라나서 스무살좌우에 제대로 다 자라서 제 기능을 원활히 했다는것이다. ...당신들은 기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신가? 난 지금도 탄복한다. 현대 기술이라곤 그 당시에 엑스레이나 한장 찍고 청진기로만 검진했던 옛날의 전문가들이 진짜로
대단한 고수였다고. 내가 정말로 운이 좋게 살아있는 화타를 만났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맞혔을가? 어떻게
내 잘 닫기지 않던 심장판막이 크면서 자라나서 건강해질것이라는 십몇년뒤 일까지 알아맞추셨을까? 그래서 난 요즘 의사들을 별로
쓰게 안본다. 그래도 그때 그 시절 70년대말, 80년대 의사들이 돈 벌이에 눈멀지 않고 의술도 진짜 높았다고 생각하기에...이렇게
난 학교가기전까지 세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 그뒤 상해에서 사나흘 놀면서 황포강가, 지금은 뭐 와이탄이라 하지만 그기도
놀러가보고 동물원도 가보고 좋은데 많이 돌아봤던거 같다. 헌데 농촌아 아스팔트길을 걷자니 영 힘들더라. 그래서 아빠가 날 많이
업고다녔었던거 같다. 죽다가 살아난 주제에 난 애들과 곧잘 자랑했었다. 난 엄청 먼 상해까지 갔다왔노라고... 오늘은 이만까지...
추천 (4) 선물 (0명)
IP: ♡.193.♡.247
SILK (♡.234.♡.44) - 2018/11/28 15:01:45

본인일을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는것 또한 놀랍기도 하고 기적같이 고비고비를 넘긴것도 대단한것 같습니다.내일도 기대를 하면서 이만 물러갑니다.잘 앍고 갑니다.

해피투투 (♡.60.♡.134) - 2018/11/28 21:19:09

부모님들이 참 위대하십니다.
그 때 그상황에 수술까지 생각하시고 상해까지 가셨다니 장말 큰 결심아니고서 못하죠.
정말 옛날 전문가 분들 실력자들이십니다.

good2018 (♡.27.♡.208) - 2018/11/30 20:08:26

글솜씨 아주 찰져요 ~
잼잇어요 다음집 빨리 올려주세용 ㅋㅋ

22,915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2086
죽으나사나
2024-03-28
1
111
죽으나사나
2024-03-26
1
173
죽으나사나
2024-03-24
1
223
죽으나사나
2024-03-20
1
284
죽으나사나
2024-03-19
1
185
죽으나사나
2024-03-18
1
197
나단비
2024-03-17
2
198
죽으나사나
2024-03-17
1
164
죽으나사나
2024-03-16
1
198
죽으나사나
2024-03-15
1
187
죽으나사나
2024-03-14
1
206
나단비
2024-03-14
1
152
죽으나사나
2024-03-13
1
219
죽으나사나
2024-03-12
1
502
죽으나사나
2024-03-12
1
563
죽으나사나
2024-03-11
1
571
죽으나사나
2024-03-11
1
509
죽으나사나
2024-03-10
2
503
죽으나사나
2024-03-10
2
548
나단비
2024-03-09
2
493
죽으나사나
2024-03-09
2
469
죽으나사나
2024-03-08
2
481
죽으나사나
2024-03-07
2
456
죽으나사나
2024-03-06
2
467
죽으나사나
2024-03-05
1
182
나단비
2024-03-04
2
186
죽으나사나
2024-03-04
1
186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