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공소시효

김유미 | 2017.10.08 09:24:27 댓글: 7 조회: 3836 추천: 9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3472750
“엄마 미워!”

6 살 아들 단순한 한마디에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 나름대로의 엄마란 역할을 잘해낸 것 같은데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거지? 나는 습관처럼 그 말을 내뱉는 아이한테 서운한 감정을 감출수가 없었다.

“미운엄마 사라질 테니깐 너 이젠 혼자 있어?”

아들은 서운한 마음이 깃든 항변을 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다시 오므렸다. 그리고는 촉촉한 눈방울로 쳐다보며 나직이 웅얼거렸다.

“가지마...날 두고 가지마..”

가지마..그 한마디가 오랜 세월 가슴속에 박혀있던 가시가 심장을 비집고 나왔다. 쓰라리고 아팠다. 아이가 힘들게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주 사용했던 위협적인 한마디 너 자꾸 이러면 엄마 간다? 엄마 간다..엄마 간다..나는 반복적으로 그 단어를 되짚으며 내가 받았던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내 자식한테 돌려주는 모습에 다시금 흠칫 했다.

어느새 나의 눈에는 과거의 상처로 얼룩지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가 아홉 살. 밤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는데 하얀 연기가 자옥한 곳에 서 있는 엄마가 눈물가득 바라보며 안녕히 라고 손을 흔들며 내 눈앞에서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놀란 난 아앙 울면서 엄마의 흔적부터 찾았다. 항상 옆에 누워 계셨던 엄마의 이부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느낀 난 벌떡 일어나 엄마를 외쳤다. 검은 망막 위로 어렴풋이 보이는 엄마의 실루엣에 흠칫했다. 어두운 방구석에서 조심스럽게 짐을 싸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의문이 섞인 나의 부름에 놀란 엄마가 다가오더니 내 머릴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엄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속눈썹을 팔락거리며 쳐다보는 내 얼굴을 만져주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따뜻하게 품어주시며 안심시키는 어머니를 믿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번지며 간결한 엄마의 숨소리를 느끼며 더 깊이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엄마냄새는 이 세상 최고의 안정제였다. 나는 밀려오는 졸음에 눈을 감았다. 축축한 것이 내 머리에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무시한 채 달콤한 꿈나라로 들어갔던 것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엄마의 정성어린 밥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손에는 엄마가 써놓고 간 편지 한 장이 쥐어져 있었고 아버지의 어깨는 그 편지의 내용으로 세차게 떨고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꿈에 본 예몽이 뇌리를 스쳤고 노래처럼 부르던 엄마의 ‘간다’가 가슴에 서걱 꽂혔다.

그렇게 엄마는 9살 그해에 안개처럼 사라졌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버지는 어머니가 차린 마지막 밥상을 뒤엎고는 괴로운 듯 소리를 질러대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그 상황에서도 깨진 그릇부터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엉엉 울어버리면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가봐 무서웠고 며칠만 지나면 꼭 올 것이라 나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한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나를 두고 나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 이젠 엄마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올거란 기대를 하는것이 어쩜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그렇게 판단을 했었다.

엄마가 간 뒤로 빠듯한 생활이 더 빠듯해지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게다가 페인이 되어버린 아빠는 어디론가 한번 나갔다 하면 언제 돌아올 줄을 몰랐다. 항상 엄마의 가슴아래에서 어리광을 부렸던 내가 막다른 생활 앞에서 그토록 강인한 애인 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선인장 같은 생명력을 가진 아이였다. 집에 쌀 한 톨도 없는 빈집에서 어린 내가 보름을 넘게 견뎌가며 살아남았다. 나는 안면이 조금만 있다 하면 그 집에 척 들러붙어 철면피를 깔고 밥 한술이라도 얻어먹었다. 그게 9살짜리인 내가 하는 최선이었다.

머리엔 ‘이’가 바글거려 친구들이 놀려댔고 땔감조차 없는 겨울의 한파에는 얼음장 같은 집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만 했다. 그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너무 그리웠고 누군가의 밥 한 숟가락이 그토록 감사했다. 나의 하루하루는 탈출구가 없는 지옥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어머니’란 분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는 굳어있는 나를 끌어안고 한참이나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엄마는 몰라보게 예뻐졌고 낯설었다.
오매불망 그리던 엄마가 눈앞에 있는데도 기쁘지도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 눈물줄기가 얼어붙은 마음과 함께 말라붙었고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엄마와 나는 다시 상봉을 하면서 난 자연스레 외가 쪽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때 난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봤다. 아버지는 그간 미안했다며 평생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니 나중에라도 찾아오지 말란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네 걱정마세요! 아버지 찾아오는 일 절대로 없어요!”

나는 미련도 없이 엄마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엄마만 있으면 이젠 행복이 시작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유 없이 엄마만 보면 짜증이 났고 화가 났다.그간 그 일 년이란 시간 속에 다친 내 마음이 좀처럼 미봉이 되질 않고 불신만 깊어갔다. 하지만 당당하게 그 상처를 꺼내 엄마한테 감히 표호하지도 성질을 부리지도 못했다. 그저 다른 사소한 문제로 심통을 자잘하게 부린 게 전부였다.

또다시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춘기에도 감히 큰소리로 엄마한테 맞서거나 대놓고 짜증을 부리지 못하고 그저 한겹한겹 그 불만을 마음에 꾹꾹 담아 넣었다. 또다시 그때의 그 지옥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고 그것이 되풀이 될 가봐 항상 불안했다. 그래서 착한 딸로 가면을 쓴 채로 최대한 엄마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갔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몸에 방치된 좀비 같은 ‘상처’다.

아이를 낳고 내 아이가 크는걸 보면서 잠재웠던 상처가 저도 몰래 수면위로 올라오며 내 심장을 압박하고 나를 괴롭혔다.

가끔은 웃고 있는 아이 뒤에 울고 있는 내 어릴 적 모습이 겹쳐지며 이유없는 권태로움과 무력감,피아노 반주로 치자면 서글픈 단조음이라고 하는 무거운 감정이 늘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이의 작은 투정에도 소리를 질러대며 힘들어 했고 억눌렸던 감정들이 질기게도 나한테 들러붙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때까지 난 스스로 우울증으로 앓고 있다고 판단을 했고 근본적인 원인을 몰랐다.

“으앙앙 엄마”

“울지 마 울지 말라고! 너 자꾸 울면 나 진짜 가버릴 거야! 네가 잘 때 감쪽같이 사라 질 거라고!”

그날따라 아이는 더 크게 투정을 부렸고 어쩌다 행차하신 어머니 앞에서 나도몰래 그말이 튀어나오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유미야..."

미세한 떨림의 음정에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미안하다...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겠니...난 그런줄도 모르고...엄마를 욕하고 원망하지 바보처럼 왜 혼자 흡흑 나땜에 지금까지 아팠을 널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지는구나"

울고 있는 어머니는 낡아 쩍쩍 갈리진 시멘트벽처럼 메마르고 헐겁고 위태로워 보였다.잠재웠던 서운한 감정이 심장을 관통해 뜨거운 목구멍 사이로 흘러나왔다.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엄마와 나의 울음소리가 오래동안 허공을 메웠다.

우울증이라 믿고 있었던 내 마음 무게의 이유를 그때 알았다. 내가 꾹꾹 담아 두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머니'란 이름을 소유하는 동시에 다시 피어올라와 있었다는 것을 ,아프더라도 외면하지 않고 그 사실과 대면했을때 비로소 그것으로 자유로워 질 수 있단 사실도 깨달았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공소시효가 없을것 같은 상처도 아물어 갔고 더이상 그것으로 그 누구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엄마’란 존재는 한 아이의 우주란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그 우주가 파편처럼 산산히 부서지면 아이도 함께 부서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우주도 아프면 울고 힘들면 소리 지를 수 있는 나약한 여자였다는 것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줄 수 있는 ‘엄마’란 우주도 사람이 라는 것을.

이 땅의 어떤 누구도 엄마의 자궁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잘났건 못났건 난 내 엄마의 자궁에서 산도를 통과를 했고 그 어미의 보살핌을 받아 이 자리에 서있다. 나를 낳아준 엄마한테서도 다양한 사실로 상처를 받으며 성장을 하는데 남남이 만나는 이 사회에선 얼마나 무수한 상처들과 마주할까. 그 상처가 크던 작던 상관없이 우리는 끊임없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상처의 공소시효가 결정이 되고 있었다.
추천 (9) 선물 (0명)
IP: ♡.50.♡.238
i0003 (♡.158.♡.84) - 2017/10/09 07:47:34

어린 마음에 얼마나 아팠겠어요. 토닥토닥

며칠만 있으면 올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 제가 생각나게 되네요.
어렸을적 엄마는 돈 벌러 외지 가시고 좋아하지도 않는 할머니집에 맡겨져 저녁에 방 닦으면서 이불장도 닦으면서 엄마가 오겠지 오겠지 하면서 기다리던 맘.

chunyup88 (♡.173.♡.198) - 2017/10/11 11:26:41

애 키우는 엄마로서 엄마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커피싫어 (♡.207.♡.254) - 2017/10/11 16:39:57

잘 읽었습니다.글이 째여져 있네요

이하나 (♡.254.♡.192) - 2017/10/11 21:34:04

글을 잘 썼네요.덕분에 더 맘에 와닿네요. 부모가 겪었던 상처가 애들한테 되물림이 된다네요...애들 키우기 쉽지 않아요. 님도 힘내시구요.. 애들 좀만 크면 이 또한 지나간답니다..힘내세요~^^

xingfu9796 (♡.233.♡.213) - 2017/10/14 11:47:00

글을 읽느라니 가슴이 찡저려나네요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ZekiOn (♡.111.♡.88) - 2017/11/04 13:06:30

추천합니다

광주김 (♡.161.♡.168) - 2017/11/06 17:53:54

눈물 납니다.

22,915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2080
무학소사
2022-11-19
1
983
건치달팽이
2022-11-18
6
1443
건치달팽이
2022-11-16
7
1641
무학소사
2022-11-14
1
762
건치달팽이
2022-11-13
7
1694
무학소사
2022-11-13
0
639
무학소사
2022-11-12
0
584
무학소사
2022-11-11
0
612
무학소사
2022-11-10
1
613
건치달팽이
2022-11-10
7
1690
무학소사
2022-11-09
1
524
건치달팽이
2022-11-08
7
1589
무학소사
2022-11-08
0
631
건치달팽이
2022-11-07
6
1311
무학소사
2022-11-07
1
494
무학소사
2022-11-06
1
503
무학소사
2022-11-05
1
556
무학소사
2022-11-04
1
500
무학소사
2022-11-03
1
525
무학소사
2022-11-02
1
500
건치달팽이
2022-11-02
5
919
무학소사
2022-11-01
1
535
무학소사
2022-10-31
1
504
무학소사
2022-10-30
0
633
무학소사
2022-10-29
0
477
무학소사
2022-10-28
1
573
건치달팽이
2022-10-28
3
1117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