奴婢之愛 (39)

해피투데이 | 2014.01.07 17:51:43 댓글: 0 조회: 568 추천: 0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2020185


39 
남이장군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하리.

남자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안케 하지 못하면,

뒤에 누가 나를 대장부라 부르리오.

 

<허허... 과연 대장부 다운 기백 넘치는 시군요.>

<아니, 영감. 언제 오셨습니까?>

산의 한 중턱에 서서 긴 칼을 찬 채, 웅장한 백두의 산맥을 바라보며 시를 짓던 남이 장군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신면의 말을 받는다.

<죄를 짓고 귀양 온 죄인입니다. 영감이라니! 가당치 않아요.>

<아닙니다. 영감께서는 결코 죄인이 아니에요. 영감께 죄가 있다면 충신으로써 바른 말을 하고 인재를 아끼어 충언을 올린 죄 밖에 없습니다. 금성대군, 이보흠, 그리고 김시습. 그들은 상왕(노산군)을 옹호한다는 명분 아래 반란을 주도하였고, 영감께서는 그 반란을 무마시킨 일등 공신이십니다. 그럼에도 영감께서 귀양을 오게 된 것은 반란세력을 사전에 차단시키지 못한 중앙 청요직 관원들의 부실운영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가 조직에 있어 큰 정치적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사건의 모든 경위를 떠나서 그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책임자는 늘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놓고 볼 때, 반란의 성격 자체가 현 왕권을 부정하는 무리들이었고 또 그 무리에 동조할 그 어떤 세력도 정계에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정계에서는 책임을 질 인물로 조선왕조를 부정하고, 역당 김시습을 풀어준 영감을 짚게 된 것이지요. 반란평정에 있어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자가 반란의 책임을 물어 귀양을 오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정치의 비극이 아닐런지요?>

<허허... 무예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문에도 제법 뛰어납니다 그려.>

<과찬이십니다.>

남이는 신면의 칭찬에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남이는 태종 이방원의 중손자로써 기량이 호방하고 직설적이면서 품위와 인격을 갖춘 선비를 존경할 줄 아는 제법 무인다운 남아였다. 세조의 측근에서 호위무관으로 있으면서 세조의 사랑을 함뿍 받고 있던 남이는 세조의 특별지시로 북방 지역에 올라오게 된 것이었다.

명나라의 복잡한 내부문제가 외부로 분출되면서 여진은 몸살을 앓게 되었고, 그 진통은 고스란히 조선에로 파급되어 북방변경 지역은 그야말로 불안의 연속이었다. 하여 조선정부에서는 무역소의 확대설치와 귀화장려까지 하면서 여진과의 갈등을 해소하려 하였지만 명나라의 지나친 여진압박으로 별 소득은 없었다. 더욱이 공식 일정 없이 무작정 조선을 방문하는 명나라의 사신들 때문에 조선정부에서는 사신접대비를 마련하는라 애매한 백성들만 쥐어짰다. 귀화하는 여진족에게 삶의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한 정부차원에서의 자금조달, 사신접대비로 쏟아 붓는 어마어마한 접대비용, 각 국의 빈번한 교역으로 어느새 싹이 튼 밀무역, 귀화인과 토착민 간의 갈등... 그야말로 온갖 잡동사니들로 혼란스러운 북방지역은 아수라장의 수렁텅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한시도 조용한 날은 없었다. 이제 겨우 26세인 남이에게는 군인으로써의 자질과 능력을 키우기에는 이만한 장소도 없었다. 질서가 문란하고 기강이 해이해져 혼란해진 이 사회국면을 헤쳐나갈 수만 있다면 남이는 남아로써 무인으로써 이보다 더 큰 광영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세조는 남이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었고 남이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응당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국이 어지러운 이 곳 여연에서 신면을 만난 것이다. 남이는 자신보다 윗배인 신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였다.

<얼마 전, 명국 사신이 도성으로 향하였다 하던데 이번에는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걱정입니다. 이왕 같았으면 의주나 평양에 들려서 걸지게 놀다가 팔자걸음으로 갔을 터인데 이번에는 평양에마저 들리지 않았다 하니 내심 걱정입니다.>

남이가 걱정되는 듯 한숨을 내 쉬었다.

<명국의 사신행렬이 조선땅을 밟고 공무만 본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에요. 저들이 평소와 어긋나는 행보를 하고 있다는 건 자국 내에 큰 일이 일어났음을 뜻합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명나라는 부정부패에 젖어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인재는 초야에 뭍히고 정계에는 탐관오리들만 득실거려 국정에는 관여하지 않은 채 백성들의 혈세를 짜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요. 어쩌면 자국의 부정부패로 생긴 폐단을 타국에 대한 압박으로 해결할 의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부정부패 척결의 절대적 강자였던 건국황제 홍무제(주원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보고자 하는 마지막 발악일 수도 있어요. 강대했던 원나라는 자체의 부정부패로 썩어갔고, 그 폐해를 직접 체험했던 홍무제는 리선장, 주백온과 같은 쟁쟁한 명신들로 국가기틀을 다지고 금의위와 같은 비밀조직을 만들어 의형제마저 죽여가며 부정부패의 씨앗을 뿌리 뽑았어요. 하여 명 시초에는 건강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지만 나라란 본시 오래 되면 보수화 되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지금의 명나라는 황제 자신부터 사치와 향락에 휩쌓여 있으니 홍무제와 같은 시대를 다시 열기는 어려울 듯 하고아무래도 우리 조선에 무언의 트집을 잡아서 새로운 전쟁유발로 자국내의 어지러운 형세를 밖으로 돌리려 할 요량 같은데…>

<하지만 전쟁에는 엄청난 인력과 재원이 필요한데 명분 없이…>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저들의 의도입니다. 명분은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명분을 만든다 구요?>

남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 그렇습니다. 명분은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조선과 여진의 관계. 어쩌면 이것이 저들의 명분이 될 지도 모르겠군요.>

<여진은 유목민족이라 우리들과는 거의 적대적 관계에 있고,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귀화정책을 내놓은 겁니다. 천성이 싸움꾼은 저들의 일부는 아직도 우리 변경을 침략하고 있고 또 그 적대적 관계가 깊이 깔려있어서 토착민과의 관계도 시원치 않아요. 더욱이 자체의 필수품 공급이 부족한 여진에게 명나라가 일부 교역을 끊어서 여진의 유목민들은 더욱 우리 조선에 와서 기승을 부리는 것이구요.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은 명나라가 만들어놓은 실태들인데 이것으로 트집을 잡으면 명은 대국으로써의 품위를 잃게 되는 것이죠.>

 남이가 흥분하여 말하였다.

<맞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저들의 사전 책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진에 교역품목을 줄임으로써 여진으로 하여금 조선변경을 약탈하게 하고 또 조선측으로써는 어쩔 수 없이 귀화정책을 내놓게 하는 것! 그러면서 타국민에 대한 귀화는 오로지 중화의 질서를 지키고 있는 명나라 황제의 몫이라 하면서 조선의 방책을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저들의 명분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저들이 얻는 게 무엇인데요?>

<자국의 결집력!>

<… …?>

<한마디로 전쟁을 통해서 보수세력을 숙청하자는 것이지요. 전쟁을 하면 일단은 흩어져있던 ()()을 모을 수 있고, 전쟁비용을 위해 자국내의 모든 재원을 한 곳으로 응집할 수 있게 되죠. 이렇게 되면 사적으로 숨겨지거나 매몰되는 재원 같은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죠. 국가의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거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숙청문제! 전쟁 하면 당연히 반대하는 자들이 나타날 겁니다. 바로 기득권을 가진 보수세력들이죠. 모든 부정부패의 시초는 보수세력들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 보수세력들이 줄 치기 하듯 탐관오리들을 키워나가는 것이죠. 권력도 재부도 명예도 다 가진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전쟁에 동의하겠습니까? 바로 이럴 때 조선이라는 패를 가지고 중화질서의 절대적 권위자인 황제를 내세워 전쟁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쟁반대자는 모조리 숙청당하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부정부패는 사라지게 되겠죠. 한마디로 자체의 오물과 찌꺼기들을 외부로 방출시키면서 새로운 살을 만들어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의도 아니겠습니까?>

<저들의 오만한 자세! 정말로 치가 떨립니다.>

남이가 옆구리에 찼던 칼집을 풀면서 칼을 뽑았다. 그리고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옆에 있는 나무를 힘차게 내려쳤다. 그러자 갓 싹이 틀 듯 말 듯 한 참나무가 맥없이 쓰러졌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약소국으로 지혜롭게 대처할수밖에 없습니다.>

신면이 격분해 하는 남이의 기분을 가라앉히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도 남이는 성에 차지 않는지 성 난 황소마냥 연신 씩씩거린다. 그렇게 한참동안 기분을 풀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칼을 도로 차고 묻는다.

<하면 대책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직일단 저들 사신단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하고 나올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의도를 풀이하고 그에 알맞은 대책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현 형세를 파악하여 분석한 내용일 뿐, 구체적으로 이렇다 할 판단근거는 아닙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저들이 도성에 도착하여 무언의 협상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시국이 이러한데 저 자신은 여기에 이러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번에는 차분하기 그지 없는 신면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외교문제. 저는 무인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저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싸움이나 전쟁에서 이길려면 상대의 약점을 얼마나 잘 아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피동이 아닌 주동이 되어 흐름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금 영감께서 했던 말이 어쩌면 저들의 약점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이가 힘차게 말했다. 그러면서 기량 높은 백두의 산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 남이에게 신면이 웃으면서 물었다. 아마도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너저나 우리 장군께서는 꽃처럼 예쁜 시월이를 어찌 시집 보낼까?>

<평생 제 옆구리에 끼고 살랍니다. 허허허…>

 남이가 신면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나라걱정은 나라걱정이고 사람이 너무 의미심장하게만 살면 아니 된다는 것을 지난 세월동안 무인으로 살면서 체득해온 남이었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시월이를 생각하면서 하산하였다. 신면이도 남이와 시월이의 묘한 인연을 생각하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추천 (0) 선물 (0명)
사랑은 우리의 공유된 생활이다...
IP: ♡.42.♡.38
22,95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724
금독수리
2014-01-12
1
912
Blue07
2014-01-10
2
1231
우림이엄마
2014-01-10
7
3052
금독수리
2014-01-09
0
808
yun95
2014-01-09
1
1188
I판도라I
2014-01-09
4
918
금독수리
2014-01-08
0
794
다혜마미
2014-01-08
5
1855
김보영
2014-01-07
1
1825
해피투데이
2014-01-07
0
568
yun95
2014-01-07
1
1548
yingshu323
2014-01-06
1
1958
Blue07
2014-01-05
1
1054
angels
2014-01-05
2
1417
금독수리
2014-01-05
0
760
xingyu
2014-01-05
8
1291
김보영
2014-01-04
1
2067
추억으로
2014-01-04
5
2673
I판도라I
2014-01-04
7
1245
newsky
2014-01-03
2
1418
금독수리
2014-01-03
0
537
다혜마미
2014-01-03
5
2003
금독수리
2014-01-02
0
639
다혜마미
2014-01-02
1
1557
다혜마미
2013-12-31
3
1673
앙앙잉잉
2013-12-30
1
1982
금독수리
2013-12-30
1
1036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