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시리즈]한어는 어려워

네로 | 2002.03.20 10:52:55 댓글: 0 조회: 907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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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에 올라가니 새로운 과목이 추가되였다. 기존에 배우던 미술,음악,자연상식,사상품성이라는 과목이외에도 한어라는 새로운 과목이 추가되였는데 한어(漢語)가 뭐냐면 중국말이다.

첫시간에 뭘 배웠냐구? 아이러니컬하게도 한자가 아닌abc였다. 한자는 뜻글이기때문에 글을 보고 발음할수가 없었다. 발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중국에서는 라틴어로 된 표기법을 만들어냈고 일컬어 병음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를 배우기에 앞서서 병음부터 배워야 했던것이다.

병음은 영어자모와 모양은 같지만 발음은 달라서 abcd를 에이삐씨디...라고 부르는게 아니라 아버츠더...라고 불렀다. 이 병음들을 조합한뒤 위에 4가지 억양을 나타내는 성조라는 표기법을 사용하면 한자의 발음을 재현할수가 있었는데 그때 우리들의 공책이나 교과서는 모두 병음투성이라 자칫 영어책으로 오해받기도 십상이다.

병음으로 마음대로 표기할수 있을때쯤이면 자습능력도 생기고 한자를 손쉽게 배울수가 있었다. 처음보는 한자라도 표기한 병음을 보고 읽을수가 있으니깐.

이름만 중국사람이지 중국말을 거의 못해보고 살아왔는지라 한어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외국어나 다름이 없다보니 배우는데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연변은 소수민족자치라는 정책때문에 한어(중국말)을 모르더라도 별 불편이 없이 살수가 있었던것이다.

거리의 간판들도 조선글이요(중국어는 간판의 아래쪽이거나 오른쪽에 달도록 되여있고 조선말로 표기하지 않을경우에는 불법이다.) 라디오방송이나 텔레비젼방송도 조선말이다. 영화도 다 조선말로 더빙해서 따로 상영했고 정부의 요직들도 조선족이 담당할수 있도록 규정했으며 심지어 신분증마저도 조선말과 한어를 같이 사용하여 제작했다.(덕분에 내륙지방에서는 연변사람들의 신분증을 보고 외국인등록증인줄로 오해하기도...)

당연히 교과서도 조선말로 되여있으며 한어를 배우기에 앞서서 자기의 민족어인 조선어문부터 배우도록 배려가 돼있었다. 이 모든것은 좋기는 한데 불행하게도 한어를 배우는데는 장애가 되였던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태여나 한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마저 중등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어에 서툴었다. 오히려 일본어를 꽤나 잘하셨는데 소학교를 다닐때는 일본점령기였고 학교에서는 오로지 일본말만 하도록 허락이 돼있기때문이라고 했다. 조심하지 않아서 조선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화장실청소하는 벌을 받아야 했으니까..

아무튼 한어를 배운다는것은 더없는 고통이였고 나는 공부에는 워낙 뒤전이라 나머지공부는 내몫이였다. 생각해보라...남들은 가방을 메고 룰루랄라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거나 운동장에서 공차기를 하는데 교실에 홀로 남아 공책에 abcd를 열심히 쓰고있는 무우를,불쌍해서 코등이 시큰해지지 않는가?

그럭저럭 병음을 배워내긴 했는데 성조라는 놈이 이번엔 애를 먹인다. 억양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한번은 수업도중에 일어서서 단어를 외우게 되였는데 성조를 맞추느라고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 저도모르게 성조에 맞춰 머리를 흔들거리면서 읊었다. 억양이 내려갈때는 머리가 숙여졌고 억양이 올라갈때는 머리를 쳐들었으며 내려갔다 올라갈때도 머리가 상하로 기복을 그었는지라 그 광경을 본 한어선생님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땜시 한동안 한어선생님한테 비웃음을 받긴 했지만 이자식이 오죽하면 그랬을가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지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나머지 공부도 웬만해선 빼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급학년에 들어서자 열심히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쑥쑥 올라갔다.

그 원인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텔레비젼의 보급이였다. 소학교 2학년때쯤에 처음으로 텔레비젼이라는것을 구경했고 4학년이 될때즈음엔 거의 집집마다 텔레비젼이 있었다. 일본드라마며 홍콩의 무협드라마가 인기를 누렸고 충실한 애청자였던 덕분에 따로 배우지 않아도 한어실력은 일취월장했으니...

아무튼 소학교를 졸업할때즈음에는 중국말을 알아들을수 있는 정도까지는 이르렀고 초중을 졸업할때즈음에는 유창하게 중국말을 구사할수가 있었다. 휴~아무리 중국에서 태여났다지만 중국말을 배우기는 힘들었다.

PS:한국에서도 한자를 배운다는것을 알고있는가? 한국에서는 1800개의 한자를 기초한자로 지정하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배우도록 돼있다.그래서 웬만한 한자는 한국인들도 곧잘 한다. 하지만 명나라때 건너온 한자라서 필획을 많이 줄인 중국의 간자체하고 약간 다른 모습이며 쓰기도 까다롭다. 그럼 중국에서 배우는 한자는 몇개? 아마 3000자쯤 되리라고 생각되는데 3~4000개의 한자만 알면 중국어를 보고 쓰는데 어려움이 없다. 게다가 2000개 정도만 배우면 나머지는 약간의 변형에 불과해서 배우기 쉽다.한자는 이루어진 구성부분마다 특유의 뜻이 있고 비슷하게 생긴 글자는 발음도 비슷하므로 처음 보는 글자라도 뜻과 발음을 대강 짐작해낼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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