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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기행]눈에 덮인 처창즈는 말이 없었다

합마하물결 | 2018.02.01 16:17:37 댓글: 0 조회: 1271 추천: 0
분류역사자료 https://life.moyiza.kr/crcnphoto/3547545

지난 몇년간 력사문화답사를 한답시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만 유독 처창즈항일유격근거지 유적지만은 한번도 다녀오지 못했다. 고향집에서 불과 50키로메터 상거한 처창즈에 말이다.

한겨울의 강추위가 한창이던 지난 1월 20일, 조선족력사문화에 짙은 애정을 지니고 지난 6년간 함께 답사활동을 견지하였던 김정섭, 주청룡 선생과 나는 역시 력사문화를 관심하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양천1중 허동일교원의 승용차를 리용하여 처창즈항일유격근거지를 다녀오기로 약속하였다.

연길에서 100여키로메터 되는 거리라 아침 9시에 출발하였는데 눈에 덮인 산길에서 길을 외껴 승평림장까지 내처 달리다가 좁은 길에서 겨우 차머리를 돌려 돌아오다 나니 12시가 지나서야 목적지인 화안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이 깔린 산길에서 차머리를 돌리다.

화안촌이란 화룡과 안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촌명으로 근년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전에는 목란툰이거나 처창즈라고 많이 불리웠다. 처창즈란 달구지를 거는 곳이라는 뜻이다. 화안촌은 200여호가량 되는 꽤 큰 마을이였는데 촌민은 모두가 한족들이였고 첩첩산중의 고동하 상류 하곡분지에 자리잡았지만 벌이 너르고 땅이 비옥해 근거지를 만들 만한 고장이였다.

“우리가 답사하는 항일유격근거지들은 모두 이런 깊은 산골에 자리잡았네!” 김정섭선생의 말에 “그 때 적아력량 차이가 크고 일본놈들이 위만군이나 자위단, 삼림대를 거느리고 무차별 토벌을 감행하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 주청룡선생이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멀리 화안촌이 바라보인다.

처창즈항일유격근거지는 일제와 그 주구들에 의해 토벌에 토벌을 거듭당하고 할 수 없이 근거지를 떠난 연길, 안도, 화룡 지역의 유격대원들과 근거지인민들 도합 1000여명이 생활하면서 항일하던 곳이다.

처창즈는 첫눈이 내리면 이듬해 봄이 되여야 녹는 고장인데 이런 정황을 모르는 우리는 그냥 집에서 신던 신을 신고 왔다. 보통 10여센치메터 쌓였는데 어떤 곳에는 바람에 날려 무릎까지 빠져들어갔다.

처창즈항일유격근거지를 답사하기 위해 대량의 자료를 읽었지만 정작 이곳에 오니 동서남북이 헛갈리며 소경 막대기질이나 다름없었다.

촌어구에 세워진 처창즈항일유격근거지 기념비

처창즈는 왕덕태가 령도한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련군) 제2군의 탄생지이다. 1935년 5월 30일, 바로 이곳에서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군부 정식 성립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당시 제2군은 4개 퇀, 1개 유격대, 1개 교도대, 1개 경위련으로 총 1,200여명이였다. 이듬해 개편하여 3개 사를 두었는데 제3사 사장이 바로 김일성동지였다.

불굴의 항일투사 김명주((1912-1969)가 연길감옥에서 탈옥하여 옥우들을 이끌고 항일련군에 가입한 지점도 바로 처창즈다. 그는 회억록에 이렇게 쓰고 있다. “1935년 음력 9월에 우리 련은 처창즈로 돌아왔는데 나는 제2군 제7퇀 제4련 제1패의 전사로 되였다. 같은 해말에 부대가 처창즈를 떠나 여러 곳을 다니며 유격전을 하였는데 후방병원과 무기수리소 등은 큰 삼림 속으로 이동하였다…”

1937년 7월 7일, 김명주가 장백현에서 입당할 때 소개인은 당시 련의 지도원이였던 김일(박득산)과 패장 오일남이였는데 그 김일이 바로 처창즈유격근거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김일환부부와 함께 처창즈에 파견되였던 사람이였다. 후날 김일이 ‘민생단’혐의로 처창즈에 남아있을 때 김명주가 부대에 인도하기도 하였다. 썩 후에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수상으로 되였다.

불굴의 항일투사 김명주렬사(왼쪽)와 리계순렬사

1933년 11월에 준비하여 1934년 11월에 창설된 처창즈유격근거지에 대해 설명하려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김일환렬사를 빠뜨릴 수 없다. 당시 화룡현위 서기였던 김일환은 1902년생으로 1910년에 부모를 따라 화룡현 금곡촌(오늘의 룡정시 덕신향 금곡촌)에 왔으며 룡정대성중학을 졸업하였다. 중학시절인 1926년(24살)에 조선공산당에 가입하고 1929년 여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그는 중공달라자구위 서기를 거쳐 화룡현위 조직부장으로 되였다. 1933년 2월, 화룡현위 소재지였던 어랑촌항일근거지가 적들의 토벌에 엄중히 파괴되였다. 상급으로부터 중공화룡현위 서기로 임명된 김일환은 혼신을 다해 당조직과 항일근거지를 재건하는 사업을 밀고 나갔다.

1933년 11월, 그는 김일과 함께 유격근거지를 창설하기 위해 미리 처창즈에 가서 정치공작을 하였다. 그들은 당지 주민들을 동원하여 반일회, 농민협회 등 반일혁명단체를 조직하여 공산당의 영향력을 확대하였으며 부근에 주둔해있던 구국군(장학량을 따라 관내로 들어가지 않고 항일의 기치를 든 동북군부대)들에게 항일도리를 설명하고 인민혁명군과 함께 어깨 겯고 싸울 것을 선전하면서 유격구 창설을 위한 토대를 튼튼하게 마련하였다.

그런데 근거지 건설이 마무리되자 김일환이 숙반투쟁에 말려들어‘민생단’혐의로 억울하게 살해당할 줄이야!

처창즈의 당지부서기 리억만(변절자)이란 자가 경상적으로 약담배를 피우며 일을 하지 않아 김일환이 몇번 찾아가 준절하게 타일렀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리억만이 김일환을 민생단 혐의분자라고 고발한 것이였다.

‘민생단’이란 무엇인가? 알기 쉽게 말하면 서울에서 올라온 친일반공분자들이 만들어낸 조직으로 1931년에 설립되였다가 이듬해 7월에 해체된 단체였다. 즉 실체가 없는 조직이였다.

당시 중앙쏘베트구역에서도 숙반투쟁이 일어나 중국공농홍군 제1군 군장 허계심 장군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을 보면 동북의 근거지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숙반투쟁이 치렬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만지역의 숙반운동은 반‘민생단’투쟁이였는데 조선민족에게만 그 혐의가 몰렸다는 점이다. 불확실한 통계에 따르더라도 그번 운동에서 천여명의 무고한 유격대원과 간부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1934년 11월의 어느 날, 리억만은 군중대회에서 김일환을 즉시로 총살할 것을 선포하였다. 그러자 김일환의 선전으로 항일대오에 가입한 구국군의 한 사람이 “김일환은 진정으로 항일하는 좋은 사람이다. 우리는 일년간 함께 있었는데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고 하면서 “누가 만약 김일환을 총살하면 우리는 곧 그 자의 머리를 박살내겠다.”고 웨쳤다. 리억만은 하는 수 없이 김일환을 석방시켜 집으로 돌려보냈다.

제2군 군부유적기념비의 앞뒤면

그 날 저녁 김일환의 어머니는 생명이 위험한 아들더러 멀리 피신했다가 바람이 자면 다시 돌아오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김일환은 “나는 공산당원입니다. 억울하게 죽을지언정 절대로 조직을 떠날 수 없습니다.”라고 간곡히 사절하였다.

며칠 후 김일환은 리억만의 무리에게 비밀리에 사형당하였다. 그는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공산당 만세!”, “동지들은 혁명을 끝까지 하라!” 등의 구호를 웨쳤다(1956년 유관 부문에서는 그의 명예를 회복하고 혁명렬사로 추인하였다).

당시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 사부와 제1퇀, 제2퇀은 동남차골안의 북쪽기슭의 구국군이 버린 병영에 자리잡았고 서남차의 고동하지류 량안에는 병기공장, 피복공장, 병원이 들어섰다. 기록에 의하면 지금 156호 전선대가 있는 곳에 연길현 팔구인민혁명정부가 있었고 그 서쪽 목란툰에 옹구와 왕우구정부가, 149호 전선대에 제2퇀 퇀부가 있었으며 강 건너 맞은편 산밑에 제1퇀 퇀부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지만 두텁게 쌓인 눈 때문에 우리는 세부적인 답사를 눈이 녹는 봄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적들의 악착 같고 무자비한 토벌과 봉쇄로 인한 기아에 대해 항일투사 려영준은 《준엄한 시련 속에서》라는 책에서 이렇게 묘사하였다.

“우리는 계속하여 송피를 벗겨먹고 우묵우묵 패인 물구뎅이에 가서 개구리알까지 떠다가 삶아먹으며 일하였다. 햇풀이 땅 우로 봉긋이 솟아오르면서부터 남녀로소가 산과 들에 널려서 숨위나물, 삽지, 고사리, 기름고비, 물고비, 더덕, 도라지, 참나물, 절나무, 개암나무, 한충, 메마늘, 세투리, 메뿌리, 씀바귀, 냉이, 산미나리, 산시금치, 참나리, 개나리 등 먹을 수 있는 풀은 죄다 캐들였다. 이런 산나물은 송피보다 먹기 좋았다. 하지만 이런 산나물을 먹을 때 기름 한방울 넣지 못하였다. 간장, 된장, 소금마저 없어서 맹물에 삶아먹거나 생나물을 그대로 씹어먹다 보니 나중엔 사람의 몸에 풀독이 오르고 병이 나서 선후 100여명 군중이 사망되였다.”

연변박물관의 연구원 김철수도 그의 저서 《연변항일사적지연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기아와 공포는 무서웠으나 근거지 인민들은 기아보다 더 무서운 반‘민생단’투쟁에 떨어야 했다. 김일환, 주도산, 석봉세 등 근거지의 지도자들은 이번 투쟁으로 억울한 루명을 쓰고 살해되였다.”

1935년 11월, 처창즈근거지가 정식으로 해산된 후 상급에서는 로약자와 부녀들이 처창즈를 떠날 것 요구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죽어도 항일을 하다가 죽겠다며 하산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민생단’ 혐의로 살해된 김일환의 딸을 봄에 낳은 리계순(1914-1938, 조선 평양 대성산혁명렬사릉원에 안장), 그의 시어머니 오옥경, 조카 김선과 김일(박득산)부부, 남창수네 삼형제, 강일수네 집안의 도합 16명이였다. 이들은 모두 ‘민생단’ 련루자 가족들이였기에 항일련군을 따라 움직일 수 없었고 또 집단부락에 내려가도 혈안이 되여 항일련군을 찾는 일본놈들이나 특무들에게 붙잡힐 수 있기에 어차피 죽을바 하고는 일본놈들과 싸우다 죽자고 결의하였던 것이다.

이들 16명은 동남차 골짜기 막바지에 귀틀집을 지어놓고 단합살림을 꾸리면서 근거지 여기저기 산속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련계를 가지고 반일자위대를 조직하였다.

1936년 2월, 근 석달간 독립적인 항일활동을 해온 처창즈반일자위대는 산속에서 한개 분대를 거느리고 형제부대를 찾는 김명주를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8퇀과 련계를 가지게 되였다. 그 해 이른봄 이들 전원은 ‘민생단’ 혐의를 벗고 8퇀 특수반으로 입대하였고 처창즈는 일본놈들의 손안에 들어갔다.

2016년에 새로 세운 기념비들이 눈밭에 조용히 서있다.

현재 처창즈항일유격근거지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군부자리에는 ‘동북항일련군 제2군 탄생지’,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군부유지’ 등 유적기념비와 16살에 근거지 보위전에서 희생된 윤영희렬사, 마렬사, 김철주(김일성동지 동생)렬사, 곽렬사, 문관, 위만군에 들어가 투항을 권유하다가 희생된 두수일렬사 등 6기의 렬사기념비가 경립되여있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1-30 14: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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