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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삶실화23

사나이라면 | 2017.07.01 05:32:16 댓글: 1 조회: 1691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bbs.moyiza.com/fiction/3406816
23부


중국은 참 주위 환경이 아이러니하게도
답답한면이 많다.
내가 배탈때도 60 훨씬 넘은 분도 배타는
사람들 많이 보았지만 카나다가서
더 놀란일은 70 넘었는데도 일하는
사람을 적잖게 보았다.
처음에는 자본주의 국가라 약간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사실
노동력이 있을때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을 하는것은 모두에게 좋은거라는데
공감을 하는 일인이다.자기가 움직일수
있을때 좀더 긍정적으로 할수있는일을
하면 경제적으로나 건강에나 다 좋은
일이 아닐까싶다.
내가 카나다에서 첫 직장의 주방장은
72살이였는데 정말 그때는 엄청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그분은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퇴근은
우리보다 한시간 먼저 퇴근했었다
.이유는 가족이랑 같이 식사하려고
저녘 9시면 퇴근이다.
우린 보통 열시 아님 열시반에 퇴근했다.
하루 그러니 13시간 식당에서 일을했던거다.
일은 그래도 마음먹고 즐겁게 생각하니
힘든줄 몰랐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그만큼
중요했다.

나는 배타던 사람이였으니 월급도 배탈때보다
거의 네배 더받으니 힘들리 없었다
.몸이야 좀 피곤하지만 인민페로 계산하니
그냥 하루를 해도 신바람 났다.
나는 그 가게서 이년반을 일했다.설거지로

들어가서 주방보조로 몇달하고 그러다보니
주방일을 거의다 익혔다.
나는 다시 스시바로 나가 김밥으로
시작해 스시맨까지 하게되였다.
스시맨은 월급도 많이 받을수 있었다.
나는 그 가게에서 사장님의 인정을 받아
나름 조용히 보너스도 두번 천불씩 받았다.
1800불에 설거지로 일을 시작해 2년반만에
2천 600불의 월급쟁이로 몸값이 올랐다.
그동안 나는 정말 투정한번 안부리고
묵묵히 내 앞날을 위해 기술을 익혔다.
남들보다 먼저 가게 나오고 남들보다
늦게 퇴근하고하니 사장님은 나를 자신이
아는 기술을 다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나는 주방일도 다 떼고 스시바에서
생선잡는거로 부터 시작해 일식에서
하는 기본적이면서도 섬세한 부분도
다 익힐수 있었다.그렇게까지 오르려고
나는 무조건 예스맨이되였다 .

한국사람들은 예스맨을 좋아하는걸 배타면서
절실히 느낀 나로서는 월급도 많이 받으니
어쩌면 돈받으며 기술배운다고 생각하니
냎가게보다 더 열심히 할수있었다.
그리하여 난 그동안에 모은돈으로 빚을
다 갚고도 연길에 내 이름으로 아파트를
사게되였다.
나는 꼬박 2년반을 참고 나의 집을
장만할수 있었다.
사람은 다 자신이 좋아하는일만하며
살수있는것은 아니다.물론 나도
그동안 서럽고 기분
나쁜일이야 엄청 많았다.
온 식당에 나 하나 조선족직원이니
좀 깔보거나 무시할때도 있었지만
난 대수로이 여기지 않고 흘려버렸다.
내가 기술을 배우는걸 눈치까면 슬쩍
다른일 시키며 소스만들때면 남몰래
만들던 주방장도 당신이 그가게
그만둘때에는 자신의
레시피(음식만들때 양념비율)책을
넘겨주었다.

고맙기 그지없었다.
세상 모든걸 다 가진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출국하며 진빚도 청산하고 차츰 카나다의
생활에 적응하게 되였다.
그때만해도 정말 조선족이
토론토에는 적었다.
어쩌다 조선족을 만나면 너무 반가워서
연락처를 공유하고 쉬는날을 맞춰
같이 밥한끼라도 먹고 그렇게
가깝게 지냈다.
흑룡강에서 왔던 심양에서 왔던
우린 나름대로 외로운 사람들이였다.
가족을 떠나 타향살이하는 서로가 다 목적이
같은 사람들이였다.
나이가 많든 고향이 달라도
조선족은 한국사람들의 일으킨 일터전에서
약간의 차별은 (월급)있어도
우리에겐 어마어마한 부를 창조하는
기회이니 참고 버텨나갔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니 어느샌가
토론토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식당마다 조선족이 다
한두명씩 있을정도였다.
나는 토론토에서 네시간 떨어진
써드버리라는데에 가 조용히
일하고 싶었다.
하나는 식당이 사람이 넘쳐나니
월급이 원하는 값대로 조절이 안되여
시골로 간이유고 다른 하나는 좀 조용한
곳에서 지내보고도 싶었다.
월급은 내 생각이상 준다니
더 끌렸던것이다.
그래서 선택한곳이 써드버리라는
시골동네 일식집이였다

다음에 계속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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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50.♡.167
혼자사는남자 (♡.245.♡.65) - 2017/07/03 10:24:02

잘보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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