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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의 밤 1

Research | 2018.03.09 16:51:42 댓글: 1 조회: 1061 추천: 1
분류추리소설 http://bbs.moyiza.com/fiction/3571797
1.

긴박한 듯하면서도 약간은 어색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건배는 이루어졌다. 몇 시간 전에 건배를 외칠 주인공은 정해 두었다. 몸집이 물에 불은 듯한 영업부장이다. 부담스러운 임무를 무사히 끝낸 영업부장은 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방석 위에서 자리를 고쳐 앉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옆자리에서 서른을 넘긴 장신의 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은행원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쑥한 감색 스리피스를 완벽하게 차려 입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빛만은 숨길 수 없다. 남자의 이름은 나리타 신이치, 대형 마트를 경영하는 마사키 도지로의 비서이다.

"어땠어? 어색하지는 않았지?"
영업부장이 나리타에게 물었다.
"예.완벽하게 잘하셨습니다."
나리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렇게 말했다.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처럼 완벽하다고나 할까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고맙네. "
영업부장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2월의 어느 날, 마사키 도지로의 희수를 축하하는 모임이 그의 자택에서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주취는 도지로의 사위이며 부사장이기도 한 마사키 다카아키였다. 다카아키는 도지로의 옆자리에 앉아 열심히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다카아키뿐 아니라 마사키 가문의 친인척 남자들은 거의가 어떤 형태로든 도지로의 회사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점에서 도지로의 독재 체제일 수밖에 없는 이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그의 눈에 들어야 한다.

건배 제의를 하는 영업부장도 도지로의 조카뻘이다.
"저기 잔을 든 높은 사람은 이번 기회에 사장 자리를 꿰찰 심산이지."
말석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젊은 남자가 옆자리의 동년배로 보이는 남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 윗사람의 비서 역으로 참석하였다.
"누가 뭐라 해도 인사의 최종 결정자는 사장이니까."
"부사장이라도 제대로 머리를 들지 못한다는거야."
"그야 당연하지.봐, 저기 부사장 옆에 예복 입은 여자 있잖아. 사장의 딸이야. 부사장은 데릴사위고."
"전무도 사장의 아들이라며?"
"아들이지. 다만 부사장 부인과는 배다른 오누이래. 두번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이 바로 전부인 마사키 도모히로 씨야. 첫 부인은 병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해. 아마도 사장의 엄청난 정력에 몸이 버티지를 못했을 거야."

두 젊은이는 연회석 구석에서 마사키 도지로의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비쩍 마른 모에 백발의 남자가 바로 도지로이다. 그 옆에 있는 중키에 배가 조금 튀어나온 남자가 다카아키다. 기름기로 번득이는 이마가 정력적인 남자라는 인상을 준다.

다카아키의 반대편 자리에서 하얀 드레스를 차려입은 30대 후반의 여자가 음식을 먹으며 도지로와 다카아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틀어 올린 머리에 가끔씩 떠올리는 얼굴의 미소 하며 사소한 몸짓에서도 요염한 기운이 풍겨난다.
"누구야, 저 미인은?"
한쪽 남자가 묻는다.
"그것도 몰라? 사장의 부인이잖아. 세 번째 새색시."
"부인? 나이 차이가 엄청 나잖아."
희수라면 도지로의 올해 나이는 일흔일곱이다.
"모든 게 돈의 힘이지 뭐. 사장의 수명이라 해 봤자 앞으로 10년, 저 부인도 그 정도 계산은 하고 있을 거야."
"그렇겠지. 그런데 두 번째 부인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는데. 이혼한 건가?"

그러자 상대 남자는 더욱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작년부터 별거한다는 소문이 떠돌아. 이혼하려면 엄청난 위자료를 지불해야 할 거야. 3억, 아니 5억 아래는 아닐거야."
휴우, 하고 상대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꿈같은 액수로군. 하지만 사장의 재산에서 몇 분의 일도 안 되겠지."
"그건 그렇겠지만 소문을 들어 보니 사장이 아주 구두쇠라던데. 그러니까 그 정도 위자료는 당연하겠지만 눈물이 나올 만큼 아까울 거야."
"저 새 마누라가 5억 엔짜리 쇼핑이었던 셈이네."
"가치관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르긴 하겠지만 5억이나 내고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눈물도 나오지 않을걸."
"일흔일곱이라며? 그럴 가능성이 많겠어."
쿡쿡쿡, 두 젊은이는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이 잔치의 사회를 맡은 나리타는 진행 순서표와 손목시계를 번갈아 보며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모임에서 오차가 발생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수고가 많아."
누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작은 키지만 딱 벌어진 단단한 몸매의 사내였다. 목소리의 울림에도 힘이 깃들어 추린력이 강한 느낌을 준다. 남자는 나리타 앞으로 술병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마사키 전무님."

나리타는 정좌한 채 분도기로 잰 듯이 정확하게 고개를 숙이고 술잔을 들어 마사키 도모히로의 술을 받았다.
"매형은 정말 열심히 아버님 수발을 드는 것 같아."
도모히로는 도지로 곁에 착 달라붙어 있는 다카아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멸과 질투가 섞인 듯한 뉘앙스였다.
"부사장님은 무슨 일에건 열정적이니까요."
그러자 도모히로는 묘한 웃음을 흘렸다.
"늘 열성적이란 말이지. 하긴 그래. 어쨌든 아버지 기분이 조금만 뒤틀려도 부사장이건 전무건 바로 목이 잘리니까.
도모히로는 나리타의 어깨를 다시 한 번 툭 치고 술병을 든 채 다른 자리로 옮겨 갔다.

'그건 그렇지."하고 나리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라면 아무리 아들이라도 가볍게 잘라 버릴지도 모른다.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도지로는 늘 나리타에게 말하곤 했다. 사실 지금의 회사 간부들은 실력을 검증받아서가 아니라 연줄을 타고 올라온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다카아키는 그런 가운데서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마사키 가문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지만 도지로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다가 사위가 되었다. 도모히로는 사장의 아들이지만 후계자 자리를 다카아키에게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연회 프로그램이 반이나 지나 분위기가 좀 시들해졌을 무렵, 도지로의 부인 후미에가 나타났다. 말석 가까이에 위치한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기모노로 몸을 감싼 퉁퉁한 몸매의 여자가 연회석을 날카로운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도 그녀의 박력에 압도외어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후미에는 모든 사람이 긴강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도지로를 향해 걸어갔다.
자신의 아들인 도모히로가 "어머니." 하고 불렀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도지로 앞으로 가 그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더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슨 일이야?"
도지로는 앉은 자세에서 술잔을 든 채 낮은 목소리고 물었다.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 모습이 켤코 만만치 않은 그의 관록을 웅변해 주었다.

후미에는 핸드백 속에서 깨끗하게 접은 서류를 꺼내 그것을 자기 앞에 내려놓았다.
"당신이 나한테 부탁한 겁니다. 이걸 전해 주러 왔습니다. 이혼 서류입니다."
공기가 출렁하더니 곧 조용해졌다.
"장모님, 왜 이런 때...... ."
다카아키가 옆에서 끼어들려 하자 도지로가 제지했다. 그리고 비서 나리타를 불러 후미에 앞에 놓은 서류를 턱으로 가리켰다.

나리타는 머뭇머뭇 앞으로 나아가 그 서류를 집어 들어 도지로에게 건네주었다. 도지로는 그것을 펼쳐 잠시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걸 내일 제출하고 와."하고 나리타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후미에 쪽을 돌아보았다.
"가져다 줘서 고맙네. 위자료는 틀림없이 자네 계좌로 넣어 두지."
"부탁합니다."

후미에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좀 들지그래. 오늘은 특별히 맛있는 게 많은 것 같은데."
"아니요, 난 여기서...... ."
"......그런가."
후미에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한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문이 닫히고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 다음에도 한참이나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나리타."
도지로가 불렀다.
"예."
"난 방에서 좀 쉬고 있을 테니까 연회는 계속하도록 해. 술도 더 시키고, 오늘은 조금 늦어져도 좋아. 분위기도 좀 띄우고 그래 봐. 이깟 일로 분위기를 망쳐서야 말이 되겠는가."
"잘 알겠습니다."
나리타는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 사장도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라고 내심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후미에의 출현으로 잠시 어색한 기운이 떠돌긴 했지만 음식과 술이 더 들어오고 노래가 시작되자 분위기도 서서히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한 시간가량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연회장은 열기에 감싸였다. 다카아키가 나리타에게 다가와 이제 슬슬 파장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귀속말을 했다. 나리타의 손목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장님은 안 불러도 될까요?"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한마디 하셔야지. 미안하지만 자네가 좀 모셔 오지그래."
"알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리타는 긴 복도를 걸어 도지로의 서재로 향했다.

방 앞에 서서 나리타는 두 번 문을 두드렸다. 손마디에서 몸으로 묵직한 울림이 전해져 온다. 그러나 방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상한데.'
나리타는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사장님."
그가 조금 큰소리로 불렀다. 도지로는 최근에 가는귀가 먼 것 같았다. 만일 잠이 들었다면 작은 소리로는 깨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답이 없어서 나리타는 회식 자리로 돌아왔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노래소리에 넌더리가 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리코에게 다가가 사정을 설명했다.
"하긴 요즘 들어 가는귀가 멀어서 정말 짜증이 난다니까. 역시 나이 탓이야."
에리코는 틀어 올린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나리타를 올려다보았다.

"열쇠는 가지고 있죠?"
"가지고는 있지만......좋아, 나도 같이 가지 뭐."
그녀가 일어나 나리카의 뒤를 따랐다.
"여봐요."
긴 복도를 걸어가는 도중에 에리코는 나리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계획, 어떡할 생각이야?"
"때와 장소를 좀 가리세요. 누가 들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나리타는 정면을 바라본 채 말했다.
"괜찮아, 아무도 없는데 뭐. 무사히 본처와 이혼도 성립되어 내가 정식 아내가 되니까 바로 시작하는 거지?"
"금방은 안 됩니다. 의심을 살지 몰라요. 6개월, 아니 1년 정도는 참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 정도가 지난 다음에 병사로 위장해서...... ."
"1년? 너무 길어."
"참아야 합니다. 이 고비만 넘기면 평생 놀고 지낼 수 있어요."
"당신과 함께."
"목소리가 너무 커요."
나리카는 에리코를 나무랐다. 도지로의 방이 바로 눈앞이다.

"그럼 사모님, 부탁드립니다."
그는 에리코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녀는 윙크를 한 다음 열쇠구멍에 키를 밀어 넣고 돌렸다. 찰칵,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
남편을 부르며 문을 열자마자 에리코는 "꺅!"하고 비병을 질렀다.
그러고 거의 동시에 나리타도 참으로 괴이쩍은 장면과 맞다뜨렸다. 에리코가 바르르 몸을 떨자 거기에 전염이라도 된 듯 나리타도 무릎을 달달 떨기 시작했다.

서재 한가운데 사람의 몸이 매달려 있었다. 그 몸은 천천히 흔들리면서 때로 나리타 쪽으로 얼굴을 돌리기도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다카아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들 그래? 사장님은 아직도 쉬고 계시는 건가."

다카아키는 두 사람 뒤에 서서 실내는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목 저 안쪽에서 쥐어짜는 듯한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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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타 (♡.111.♡.185) - 2018/03/09 18:47:47

이젠 끝난줄 알앗는데 또 오셧네요

재밋게 잘 봣어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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