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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보라

조금더가까이 | 2018.08.11 08:37:59 댓글: 26 조회: 996 추천: 12
분류생활잡담 http://bbs.moyiza.com/lifejob/3696063
우선 몇몇 안티가 저의 수준? 자질에
대해서 의심하니 나로선 찝찝한 건
질색이라 14년전 2004년도
한양대학교 다닐 때 썼던
논문 하나만 가져온다.
물론 14년전 배경이라 지금이랑
다를 수 있는 점 감안하고 보시라우...
4년동안 100여편 논문 썼는데
모이자서 가볍게 놀려고 했건만
몇몇 안티들 날 무식하다길래
본인들은 얼마나 유식한지
궁금하지도 않고 가볍게
몇번 참았지만 참는게 답은 아닌 같다.
세공방이든 연애방이든 말을 돌려서
분수 껏 행동하자고 했건만
돌려말하는 의미를 파악못했는지...
왜 이렇게 사람을 까길 좋아하는지...
몇몇 사람들 땜에 이것이 민족특성이라기엔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제목:중국의 전통 문화가 오늘날 중국인에게 끼친 영향

우선 중국의 전통문화를 개괄적으로 살펴봄으로 중국의 과거 5천년의 찬란했던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이러한 문화가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어떤지 약술해 봄으로 좀 더 중국인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1. 중국의 예속

 예(禮)는 나라를 세우는 변치 않는 대법(立國經常之大法)이며, 모든 가치 판단의 근본이다. 고대의 예는 제사의 의미가 강했고, 주대에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한대의 유가들은 예치이론을 완성하여 가정과 사회, 정치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혼례(婚禮)는 중국에서 상장례와 함께 중시되던 예속으로 씨족과 씨족의 연계이며 결속을 나타내는 문화, 정치적 상징이다. 고대에서는 일부다처제가 통용되었으며, 이는 진나라와 한나라 이후 지속된 혼인문화였다. 한대에는 크게 정혼(定婚)과 성혼(成婚)의 두 단계로 거행되었다. 정혼과 성혼은 모두 여섯 단계로 구분되어 있어 육례(六禮)라고도 했다. 육례는 모두 쌍방의 부친이  전면에 나서서 진행을 하고, 대부분은 남자측이 주도한다. 
 혼례의 범주에 드는 또 하나의 예속은 이혼에 관한 것으로, 고대의 이혼 사유는 여자가 칠거(七去)에 해당할 경우 일방적으로 쫓아내었다. 혼례는 국법이 미치지 못하는 사항이었으므로 이혼의 경우 절대적 권한은 남자 쪽에 있었다.
 상장례(喪蔣禮)란 상례와 장례의 혼합명칭인데, 주검을 매장하기 전까지 다루는 예속을 상례라 하고, 매장에 필요한 예속을 장례라 한다. 죽음에 대한 중국적인 이해는 독특한 상례와 장례 예속을 낳았다. 중국 신석기 시대의 사체를 보면 주사(朱砂)를 바르거나 종족의 우두머리가 죽은 묘지에 종족들을 연속하여 매장했다. 이러한 습속은 점차 형식화되면서 예속으로 변모해 갔으며, 주대에 이르러 제도적 형태를 갖췄다. 그 후 상장례는 주대의 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문화적 변화와 정치적 이해 등에 의해 다양하게 변모하였다.


2. 의식주 생활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직물이 6000여년 전에 이미 등장하고 있음이 이미 확인되었다. 중국최초의 고대직물은 마(麻)와 갈(葛)의 섬유를 재료로 만들어졌다. 복식문화는 주대에 들어서면서 제사 의례를 통해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진, 한대의 특징적인 복식은 포복(袍服)으로 상의 구분없이 종아리까지 길게 내려 입는 옷이었다. 이때에는 특별히 색상이 발달하여 색상이 복식문화를 주도하는 현상을 보인다.
 위, 진, 남북조 시기는 사상적으로 도교가 성행하고 전쟁이 빈번하다보니 복식의 풍격이 자주 변화하였다. 북방민족의 의복도 중원에 전해졌고 불교의 유입으로 연꽃, 인동초 등의 문양이 등장하였다. 
 당대에는 민족의 융합이 진행되면서 여러 민족의 복식이 반영되었고 관직에 따라 색상이 엄격히 집행되기도 하는 등 새로운 복식문화가 자리잡았다.
 송대에는 수공업이 발달하면서 당시 통치 사상이던 이학의 영향을 받아 복식 역시 간단, 소박, 청결을 유지하였다.
 원대 몽골족은 기마에 편리한 소매가 좁은 포를 입고 있었고 남자의 옷은 편리함에 따라 발전해 갔다.
 명대에는 한나라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관복을 조정하여 형태, 도안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제한되었다. 
 청대는 만주족이 중원을 통치한 시기로 한족문화의 진압정책으로 만복(滿服)의 착용을 강조했다.
 중국의 음식문화는 주식과 부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주요 주식은 오곡으로 채소류를 곁들였다. 장강 이남은 쌀이 주식이었고 황하를 중심으로 한 북방민족은 밀가루 음식이 발달했다. 발효의 등장은 위,진,남북조 이후이며 한나라 이후 국수, 만두, 교자가 대표적 밀가루 음식으로 꼽힌다. 
 중국의 부식은 육류와 채소류로 고대의 육류는 대부분 목축을 통해 얻었고 육류는 사회적 배경에 따른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의 차는 중국의 중요한 음식문화이다. 따라서 차를 국음(國飮)이라고 까지 부른다. 서한 이후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고 당대에는 귀족들의 집에 저장 창고가 있었으며 차에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중국의 주거문화는 혈거, 즉 토굴에서 출발하여 한나라 때에는 목조건물이 비교적 완성된 형태를 보였고 당대에는 양식과 재료면에서 발전을 하여 유리 재료와 석재 조각도 다량 사용했다. 당대의 화려한 건축기술이 송대에는 수공업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평면과 입면의 건축양식이 선보였다.
 중국 건축에 있어서 황실의 궁전은 전통문화 심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붕의 경우 하늘과 직선이 되는 지붕을 유지하였는데 이것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의미하고 기와의 황금색은 중국인의 황토심리에서 비롯되었다.


3. 민간의 금기

 고대 중국의 남녀는 함께 무리짓지 않는다(男女不同群), 남녀는 칠세가 되면 함께 자리하지 않는다(男女七歲不同席) 등등은 남녀 성금기의 대표적 사례이다.
 중국의 성별 금기의 주요 대상은 여성으로 이것은 고대에 여성을 만악의 근원으로 여겼던 문화에서 비롯된다. 여성이 지녀야 할 언행의 규범이 있었고 앉는 자세에도 금기가 있었으며 제사에도 참가할 수도 없었다. 여성 금기의 대부분은 여성이 남성들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들이었고 많은 부분은 남성의 존엄을 위한 의도적인 것들도 많았다.
 혼인 금기에서 가장 중요한 택혼에 있어서 씨족, 외혼의 습속이 있다. 성씨의 개념이 생겨나자 이는 동성금혼의 문화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정치, 군사적 동맹관계나 연계를 위한 것이고 열성 후손의 탄생을 막고자 한 경험의 결과이다.
 고대 중국의 혼인 특성은 연애금기의 중매에 있다.  모든 혼인은 매개자를 통해서만 진행되었는데 이는 씨족간에 있을 불편한 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언어 금기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호칭 금기, 즉 피휘 금기가 있다. 어른에 대한 명칭의 경우 해당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았고 자식의 이름을 짓는 경우에도 어른과 동일한 글자는 피했다. 피휘는 고대 정치인물들의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중국인들은 의복에 관한 많은 금기가 있는데 그중 황실을 상징하는 황색, 자색, 향색(붉은 색과 황색의 중간 색)은 민간이 사용할 수 없었고 상장례와 관계가 있는 백색과 흑색은 꺼렸다.
 음식에 있어서도 중국 음식은 음양의 배합과 관계가 깊어 물성이 반대된 것은 함께 먹는 것을 꺼렸고 음식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곰의 심장은 용맹해지고 늙은 암탉은 피부가 거칠어진다는 등이다. 접대에 있어서도 손님은 접시를 깨끗이 비우지 않고, 또 생선을 먹을 때 뒤집지 않으며 먼저 식탁을 일어나지 않았다. 주인의 경우에는 요리를 차린 후, 직접 젓갈로 음식을 집어주며 술을 권한다.


4. 세시풍속

 세시풍속(歲時風俗)은 민간에서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오는 일종의 행사로서, 따라서 이와 같은 행사에 불참을 한다거나 소홀히 하는 경우는 사회조직으로부터 문화적 이탈이 되어 마음의 평안을 얻기 힘든 것이었다.
 중국의 연중행사는 모두 음력에 실시되었고 농업문화에서 비롯된 절기 습속이 농촌과 도시 모두에서 진행되었다.
 정월 초하루인 원단(元旦)은 한족의 전통적 명절로 동틀 무렵 폭죽 소리를 내어 산귀를 몰아내었고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였다. 또한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게 세배를 드렸으며 덕담을 나누었다. 옛 것을 물려내고 새 것을 맞아들일 뿐만 아니라 사악한 것을 몰아내고자 하는 염원에서 길흉을 점치기도 하고 용사자춤, 농악놀이 등을 하였다.
 원소(元宵)는 정월 보름을 말하며 역시 한족의 전통명절이다. 13일이 되면 등절이라 하여 등을 내걸기 시작한다. 수나라 때에는 성대한 등회를 거행하였고 등절은 계속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원소에는 원소(새알심을 넣어 만든 탕)를 먹고 폭죽을 터뜨리는가 하면 풍물놀이, 용사자춤을 추었다.
 중추절은 중국의 전통적 명절로 주나라때 달에 제사를 실시하였고 그것이 한, 당, 송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가족이 모여 달을 구경한다. 또한 달처럼 빚은 월병을 만들어 먹었고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다.
 동지는 황제에게 축하를 드리는 중요한 날일 뿐 아니라 선조에게 제사를 드렸다. 관리는 휴가를 얻어 쉬고 상점은 영업을 하지 않았다. 동지절부터 추위가 시작되므로 81일이 지나면 추위가 없어진다 하여 소한도를 만들어 날씨에 대한 기록을 하였다.


5. 종교

 석기 시대 사람이 죽은 뒤 일상 생활용품을 부장품으로 옆에 놓아두었던 것으로 보아 영혼불사의 관념이 그들의 최초의 신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종교관념은 끝없이 발전하여 농사와 관련 있는 자연숭배 현상이 나타났고 초기 상(商)의 역사에서는 토템 숭배사상을 찾아 볼 수 있다. 선조에 대한 제사도 중시하여 선조를 높이 받드는 습속은 중국문 화의 전통이 되었다.
 중국 본토에서 이루어진 토속 종교로는 도교가 있다. 도교는 중국 철학사상에 의거하여 형성된 것으로 신화, 민간 전설의 학설로부터 발전되어 일반 대중에게 친근감이 있었다. 전교의 방법이 병을 고쳐주는 등 대단히 현실적이어서 교세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당에 들어와서는 도교는 한층 발전하였고 노자를 교조로 삼아 태상노군이라고 높여 불렀다. 송대에도 진종과 휘종이 도교를 매우 돈독히 믿었고 원대 초기의 군주도 도교를 숭상하였다. 그러나 명, 청에 이르러 불교와 기독교의 영향 아래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
 불교는 인도로부터 유입된 외래종교이다. 불교가 체계적인 종교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수, 당대였다. 이때는 불교가 유행한 시기였고 천태종, 화엄종, 선종, 정토종 등 여러 종파가 나타났다. 당 현종때에는 중국 불교가 최대로 융성하였고 교통과 문화 교류의 발전으로 한반도, 일본 등으로 전파되었다. 송, 원, 명, 청 시기의 불교는 흥성으로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든 시기였으나 송대 선종만은 매우 유행하였다. 선종은 당시 성리학에 대한 영향이 컸으며 참선을 중시하는 중국화된 불교였다.
 원대에는 라마교가 유행하였으나 원이 멸망한 뒤 쇠퇴하고 말았다. 그 대신 선종, 정토종 등이 유행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슬람교는 당 고종 영위 2년 들어왔고 이들은 상업 활동 이외에도 외교, 군사적 왕래가 있었다. 송대에는 해상 교통이 발달하여 아라비아의 이슬람교도들과의 무역이 번성하였다. 명, 청대의 이슬람교도의 교세는 상당하여 청은 이에 대해 고압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저항이 끊이지 않았다.
 유럽의 천주교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하면서 동서 문화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아편전쟁에 패한 청정부가 외국선교사들의 자유로운 선교활동을 허락함으로써 천주교의 교세가 확대되어갔다.


6. 표현과 예술

 1) 중국의 예술정신
 
 중국 고대 예술은 토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순히 미적인 측면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 사유 세계를 보여주는 매개체였다. 은주시대 수많은 청동기의 문양이 동식물의 문양이며, 전해오는 중국 예술 작품 속의 수많은 동식물의 문양은 유교와 불교가 아닌 토템예술의 흔적이다.
 중국 예술은 기본적으로 유교, 도교, 불교 이 세 가지로 특정 지을 수 있다.
 격식과 절제를 상징하는 유교는 예술을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다. 형식적인 면과 내용적인 면의 조화가 진정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유교적 미철학의 특징이다.
 도교는 자유와 낭만을 상징하며 예술에 대한 이론을 규정짓지 않았다. 도교는 오히려 예술을 거부한 것이어서 예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으나 오히려 중국 예술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도가적 미철학은 예술이나 미학에 전문적인 언급이 없었으나 도가들이 추구해 가는 도와 자연의 과정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예술이다. 
 불교의 중국화는 중국 예술에 충격을 주었다. 불교 예술은 종교적 외경심에서 만들어진 특성을 가지고 있고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종교적 이상향을 제시하였다. 불교 예술은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때로 종교적 경외와 신중함이 배어있기도 하지만 다양한 색상처럼 현재적인 감각도 배어있다.

 2) 회화 

 중국 회화는 내용 전달에 있어서 외형적 사실보다 표현 대상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을 표현한다. 또한 여백을 이용한 공간의 미학적 운영이 특징이며 상상의 넓은 공간을 좁은 화폭에 담아내는 특성이 있는데 이는 산수화에서 두드러진다.
 전국시대와 한나라를 전후하여 본격적인 예술적 회화가 출연하였다. 이 시기 회화에는 단정한 모습의 인물화나 문양이 등장하며 토템적 성분이 남아있다. 
 인물화는 위, 진, 남북조 시대에 특히 성행했다. 이때는 정치, 문화, 사상, 민족적 갈등이 엉킨 시기이며 이 시기는 이전의 인물화에서 불교적 인물화로 점차 발전해 가는 시기였다. 또 예술 이론이 정립되었으며 고개지, 장승요 등 걸출한 화가를 배출했다. 
 당대는 중국 문화예술이 최고봉에 달한 시기이다. 화풍은 화려하고 웅혼했으며 인물화에서 두드러졌다. 당대의 산수화는 각종 화법이 다양하게 등장하였고 오도자와 왕유가 대표적이다.
 송대는 회화의 종류, 기법, 화풍이 융합하여 중국 회화가 완성되었다. 화풍은 기교를 중시하고 법칙을 강조하였으며 회화를 과거에 편입시키기도 했다. 송대의 회화는 궁정, 민간, 문인화 할 것 없이 고루 그려졌으며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원대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몽골족의 강렬한 표현주의적 예술세계를 추구한 회화가 등장했다. 문인화를 주로 그렸으며 기교보다는 청담한 화풍이 주도했다.
 명대는 민간 회화가 발전했고 청대에는 서양으로부터 전입된 서양화의 기법을 수용한 회화가 특성이다.

 3) 서예

 서예는 중국문자의 상형성이 만들어낸 예술로,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한국에서는 서예(書藝),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한다.
 서예의 서체도 시간에 따라 변화하였는데, 진시황이 소전을 만들면서 쓰기 문화가 본격화되어 한나라 이후 예서, 초서, 해서 등이 생겨났고 당대에는 해서가 정립되면서 많은 서예가들이 탄생했다. 당대의 구양순, 우세남 등은 법도를 강조하였고 송대에 이르러 소동파와 황정견 등이 정신적, 예술적 낭만을 추구하는 경지를 이룩했다.
 서예의 예술성은 문자의 제한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대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도교적 영향을 받은 회화와는 달리 유교적 색채가 강하다. 또한 서예는 기능과 정신의 합일을 통해 표현되는 예술로 내면에는 필력이 숨겨져 있고 높은 정신의 표현이므로 정신 수양을 이룰 수 있는 도구이다.

 4) 음악

 고대의 음악은 제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은대의 제사에는 춤과 노래, 음악이 구비되었고 은상 왕족이 다른 부족과 음악적 교류를 하였던 기록들이 있으며, 공물들 중에는 악기와 무녀도 있었다.
 서주 시대에 음악의 틀이 잡혔고 주의 성왕은 예악을 정리하여 신분 계층에 따라 음악을 달리 사용하였으며, 금(琴)이라는 현악기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가 등장하였다. 주 왕실의 통제가 약해졌던 춘추시대에는 일반 유흥 음악이 발전하였다.
 한나라 시대에는 악대를 조직하여 행사때 사용하는 고취악이 정립되었고 서역에서 아랍 계통의 악기가 들어왔다. 당시 유입된 비파는 악기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위, 진, 남북조는 남방음악과 북방음악이 융합하는 특이한 시기였고 불교의 유입으로 이후의 중국의 음악은 종교 음악적 성격을 띄었다.  당대에 이르러 300여 종이 넘는 악기가 생겨나고 민간음악이 발전하였으며 궁중 음악도 민간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또한 송대 음악의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명, 청대는 희곡 음악과 음악 이론이 발달하였고 소수민족의 악기가 융합되어 악기가 집중적으로 발전하여 악대의 기악합주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5) 무도

 원시 문화 속의 음악과 춤은 신의 세계에 접근하고 신과 하나가 되는 유일한 행위이다. 고대의 제사에서 주요 요소였던 음악과 춤은 점차 독립되어 하나의 예술 장르로 발전하였다.
 원시 시대의 종교악무는 주대에 들어와서 궁중 무도와 민간 무도로 구분되었다. 궁중 무도는 한대를 정점으로 민간 무도와 접하게 되며 당대에는 전통적인 춤사위 외에 소수민족의 춤 등이 결합하는 등 무도의 완성기로 접어든다. 당대의 궁중 무도는 주로 연회용으로 연악 때 추어진 것이 특징이며, 당시 민간 가무를 크게 반영하고 있다.
 민간 무도는 산악이라는 민간에서 추던 춤에서 출발하여 위, 진, 남북조 때에 다양해지고 당대에는 새로운 연악 무도로 변모한다. 당시 발달하기 시작한 전기 소설의 영향을 받아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사무(故事舞)가 민간에서 성행했다. 송대에는 궁중 무도가 경직되어갈 때 민간 무도는 당대를 계승, 발전하였고 소수민족의 춤까지 융합하면서 발전했다. 원대는 잡극이 성행하였으므로 무도는 발전하지 못했고 명, 청대 들어서면서 잡극의 무대 동작에 춤사위가 곁들여지는 내용이 선보였다. 또한 민간에서는 농업, 무술의 범주안에서 새로운 생활무도가 발전했다.


7. 놀이

 축국(蹴鞠) -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잡기이고 짐승의 털을 채운 가죽공을 차는 놀이로 축구와 흡사하다. 한나라 때에는 군사 훈련용으로 사용했으며 송대에는 국가의 주요 예전 행사였다. 

 대나무와 줄타기 - 한나라 이후 성행한 잡기이고 높은 대 위에 올라가서 각종 동작을 취하는 놀이이다.

 금수어충희(禽獸魚蟲戱) - 각종 동물을 훈련시켜 묘기를 부리게 하는 놀이이다. 이는 고대 동물 토템의 흔적으로, 동물을 흉내내는 놀이와 직접 동물을 훈련시켜 재주를 부리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이러한 놀이는 지금도 중국 곳곳에서 연말연시에 하는 용이나 사자놀이로 바뀌어 전해져온다. 동물놀이의 다른 형태로 투희로 불리는 동물 싸움도 있다.

 각저(角沮) - 격투기의 한 종류로 현재 일본 스모의 전신이다. 고대에는 머리에 뿔을 달고 서로 다투던 원시 부족 투쟁의 명칭이었으나 한나라때의 각저는 신화를 바탕으로 꾸며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기도 했다. 송대에는 단순히 서로 힘을 겨루는 방식으로 민간에서 유행하였다.

 건자 - 이는 제기차기를 말하며 위, 진, 남북조 시대에 보편화되었고 청대에는 부녀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혁( ) - 고대 바둑의 명칭으로 건전하고 유익한 놀이로 인식되었다.

 상기(象棋) - 지금의 장기로 당대에 성행하였다. 남송때 현대와 같은 모습으로 고정되었고, 이 형태로 지금까지 두어지고 있다.

 마조패(馬 牌) - 명대 중기 등장하여 말기에 가장 유행한 박희이다. 후대에 종이로 만들어져 지패(紙牌)의 전신이며 현재도 중국인들이 즐기고 있는 마작 역시 마조패에서 변형 된 것이다.

 마작(麻雀) - 청대 상업의 중심지였던 중국 남부의 해변지역, 광동지역등에서 마작이 등장했다.  언제나 4명이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며, 골패와 주사위를 사용한 일종의 도박이다.  보통 연말연시 친족들이 모여 밤을 새워 즐기는 놀이이다. 


8. 희극(戱劇)

 중국 전통적인 희극의 특징은 첫째, 음악으로 귀를 즐겁게 하고 둘째, 무도를 봄으로써 기쁘게 할 뿐 아니라 셋째, 인생의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 등 공명의 기쁨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희극의 기원은 신에 대한 제사에서 노래와 춤을 추던 것이 희극으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본다. 그 후 시대를 거쳐 송나라 때에는 잡극이 크게 성행하였고 이때의 희문(戱文)은 중국의 희극사상 가장 최초의 성숙된 희극적 형식을 갖춘 것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원나라 때는 새로운 문학양식의 잡극이 발전하게 되고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 작가인 관한경은 두아원, 구풍진 등을 남겨 중국 희극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청대의 희극은 강희 시기로 접어들면서 크게 발전하고 민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희극이 생겨났다. 현재 중국 전통극의 경극은 바로 이 때에 생겨난 것이다.


9. 과학기술

 1) 천문지리

 중국 최초의 별자리 관측도는 전국시대의 석신에 의해 만들어졌다. 석신은 당시 관측한 주요 항성을 토대로 항성간의 거리와 각도 등을 기록했다.  천문관측은 날씨의 관측과도 관계가 있어 갑골문에는 당시의 날씨와 강우량 등에 관한 기록이 있고, 은대에는 동서남북의 방향과 바람의 방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중국의 천문관측이 농업문화에서 기인하기는 하였으나 나침반이 발명되기 이전까지는 실제적으로 항해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천문관측은 일찍부터 항해술과 연관을 맺고 있었으며 한대 이후에는 천문의 활용이 두드러져 동남아는 물론 스리랑카까지도 항해를 한 기록이 있다.
 천문관측을 통해 얻어진 것은 나침반이다. 당대 후기 5대시대 접어들면서 중국인들은 철기가 자기를 띠도록 하여 방향을 가리킬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이름을 지남침으로 했다.
 천문학의 발달에 있어 혼의는 천체 방위를 측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혼의는 여섯 방위를 가리켰고 경위선은 물론, 방위각, 앙각(仰角) 등에 대해 수학을 이용하여 설명이 가해졌다.
 천문을 관측하여 별자리 등의 천문도를 만든 것처럼 지리를 관측한 결과, 지도가 작성되었다.
 중국 하대(夏代)에는 지도를 전쟁에 필요한 준비물로 파악하고 있고 ‘손자병법’에 지도를 함께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지도와 군사상의 중요한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지도는 한문제 12년 그려진 지형도, 주군도, 성읍도 등이다. 이들은 과학적인 측량법이 사용되었고 통일된 부호와 점선, 실선 등이 사용되었다. 
 지리학에서 함께 언급될 수 있는 관찰과 지식으로 수리(水利)를 들 수 있는데 진시황 원년에는 수리사업이 대규모로 시행되어 관중평원을 비옥한 토지로 만들었다.    황하대제(黃河大堤)는 중국의 수리사업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으로 홍수를 막고자 세운 제방이 황하 유역의 천리에 걸쳐 설치되어있다.

 2) 수학과 물리학

 중국의 수학은 은대 이전부터 십진법을 사용했으며, 한나라와 당나라를 거치면서 단단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한나라 이후 편집된 산경십서에서는 많은 부분이 천문의 관측과 별들의 거리 측정을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일반적인 산수의 개념 외에 분수 원주율, 입체기하, 조합, 측량 등에 해당되는 고등수학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고 세계 최초의 분수 개념과 비례의 개념 등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휘들, 즉 분자, 분모, 평방, 입방 등의 단어는 이미 산경십서 안에서 언급된 것들이다.
 송대에 이르러 수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특히 생활수학은 당시 발달한 상업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주산의 활용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기하학의 발달은 처음에는 천문관측으로 시작되어 춘추 전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발생한 토지의 분배문제로 인해 급속도로 발전했다.
 물리학 중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개념은 역학이다. 역학의 기본 개념은 중심(重心)으로 중국인은 고대로부터 중심의 원리를 알고 생활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중심 이동을 활용한 도기 두레박이 발견되었고 은대에는 합력의 원리를 이용한 두레박이 있었다.
 그 후 고대의 역학은 기중기, 톱니, 활차 등을 만들었고 평형의 원리와 힘의 개념을 물리학적으로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액체가 가진 성질 중 부력을 이용하여 삼국시대 조충이 무게를 재었고, 표면장력을 이용하여 기름의 좋고 나쁨을 검사한 기록이 있다.
 거울은 빛의 반사현상을 이용한 도구로 3000년전에 중국인들은 거울을 만들어 사용했다. 물의 표면을 통해 거울의 원리를 파악하면서 동으로 거울을 만들었고 이 구리 거울은 한대이후 국내외에 널리 보급되었다. 거울의 반사 원리는 최초의 잠망경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중국 물리학의 절정은 성학(聲學)의 수준에서 나타나는데 진동파에 대한 이해는 악기 제조와 음률학의 진보를 가져왔고 물체의 진동에 따른 파장을 이용하여 정교한 악기를 만들어냈다.

 3) 화학과 의학

 화학은 도가의 선약 기술, 즉 연단술을 통해 발전했다. 연단술은 장생불사의 선약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연단술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금속 등의 광물을 화학 처리하여 장생불사의 약을 제조하는 것과 인조 황금과 인조 은 등을 만드는 야금 연구, 그리고 식물을 통해 장생불사 약을 만들려는 약용 식물의 연구이다.
 화약은 연단술이 만들어낸 우연한 발명품이다. 당대 이후 군사용 화약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송대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화약 무기의 개발이 급속히 발전했다. 화약 무기는 화창이라는 총류로 발전했고 명대에는 지뢰, 시한폭탄 등을 만든 기록이 있다. 화약은 당나라 시대 실크로드를 통해 페르시아, 아랍 등지로 무역상들에 의해 전해졌다.
 중국 의학의 출발은 대단히 주술적이었다. 갑골문에서 나타나듯이 치료는 무당을 통해 주술적으로 하고자 했고 나름대로의 약초를 사용했다.
 중국의학은 독특한 철학기초 위에서 발생, 발전하고 있다. 우주만물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규율과 법칙인 음과 양의 변화와 통일이라는 철학원리를 기초로 발전하였다.
 주역의 논리를 적용하여 발달해온 의학 이론은 명대 각종 의학 이론들이 집대성이 되어 후대 중국 의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러한 명대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음양오행 의학 이론들이 청대에 체계적이고 세분화되었다.
 중국 의학 치료의 특징 중의 하나는 탕약과 침이다. 기록에 의하면 은대에 이미 탕약을 사용하였다. 침은 초기에 돌로 만든 석침이 사용되다가 금속침이 등장했다. 침구학이 가장 발달했던 시기는 진, 한시대로 그림을 이용하여 혈도를 표시하였다. 이때에는 중국 의학이 외과적인 분야와 예방적인 측면에서도 발전을 이룬 시기이다.
 명대에는 본초강목이 완성되었고 청대에는 효과적인 예방법이 개발되어 천연두의 경우 면역이 가능하게 되었다.

 4) 종이와 인쇄술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중국인들은 갑골, 금석, 죽간 등의 물질을 사용하여 문자를 기록했다. 은상대의 갑골문, 서주 시기의 금석문, 전국 시대로부터 한나라에 이르는 죽간과 목독, 백서 등은 지금도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는 유물들이다. 이같은 물질들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식물섬유를 이용한 종이이다.
 기원전 1세기경 서한 때 만들어진 마지(麻紙)가 발견되었고, 동한 시대 채륜이 마종류의 섬유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수, 당대에는 종이가 대량 생산되어 민간에도 널리 보급되었으며 각종 예술지가 등장했다. 종이는 서화용에서 인쇄용까지 활용범위가 확대되었고 송대에는 지폐가 등장하였다.
 중국의 인쇄술은 서주 시대부터 기술적인 축적을 시작했다. 서주 시대의 금문이 활자의 기원이다. 당대의 조판 인쇄는 백지흑자(白紙黑字)의 현대적 인쇄 기술의 초기 형태였다. 송대에는 목판 인쇄 외에 동판 인쇄로까지 발전해 갔다. 송대 경력은 최초로 활자를 만들었고 원대의 왕정은 약 3만자의 목 활자를 만들었다. 동 활자를 맨 처음 발명한 나라는 조선이며, 중국은 명대 중엽에 와서 동 활자를 만들어냈다.  중국 인쇄술에서 특기할 만한 부분은 명대 채색 인쇄술의 발명이다. 기존의 인쇄가 먹을 위주로 한 흑색이었던 데 반해, 채식인쇄는 2색에서 6, 7가지 색으로 발전해 갔다.


10. 중국 전통문화가 오늘날 중국인에게 미치는 영향

 중국은 5천여년의 문명과 역사를 지닌 국가이다. 전통문화가 역사발전속에서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했음은 물론이고 경제, 과학이 고속으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전통문화는 현대중국인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선 가정구조에 끼치는 영향을 들 수 있다. 서양가정에서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느슨하여 가장이 자녀에게 무관심하거나, 부모에 대한 자녀의 공경심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가정은 위아래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老吾老, 幼吾幼 ", " 養不敎, 父之過 " 즉 다른 노인을 자신의 부모와 같이 여기고 다른 아이를 자기의 자식처럼 여긴다는 말이다. " 不孝有三, 無后爲代 " 즉, 세가지 불효중 가장 큰 불효는 대를 잇지 못하는 것이다란 뜻으로 이런 관념을 통해 중국의 가정구조가 일종의 견고한 연쇄구조임을 알 수 있고, 그 안에 일종의 종족 연장의 관념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審美意識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중국의 옛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공간속에 무한한 의식을 표출해 냈는데, 우주를 대상으로 활력과 생기를 표현하였다. 예를 ?榕? 중국화는 여백의 미가 특유의 표현 방법인데 어떤 경우에는 여백이 먹을 통해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를 가지기도 한다. 즉 여백을 통해 배경을 더 높고, 멀고, 깊게 혹은 주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의 가옥과 정원도 마찬가지다. 창문과 문의 설계가 매우 정교하고, 환기성과 채광을 고려해 설계하고, 출입의 편리함을 고려한 구조이다. 
 중국에는 愚公移山이라는 고사가 있는데, 愚公의 집앞에 큰 산이 가로막혀 있어 출입에 불편하자, 이를 해결하기 여 산을 파내기로 하는데, 그 결과의 가치는 역사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후세의 행복을 위해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愚公은 매우 우매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지만,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愚公에게 감탄하여 大之若愚를 말할 것이다. " 全人栽樹, 后人乘凉 " 즉 '앞사람이 나무를 심어 뒷사람을 시원하게 해준다' 라는 말 역시 전통 문화가 중국인의 지혜와 사상속에서 체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인은 孔子의 " 不知老之將至 " 의 종말의식이 없는 낙관적인 사상을 추종하며, 또한 문천양의 " 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汗靑 " 이라는 말은 예로부터 칭송하여 내려오는 말로 중국인의 전통심리를 매우 잘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문화가 현대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는데 시대 의식에 뒤쳐지는 낡은 의식을 들 수 있다. " 春種秋收, 夏忙冬閑, 日出而作, 日落而息 " 즉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두고,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는 농경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빠른 속도의 현대 생활리듬을 쫓을 필요도, 쫓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大將風格과 賢人의 기상도 進退의 자유로움과 태연자약한 성격을 갖춘 자를 의미함으로 현대사회의 빠른 리듬감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 현대인들은 마땅히 " 一萬年太久, 只爭朝夕 " 을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통문화는 여전히 중국인들로 하여금 땅넓고 자원 풍부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자족감을 갖게 하였다. 그들은 세계의 7%의 땅덩이에서 세계 인구의 25%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않고 있는 것이다. 어떻든,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중국인들은 그들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 유지하는, 즉 찌꺼기는 과감히 버리고 알맹이만 취하는 합리적인 정신으로 우수한 전통문화를 국가의 발전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중국개황》, 王順洪 편, 최영제 등 옮김, 김혜준 펴냄, (부산 : 부산대중문과, 1998)
《중국 전통문화와 과학》김영식 저, (서울 : 創作社, 1986)
《세계를 간다 - 중국》, 편집부 편, (서울 : 중앙M&B, 1999.1)
《중국학 개론》, 송봉규 외, (서울 : 동양문고, 1998)
《중국 문화예술 대기행》, 김영기, (서울 : 장원, 19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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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은삶 (♡.70.♡.74) - 2018/08/11 08:51:52

무엇이 가까이님을 이렇게 격분하게 만드셨는지 ㅎㅎ
다 못읽고 추천 때립니다.

잘될거얌 (♡.224.♡.147) - 2018/08/11 08:57:50

나도 추천 때렷습니다 힘내라고 ㅎㅎ

전쟁같은삶 (♡.70.♡.74) - 2018/08/11 09:36:40

챠아.. 가까이님 인맥이 살아있구만 하하하

쌍가풀 (♡.208.♡.55) - 2018/08/11 09:45:53

우리 셋이 안티 누를가요?ㅎㅎ

조금더가까이 (♡.39.♡.7) - 2018/08/11 10:04:37

세분이 안티라면야 환영이지요 ㅎㅎ

전쟁같은삶 (♡.70.♡.74) - 2018/08/11 10:44:56

한송이님하고 잘될거얌님 먼저 가가셔 ㅎㅎㅎ
아이 될꺼 같으루 하면 내가 가서 응원할게 하하하

쌍가풀 (♡.208.♡.55) - 2018/08/11 11:04:05

생긴것같이 약구만 ㅎㅎㅎㅎ

전쟁같은삶 (♡.70.♡.74) - 2018/08/11 11:19:48

하하하 앞장설게요

잘될거얌 (♡.224.♡.147) - 2018/08/11 14:38:57

아~ 잰내비 ㅎㅎ

전쟁같은삶 (♡.70.♡.124) - 2018/08/11 16:38:06

에헤이. 앞장 선대두 ㅋㅋ

수민two (♡.108.♡.191) - 2018/08/11 09:54:01

뭥 일 잇어나요? 너그러이 팬두 안티두 품으셔요~
테스트는 언제 합니까? ㅎㅎ

힘내라고 추천

조금더가까이 (♡.39.♡.7) - 2018/08/11 10:06:45

네네 ㅎㅎ 줄달이기를 해야지요
무조건 끌려가면 재미없잖아요 ㅎㅎ
인생이든 부부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ㅎㅎ

대수살자 (♡.195.♡.43) - 2018/08/11 10:43:20

길게 올린 글이라 추천은 하는데...제는 남자요 여자요?ㅎㅎ

조금더가까이 (♡.39.♡.242) - 2018/08/11 10:59:57

남자지요 ㅋㅋ

쌍두사 (♡.223.♡.68) - 2018/08/11 11:20:59

잼잇게 글으 올리는 조금만가까이님한테 누가 수뢰탄 뿌렷슴까?

조금더가까이 (♡.39.♡.61) - 2018/08/11 11:23:50

예 ㅋㅋㅋㅋㅋ

여인화 (♡.111.♡.44) - 2018/08/11 11:52:07

무슨일인지 잘모르겠지만 가까이님 지극히 정상입님다ᆢ
나를좋아하는사람이 있으면 또 나를 싫어하는사람도 있지요ᆢ
우리또한 모든사람을 다 좋아할순없으니깐요ᆢㅋㅋㅋ
멋진가까이님 신경쓰지마시고 즐기세요~~

조금더가까이 (♡.39.♡.78) - 2018/08/11 12:18:54

서로 제 갈길 가면 상관없는데요 ㅋ

봄봄란란 (♡.97.♡.107) - 2018/08/11 14:38:49

看来到大学开始学习了。

savon (♡.208.♡.227) - 2018/08/11 15:39:59

팬있으면 안티있기마련이고
악플태클도 관심있어야 달림다

조금더가까이 (♡.39.♡.163) - 2018/08/11 17:28:26

댓글도 안달고 비추만 때리는 인간은요? ㅋㅋ 그리고 먼 근거로 알지도 못하며 무식하다지요? 지 아는 걸 남이 모르면 무식? ㅋㅋ 댓글 감솨함다

닭알지짐 (♡.50.♡.142) - 2018/08/11 17:52:52

꺄르륵~~~~

내 가서 안티덜으 꼬집어떼나람까? ㅋㅋㅋㅋㅋ

조금더가까이 (♡.38.♡.127) - 2018/08/11 18:18:33

^^ 굿 좋지요
초채사줄게요 오세요 ㅋㅋ

섹시고양이 (♡.98.♡.58) - 2018/08/11 19:46:36

한국에서 유학하고 자리 잡으셨네요 ㅎㅎ

조금더가까이 (♡.39.♡.31) - 2018/08/12 04:33:21

ㅎㅎ 어쩌다보니 ㅎㅎ

lige72 (♡.104.♡.66) - 2018/08/12 10:57:41

문화 력사길구 큰나라 큰인구 대단한민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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