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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 신화서점 조선말 도서

혈연

xingyu | 2017.02.22 00:31:30 댓글: 10 조회: 2002 추천: 2
분류단편 https://life.moyiza.kr/mywriting/3287336



< 내 얘기를 책으로 쓰자면 열권도 모잘라야. >라고 입버릇처럼 외우던 어머니는 단 한 권의 책도 펼쳐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숱한 이야기는 어머니와 함께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직업상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였다. 요즘 칠순잔치에서 자서전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말이다. 바쁘다는 핑게와 늘 그놈의 머니가 문제였다.

​어머니는 임종 전에 단 한 사람만을 계속 찾았다. 용수였다. 미국에서 돈 잘 버는 용희누나도 아니고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는 둘째 아들 용철이도 아니고 저들 열을 합쳐도 기자양반만 못하다며 추켜세웠던 이 장남 용대도 아니다. 용수는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였다. 가슴에 얹은 해묵은 돌이였다.

​어머니는 슬하에 자식 넷을 두었다. 누나 용희와 나 그리고 바로 아래 동생 용철이, 그 다음에 용수였다. 용수를 가져서 막달이 되어갈 즈음 아버지는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가족생계에 있어서 워낙 있으나마나한 존재였으나 병원에 드러누워있으니 어머니의 삶은 배로 고달퍼졌다. 만삭의 몸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모자라 병수발도 들어야 했다. 아홉살이 되서야 겨우 학교에 들어간 누나는 다섯살난 내 손을 잡고 등에는 두살배기 용철이를 업고 등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간병을 하다가 병원에서 용수를 낳았다. 용수는 태를 끊자마자 젖 한 모금 빨아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이종사촌네 집으로 보내졌다. 그 집은 아이가 없어서 애를 끓던 참이였다. 어머니말로는 아버지가 퇴원하고 돌아와보니 그 집은 몰래 이사를 가버렸다고 한다. 우리가 어느정도 커서 큰집에 인사하러 갔을 때 유난히 우리랑 닮은 아이를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용수가 아니였을가 싶다.

살아오면서 어머니는 용수얘기를 입밖에 꺼낸 적이 없었다. 임종이 가까워서야 어머니는 나한테 털어놓았다. 용수가 보고싶다고 죽기 전에 용수 얼굴 보고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췌장암말기로 호스피스병동에서 모르핀을 맞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을 무렵이였다. 병원에서 치료비를 납부하라는 메시지가 날라왔다. 누나가 많이 바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우리 남매 중 젤 잘나가는 사람은 누나였다. 지독하게 악착같이 공부해서 장학금으로 대학도 다녔으며 틈틈이 돈을 벌어 집에 생활비를 보태기도 했다. 건축설계사이자 인테리어사무실을 갖고 있는 누나는 벌어들이는 돈 만큼이나 눈코뜰새 없는 바쁜 사람이였다. 엄마병원비는 내가 책임질테니 너들은 걱정말라고 못박아 말하던 누나가 부러웠다. 실제로 어머니가 입원한 뒤로 모든 치료비용은 누나의 지갑에서 나왔다. 동생이나 나나 일반 직장인이니 주머니사정은 불 보듯 뻔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보고 싶었다.

어머니한테 난 어떤 아들이였는가...맛있는 음식은 내 몫으로 먼저 남겨줬고 운동화가 닳으면 내것부터 사줬으며 누나보다 내 등록금이 우선이였고 동생 용철이는 가정형편때문에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내가 신문사에 취직이 되자 경사났다며 동네방네 자랑하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님을 위해 세계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훌륭한 기사를 써내어 기자상이라도 받아야 겠지만 나는 그럴 주제도 못되었다. 큰 신문사에서 근무하다가 부정을 눈감아주는 댓가로 금품을 받은 것이 들통나 작은 신문사로 옮겨 찌라시같은 기사나 올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 기회에 기자양반의 체면을 세우고 싶었다. 마누라에게 말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 뻔했다. 이제 막 고3이 된 아들녀석 학원비만 월급봉투의 반은 족히 털어갔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거라고 백날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었다. 아들이 한 번이라도 학원을 빼먹으면 마누라가 더 불안에 떨었다. 마누라는 패스.

혼자 어떻게 해보자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동생과 합심해보자는 마음으로 저녁시간 호프집으로 약속을 잡았다. 30분이나 더 늦게 도착한 용철이한테서 파스냄새가 진동을 했다.

<형. 그동안 걱정할까봐 말 못했는데 우리 회사 부도났어... 얼마전 택배일 시작했는데 할만하네. >

헤여지면서 나는 술냄새보다 파스냄새가 더 진동을 하는 용철이 어깨를 두드렸다. 주머니에 용돈도 찔러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다시 생각을 바꿔 대학선배이자 직장동료였던 경식이 형한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저녁 술자리에 선배는 생각지도 못한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 인영이... 나의 옛 애인이자 직장동료였던 인영이였다.

​내가 결혼을 해서부터 어머니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었다. < 만약시에 너거 애비처럼 밖에서 도박하고 계집질하는 날엔 다리몽댕이 확 분질러버릴거야!> 이 말에 잔뜩 기가 살아서 마누라는 한동안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듯 득의양양했었다. 나는 도박같은건 아예 손을 대지도 않았으나 그녀와 함께 떠난 출장길에서 다리몽댕이 부러지는 일 따윈 까맣게 잊고 겁대가리없이 일을 저질러버렸다. 그렇게 2년을 지속했던 관계는 내가 직장을 옮기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슬슬 다리몽댕이 걱정이 들기 시작한 내 비겁함도 한몫했다.

술이 두어잔 들어가자 경식이 형은 안절부절하는 나를 못본척 자리에서 일어서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 용대야 니가 원하는건 다 인영씨한테 있어... 잘해봐. >

​선배를 보내고 다시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 저랑 있는게 불편하세요? >

< 그게 아니고... 미안해서 그러지. 그동안 연락 딱 끊고 산거... >

< 다 지나간 일인데요뭐. 연락안한건 저두 마찬가지구요... 그러니까 이제 쌤쌤한걸루 퉁치죠. 이제 끝! >

​이제 끝? 이젠 우리 관계 완전히 끝난다는 얘긴가? 이미 끝낫던거 아닌가? 아님 전에 잘잘못은 제쳐두고 새로 시작하자는 말인가? 그녀는 여전히 매력적이였다. 부시시한 몰골로 김칫국물 묻은 앞치마로 마주앉아 밥 먹는 여자랑은 차원이 달랐다. 괜히 끝으로 맺은 그녀의 한 마디에 나는 싱숭생숭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나 더 달고 나온 놈들이 꼭 한 번씩 덜 떨어진 생각하더라>며 비웃던 누나의 한 마디가 떠올라 나는 웃었다.

< 왜 웃어요? >

< 그냥... >

< 당신이 웃으니,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

​그녀는 보조개 하나 만들어내며 환하게 웃었다.

​술이 잘 되자 우린 밖으로 나와 길가에 서서 택시를 기다렸다. 또 갈등이 생기는 순간이였다. 멀리서 오는 택시 하나를 보고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 참, 어머님 많이 편찮으시다면서요? 이거 얼마 안되요... 보태서 쓰세요. >

< 아니, 아니야. 됐어... > 나는 극구 사양했다.

< 그냥 주는거 아녀요. 제가 뭐 부자인가요? 나중에 두고두고 갚으세요... 또 봐요.오늘은 그만 가볼게요... >

​계속 실갱이가 이어질까봐 그녀는 먼저 택시를 타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다음날 병원으로 갔는데 치료비는 이미 완납된 상태였다. 누나였을까... 생각하던 중 카톡으로 문자 하나가 들어왔다.

ㅡㅡㅡ 치료비 완납됬네? 요즘 너무 바빠서 깜박했지말이야... 미안해. 누나 들어가면 거하게 쏠게!

누나도 아님 누굴까? 집에 돌아와서 마누라에게 물었더니 <어느 집 우렁각시가 그랬나보지. >하고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그것도 잠깐, 이런 일이 있으면 먼저 집에서 상의해야지 어디를 밤늦게 돌아다녔느냐? 밥은 먹었느냐... 술만 마시면 속 버린다느니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처형한테 돌린 것이니 꼭 갚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튿날 나는 인영이 계좌로 돈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고마웠다고 말해주었다.


어머니 장례식이 끝나자 누나는 두툼한 봉투를 마누라 손에 쥐여주었다. 마누라는 입으로는 싫다면서 봉투를 건네주지는 않았다.

누나를 공항으로 바래다주며 물었다.

< 영수한테 알려줘야 겠지?>

< 글쎄... 병원에 찾아오지도 않았잖아. >

< 내가 메시지만 보내서... 확인못했을 수도 있고......>

< 니 맘대로 해. >

누나는 무심한듯 대꾸했다.


누나를 바래다주고 나는 곧바로 용수가 살고 있다는 안양으로 향했다. 어머니 임종 전에 아는 형사한테 부탁을 해서 용수 연락처를 알아냈었다. 여러번 통화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꼭 한 번 와달라는 음성메시지를 보냈건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문자를 확인했는지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안양 어느 빌라촌 골목길 끝에 자리잡은 작은 마트 앞에 캔맥주를 두개 사이두고 나랑은 다른 성을 쓰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용수와 마주앉았다. 용수는 나랑 많이 닮아 있었다. 나는 꼭 나랑 마주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상했다. 용수는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거리며 마트안을 향해 소리 질렀다.

< 안주 좀 내와,..>

용수처로 보이는 여자가 뿌루퉁한 얼굴로 땅콩 한 접시 던지듯 내려놓고는 들어가버렸다. 한때는 웰빙푸드 체인점으로 잘나갔다던 용수는 어쩌다 사업을 말아먹고 변두리동네 작은 마트 하나 간신히 건져냈다. 용수는 계속 경기가 안좋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기회를 보아 어머니 장례식이 어제였다고 말해주었다. 용수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우리는 서로 다음에 또 보자며 악수를 나누었다.

용수를 등지고 걸으며 나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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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어른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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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날찻집 (♡.166.♡.110) - 2017/02/22 11:40:54

바탕에 깔린 묵직한 서글픔이 느껴지네요. 삶의 무게이기도 하고 그 세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아픔이기도 하구요. 가족중에 자식을 입양줬다가 나중에 이민을 가게 되는 바람에 그냥 아픈 추억이 된 사람이 있어요. 엄마의 마음에는 채울수 없는 빈 자리였나 봅니다. 짧은 편폭에 개성들이 너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누나, 나, 동생, 용수…


그래서요? 병원비는 누가 냈나요?

십자가의길818 (♡.181.♡.13) - 2017/02/23 02:21:24

항상 이런 글에는 어떤말로 머라고 답글을 달아드려야 될지,마음이 아프네요.

XINGYU님의 글을 항상 애독하고있는 한사람으로써,더불어 아픈 마음을 읽습니다.

혈연이란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비극으로 이별하던,오래가는 나눔이던,영혼은 하늘에서도 통하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가슴시린 이야기속에 잠재한 숨은 아픔들을,글쓴님의 마음만이 가장 피저리게 아플거라고 생각하며,

모든 만남과 이별에도 많은 의미가 함께 하겠죠.

xingyu (♡.159.♡.232) - 2017/03/01 21:53:04

저마다 사연많은 인생 아니겠습니까. . 늘 행복하소서~

평수상봉 (♡.214.♡.60) - 2017/02/23 17:45:57

우리어머니도 문화대혁명때 투쟁땜에 북한으로 피신한 가족들중 유일하게 친척집에 입양되여 떨어져서 살게 되였습니다.실화인지 자작글인지는 몰겠으나 동감을 느끼게하는 좋은 글이네요.핏줄이라도 같이 안살면 남보다 못한 법이지요.
잘보고갑니다.

xingyu (♡.159.♡.232) - 2017/03/01 21:56:08

문화대혁명때 그런 사연들도 있었군요.. 그러게요 가족이란 모름지기 늘 함께 해야 되는데말이죠 ㅠ

beachu (♡.113.♡.138) - 2017/03/03 20:36:20

가족이 힘내세요.ㅎㅎ

비오는날찻집 (♡.166.♡.243) - 2017/02/27 09:33:42

좋은 글이네요. 어머니는 오래전에 입양준 아들이 평생 아픈 손가락이였겠네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님의 글에는 님만의 정서가 있는것 같습니다. 이 소재가 어디에서 올까 할 정도로 글이 보여주는 범위가 넓고 정서가 진하게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xingyu (♡.159.♡.232) - 2017/03/01 22:02:52

번마다.. 감사합니다. 이 밤에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네요.. 따뜻한 차 한 잔 들고 있습니다 ㅎㅎ

십자가의길818 (♡.250.♡.90) - 2017/03/02 02:32:57

다음글도 읽을수 있엇으면 합니다.

어젯밤에 여기도 비가 내렸답니다.이제 봄도 가까이 오네요.

건강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봄날 맞이하시길요.

beachu (♡.113.♡.138) - 2017/03/03 20:36:34

수고하시꾸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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