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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10

탈무드999 | 2017.08.12 11:04:32 댓글: 11 조회: 827 추천: 3
분류연재 http://bbs.moyiza.com/mywriting/3437057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있다.인정하든 안하던.울타리는 벗어나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한 려정이다. 과정에 끝도 보이지 않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터널이 있다.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사람마다 걸어야하는 터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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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초가 되였다. 이미 도시에 신물이 있었다.회사를 찾기도 싫었고 인간관계에도 신물이 낫다.밤이나 낮이나 카텐을 치고 책을 잃다가는 자고,자고는 책읽고 이렇게 매일 지냈다.

돈도 인젠 5만정도밖에 안남았다.

99년초 나는 부모님들보고 연길에 한채 사드릴테니 돌아가자고 하였다.

다행이 그때는 집값이 비싸지 않아서 한평방에 700원정도로 철남에 60평남짓한 단층집하나 삿다.남은 현금은 없었다. 단층집이 썩후에 뚱챈들어서 층집으로 바뀌였다.부모님은 지금 그층집에서 사신다.물론 면적이 많이 커졋고.

돌고 돌아 몇년만에 연길에 다시 오니 원래대로 빈털털이다.돈도 없다.연길에 설비회사를 찾아서 출근하기 시작하였다.그래도 전업을 배웠기에 정부의 공사를 처음부터 맡아서 끝까지 깔끔이 끝냇고 , 장백산에 호텔이 들어서는데 가서 석달동안 공사를 진행시켰다.장백산은 어쩌다 한번 구경하면 천지로 끝나지만. 4월말부터 있어보니 경치가 천태만상이다. 5월은 밤에 춥고 낮에는 해가 비쳐 따뜻해고, 아침에는 하얀눈을 밟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그때는 온천물에 펌프를 처넣고 온천물을 맘대로 썻다.닭알이 익나 넣어봤더니 3일정도 되니까 먹게 되더라. 지금 천지에서 파는 닭알은 진짜 온천물에 익힌건지 나도 모르겟다.아무튼 단순한 공사를 진행하고 산에 있으니까 생각이 적어지고, 오염안된 공기를 매일 마시니까 기분이 좀씩 좋아졌다.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매일 읽고 출근하고 가끔 친구들이랑 술이나 마이고.나의 침체기였다.친구들도 내가 나갈때는 모두 내가 술사니까 자주 많났는데 , 돌아가면서 내니까 만나는 차수도 점점 적어졋다.

인생의 침체기는 텐넬을 걷는것과 같다.걸어도 걸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어떤때에는 사람이 사는가 생각을 해보았다.그리고는 답을 찾으려고 철학책을 읽고, 어떤때에는 백수가 성공하는 인물전기를 읽었고, 어떤때에는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면 돈을 벌수 있냐고 경제책을 죽어라 읽었다. 터넬을 걷고 걷다가 희망이 없으면 그때는 인간이 자살해 죽을때라는것을 그때 알았다.

지금도 큰아이에게 턴넬리론을 강의해준다.인생에서 누구나 턴넬을 걸을수 있는거구 걸어야하는것이다.짧으면 1.2년으로 끝날것이고 길면 몇년 심지어 십여년 될수도 있을거구.희망이 안보인다 포기하면 인생이 끝인거구 , 힘들어도 계속 걷는다면 턴널을 벗어나는거다.턴널을 벗어나면 새로운 인생을 사는거다.최진실이도 턴널을 못걸어나와 죽은거구 현대 정몽헌회장두 턴널에서 포기해서 죽은거구, 그러니까 너두 언젠가 인생턴널을 걸을때면 뒤돌아보지 말구 계속 일상에서 하던대로 걷고걸으면 벗어날수 있다구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2000년까지 책을 읽으면 살아왔다.책은 어린이키만큼 읽었으리라.

살면서 차츰 웃음이 생겻다.웃으니까 좋은일이 생기더라.여자친구도 생겼다.

그러나 사람은 인생에서 한번 받은 상처는 아물지가 않는다.아물었다 해도 트라우마가 생기는거 같다.여친이 집이 하남다리부근에 있어서 같이 산책하다가도 가끔 선옥이랑 연애하던 생각이 났고 마음이 서글퍼졌다.

선옥이하고 연애를 할때 빈털털이였고, 몇년이 지난 지금에도 빈털털이다.

여친부모님들은 담배공장에 출근하셧고 과장급이라 생활이 좋았다.연애를 하니까 부모님들과 낯을 익혓고 뜨문뜨문 연락을 하고 지내셧다.지금도 그때 여친부모님이 거지같은 나를 그리 마음 들어하고 이뻐해주셧는지 모르겟다.누군가한테 이쁨을 받는다는것은 감사한것이다.

아무튼 출근하고 연애하고 조용히 지냈지만 마음한켠에는 인생을 이렇게 살순 없는데…. 하는 생각은 떨칠수가 없었다.그리고 경제가 자유롭지 못한상태에서 인간의 즐거움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도 내가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는걸 아셧는지 별로 재촉은 않으셧다.

어느날 여자친구 부모님이 청하여 놀러갔었다.

여친아버지: 자네 ,우리 연이랑 사귄지 일년 넘지?

:

여친아버지:오늘저녁 술한잔 할가?

그날 저녁 떠보려고 그랫는지 여친아버지는 나한테 술을 많이 부어줬고 나는 거절을 못하고 자꾸 받아마셧다.

여친아버지: 이보게, 자네 우리 연이랑 사귄지 일년 넘엇으면 결혼을 생각안하는가?

: ?

.?결혼말을 꺼내시는구나.

:아직 제가 경제독립을 못해서 결혼까지 생각못하고 있습니다.

여친아버지: 지금 젊은이들 경제독립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그래,자네 결혼생각은 있는가?

: 남자가 경제독립을 못하고 처자식을 먹여못살리면 결혼해도 사는게 피곤하다고 생각합니다.결혼하면 집도 있어야 하고… …

여친아버지: , 결혼할 생각만 있다면 집은 우리가 사줄테니 ….결정은 자네가하게.알았나?

: ?

취기가 사라졌다.정말로 감사한 말이지만 나한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이다.남자로 태여나 가시집에 기대여 사는것은 철학에 맞지 않는 일이였다.지금도 떳떳하게 말한수 있는거라면 태여나서 여자돈을 못써봣다.어쩌면 명이 절로 벌어 명이지 여자돈을 못쓰는 명인거 같다.

자존심이 상했다.일종 자비심에 의한 자존심이라 생각된다.

암튼 그날은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지만 그날 일은 잊혀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살수는 없었다.경제독립을 못한 부끄러움도 있었고, 여친아버지는 좋은 뜻으로 말했지만 나한테는 충격이였다.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독립을 하고 결혼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러나 나한테는 가난의 트라우마라 할가?삐뚜로 나가는 고집이 있었다.삼국연의에 제갈량이 위연이란 장수가 자신의 사후에 반란을 할걸 예측하는 문장이 있다.나도 위연이처럼 남북골에 뒤골이 삐여져 나왔다. 인생에서 자신도 모르게 삐뚜로 나갈때면 내가 위연이처럼 남북골에 뒤골이 삐여져 나온거랑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일 지나서부터 한달이 지내서 내가 하던 정부의 보일러 시공도 거의 끝이 났다.바쁜일이 끝나서 한가히 지내니 생각이 많아졌다. 회사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희망이 있는 곳을 찾아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다.결심을 내리고 사직을 했고 c도시로 가서 일자리를 찾았다.자존심이 상했고 자비감이 있었기에 여친의 만류에도 외지로 나와버렸다.세월이 흘러서 얼굴은 희미해졌지만 나를 바랠때 눈물에 젖었던 그눈길만은 기억이 똑똑하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도시라서 익숙한것도 있고 , 동창들도 많았고 정이 많이 도시였다.그러나 점차 느낀것이 출근하여 돈을 모은다는것은 신기루라는것을 깨달았다.

언제 모으고 언제 집사고 언제 결혼하겟는가?내가 모으고 집사고 할때면 여친도 할머니가 되겠다.

반년이 넘어서도 오지 않으니 여친이 자꾸 전화를 하고 편지를 보낸다.나는 나대로 고집을 쓰고 연길로 오려고 하지 않았다.여친이 따라오겟다고 하니 그때 그시기에 여친부모님들이 동의하지 않으셨다.여친이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도 좋은 사업단위라 인츰 사직할 회사가 아니였다.

매번 전화가 오면 티각태각하다 결국은 애원하다 울고불고 야단치고야 전화를 끈었다.

여러번 싸움이 반복되니 짜증이 났고 화가 났다.

결국 나는 결심을 내렸고 A4용지에 타자를 하여 이별을 통보했다.잘살라고. 많고 직업좋은 남자를 만나라고.그리고는 일절 전화도 받지 않고 편지도 회답하지 않았다.젊은 나이에 유치했고 모질고 경우없는 무례한 행동을 했다.

후에 아버님한테서 말을 들었다.여친이 찾아와서 울고불고하면서 이별을 통보해도 어찌 그리 성의없게 종이에 타자를 하여 보내는 남자가 있는가고!전화로 목소리라도 들려줄거지, 손으로 글을 써서 보내줄거지 하면서 말이다.

혹시 글을 본다면 용서해다우.어려서 철이 없었고 너무 화나고 짜증나서 예의를 따르지 못했어. 편한대로 일방적으로 타자를 해보낸거 정말 미안하다.그래서 이글에 너의 이름 감히 적지 못하겟다.유치햇고 무례했던 나의 과거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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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50.♡.235
급하게생긴얼굴 (♡.214.♡.116) - 2017/08/13 11:31:07

ㅎㅎ

마음의변화 (♡.80.♡.204) - 2017/08/13 20:46:51

젊을때 치열하게 살던 추억 글로 적으시니 현실감이 생동하네요...

행복하다고,잘 살도 았다고 눈물 흘린 사연 보니 저도 눈물 흘렸던 사람이 생각나네요..

장백산00 (♡.173.♡.17) - 2017/08/14 09:32:46

마음 좀 독하네요..ㅎㅎㅎ

탈무드999 (♡.50.♡.73) - 2017/08/14 13:02:52

자비감에 扭曲된 마음이 잇엇다고 생각합니다.

chunyup88 (♡.173.♡.198) - 2017/08/14 10:51:56

이렇게 헤여지는거 쉽지가 않았을텐데요...

xinyuhongyu01 (♡.90.♡.47) - 2017/08/14 15:56:32

잘 보고 있습니다. 올리는 속도가 빨라서 감사 합니다. 오늘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풀베팅 (♡.136.♡.19) - 2017/08/14 23:25:45

잘 보고 있습니다 기다립니다

사랑의애터미812 (♡.150.♡.249) - 2017/08/15 07:08:35

고생만이 하셨군요~고생하신 만큼 지금 잘 살고
계시니까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정말 맞는 같아요~

탈무드999 (♡.50.♡.76) - 2017/08/15 07:23:28

고생의 시작뿐이엿는걸요

그대라는이유 (♡.246.♡.134) - 2017/08/16 16:10:38

글보면서 선옥이한테 지금까지도 연연하는것보면…
갖지 못한건이 제일 좋아보인다는 말을 생각하게 되네요~

베이비킷즈 (♡.146.♡.8) - 2017/08/16 20:45:40

그렇게 2000년까지 책을 읽으면 쭉 살아왔다.책은 어린이키만큼 읽었으리라.

[출처] 울타리 10 - 모이자 커뮤니티
[링크] http://bbs.moyiza.com/mywriting/3437057

꾸준히 책을 읽는 모습이 우러러보입니다.

저도 소학교부터 책을 항상 달고다녔지만 꾸준히 읽기 시작한건 2년전부터.
고작 2년동안 매일매일 공부하고 뿌듯하게 생각했는데 님의 글 보면 저도 이제부터 시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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