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못하는 남자 ( 맞선 )

xingyu | 2015.05.15 21:48:55 댓글: 11 조회: 4129 추천: 6
분류단편 https://life.moyiza.kr/mywriting/2684921


참 기묘하다면 기묘한 우연의 일치.. 세상만사가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같아도 때론 기막힌 타이밍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 글을 마무리하던 날, 이야기속 노인네의 모델격인 실존인물 아무개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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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원이면 자판기 커피 몇잔일까... 춘길이는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생각했다.

천원하던 두부도 이백원 올랐다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누나.

3500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늘 그 생각이다.

알바생 시급이 올라 오천원이 넘는다지만 커피 한 잔이 과연 그 값어치를 하는 것일까...

거품을 빼고 빼서 최저가로 내놓은 3500원짜리 커피. 카페 이름도 < 더 착한 커피 >...

3500원짜리 커피 한 잔에서 하루종일 커피열매를 따야 20키로짜리 포대 하나라며

하얗게 웃어주던 TV속의 늙은 흑인여자. 그녀에게 과연 몇푼이나 돌아갈까...

춘길이는 막연히 그 얼굴을 떠올려본다. 사돈 남 걱정하는 것이다.

춘길이는 피씩 웃었다. 자조의 웃음이다. 자신 역시 그 여자와 별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겨우 체면치레가 됬던 회사생활은 부적응자를 공사현장으로 떠밀어버렸다. 그 역시도 땡볕에서

벌어 먹고 살게 된 것이다. 그것을 두고 후회한 적은 없었다.

키가 큰 편인 춘길이는 거구는 아니지만 여러 잡다한 직종을 거치면서 잔뼈가 굵어 몸매가 다부지다.

남들 눈에 밑바닥인생으로 보일지 몰라도 춘길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일했던 현장에서 아파트나 빌딩 빌라들이 우뚝 솟을 때 그 곳에 살지 못할 지언정 자기 것이 될 수 없을

지라도. 뭔가 이뤄냈다는 성취감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카페의 출입문쪽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춘길이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젊은 남여가 춘길이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창가로 자리를 잡았다. 춘길이는 창가를 피해

가장 후미진 곳에 앉아있었다.

시선을 다시 커피잔으로 옮겨 오면서 춘길이는 양복안주머니를 더듬어본다.

두툼한 돈뭉치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 무식한 놈... > 춘길이는 또 한번 씁쓸하게 웃는다.

지방에 일하러 내려갔다가 갑작스레 서울로 올라온 명수는 춘길이네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사는 명수는 쉬는 날이면 춘길이네 집에서 살다싶이 했었다. 춘길이

엄마도 생전에 명수를 아들같이 아껴주었다.

누나 성화에 못이겨 오랫만에 양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데 명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맞선 보

기전에 꼭 들렀다가라는 것이였다.

뭔 급한 일인가 싶어 들른 춘길이에게 명수는 두툼한 봉투를 쥐여주었다.

< 뭐냐? >

< 걍 받아라. >

< 이 놈 봐라. 뭔 돈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받어.. >

< 그냥 주는게 아니구 꿔주는거다. 그래 꿔주는거... 니 사정두 뻔하지뭐.

아버지 아파서 한 보름 입원해 돈 많이 썼을테고, 여자 만나는데 돈이

있어야지. 요즘엔 말이야, 워낙 진도가 빨라서 말이야.. >

명수는 낄낄 웃으며 말을 계속한다.

< 커피 마시구 밥 먹구 호프집 가구 알딸딸해지면 방 하나 잡을 수도 있구...>

< 만나자마자 모텔 가는 여자면 말짱 꽝이지뭐. >

< 배 부른 소리하구 있네. 딱지나 맞지 말구 잘해봐라... >

< 근데 뭔 봉투가 이래 두껍냐? >

< 어.. 현금인출기에 오만원짜리 없더라... >

명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 무식하게 많이도 찾았구나, 만원짜리를...>하며 춘길이는 명수네 집을 나섰던 것이다.

명수한테는 첫만남에 잠자리를 하는 여자는 별로라 해놓고선 춘길이는 은밀한 생각들을 앞세워본다.

지난번에 함께 일을 하던 팀원들이 몸을 풀러?가자고 할 때 춘길이는 슬쩍 빠졌던 것이다.

누나를 생각하면 돈을 그렇게 허망 쓸 수가 없었다. 누나는 일년가도 옷 한벌 사입는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는 치매 3년째 들어서면서 바지에 실례하는 일이 많아졌다. 기저귀를 채울라 치면 악을 쓰며

덤벼들었다. 번마다 누나가 고생이다. 고약한 냄새를 참아가며 옷을 벗기고 몸을 씻겨주다보면

한 겨울에도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후줄근한 티셔츠가 젖어들어 젖가슴이 출렁거리면 아버지는 그 가슴에 손을 곧잘 얹었다.

그러면 누나는 가차없이 그 손등을 후려쳤다.

그때마다 춘길이는 사람이 어쩌면 저리 추하게 늙어버릴까 생각하며 역겨움을 참지 못했다.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치매 오기 전까지도 바람끼를 주체못하던 아버지. 모르긴 몰라도 박카스를

수도없이 마셨을것이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어린 춘길이 남매를 마누라에게 떠맡기고 자신은

바람따라 다녔다.

남자는 원래 그런게야, 바람도 한 때지. 잦아들면 돌아오게 되있어..

노인네들이 곱씹는 그런 말들을 믿으며 엄마는 기다렸다. 허나 돌아온건 이혼서류뿐이였다.

이혼만은 완강하게 거부하던 엄마를 아버지는 발길로 걷어차고 머리채를 휘여잡고 마당으로

끌어냈다. 울그락불그락하던 그 얼굴은 악귀와도 같았다. 뭔 마에 씌였는지 아버지는 이혼에

집요했다. 며칠을 드나들며 집안살림들을 깨부시고 엄마는 물론 어린 남매에게도 매질을 서슴

치 않았다.

엄마가 도장을 찍어주던 날 아버지는 개선장군마냥 짐을 챙겨서 집을 나갔다.

그날 세 사람은 차라리 홀가분했다. 썩 후에 누나는 성을 아예 엄마 성씨로 고쳐버리기도 했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문에 아버지는 결혼을 몇번 하고 동거녀도 여러번 바뀌었다고 했다.

그런 소문에도 춘길이는 남 얘기 듣듯 무덤덤했었다. 그러나 늘그막에 치매에 걸려 같이 사는

여자한테 버림받고 춘길이네 집앞에 버려졌던 날 춘길이는 온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 땅으로

잦아들것만 같았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차마 내치지는 못했다. 늙어서인지 굶주려서인지 피골이 상접한 모습에

일말의 측은지심이 일어났던 것이다. 부모자식간의 인연이란 얼마나 모질고 질긴것인가...

남매는 소름이 돋았다.

짐이였다. 그것은 벗을래야 벗어던질 수 없는 굴레였다. 우마가 지쳐 쓰러지든 짐짝이 썩어문들어

지든 둘중 하나다. 죽지 못해 마지 못해 사는 것이였다.

< 춘길씨...? >

눈앞에 살구색 원피스가 어른거렸다. 춘길이는 허둥대며 일어서다 남은 커피를 쏟고 만다. 그 모습

이 재미있는지 여자는 입을 가리고 웃었고 춘길이는 목뒤덜미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춘길이는 첫눈에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눈시울이 깊고 맑았다. 이런 여자 두번 다시 만나기 힘들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흥분과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말들을 주고 받다가 둘은 갈비집에서 밥을 먹었고 다시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호프집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호젓한 분위기속에 춘길이는 명수 말대로 되가는 것 같아 기분이

야릇해졌다. 호프 두 잔에 느닷없이 취기가 찾아온 것도 있겠지만.

< 당신이 맘에 들어요. >

돌직구를 던지는 고백에 춘길이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여자를 바라본다. 두 뺨이 발그스름하고 약간

흐트러진것 같은 몸짓이 요염해보였다.

< 아버지말이얘요... 결혼하고 나서도 함께 살건가요? 서로 나이도 먹었고

다급한만큼 빙빙 에둘러 말하지 않겠어요. 난 당신이 맘에 들어요... 만약

누님이 정말 아버지를 모시고 따로 산다면 당신이랑 결혼하겠어요. >

여자의 두 눈이 간절한 대답을 원하는듯했다. 춘길이는 상대가 민망할 정도로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여자는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누나의 얼굴이 여자의 얼굴과 번갈아 나타났다가 겹쳐지기도 한다.

< 미...미안...... > 춘길이는 더듬거리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 잠깐만요, 며칠 더 생각해보고 답을 주셔도 되요... >

< 아니요. 누나한테만 아버지를 맡겨둘 수는 없어요. >

이번에 춘길이는 고개를 들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여자는 가고 춘길이는 홀로 남아 호프 몇잔을 더 마셨다.

여자가 떠나면서 즐거운 시간이였다 다음에 또 뵈요... 했던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춘길이는 벌써 잊었는지도 모른다. 아님 잊는 중인지도...

호프집에서 나와 집 근처 놀이터에서 담배를 몇대 태우다 춘길이는 늦게까지 불이 밝혀진 집으로

들어섰다. 자리에 드러누워있던 아버지가 대뜸 눈을 치뜨고 늦게 들어왔다고 호통을 쳤다. 별안간

제법 그럴싸하게 아비노릇을 하는 것이다.

< 당신이 뭔데 아버지흉내를 내? 우리 클 때 사탕 사줬어? 학교 다닐 때

학비라도 보태줬어? >

< 얼어죽든 굶어죽든 싸돌아다니다 뒤질꺼지 거머리처럼 왜 우리한테 들러붙냐구

왜! 왜! 나가, 당장 나가! 나가란말이야! >

춘길이 눈에서 불꽃이 튄다. 이어 이성을 잃고 아버지를 마구 짓밟는다.

겁을 잔뜩 먹은 늙은 몸뚱아리가 새된 소리를 지르며 점점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보다못한 누나가

춘길이를 말린다.

< 참아라. 애비 죽인 자식 소리 듣구 싶니? >

덤덤한 누나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면서 춘길이는 맥없이 무너져내린다.

벽에 기댄채 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생각이라 할것도 없이 천정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누나가 어떻게 얼리고 구슬렸는지 안방에서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물을 한 잔 타가지고 누나는 춘길이와 마주앉았다.

< 웬간히 맘에 들었나보다... >

춘길이 눈치를 살피며 누나는 웃었다. 춘길이도 웃었다.

< 내가 중매쟁이한테 그랬어. 아버지는 내가 델구 있어도 되니깐 서로 맘에

들면 아버지 걱정은 말라고... >

< 바보같이 왜 그랬어? >

그사이 중매쟁이랑 전화가 오간 모양이였다.

< 내 어떻게 남한테 아버지를 맡기겠어. >

< 뭐...? >

누나는 뜨아한 표정이다.

< 잊었어? 누난 우리랑 성이 다르잖아. >

춘길이가 익살스럽게 대꾸하자 누나는 기미가 가득 오른 얼굴로 짐짓 눈을 흘깃거린다.

끝내는 둘이 서로 웃는다.

추천 (6) 선물 (0명)
나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어른아이다......
IP: ♡.159.♡.18
북위60도 (♡.11.♡.175) - 2015/05/16 07:56:45

어쩐지 이 결혼못하는 남자가 너무 인간적이여서 마음에 딱드네요.실존인물이면 좋겠네요.
너무 생동해서 현실과 헷갈리는.

xingyu (♡.159.♡.18) - 2015/05/19 21:42:00

결혼 할 때 좋은 선물을 해주려구요 ㅎㅎ

xingyu (♡.159.♡.18) - 2015/05/19 21:42:17

결혼 할 때 좋은 선물을 해주려구요 ㅎㅎ

달밤에토끼 (♡.195.♡.169) - 2015/05/16 18:09:46

잘보았습니다.다음회 기대합니다.

aappllee (♡.179.♡.108) - 2015/05/18 09:48:52

타고난 운명이라고 해야할까요 ...
평생 바람피고 다니다가 침애가 되니 다시 돌아오는 아버지 ,,, 비워도 버릴수 없는 아버지 ,,,
그래도 아버지라고 두말없이 아버지를 보살피는 누나, 그것을 눈물로 지켜보는 동생 ,,,
글을 읽는 순간 정말로 내 다 마음이 찡해납니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되서 부모님들이 모두 장수하시는 한편 ,,,
침애가 오셔서 본의아니게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부모도 적지 않는것이 현실이겠죠.

이 글이 실화이든 소설이든 좋은 결말로 마무리지어줬으면 합니다.
몸이 불편하신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식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잘 읽없습니다.

세꼬 (♡.204.♡.114) - 2015/05/18 19:23:26

오랜만에 읽는 님글, 너무 짧아서 허기를 못채웠슴다ㅜㅜ

우리 주위엔 이해 못할 사람들이 있죠 가끔 품어줘야 할 때도 있고...같은 피가 흐르니 그게 못난 부모던 자식이던...어쩔수가 없나봐요

헤드레공주 (♡.220.♡.206) - 2015/05/19 09:08:57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그래도 결혼못하는남자 너무인정이 많고 책임감이 많은 남자네요 부디 좋은여자 만나시길요

wfy1982222 (♡.99.♡.215) - 2015/05/19 09:31:31

누나가 사회생활 하면서 돈 벌어서 양로원 보내는게 낳지 않은가요?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왜 이런 생활을 선택하는지? 요즘 양로원 깨끗하고 왔다갔다하는 사람도 많으니 사람구경도 하고 반찬도 괜찮게 나오고, 두 형제가 다 자기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한다는게 정확한 선택? 실화라면 이해못하겠습니다.

xingyu (♡.159.♡.18) - 2015/05/19 21:45:40

모이자가 많이 버벅거리네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

들래 (♡.39.♡.36) - 2015/05/20 03:12:06

ㅠㅠ 내 플은 어디갔지??????
혹 뗐으니 ??? 실존인물은 결혼할수 있는 남자가 되였을가요?ㅎ

살구빛원피스라. 맑고 깊은 눈 가진 살구빛원피스의 그녀. 저도 끌리네요.

고향란초 (♡.208.♡.134) - 2015/06/11 21:39:26

실화죠?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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