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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합니다

합마하물결 | 2016.12.05 14:32:51 댓글: 0 조회: 1216 추천: 0
분류고향풍경 https://life.moyiza.kr/crcnphoto/3220373

장애인 회사원들과 허물없이 담소하고있는 전선옥(왼쪽)사장

지팽이만 짚지 않으면 그녀는 한발작도 제대로 걸을수 없다. 시력도 차해 코앞의 물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껏 걸을수도 볼수도 없는 그녀는 분명한 장애인이였다.

기자가 연변세류(世流)복장회사 전선옥(46세)사장을 만났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몸에 장애가 있다는것은 분명 불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장애와 불편에 좌절하고 기가 죽어있는것이 바로 우리 장애인들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사랑도 부인할수는 없지만 사회생활이나 취업경쟁에서 장애인들이 외면되고 소외받는것 또한 누구도 부정못할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녀는 자기도 장애인의 고달픈 삶과 불편한 홀로서기의 설음을 뼈속깊이 느껴보았기에 장애인들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장애인들을 보듬어 안을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인생의 고락을 함께 나눌수있는 행복한 삶의 터전을 만들 웅심을 갖게 되였다고 밝혔다.

한때는 날쌘 스케트선수…북경에서 복장장사로 큰돈도 벌어

19살나던 해인 지난 세기 80년대 말, 전선옥씨는 제법 “날아다녔다”고 말했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체육학교에서 스케트선수로 있으면서 전주속도스케트대회에서도 우승할만큼 날쌘 속도를 자랑했었다. 체육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왕청현식품상점의 출납원으로 들어갔지만 꿈많은 젊은 시절, 53원밖에 안되는 제한된 월로임에 결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세살때 부모가 리혼하면서 할어버지집에서 자란 전선옥씨는 어릴 때부터 강한 승벽심을 키웠고 강직한 삼촌들의 영향으로 삶을 향한 꿈도 꾸어보았다.

두달만에 출납원일을 접은 그녀는 려행사 가이드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북경에 가서 가이드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야가 넓어진 그녀는 당시 시장전망이 있는 복장업에 뛰여들었다. 처음에는 숭문구에 있는 신교복장세계에서 가게를 세맡고 장사를 시작했다. 후에 장사가 잘돼 서단과 연사에도 매대를 여러개 늘이면서 크게 장사를 벌려나갔다. 당시 아직 20대 초반이였던 그녀는 힘든줄도 모르고 광주에 가서 이악스레 물건을 넘겨받아와서는 북경에서 팔았는데 1991년부터 1997년사이에 200여만원을 벌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든 장애…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늘의 풍운은 예측키 어렵다” 더니 어느날 북경에서의 복장장사에서 큰 손실을 본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신용있게 거래하던 한국거래처 장사군에게 무려 80만원에 달하는 물건을 사기당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사작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격이 되고 말았다. 삽시에 들이닥친 풍파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가 그녀를 못살게 굴었다.

전선옥사장이 직장에 나타나면 장애인들은 모두 즐거워한다

2000년의 어느날 밤,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전등을 켰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동생을 불러 전등을 켜달라고 했더니 “이미 전등은 켜졌는데 누나는 눈뜨고 있잖아”하고 동생이 의아해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기가 이름모를 병을 앓고있음을 알게 되였다.

북경동인당병원에서 한달간 치료를 받아 눈앞에 내민 손가락이 검은 손가락으로 겨우 안겨올 정도로 약간의 호전은 있었으나 불행은 결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두달후에는 펀펀하던 다리가 맥이 빠지면서 마비되는것같더니 걷기조차 힘들어지게 된것이였다. 국내의 좋다는 병원은 다 돌아다녔지만 좀체로 확실한 진단을 내릴수 없었다. 그러다가 뒤늦게야 그녀는 자기가 “신경성 다발성경화”로 앓고있음을 알게 되였다. 진단은 내려졌지만 그동안 병치료를 늦추는 바람에 리상적인 치료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뒤늦게 입원해 치료받는 1년사이에 그녀는 억장이 무너지는것만 같았다.

대소변이 나가는 줄도 모르고 도뇨관마저 1년 넘게 달고 다니는 구질구질한 환자의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죽어버리는것이 낫겠다는 나쁜 생각을 했다.

“매일마다 아침에 깨여나서는 어떻게 죽을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제 일상이였어요.”

그때를 돌이키면서 전선옥씨는 손가락으로 눈굽을 찍었다.

과일칼을 숨겼다가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이불속에서 다리를 그었다. 다리에서 흐른 피가 침대밑으로 흥건히 떨어지면서 자살시도가 발견돼 구급을 거쳐 다시 목숨을 구할수 있었다. 매일마다 수면제를 먹지 않고 혀밑에 감추어두었다가 200여알을 모은후 한꺼번에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발견되여 그녀는 죽을수 없었다.

몇번이고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녀는 문득 삶에 대해 곰곰히 음미해보았다. 아직 31살밖에 안된 나젊은 자기를 떠올리면서 결혼해 행복한 가정도 이루어볼 생각을 굴려보았다. 행여 나에게 삶의 한가닥 희망이라도 있어서 건강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나는 꼭 무언가 이루어낼수도 있겠는데,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그때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그 오기는 어쩌면 그녀가 아픈 장애를 직접 체험하고 겪어오면서 느낀 참된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진지한 태도였을수도 있으리라.

회사원 절대 대부분이 장애인…그들에게 꿈과 희망 심어주고싶어

연길시 동쪽교외에 자리잡은 연변세류복장회사는 지난 10월 20일에 세워졌다. 장애자들도 세계로 흘러나갈수 있는 큰 꿈과 야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을 담아 이름지은 연변세류(世流)복장회사는 간판에서부터 전선옥사장의 만만찮은 기개와 꿈을 읽을수 있었다.

회사의 생산관리를 책임진 안성학경리를 내놓고는 나머지 24명 회사원들이 모두 장애인들이였다. 이들은 모두 전선옥사장이 불편한 몸을 끌고 전주 각지를 다니면서 모집해온 장애인들이다. 모집해오기전까지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불우한 장애의 삶을 고민하고 슬퍼하던 사람들이였지만 지금은 날이 감에 따라 장애를 극복하고 자립자강의 홀로서기에 새로운 삶의 도전장을 내미는 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장애인들은 모두 손발이 원활하지 못하고 꿈뜨거나 단순하다. 장애인들은 복장재단과 휘갑, 봉제 등 단순한 부문별 흐름식작업을 하고있지만 정상인에 비해 일손이 잘 잡히지 않아 작업효률도 매우 낮았다. 10월부터 장애인들에 대한 작업양성에 들어갔지만 두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일에 익숙해진 장애인기능공은 나오지 못한 실정이다. 그런면서도 매달 1000원의 견습작업비용은 물론 먹고 자는 모든 비용을 회사에서 전부 부담해주고있다.

올해 31살인 범철강은 일본류학까지 한 의학박사출신인데 중풍을 맞고 불구자로 된 아까운 젊은이였다. 왼손 하나밖에 쓸수없는 범철강은 서툴지만 옷의 혼솔기를 잇는봉제작업을 골똘히 하고있었다. 그는 회사에 와서 일하게 되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있다고 말했다.

범철강(오른쪽)이 봉제한 옷을 보면서 잘했다고 격려해주고있는 전선옥사장

전선옥사장은 범철강같은 젊은이들은 몸은 비록 불구여도 마음속에는 큰 꿈이 있을것이라면서 회사에 이런 류형의 장애인들이 많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묻혀있는 꿈을 이루어주는것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세류복장회사는 이미 100만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했지만 아직도 적자다.

장애인회사원들이 아직도 봉제기술에 익숙하지 못하고 많은 주문물량을 기한내에 소화해낼수 없기때문이다. 그럴수록 전선옥사장은 인내성있게 장애인들을 기다려주고 이끌어주군 했다. 12월까지 장애인회사원들의 강습숙련기일이 끝나면 새해부터는 좋은 시작과 희망이 보일거라고 그녀는 신심으로 가득차있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온 장애인들은 그 누구도 회사가 먼저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일이 없을것입니다. 회사에 받아들였으면 저희가 책임을 져주어야지요. 내가 장애의 슬픔과 외로움을 겪어왔고 또 잘 알고있기에 장애인들을 항상 그러안고싶고 그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고싶을뿐입니다.” 전선옥사장은 이것은 오늘도 래일도 변함없을 회사의 신조로 될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한 리유

전선옥사장은 늘 “나는 장애인들에게 오기를 심어주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군 한다.

“기가 죽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내가 그 과정을 지나왔기에 나는 그것에 대해 더 잘 알고있습니다. 요즘 보면 회사에서 일하고있는 장애인들이 기가 많이 살아난것같아보여 기쁨니다. 사람을 많이 피하던 장애인들이 서로 어울리고 교류하고 인사도 하는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전선옥사장은 이로하여 또 새힘이 솟구친다고 말했다.

연길시에 살고있는 한 장애인부모는 지체장애를 앓고있던 아들애가 회사에 들어간후부터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밝고 명랑해졌다면서 아들을 전선옥사장에게 부탁하곤 시름놓고 한국에 돈벌이를 떠나기까지 했다.

세류복장회사에서 즐겁게 일하고있는 장애인들

전선옥회장은 회사에 장애자협회를 설립할 구상도 하고있었다. 회사내외의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딛고 홀로서기를 할수 있는 꿈과 비전을 키우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만들기위해서이다.

전선옥사장은 장애인회사원들이 매일 보내는 위챗문안인사로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을 거느리고 힘겹게 꾸려나가야 하는 회사지만 막막함보다는 서로간의 배려와 인정속에서 꽃펴난 따뜻한 삶의 모습들로 하여 항상 자부감을 느끼군한다.

“사람은 살면서 돈이 가장 중요한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한 때는 많은 돈을 벌어보았고 또 써도 보았습니다. 돈이 있을 때 행복했던 기억보다 지금 장애인들을 위한 회사를 희망을 갖고 운영하는 과정이 더욱 행복스럽습니다. 이 세상에 태여나 본인의 의지가 아님에도 장애가 되여 울고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것이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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