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46

더좋은래일 | 2023.11.05 09:35:15 댓글: 1 조회: 238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4944


46

호철명소위 즉 김봉구가 날이 어두운 뒤에 불을 켜놓고 이날의 일보를 쓰고있을 때 앞에 놓인 휴대용전화기를 벗겨들었다.

<<호소위요?>>

련대장의 목소리다.

<<녜 그렇습니다.>>

<<의논할 일이 한가지 있는데... 지금 좀 왔다갈수 없을가?... 아 그럼 기다리겠소>>

김봉구가 련대장실에 들어가 거수경례를 하니 방효삼대좌는

<<어서 여기 와 좀 앉으시오.>> 하고 바로 앞에 놓인 걸상을 가리켰다.

방효삼의 기색이 심상찮은것을 보고 김봉구는 공연히 좀 떨떠름하였다.

<<임자를 보잔건 다름이 아니라...>>

례사 음성으로 이렇게 허두를 떼놓고 방대좌는 다시 목소리를 푹 낮추어가지고 말을 있는것이였다.

<<우리 부대가... 우리 사단이 말이요... 강서방면으루 이동이 될 기미가 보이는데...>>

김봉구는 아연 긴장해나서 눈도 깜박 않고 방대좌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홍군근거지들에 대한 포위소탕작전이 이번까지 모두 다섯번짼데... 만약시 이번에두 또 그전처럼 실패를 한다면 국민당정부의 지정이 흔들릴 념려두 바이 없지가 않으니까... 이번이란 이번은 아마 끝장을 보려는 모양이요. 현재 무려 50만에 가까운 대병력을 투입하는 판이요. 그래서 우리까지 이번에 휩쓸려들게 되는 모양인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임자 생각엔?>>

<<우리가 공산다을 치러 간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말이지...>>

김봉구는 너무 엄청나 더 말을 못하고 그저 덤덤히 앉아있기만 하였다. 방효삼도 한동안 입을 다물고있다가 다시 차근차근 일깨워주듯이 말을 하는것이였다.

<<일본강도는... 우리 원쑤는... 저 동쪽에 있단 말이요. 그런데 우리가 서쪽에를... 그 반대쪽에를 가서는 무엇하오? 공산당이 우리하구 무슨 원쑤졌소?... 그래서 난 이번에 아예...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요...>>

<<물러나시다니... 어떻게 말씀입니까?>>

<<건강을 리유루 내세워가지구... 후방에 떨어져있게 해달라구 사단장에게 말해볼 생각이요. 항공서 같은데를 보내주든지 조병찰엘 보내주든지... 아니면 군관학교에 교관으루 배치를 해주든지... 사단장이 군교때의 선배라서... 말을 하기는 좋소. 또 그런걸 주선할만한 힘두 있는이구. 그리구 내 이런 고충두 어느 정도 리해를 해줄만한이요. 그런데 문제는 임자의 거취를 어떻게 하느냐하는거요. 내가 부대를 거느리지 않게 되면 나를 따라다니기두 어렵겠구...>>

김봉구는 끈이 떨어진 뒤웅박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하늘같이 믿어온 방효삼의 그늘을 떠날 일을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하였다. 방효삼이 김봉구의 수색 띤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럼 당분간 화로강에라두 좀 가있어보까?>> 하고 위로하는 어투로 물었다. 남경의 호라강은 중국에 망명한 조선혁명가들의 집결처다.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고있던 김봉구가

<<그럴바엔 차라리... 그래두 부대를 따라갔다가... 전쟁터에서 기회 보아 홍군편으로 넘어가버리는게 어떻겠습니가?>> 하고 되물었다. 그 얼굴에 나타난 결연한 빛을 보고 방대좌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글쎄... 일이 그렇게 여의할가?>> 하고 고개를 비틀었다.

<<모험을 안하구 되는 일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피차에 좀더 생각해보구... 래일 우리 다시 만나 이야기합시다.>>

방대좌가 먼저 일어나 따라 일어나는 김봉구의 어깨에 한손을 얹으며

<<돌아가 한번 심사숙고해보시오. 난 사단장을 좀 가 만나봐야겠소.>>

말하고 방대좌는 곧 근무병을 불러가지고 말에다 안장으르 지우라고 분부하였다.

김봉구는 밤에 통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리순신장군의 읊은 절귀

나라 일을 걱정하여 잠 못 이루는 밤

찬 달빛이 활과 칼을 비추도다

의 경지를 몸소 겪는것만 같았다. 혁명근거지에 대한 동경은 벌써 오래전부터 맑스주의자 김봉구의 온 마음을 차지하고있었다. 당지 그럴 계제가 없어 행동을 못하던 혁명근거지에로의 탈출이였다. 그렇다면 이번이야말로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가 아닐건가.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일이 그렇게 여의할가?>> 하고 미타히 여기던 방대좌의 말이 귀전을 감돌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군모에 커다란 붉은 별을 단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거려 죽든살든 한번 해보지 않고서는 못 견딜것만 같았다. 김봉구가 마침내 마음을 질정하였다.

(해보자! 하면 되는 법이다!)

방효삼대좌가 련재장의 직을 내놓고 중앙군교 광동분교에 전술교관으로 부임하게 되였을 때 김봉구소위와 둘이서 조용히 저녁 한때를 같이 나누었다. 간소한 석별연이였다.

<<홍군에는 우리 사람두 적잖으니까 가기만 하면 문제는 없겠지만... 일선에서 넘어간다는게 아무래도 좀...>> 하고 방효삼은 말끝을 흐리였다. 종시 마음이 안 놓이는 모양이였다.

김봉구는 머리를 지수긋하고 그저 들을만 하고있었다.

<<그러구 생활두 간고하기가 뭐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김봉구가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거기 김무정이란분이 계신다지요?>>

<<있지. 그가 운남강무당 출신으루 우리 선배였는데...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소. 거기 있는 조선사람들중에서는 아마 령위노릇을 할게요.>>

<<저는 이제 아주 결심을 내렸습니다. 만난을 무릅쓰구라두 그분들을 꼭 한번 가 반나뵈야겠습니다.>>

한동안 잠잠한 끝에 방효삼이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섭섭은 하지만... 또 만날 날이 있겠지.>>

석별의 정을 못이기는 김봉구의 마음은 가을하고난 목화밭처럼 쓸쓸하였다.

방효삼이 떠나간 뒤 불과 한주일이 채 못되여 과연 부대가 주둔지를 철거하는데 전 사단이 련대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행군을 하여 양자강가의 보산까지 나와가지고 거기서 역시 련대별로 정박중인 기선들에 올랐다. 방효삼이 예측이 양자강을 소상해 강서 구강에 가 내리지 않으면 바다길을 남하애 복건 하문쯤에 가 내릴거라더니 과연 그 예측한대로 군대를 만재한 기선들은 동으로 흐르는 강물을 서으로 꼬리를 물고 거슬러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때는 이미 철 이른 강남의 살구꽃들이 망울지기 시작한 3월초, 남경 중앙군교에서는 제1대대 제4중대-조선학생독립중대-가 막 편성이 되였을 무렵이였다.

구강에서 배를 내린 김봉구가 부대를 따라 강서성 남부의 영풍이라는 생소한 고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성개한 평지꽃사이에 분주한 벌들이 싸대고 한가한 나비들이 넘노닐고있었다. 부대는 일로, 과창, 녕도, 흥국 등 방면에서 홍군에게 얻어맞고 밀려나오는 부상병들은 한 절반 토비로 변하여 군률을 무서워하지 않고 제멧대로 행동하였다. 죽어나는게 백성이였다. 연로의 백성들은 그 해를 받고도 어디 가 호소해볼데가 없었다.

김봉구가 령솔하는것은 련대본부 직속의 경위소대였으므로 련대본부 가까이에 있는 어느 민가에 거처를 정하였는데 그 민가의 규모란 김봉구가 생전 듣도 보고 못한 굉장한것이였다. 돌로 언저리를 둘러쌓은 못 하나를 앞에 둔 그 집은 회색벽돌로 지은 재래식와가로서 간수가 무려 100간이 넘었었다. 한집안 증조손 4대가 다 한지붕밑에 와글와글 모여 사는데 그 숱한 4촌, 5촌, 7촌, 8촌의 집들이 다 미궁 같은 복도로 가로세로 련결이 되여있어서 테밖의 사람이 멋모르고 집안에를 들어섰다가는 대번에 길을 잃고 어리뻥하게 마련이였다. 김봉구가 사람이 직실해보이는 주인-40객 중년남자에게 물어본즉 그의 말이 자기 집안의 고조인가 중조인가가 청나라대 무슨 거인인가 진사인가였다는것이다. 대문앞에 아직도 서있는 무슨 기대 같기도 하고 돛대 같기도 한것이 바로 그때의 유물이라는것이다.

<<그래 여기두 공산당이 왔었소?>>

<<녜 들락날락했지요.>>

<<들락날락했지? 그래 공산당이 어떻습니까?>>

<<글쎄요.>> 하고 주인은 김봉구의 눈치를 살피며 뒤를 사렸다. 말을 묻는것이 국민당군대의 장교인데 조심을 하는것도 무리가 아니였다. 겁이 아니 날리 없었다.

<<괜찮소, 념려 말구 아는대로 이야기하우.>>

김봉구가 부드러운 말로 그 마음을 풀어주었다.

<<우리네야 그저 땅이나 파먹구 사는게... 별일 없었지요.>>

<<이 집안사람은 다들 무사했던 모양이구려?>>

<<웬걸요, 큰댁에서는 뽕이 빠진걸입쇼.>>

<<뽕이 빠져? 그건 어째서?>>

<<큰댁이야 대지주가 아닙니까... 공산당이 대지주하구는 앙숙이예요.>>

<<그럼 댁은 뭐요? 댁두 그 한집안이 아니요?>>

<<웬걸요. 집안은 한집안이라두... 우리네는 거의다 큰댁의 땅을 얻어부치는 작인들인걸요.>>

<<그럼 제 땅 가진 사람은 하나두 없소, 그 겨레붙이중에?>>

<<왜요. 땅마지기나 가진 사람두 더러 있습지요. 그렇지만 어디 변변들 합니까. 그런건 공산당이 건드리지두 않아요.>>

<<그럼 다같은 한집안이라두... 잘사는 집이 있구 못사는 집이 있다는 말이구려?>>

<<그야 물론 그렇습지요. 다 제각기 타구난 팔자인걸요.>>

김봉구는 속이 답답해 더 데리고 이야기할 맥이 없었다. 자신의 고된 운명을 하늘이 지어준 천명으로 알고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 농민을 눈앞에 보기가 마음 괴로와서였다.

<<자 이 권연이나 한대 피우시우.>> 하고 김봉구가 권연갑을 꺼내여 한가치 뽑아주니 그 농민숙명론자는

<<천만에, 천만에!>> 하고 손을 홱홱 내젓고

<<어서 나리나 피웁쇼. 저희야 이게 있는뎁쇼.>> 하고 목덜미에 꽂았던 곰방대를 뽑아내였다. 공방대에는 담배쌈지가 제창 매달려있었다.

<<그들네 군대가 지금 있는데가 예서 얼마나 되우? 머우?>>

<<글쎄요... 광창에두 있구 룡강에두 있고 백운산 근처에두 있구 다 있다는데... 저희야 잘 모릅지요.>>

<<아무튼 그리 멀지는 않겠구려.>>

<<멀잖을뿐입니까. 마파람이 불 때는 대포알이 터지는 소리가 다 들리는걸입쇼.>>

김봉구는 인제 자신이 혁명근거지 가까이까지 와있다는 새로운 감각에 몸속의 시위가 팽팽히 켕기는것을 느꼈다.

전선에서는 부상병과 함께 전사자들의 시체가 륙속 후송이 되여오는데 북위 27도-광동이 가까운 곳이라서 그런지 이제 겨우 춘분이 지났는데도 날씨가 어찌나 더운지 이른아침에 맞아죽은 시체가 늦은아침때만 되면 벌써 시취를 풍기는데 그 입과 코와 눈에 심악스러운 청파리떼가 한창때 뽕나무에 오디 열리듯하여 보는 사람의 몸에 소름이 끼치였다. 김봉구가 실전에 참가해보기는 이번이 생후 처음이라 피투성이 된 부상병과 밀랍을 부어 만든 탈모양 해쓱하게 피기(핏기) 거둔 시체의 얼굴을 눈앞에 볼 때 자연 송구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군관학교에서 연습때 <<적>>을 포위섬멸하던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던것이다. 그 대부분이 근로인민의 자제들인 국민당군대의 병사들이 다치고 병신되고 죽고 하는것이 모두 자신들의 리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정반대라는 것을 김봉구는 잘 알고있는 까닭에 그들을 보기가 어지간히 민망하였다.

이날 사단참모장 위소장이 련대에 내려와 전원 륙칠십명의 장교를 서늘한 숲속에 모아놓구 훈유를 하였다. 김봉구는 제일 낮은 계급-소위 소대장이였으므로 명색없는 한쪽옆대기에 가붙어앉아 들었다. 위참모장은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안휘사람으로 역시 황포출신인데 말하자면 을급(乙级)반공분자쯤 되는 인물이였다. 말주변도 좀 있는축이였다.

<<...빨갱이하구 어우르는데 우리가 언제나 꺼리는것이 바로 그자들의 유격전술이요. 빈대새끼들처럼 낮에는 어느 구석에 가 들어박혔는지두 모르게 들어박혔다가 밤에 사람이 고단해 잠을 좀 잘라 하면 살금살금 기여나와 물어떼는데 이거야말루 사람이 죽을 지경이란 말이요. 포위소탕작전을 벌인다는게 말하자면 주먹으로 바람을 치는거나 마찬가지지... 무슨 반응이 있어줘야지... 그저 밤낮 허탕만 치다만단 말이요. 그런데 이자들이 이번에 무슨귀신이 씌였는지 우리하구 맞서서 진지전을 벌이겠다는구먼. 이게 그래 하늘이 우리를 굽어살핀게 아니구 무어요. 버마재비가 수레바퀴를 막아보겠다는 수작이지. 그러니 이번에 놈들의 소굴을 쑥대밭을 만드는건 땅짚구 헤염치기요. 하하, 어느분이 그런 꾀를 내셨는지 그분이야말로 우리 당국에 유공한 공신이요.>>

위참모장은 자신이 가장 재미나는 말을 한것처럼 흥이 나 코방울을 벌름거리며 웃었다. 근청하던 장교들속에서 박수소리가 일어났다.

<<... 그러니 여러분, 이번 기회에 우리는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을 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합시다. 이상!>>

장교들은 일제히 기립하여 다시한번 박수를 보내였다.

참모장의 훈유가 있은 뒤 사흘째 되는 날 김봉구의 소속한 부대는 불시에 주둔지를 철거하고 동남방향으로 전비행군을 시작하였다. 전비행군을 한다는것은 곧 수시로 적과 맞다들 념려가 있음을 의미하는것이다. 석마라는 그리 높지 않은 산밑의 그리 크지 않은 촌락까지 와가지고 부대는 행군을 멈추고 설영을 하였다. 김봉구가 집그늘에서 통신병들이 전화줄 늘이는것을 보고 섰는데 산밑의 소로길로 패잔병을 방불케 하는 한 소부대가 질서없이 내려왔다. 적에게 몹시 얻어맞은 꼴이다. 군모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맨머리바람으로 오는 놈에 총도 없이 맨몸으로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놈에 곁부축을 받으며 겨우 발을 떼여놓는 놈에... 별의별놈이 다 있는 가운데 혼자서 소총 서너자루를 량어깨에 갈라메고 입에다 권연을 꼬나물고 저의 집 마당안을 돌아다니듯이 례사롭게 걸어오는 놈도 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김봉구네 부대는 그것들을 교대해주러 온 모양이였다. 그 무질서한 소부대가 마을안에 들어오더니 대오를 령솔하는 젊은 장교가 뒤를 돌아보고

<<각 분대 분대장, 여기서 잠간 쉬여간다!>>

소리친 뒤 곧 군모를 벗고 손수건을 꺼내더니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 장교의 목소리가 어쩐지 귀에 익어 김봉구가 다시 보니 과연 아는 사람이다.

<<여 구소림!>>

김봉구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 장교는 한손에 군모를 들고 또 한손에는 손수건을 든채 김봉구를 볼아보다가

<<아, 호철명!>>

알아보고 얼른 군모를 다시 쓰고 손수건을 호주머니에 밀어넣으며 쫓아와 김봉구의 손을 열렬히 잡아흔들었다. 신장 1메터 80의 전보대 같은 구소림소위는 강서 남창사람으로 김봉구의 중앙군교의 동창이였다.

<<너희냐, 우리를 교대해주러 온게?>>

<<아마 그런가보다.>>

<<이게 글쎄 무슨 놈의 지랄이냐... 동족상쟁!>>

<<왜?>>

<<왜? 망태기판이야 망태기판!>>

<<몹시 얻어맞았니?>>

<<좀 봐라, 저 꼴들.>> 하고 구소림소위는 손을 들어 제각기 그늘을 찾아들어가 가로세로 드러누운 기진맥진한 부하들을 가리켜보였다.

<<그러나 아무튼 네가 무사한것만은 다행이다.>>

<<무사 안하면 어떡해? 난 벌써 약혼했어. 약혼을 했단 말이야. 결혼두 하기전에 저승행차를 하면... 꼴 참 좋겠다 제기.>>

<<이쁘냐?>>

<<뭐가? 아.>> 하고 깨닫고 구소림은 싱끗 웃고

<<쑬쑬하지. 너는?>> 하고 되물었다.

<<나? 난 아직 없다. 너 하나 소개해다구.>>

<<거짓말! 정말이냐?>>

<<내가 언제 너하구 거짓말하던?>>

<<하나 있긴 있다. 내 사촌누이동생인데... 만창에서 지금 소학교선생노릇한다. 가만 좀 있거라. 사진이 내 여기 어디 있을텐데.>> 하고 성미 빠른 구소림소위는 부산히 군복호주머니를 뒤지여 수첩하나를 꺼내더니 그 갈피에서 2촌짜리 사진 한장을 꺼내주었다.

<<어떠냐?... 미인이지? 스물한살이다. 구혜원. 어떻냐?>>

김봉구가 받아서 들여다보니 사진속에는 치파오를 입은 단발미안 하나가 좀 부자연스레 미소를 짓고있었다.

<<네꺼두 좀 보자.>>

<<내꺼 말이야. 가만있거라.>>

이번것도 역시 치파오를 입고 단발을 하였는데 자색은 먼저것만 좀 못하였다.

<<어떻냐?>>

<<응 그럴듯하다.>>

사랑에 어두운 구소림의 눈에는 저의 사촌누이동생만 퍽 못한 약혼녀의 얼굴이 20세기의 서시 양귀비로 보이는 모양이라 김봉구는 구태여 바른말을 하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구소림은 좋아서 더운 날씨도 잊어버리고 싱글싱글 웃으며

<<시(市)상회 회장의 막내딸이다. 5단위수자의 지참금이 딸린 아가씨다. 경쟁자가 어찌나 많은지... 넨장... 애먹었다.>> 하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알고보니 구소림은 염전사상은 즉 그가 전쟁을 싫어하는 까닭은 제가 전장귀신이 되면 5단위수자의 지참금이 다른 놈의 차지가 될가봐서였다.

<<너 여기서 하루밤 묵어가라.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같이 한잔 해야지.>>

<<안되여 안되여. 우린 해있어서 등전까지 가야 해. 남창 우리집 주소를 적어주께... 거기다 편지해라. 나한테 꼭 전한다. 섭섭하지만 이담에 다시 만나자. 내 우리 사촌누이동생에게 네 이야기를 하마. 그 애가 나한텐 절대루 복종한다. 그러구 너 조심해라. 장교인것만 알면 그놈들 소총, 기관총 몰방울 퍼붓는다. 우리 련대에서두 벌써 여럿이 죽었어. 너 왕수전 알지? 산동놈 말이야. 그 애두 바로 요 나달전에 죽었다. 개죽음 아니냐? 조심해.>>

구소림이 저의 패잔병 쇰직한 대오를 다시 불러모아 데리고 등전방향으로 떠나가는것을 길가에 서서 점도록 바라보다가 김봉구는 머리를 설레설레 젓고 돌아서며

<<사촌매부?>>

한마디 뇌고 씩 웃었다.

이삼일 지나서 칠팔마장, 팔구마장씩 앞에 나가있는 각중대는 벌써 홍군과의 접촉에서 사상자가 나고 또 로획물도 있었으나 련대본부에 딸린 경위소대는 불의에 대처할 준비만 갖추었지 정작 홍군은 그림자도 구경을 못하였다. 김봉구가 5만분의 1지도를 펼쳐놓고 골똘히 들여다보며 아무리 연구를 하여도 혁명근거지로의 탈출이란 막연하기만 하였다. 련대본부의 뢰가성 가진 호남사람 중위부관 하나가 무슨 말을 이르러 왔다가 살금살금 잠자리 잡는 걸음걸이로 등뒤까지 와가지고 갑자기 어깨를 탁 치며

<<이 사람이 갑자기 작전참모가 되려는가!>> 하고 웃었다.

<<아 뢰형. 어서 앉으라구.>>

뢰부관이 김봉구의 끌어당겨주는 걸상에 턱 와 걸터앉자 바람에 푸념을 하였다.

<<이거 저기 어디 해먹겠나. 두메산골에 들어와서 재미붙일게 무어 하나나 있어야지. 계집이란것두 상판대기 반반한건 하나두없구. 넨장할.>>

<<그래 여태 사크(콘돔)를 하나두 못 팔아먹었어?>> 하고 김봉구가 웃으니 뢰부관은 권연갑에서 권연 두가치를 꺼내여 한가치를 김봉구를 주며

<<하나두 못 팔아먹기야 왜... 더러는 팔아먹었지.>>하고 마주웃었다. 그리고

<<불.>>하니 김봉구가 성냥을 그어서

<<자.>> 하고 먼저 뢰부관에게 대주었다.

뢰부관은 군관학교때 김봉구의 2년 선배였다. 그는 전형적인 국민당군대의 장교로 언제나 멜가방속에 화류병예방으로 사크를 서너타스씩 준비해가지고 다녔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넓은 중국땅의 어드메를 가나 배갈, 땅콩, 갈보 이 세가지는 꼭 있다는것이였다. 따라서 술과 노름과 오입질은 사실상 그들의 생활내용의 팔구십퍼센트를 차지하고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벼슬이 오르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한 한낱 수단에 불과하였다. 정의의 전쟁이니, 비정의의 전쟁이니 하는따위는 애당초부터 생각도 해본적이 없었다. 춘추시대의 전쟁관을 그들은 고스란히 계승하고있었다(거금 2천여년전에 공자가 말하기를 <<춘추시대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봐 호씨, 내 하나 소개해주까?>>

<<그만두어. 난 지도 들여다보는 재미가 제일이야.>>

<<저런 사람 좀 보아. 그런 고행승적수업을 빨갱이들이나 하는 거라니, 인간일생이 얼마나 된다구 그렇게 고지식쟁이노릇을 하나 사람두...>> 하다가 뢰부관은 갑자기 목소리를 줄여가지고 귀속말하듯

<<최고두 오입질을 하다가 부인에게 들켜서 손이야 발이야 빈게 한두번이 아니래여.>>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최고란 장개석을 지칭하는것이고 또 부인이란 송미령을 지칭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임자두 그 본을 따는건가?>>

<<아 우리야 그분의 제잔데 어떻게 그 본을 안 따나?>>

<<그래 그분이 너더러 작전지도 대신에 사크를 짊어지구 다니라던?>>

<<응, 그러더라, 왜?>>

두 사람은 서러 마주보며 한바탕 웃어대였다.

<<이봐, 부상병들 노놔주라는 위문품이 한차 왔다. 소고기통졸임, 과일통졸임이 가뜩하더라. 이따 어둡거든 슬그머니 와 좀 갖다먹어라. 그걸 일러주러 왔다.>>

<<고마웨. 그렇지만 부상병들 노놔주라는걸 내가 어떻게...>>

김봉구가 말하는 중간에 뢰부관이 벌떡 일어서며

<<임마, 우리는 중앙군의 장교야! 구세군 예수쟁이가 아니야. 총을 팽개치구 마작쪽을 걸머메구 도망질치는 놈들을... 개코구멍 같이... 위문은 다 무어야.>>

말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고개를 돌이키고

<<이따 올 때 저레 잡낭(즈꾸로 만든 멜가방)을 두어개 메구오나.>>하고 말을 일렀다.

하긴 김붕구도 화선에서 도망쳐나오는 놈들이 총과 탄약을 버리고 전대에 담은 마작쪽만 걸머멘것을 본 일이 있었다.

뢰부관은 학교를 나온지 불과 이태 남짓한 동안에 벌써 부관노릇에 미립이 났었다. 전형적인 중앙군의 장교로 되였었다.

뢰부관이 돌아간 뒤에 김봉구는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방대좌의 하던 말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때 방대좌는

<<탈춫이 그렇게 여의할가?>> 하고 고개를 비틀었었다. 깅봉구는 속으로

(방대좌의 말이 과연 옳았구나!) 하고 탄복을 하였다.

어떻게 하면 화선에를 좀 나가볼수 있을가 하고 김봉구는 여러가지로 궁리해보았으나 도무지 좋은 꾀기 머리에 떠올라주지를 않았다. 겹겹히 늘여진 적아의 경계선을 뚫고 허턱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뺄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렇게까지 동경하는 혁명근거지가 엎어지면 코가 닿을만한 거리에 있었다. 그렇건만 갈수가 없으니 정말 지척이 천리고 안타깝기짝이 없었다.

김봉구가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보내는중에 뜻밖의 사건 하나가 생겼다. 김봉구 수하에서 제일 똑똑한 랑가성 가진 분대장이 다저녁때 어딘가 모르게 좀 수상스러운데가 있는 행인 하나를 검문하다가 종내 의심이 풀리지가 않아 소대본부까지 련행을 하였다. 김봉구가 보니 그 련행되여온 사람은 30 전후의 허름한 농민차림을 한, 보따리 하나를 손에 든 말라꽹이인데 등밀려 들어와 장교앞에 서자 촌닭 관청에 잡아다놓은것 모양 어리둥절해하였다. 김봉구가 분대장을 시켜 걸상 하나를 들어다가 그 사람을 앉힌 뒤에 으르딱딱거리지 않고

<<겁내지 말고 차근차근 묻는 말이나 대답을 하시오. 대체 어디사는 무엇하는 사람인데 어디를 가는 길이요?>>

온언순사로 말을 물었다. 그제야 그 사람은 마음이 좀 가라앉는듯 떠듬떠듬 묻는 말에 대답을 하였다.

<<녜 나리, 저는 저 락안... 락안 아시지요? 녜 그 락안에 사는 농군입니다요. 엊저녁에 큰삼촌의 통부를 받구 지금 부랴부랴 초상치르러 가는 길입니다요... 네 나리.>>

말하며 그 농님은 죄송스러운듯이 걸상에 허리를 앉은채 허리를 굽석굽석하였다.

<<그 삼촌네가 어디 사는데?>>

<<녜 나리, 저 황파에서 농사를 짓습지요.>>

<<황파? 아니 황파라면... 적구가 아닌가!>>

<<글쎄올시다. 저희야 그런걸 뭐 압니까? 아무데나 일가집이면... 서루 오가는겁지요... 녜 나리.>>

<<음. 그래 당신 성이 뭐요?>>

<<저 말입니까? 녜 저는 랑가올시다. 우리 거기는 랑자가 많습지요... 녜 나리.>>

김봉구와 랑분대장이 한번 마주보고 다같이 빙그레 웃었다. 모르고 일가를 잡아들인것이 우스워서였다.

<<그 보따리를 끄르시오. 뭐가 들었나 좀 봅시다.>>

<<녜녜, 고대 분대장님께서 다 뒤져보셨는뎁쇼... 녜 나리...>>

끌러놓은 보따리에는 초상치르는데 쓸것인듯싶은 백포 한필과 길에서 요기할 미시가루를 담은 조꼬만 자루 하나 그리고 갈아입을 옷 한벌과 헝겊신 한컬레가 들어있을뿐... 의심쩍은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봉구가 랑분대장을 보고

<<다 뒤져봤다구?>> 하고 물으니 성질이 끼친 랑분대장은

<<녜 한번 뒤져보긴 했습니다만...>> 하고 대답은 하면서도 의심이 다 풀리지는 않는 얼굴이였다. 김봉구가 다시 그 농민에게

<<몸에 지닌것두 한번 다 좀 내놔보시오.>> 하고 명령하니

<<녜 나리.>>

대답하고 농민은 곧 왼쪽 호주머니에서 때묻은 무명수건 하나를 꺼내놓고 또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성냥 한갑과 중국은행권 오륙원에다 은전 몇잎, 동전 몇잎을 함께 꺼내놓았다. 그리고 목덜미에서 담배쌈지가 매달린 곰방대를 뽑아내놓았다. 수건은 농민이 훌훌 털어보이고 담배쌈지는 분대장이 겉으로 한번 주물러보고 또 아가리를 열고 손가락으로 속을 샅샅이 휘적거려보았다.

헛물을 켠 분대장이 소대장을 쳐다보니 그 소대장 역시 덤덤히 말이 없다. 한동안 서로 마주보기만 하다가 김봉구가

<<그 보따리 도루 싸시오. 그러구 이것두 다 도루 집어넣으시오.>>

말하고 책장을 덮으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

<<아 잠간, 그 성냥갑 좀 봅시다.>> 하고 손을 내미니

<<녜? 아, 성냥갑... 녜 나리, 예 있습니다.>>하고 성냥갑을 건네는 농민의 손이 알릴듯말듯 떨리였다. 얼굴빛이 변하는것도 김봉구는 보았으나 농민의 등뒤에 서있는 분대장은 보지 못하였다. 김봉구는 대번에

(이 성냥갑에 무슨 곡절이 붙었구나!)

륙감적으로 느꼈다. 김봉구가 성냥갑을 받아서 속을 뽑아가지고 책상우에 폭 엎으니 오소소 쏟아지는 성냥개비속에서 똘똘 만 종이쪽지 하나가 드러났다. 깅봉구가 얼른 그 쪽지를 집어서 조심스레 살살 펼쳐본즉 거기에는 만년필글씨로 깨알같이 박아쓴 글자가 빼곡하였다. 분대장이 눈이 휘둥그래 지켜보는 가운데 김봉구가 쪽지에 적힌 사연을 찬찬히 읽어보니 바로 책상너머에 앉았는 농민-혹은 농민복색을 차린 사람-이 입이 백이라도 공산당의 련락원이 아니라고 잡아떼지 못할 증거가 드러났다. 김봉구가 쪽지를 손에 쥔채 <<삼촌의 통보를 받고 가는 길>>이라던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니 그 사람은 이때까지 어리숙한체하던것과는 딴판으로 뒤에 섰는 분대장을 돌아보고

<<여보, 나 목이 마르니 물이나 좀 떠다주우. 시장해서 저레 미시가루두 좀 먹어야겠소.>>

뻔뻔스러울 정도로 수월스레 심부름을 시켰다. 분대장이 억이막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것을 한번 보고 김봉구가 다시 그 공산당련락원에게

<<이젠 이실직고하는게 좋잖을가?>> 하고 달래는 어투로 말하니 그 사람은 대뜸

<<다 알구서 무얼 또 물어? 난 인젠 할 말 다했으니 더 묻지 마우.>> 하고 매몰차게 거절하였다. 김봉구가 엄포로 권총을 빼여 책상우에 탁 놓으니 련락원은 코방귀를 뀌고 고개를 외쳤다. 아무때고 적에게 붙들리기만 하면 꼭 죽을것을 각오한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보일수 없는 오기였다.

김봉구와 분대장은 어이없는 눈으로 서로 마주볼뿐. 이때

<<소대장님, 저녁식사를 가져와두 좋겠습니까?>>

취사병이 문앞에 와 차렷자세를 하고 품하여 김봉구는

<<응.>>

대답하고 곧 분대장더러

<<저 사람두 데리고 가 저녁을 먹이두룩. 그러구 감시는 엄밀히하되 소문을 절대루 내지 말두룩. 이건 중대사니까 좀 이따 내가 련대장께 직접 가 보고해 지시를 물어가지고 처리를 할테니까. 알겠나? 인격을 모욕하거나 손찌검을 하는따위의 일이 없두룩. 알겠나?>> 하고 신칙하니 분대장은 웃몸을 꼿꼿이 세우고

<<녜 알겠습니다!>>

대답한 뒤 다시 련락원을 보고

<<자 갑시다. 어서 일어서시오.>>

제법 부드럽게 가시 없는 말씨로 재촉을 하였다.

김봉구는 생각하는바가 있어 저녁을 미리 든든히 먹었다. 다 먹고나서 멜가방에다 필요한 물건들들 꼴딱 챙긴 뒤에 권총을 검사해보고 또 손전등을 시험적으로 켰다껐다 해보았다. 그런 연후에 통신병을 불러서 백성집에 가 마치 하나를 좀 빌려오라고 시켰다. 열아홉살 먹은 통신병은 득돌같이 가 마치를 빌어가지고 와서

<<어디다 못을 박으실라는지... 제가 박아드리겠습니다. 소대장님.>> 하는것을 김봉구는

<<아니 거기 놔두구 나가있거라. 이따 박을 때 다시 너를 부르마.>> 하고 말하여 통신병을 물리였다

김봉구가 방안을 한번 둘러본 뒤 밖에 나와 등뒤의 문을 꼭 닫고 시적시적 걸어서 련대본부로 향하였다. 큰 농가(마을에서 내노라 하는 부농의 집)에 자리잡은 련대본부에 들어와서 김봉구는 곧바로 련대장실을 찾아들어가지 않고 가는 길에 첫머리에 있는 부관실에를 들리여 뢰부관과 둘이서 말살에 쇠살에 한바탕 이야기장을 벌였다. 늘어지게 앉았다가 바깥이 아주 캄캄해진 뒤에 갑자기 생각난듯이

<<이거 내가 임자 심심풀이해주다가 공사를 그리치겠네. 가봐야지.>> 하고 일어서니 잡소리하는 흥이 미진한 뢰부관은

<<사람두... 급할게 무어 있어? 어서 더 앉아 놀다 가라구.>> 하고 가지 못하게 붙들었다. 김봉구가 뿌리치고 나오면서

<<나라일이 급한 때 언제 잡담할 새가 다 있어!>> 하고 거짓으로 꾸짖으니 뢰부관은

<<잡소리는 제가 여태 늘어놓구... 누구더러 잡소릴 한대?>> 하고 웃으며

<<어서 꺼져라, 꼴두 보기 싫다!>>하고 손을 내저었다.

김봉구가 처소에 돌아오는 길로 곧 행군할 때처럼 멜가방을 엇메고 빌어온 마치를 겉으로 보이지 않게 허리춤에 지른 다음 손전등을 들고 일어서서 통신병을 불렀다.

<<가서 랑분대장더러 범인을 곧 데리구 오라구 해.>>

<<녜!>>

랑분대장이 지체없이 결박지운 범인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김봉구가 짐짓 위엄을 부리며 엄한 목소리로

<<단단히 묶었나?>> 하고 따지듯이 물으니 랑분대장은 덩달아 꽛꽛해지며

<<녜 단단히 묶었습니다!>>하고 복창하듯 대답하였다.

<<그럼 떠나자.>>

김봉구가 일부러 신비스럽게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범인과 분대장을 앞세우고 밖에를 나와서는

<<왼쪽으루.>>

련대본부로 가지 않고 반대편-동구길로 향하였다.

밤하늘이 서쪽 절반은 구름에 가리여 시커멓고 동쪽 절반만 별이 총총하였다. 동구밖 물웅뎅이에서는 철머리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스러우면서도 또 그윽하였다. 세 사람은 묵묵히 걸었다. 어둠을 두려워하는것은 인류가 원시사회이전의 류인원시가부터 이어받은 천성이다. 어두은 밤길을 향방도 모르고 남의 의지에 따라 걸을 때 누군들 무시무시한 느낌이 없으랴. 그러나 군대에서는 오직 복종만이 있어야 하므로 부하된 사람은 상관에게 향방을 물어볼 권리가 없다. 범인이야 당연하게 저를 죽이러 가는줄 알았을터이지만 소대장의 의도를 모르는 분대장은

(대체 련대장이게서 무슨 명령을 받았기에 이 량반이 이러는가?)

속으로 어지간히 궁금하였다.

동구에 서있는 우중충한 느티나무밑에서 어둠속에 몸을 숨긴 보초가 격발기를 절커덕 소리내며

<<군호?>> 하고 꾸짖듯이 물었다.

<<청룡.>>

김봉구가 나직이 대답하니 보초는 갑자기 죽은듯이 말이 없어 어둠에 싸인 사위는 또다시 괴괴해졌다.

경계선 하나는 무난히 통과하였다. 얼마 아니 가서 곧 소로길로 잡아들었다. 분대장은 긴장하여 앞세운 범인의 포승줄을 더욱 단단히 틀어쥐고 걸었다. 그 분대장의 바로 뒤를 김봉구가 따라갔다. 서너마장쯤 왔을 때 김봉구가 허리춤에 질렀던 마치를 슬그머니 빼드는결로 앞에서 걸어가는 랑분대장의 군모 쓴 뒤통수를 힘껏 내리깠다. 날벼락을 맞은 랑분대장-중앙군의 중사-은 악 소리도 못지르고 그자리에 푹 고꾸라졌다. 그 손아귀에 단단히 틀어쥐였던 포승줄이 저절로 놓여졌다. 김봉구가 얼른 마치를 내던지고 웬 영문을 몰라 오리둥절해 서있는 련락원에게로, 길바닥에 너부러진 송장을 에돌아 다가가며

<<동무, 그 포승줄 끄릅시다.>>

격동적으로 말하니 묶이워서 죽으러 가는줄만 알았던 련락원은 억이 막혀 그저 멀거니 서있기만 하였다. 김봉구가 단단히 묶은 포승줄을 끌러버린 뒤에 손전등으로 송장을 비추며 그 어깨에 엇멘 모젤권총의 멜빵을 재빨리 벗겨내여 팔목을 주무르고 서있는 련라원에게

<<옜소.>> 하고 갑채로 건네주었다.

<<자 인제 갑시다. 나두 혁명근거지를 찾아가는 사람이요. 어서 앞장을 서시오. 국민당군대의 경계선을 넘는건 내가 담당하리다. 그외는 다 동무가 맡으시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신문을 하던 사람과 신문을 받던 사람은 이날 밤의 군호-<<청룡>> 두글자를 내대고 세겹의 경계선을 별말썽없이 통과하여 한밤중이 채 되기전에 국민당의 통치구역을 벗어났다.

자욱길로 변변치 않은 나무길이건만 앞선 사람은 발씨가 익어서 그런지 별로 힘들지 않게 걸었으나 처음 이렇게 꼬불꼬불하고 비탈진 길을 더구나 캄캄한 밤중에 걸어보는 김봉구는 땀을 빼였다.

<<힘드시지요?>>

<<아닌게 아니라 좀 뻐근하우.>>

<<조금만 더 견디십시오. 인제 조 등성이까지만 올라서면... 다리를 뻗구 편안히 누워 쉬실수가 있습니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난 따라가기가 힘이 드우.>>

<<그럼 이젠 서두를게 없으니... 천천히 걸으십시다.>>

그 사람의 말대로 등성이에 올라서니 펀펀한 풀밭 하나가 나서는 한소대 50명 사람이 한꺼번에 다 드러누워도 넉넉할만큼 널직하였다. 김봉구가 좋아서

<<아, 이거 일등침대 맞잡이구려!>> 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으니 그사람도 따라앉아 다리를 뻗으면서

<<어서 좀 누워 쉬십시오.>>하고 권하였다. 김봉구가 엉뎅이에 드리운 멜가방을 앞으로 끌어당기고 큰대자로 번듯이 나가누워서

<<동무두 어서 누우시오. 랑동무랬지요?>> 하고 물으니 그 사람이 눕지 않고 그대로 앉아서

<<제 성은 진갑니다. 진시황이란 진자 진갑니다.>> 하고 웃었다.

<<아까는 랑가라더니?>>

<<그거야 아무렇게나 쥐여친겁지요.>>

<<난 또 정말 랑씨라구. 하하!... 그런데 왜 눕지 않소? 어서 편히 좀 눕구려.>>

<<저는 보초를 설테니 어서 한숨 주무십시오. 둘이 다 잠이 들면... 만일의 경우에 어떻거겠습니까?>>

<<자기야 어떻게 자겠소. 좀 쉬여가지구 또 떠나야지.>>

<<날이 밝을 때까지는 여기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건 또 어째서?>>

<<제가 근거지를 떠난지가 여러날 되는 까닭에 오늘밤 군호를 몰라서... 우리 편 경계선을 밤에는 못 넘어들어갑니다. 그러니 구태여 위험을 무릅쓸면이야 있습니까?>>

<<딴은 그렇겠소.>>

인하여 두 사람은-하나는 누워서 하나는 앉아서-이야기를 나누었다.

<<근거지에 조선사람이 있는걸 진동무는 혹시 못 보셨소?>>

<<조선사람 말입니까? 있지요. 우선 저의 상급부터가 조선분인걸요.>>

김봉구가 누가 잡아일으키는것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가 성명이 무어요?>>

<<정씨라지요. 갑을병정의 정자 정씨랍니다.>>

<<김씨가 아니구 정씨요?>>

<<녜 정씨 틀림없습니다.>>

<<김씨성 가진이는 없소 거기?>>

<<왜요. 서금서 언젠가 한번 무슨 대회때 연설하는걸 들은적이 있는데... 그분도 조선분이랍디다. 김무어라던가?...>>

<<김무정이라구 하잖습디까?>>

<<맞습니다 맞습니다... 김무정... 틀림없습니다. 김무정이랍니다.>>

김봉구가 진동무의 손을 덥석 잡고 감개무량하여 웨치듯이 말하였다.

<<고맙소 진동무, 고맙소! 내가 지금 바루 그 이름... 그 김무정을 찾아가는 길이요!>>

추천 (2) 선물 (0명)
IP: ♡.50.♡.69
로즈박 (♡.39.♡.172) - 2023/11/05 20:18:03

무사히 안전하게 공산당편으로 넘어갓음 좋겟어요..
나중에 다들 공산당쪽으로 넘어가는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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