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균렬(龟裂)

더좋은래일 | 2024.04.22 19:19:40 댓글: 2 조회: 307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3283

소설


균렬(龟裂)

1

누런 털이 보수수 난 송아지가 왼뭄에 하나 가득 따스한 해빛을 받고 누워가지고 등어리에서 아지랑이가 뭉게뭉게 피여오르는것도 모르고 까무락까무락 졸고있다.

못(池)은 말간 하늘과 솜과자보다도 더 하얗고 더 가벼워보이는 구름을 반영(反映)하고 그리고 고요하다. 저쪽 밭사이 길을 괭이를 메고 건드적건드적 걷고있는 농부의 그림자가 아주 짧다. 언덕밑 집에서 닭이 울었다.

기지개를 쓰고 하품을 하고싶은것을 그렇게 하는것조차도 노력이 들어서 못하겠다는듯싶은 게슴츠레한 눈을 반쯤이나 감은 게으름보 머슴이 양지바른 돌각담밑에 지직을 펴놓고 앉아서 이를 잡다말고 끄떡끄떡하면서 고무풍선 같은 코방울을 물었다 쭈그렸다 하고있다.

바람은 없다. 그러나 복숭아꽃이파리는 파리파리한 잔디우에 소리도 없이 지고있다.

그 분홍색꽃이파리가 아까운 기색도 없이 담뿍 뿌려진 못가 잔디밭에 정성들여 깨끗이 빤 빨래를 널어놓고 그것이 마르는 동안-여기저기서 여러가지 빛의 꽃을 꺾어다가 그 옷임자에게 주고싶은 꽃다발을 만들고있는 처녀는 얼마전에 친(琴)이라고 부르라고 그 옷임자(김학천, 조선의용군 제X지대 제X대 대장)에게 말한 일이 있다.

꽃다발을 다 만들어가지고 들었다놨다하면서 모로 옆으로 우로 아래로 앞으로 뒤로 고개를 갸웃갸웃해가며 보고난 친의 두뺨에는 방싯 웃음이 떠올랐다. 그는 꽃다발을 잔디우에 살며시 내려놓고 일어나 가서 널어논 빨래를 만져보았다.

옷은 아직 채 마르지 않았다. 그는 도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는 꽃다발을 만들고 남은 꽃가운데서 손 닿는대로 한송이를 집어서 못 푸른 물우에 던져주었다.

못은 가느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수면(水面)에 비친 하늘도 구름도 쭈굴쭈굴하게 주름이 잡혔다. 꽃을 동동 띄우고 동요하다가 도로 조영해졌다.

친은 또 한송이 꽃을 던져주었다.

그 순간 <<쿵 우루릉->>하고 지진같이 땅이 흔들며 멀지 않은 곳에 포탄(炮弹)이 날아와 터졌다.

못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말았다.

졸고있던 송아지가 놀라서 <<매->>하고 울며 뛰여 일어났다.

친은 두손바닥으로 귀를 가리고 잔디우에 폭 엎드렸다.

<<쿵 우루릉->>또 터졌다.

못의 물이 출렁하고 파도를 일으키고 둥둥 떠있는 두송이의 빨간 꽃이 그우를 데굴데굴 굴렀다.

송이자가 <<매->> 소리를 지르며 밭가운데로 뛰여 달아났다.
그리고는 그만 조용해졌다.

벌이 한마리 윙-하고 가는 날개소리를 내며 날아와서 꽃다발우에 앉았다가 그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친은 살며시 일어나 하늘을 쳐바보았다. 파란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복숭아꽃이파리가 또 팔팔 날아와 흩어졌다.

친은 꽃을 또 한송이 집어서 못우에 던졌다.

그때 누가 발자취도 없이 살짝 뒤로 와서 그의 두눈을 꼭 가렸다.

친은 조용히 두손으로 자기의 눈을 가린 손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까칠까칠한 나무끌커리 같은 손이였다.

<<알았어요, 누군지...>>

친은 눈가린 두팔목을 꼭 잡으며 낮게 말했다.

<<......>>

등뒤에서는 말이 없다. 그러나 숨소리가 들렸다.

<<학천.>>

친의 입가장자리에 웃음이 스쳐갔다.

<<아냐.>>

등뒤의 사나이가 말했다.

<<그럼 누구?>>

<<맞쳐봐 어디.>>

<<맞췄는데 뭘.>>

<<정말?>>

<<정말.>>

<<틀리문 어떡할래?>>

<<안 틀려.>>

<<그래두 틀렸으문.>>

<<그럼 맘대루 해.>>

<<아.>>

하고 친이 승낙을 하니까 그제서야 눈을 가렸던 손이 스르르 풀렸다.

친이 돌아다보았다. 거기에는 회색군복의 청년사관(士官)이 눈에 가득히 웃음을 띠우고 말없이 내려다보고 서있었다.

김학천이였다.

조선의용군 제X지대가 주방(驻防)하고있는 난링(南岭)은 적진(敌阵)을 떨어지기로 5킬로 약(弱). 산지(山地)와 평야가 많다는 곳이다.

적아(敌我)의 진지(阵地)사이에 전답(田畓)이 있고 거기에서는 역시 농부들이 일을하는것을 볼수 있었다.

농민들은 포탄 같은것에는 무관심하게 되여버렸다. 그것은 뉘집 어린아이가 유리병을 깨뜨린것만큼도 자극을 주지 못했다.

전쟁은 그들의 정상적신경(正常的神经)과 평상상태(状态)의 심리를 마비시켰던것이다.

항일전쟁은 지구전의 양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따금 포탄이 날아와 터져서 여기저기 밭가운데 커단 구뎅이를 파놓고는 했다.

그러면 구뎅이는 처음에는 우물을 자주 팔 때 같이 흐린 물이 고였다가 그것이 맑아지면 거마리도 생겼고 물뱀도 떠돌아다녔다.

밤이 되면 달도 비치고 더운 때가 되면 개구리도 울었다.

학천이 숙영(宿营)하고있는 조그마한 농가의 주인 로양(老杨)은 귀밑에 흰 머리털이 드문드문하고 허리가 굽은 순박한 농부였다.

그는 자기 집에 들어있는 이 외국사람 군대(军队)의 젊은 사관에게 모든 일에 있어서 거짓없는 친절을 보여주었다. 그 딸 친도 그러했다.

전장(战场)은 이따금씩 날아오고 날아오고 하는 포탄과 부분적이고 극히 적은 충돌을 제외하면 이렇듯 평화스러워보였다.


2


정면(正面) 적의 거점(据点)에 병력이 집결된다는 경보가 들어왔다.

전선은 갑자기 긴장했다.

비상경계가 발령되고 좌우량익(左右两羽)의 우군(友军)진지와 긴밀한 련락을 취해놓고 지대부(支队部)에서는 작전회의(作战会议)가 열렸다.

적이 말하는 춘기공세(春季攻势)가 막 시작되려는것이였다.

우군은 막반의 반격준비를 다 갖추고 대기했다.

적진을 정찰하고 돌아오는 정찰대는 시시각각으로 익어가는 전기(战机)를 알리였다,

이리하여 늦어도 래일저녁까지는 공격이 개시되리라고 추단(推断)을 내린 날 밤 캄캄하고 흐린 하늘에는 별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전 령시(零时) 5분이 조금 지났을즈음. 우군 경계구역을 순찰하고있던 이동보초가 작전지휘부 뒤산 서낭당(城隍堂)에서 훅하고 별안간 불길이 솟아오르는것을 발견했다.

적에게 포격목표를 줄것을 념려해서 담배를 함부로 피질 못하는 긴장된 전선의 밤이였다.

깜짝 놀란 이동보초가 멈칫 서서 바라보려니까 불은 또 이어서 훅훅 하고 타올랐다. 이동보초는 당장에 그 불길이 솟아오르는 현장(现场)으로 몰켜갔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그곳에 가닿기도전에 적의 포탄이 날아와 터졌다.

우뢰 같은 포성과 함께 검붉은 화약연기를 안은 화광이 번뜩하고 일어서 어둠속에 잠겼던 불꽃으로 물들여서 눈앞에 드러냈다.

한발(发) 또 한발. 60초(秒)씩의 정확한 사이를 두고 열두발의 포탄이 그 부근에 날아와 터졌다.

이 적의 폭격은 우군진지에 적지 않은 손실을 주었다.

포격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서넝당으로 쫓아간 이동보초는 거기에 얼빠진 사람같이 멍하니 뻐까르고 서있는 늙은 농부 하나를 발견했다. 그의 주위에는 타다남은 지푸래기가 어수선하게 흐러져있었다. 그것은 친의 아버지 로양이였다.

이동보초는 이 군령(军令)의 위반자(违反者)를 체포해가지고 끌고 내려왔다.

다음날 작전지휘부에서 로양은

<<...그래 그 밀정(密侦)도 다 불었으니까 똑바른대로 숨김없이 자세하게 다 말을 해봐. 어디 어떻게 된 일이야? 대체...>>

하는 심문에 대해서

<<네! 숨김다니요. 온 무슨 말씀입니까. 죄다 말씀 드립죠.>> 하고 머리를 숙이고 한숨을 섞어가며 토막토막 끊어서 이야기했다.

<<이 늙은 놈이 아마 죽을 때가 됐나봅니다. 그러찮구야 어디 이런-아니 그런데 어제저녁때 말씀입니다. 제가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려니까 저 건너마을에 살던 그 노름군 아 이름이 뭐랬더라요. 도무지 생각이 나야죠. 여하튼 그 곰보녀석 말씀입니다. 아 그 녀석이 저를 붙잡구 제 어머니 병환이 중한데 복술(卜术)에게 물어보니까 저 그 산 서넝당에 밤중 자정(子正)때 가서 앓는 사람의 손톱허구 머리카락을 백지(白纸)에 꼭꼭 싸서 벼짚단속에 넣어서 살르문 병에 낫는다구 해서 지금 이렇게 령감님을 찾아왔는데- 단 두식구에 제가 밤중에 없으면 누가 앓는이의 병구완을 할 사람이 있어야죠. 그러니 어려우신대루 령감님께서 오늘밤 좀 수고를 해주시우. 이건 변변치 못한겁니다만 허면서 양(洋)비단으로 만든 담배쌈지를 하나 내주겠죠. 그래 저는 그 효성(孝诚)이 하두 기특해서 아니 이건 뭘 이러시우. 그러케 자당께서 병환이라시니 사람의 정(情)으로 의례껏 도와드려야 헐껀데. 어서 그럴랑 념려말구 돌아가서 병구완이나 잘허시우. 내 오늘자정때 꼭 정성을 들여서 그렇게 해올리리다, 허구 사양을 했습니다만 하두 그러기에 정 그렇다면 허구 그만 그 담배쌈지를 받었습니다그려. 온 천만뜻밖에 이런 일을 저질러놀줄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만 깜빡 그놈한테 속았습니다그려. 그놈이 일본허구 내통을 헌줄 알기만 했더문야 어디 그냥... 온 이 일을 어쩝니까?>>

하고 이 선량하고도 어리석은 농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이게 그 담배쌈집니다.>>

하고 자주빛 양비단으로 만든 예쁘장스러운 담배쌈지를 꺼내서 원망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이리하여 이 사건은 즉시 림시(临时)군법회의에 회부되였다.


3

<<...아니 이것은 일종의 과실(过失)입니다. 과실과 고의(故意)와 그 사이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어야 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지(无智)한 농민들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도 이번 사건은 관대한 조치(措处)를 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학천은 말을 끊었다.

<<농민들의 그 무지가 무엇보다도 무서운것입니다. 나는 아까도 말한것 같이 학천동지의 의견과는 정반대의 의견을 가졌습니다.>>

하고 김시광(제X대 대장)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림시군법회의는 이 두개 정반대의 주장(主张)이 대립(对立)되여서 끌어내려갔다.

간부들은 묵묵히 두 사람사이에 벌어진 불꽃이 툭툭 튀는듯한 론쟁을 듣고있었다.

학천의 주장하는것은 고의가 아니고 모르고 한것이니까 관대한 처분을 해야 한다는것이였고 시광이 주장하는것은 모르고 한것이라고 해서 관대한 처단을 내린다면 이 모르는것뿐만인 농민들틈에서 군대가 그 작전임무(作战任务)를 다할수 없다는것이며 또 이 사건의 결과는 막대한 피해(被害)로 보아서나 민중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것으로 보아서나 엄중한 처치를 해야만 한다는것이였다.

회의를 하는 동안 학천의 모리속에는 불쌍한 늙은 위법자(违法者)의 실신(失神)한것 같은 쭈글쭈글한 얼굴과 친이 애타게 옷자락을 쥐여뜯으며 울던 눈물에 어지러워진 얼굴이 겹쳐서 나타나서 사라지지않고 핑글핑글 돌았다.

학천은 열(热)에 떴다. 시광의 리지(理智)는 점점 더 싸늘하게 식어갔다.

<<학천동무의 주장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소자본계급적감상에서 오는것이라고 규정할수 있다는것입니다. 그것은 철두철미 소부르죠아적 인도주의적 극히 값싼 동정인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부정한다고 하면 그럼 그밖에 반드시 또 다른 어떤 인원이, 즉 사적(私的)감정 같은것이 그 리면에 잠재(潜在)해서 활동하고있지나 않은가 의심하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시광의 이 한마디는 상대자를 침묵시키기 충분하다.

회의는 급전직하로 위법자의 사형을 결정하고 그리고 끝이났다.

회의실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학천의 눈은 빨갛게 충혈했다.

시광이 그 늘씬한 몸집에 긴 다리로 침착하게 저벅저벅 걸어가는것이 보였다.

학천은 뚫어지게 그 뒤모양을 쏘아보고 서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웨쳤다.

<<이 랭혈의 짐승, 말뚝, 제국주의관료. 공식(公式)주의자.>>

4

여름이 왔다. 우거진 록음이 방어공사(防御工事)를 뒤덮었다.

적의 정찰기는 우군진지 상공을 헛되이 비잉잉비잉잉 선회하다가는 얻는것 없이 그냥 달아나버리거나 혹 그러찮으면 이따금씩 시탐(试探)의 폭탄을 얼토당토않은 곳에 두어개씩 던져보기도 하고 기관총을 소사(扫射)해보기도 하고 했다.

군복저고리를 벗어서 나무가지에 걸어놓고 새파란 이파리가 겹치고겹치고 해서 뜨거운 광선을 가리고있는 그 나무그늘에 비스듬히 누워서 오카리나를 불고있는것은 학천이였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속삭이는것 같은 소리를 내며 나무잎이 흔들리고 가지에 걸린 군복저고리가 펄렁했다. 그림자도 따라서 움직였다.

피리바람소리 같은 오카리나가 엘레지의 애조(哀调)를 연거퍼 두번 불렀다.

그러나 주위의 생물이 모두다 그 슬픈 곡조에 취해서 잠잠해진것 같던 그것도 잠시... 별안간 가까운 곳에서 수풍금(手风琴)이 베-쓰를 넣어 대군행진곡(그레이트 쏠줘스 마...취)을 소란하게 떠댔다.

학천은 입에서 악기(乐器)를 뚝 떼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소리나는곳을 노려보았다. 그것은 보지 않아도 시광일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지난봄... 군법회의에서 충돌한이래 두 사람의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다. 대립과 마찰이 그들사이에 끊임없이 계속됐다.

시광은 학천의 오카리나를 귀신 우는 소리, 계집아이 취미, 소극적, 감상적, 이런 말로 배격했다.

학천은 시광의 수풍금을 칠그릇 깨지는 소리, 마차(马车)가 자갈밭을 가는 소리, 미친놈 취미, 저돌적, 이런 문구로 비난했다.

시광이 오리알을 맛있다고 하면 학천은

<<그것도 입이냐? 저급취미.>> 이렇게 타기(唾弃)했고 학천이 짜장면이 맛있다고 하면

<<그것도 입이냐? 이단경향.>>

하고 시광이 반격했다.

변증유물적세계관(辩证唯物的世界观)만을 제외하면 기타의 모든것은 모조리 정반대의 대립상태였다.

대장(队长)들의 사이가 그러니까 그 부하들도 자연히 그것을 본받아서 매사에 대립형세를 이루었다.

제X대와 제X대는 부득이한 공사(公事)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절교상태(绝对状态)가 되여버렸다.

딴 지대(支队)에서는 이 지대를 불러서 대립물(对立物)의 통일(统一)지대라고 했다. 그래서 이것이 지대내의 합동동작과 단결에 지장이 될가 념려한 간부들은 여러번 중간에 나서서 두 대립된 대(队)사이에 협조를 알선했다. 그러나 두 대는 동시에 똑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대립상태는 사사(私席)에 한(限)해서만 있는것이다. 이상의 리유로써 우리는 중간에 제3자가 출마(出马)해서 협조 전선을 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각(各) 대 대항(对抗)의 실탄사격, 총검술, 풋물, 기타의 운동경기 같은것이 있을 때마다 그 대립은 점점 더 격화(激化)해갔다.

각 대의 대원들은 그 음악에 대한 취미도 자기 대 대장의 그것에 공명(共鸣)했다. 시광이 거느린 대의 대원들은 수풍금이 아니면 악기가 아니라고까지 극언(极言)했고 학천의 부하들은 오카리나밖에는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악기가 없다고 절찬(绝赞)했다.

반목(反目) 대립한 두 대는 서로 상대편을 골려주려고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터럭만한 기회라도 있기만 있으면 서슴치 않고 진공(进攻)을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그것이 성공하면 쾌재(快哉)를 불렀다. 그러면 패배한 편은 후일의 보복(报复)을 맹세했다. 골리고 곯고 하면서도 그들은 공동(共同)의 적 일본군대와 항쟁하는것만은 잊지 않았다.


그날 밤 학천은 기회를 엿보고 몰래 시광의 침실에 들어가서 테블우에 치장삼아 놓여있는 시광이 나의 <<유일한 애인>>이라고 이름지은 수풍금을 단도(短刀)로 푹푹 찢어서 환전히 못쓰게 만들어놓고 살짝 자기 침실로 돌아와서 너털웃음을 웃으며 혼자서 한참동안 엉덩춤을 추고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날

<<이번에야 어디 맘 푹 놓고 한번 본때있게 불어봐야지.>> 하고 싱긋 웃으며 오카리나가 들어있는 상자갑을 연 그는 <<앗>> 소리를 지르고는 그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자갑속에서 그 보중(宝重)한 악기가 산산 조각이 나서 가루가 되다싶이 돼있었다.

시광도 수풍금에 대해서는 입을 봉하고 말이 없었다.

학천도 가루가 돼버린 오카리나에 관해서는 아무 내색도 보이지 않았다.


5

8월 13일 상해사변 기념일 오전 령시 30분을 기(期)해서 항일군의 전(全) 전선은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게 되여있었다.

그 바로 전날 제X지대 최부지대장(崔副支队长)이 말에서 떨어져서 팔을 다치고 후방의원(后方医院)에 입원을 하게 되였다.

석차(席次)대로 로간부(老干部)인 제X대 대장 김시광이 그뒤를 이어 승급해서 부지대장의 직권을 시행하게 되였다. 그러나 간부의 결원(缺员)으로 원 대의 제X대 대장을 당분간은 겸임하게 되였다.

진지에서는 비밀리에 그러나 아무래도 어딘지 좀 어수선하게 모두들 공격준비에 바빴다. 이런 때면 언제나 리발병(理发兵)이 제일 녹아났다.

<<래일아침엔 시체가 돼서 적의 진지에 가 드러누워있을는지두 모르니까 예쁘게 수염이나 좀 깎구.>>

하는것을

<<이 녀석 죽을 놈이 얼굴단장은 웬 얼굴단장이야.>>

하고 옆에 섰던 딴 한 병정이 가로막으니까

<<내버려둬... 지옥에 가서나 한번 련애를 해보려나봐 그렇지?>>

하고 딴 병정이 말리니까

<<하하하하...>>

<<하하하...>>

면도칼을 든채 리발병까지도 따라서 웃었다.

학천이 군수처(军需处)에 갔다오다가 이 부하들이 웃고 지껄이고 하는 소시를 듣고 혼자 비죽이 웃으며 발걸음을 돌리려 할때

<<보고(报告)! 김대장동지.>> 전령병(传令兵)이 거수경례를 하고

<<지대부에서 곧 오시랍니다.>> 했다.

<<나를?>>

하고 학천이 물었다.

<<옛.>>

<<무슨 일이야?>>

<<모르겠습니다.>>

<<?...>>

학천은 전령병을 따라서 지대부로 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빨간 연필자국이 헝클어진 실뭉테기같이 얽혀져있는 군용지도를 펴놓고 시고아이 기다리고있었다.

<<?>>

<<앉우.>>

거기에는 응하지 않고 학천은 선채

<<지대장동무는?>>

하고 물었다.

<<진지시찰(阵地视察).>>

하고 시광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나를 오란것은?>> 하고 학천이 또 물었다.

시광이 대답했다.

<<작전임무전달.>>

<<어떤?>>

<<김학천대장은 제X대를 인솔하고 선발(先发)하야 적전 좌익 소고지(小高地)를 기습공격할것.>>

<<?>>

<<출반시간은 오늘밤 열한시 정각(正刻). 이 작전의 임무는 적의 주의(注意)를 한곳에 집중시키기 위한 양동전(阳动战).>>

<<께 꼬우 츠디!(给狗吃的=개가 물어갈것)>>

학천은 이렇게 웨치며 구두발로 <<탁>> 걸상을 걷어찼다. 걸상이 나가 떨어지며 들창옆에 놓여있는 조그만 탁자(桌子)를 쓰러뜨렸다. 탁자우의 근무병(勤务兵)이 꽃을 꺾어다 꽂아논 꽃병이 마루바닥에 철컥하고 떨어져 깨져서 물이 좌르르 쏟아지고 그우에 꽃잎이 뜨고 버물리고 했다.

시광이 벌떡 일어나며

<<무슨 폭행이야?>>

했다.

<<어쨌든.>>

학천은 손바닥으로 군용지도를 <<탁>> 때리며

<<난 안 간다.>>

하고 잘라서 말했다.

적진의 좌익 소고지는 적의 포병진지였다. 그것은 막기는 쉽고 뺏기는 어려운 곳이였다. 자연(自然)의 지형(地形)도 그렇고 방어공사도 그랬다. 그것은 제일 뚫기 어려운 요점이였다.

학천은 그것을 잘 알고있었다. 게다가 더구나 양동전이라는것은 적에게 우군의 정말 기도(企图)하는 공격목표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 딴 곳으로 그 주의를 끌어모은 작전이다. 양동하는 부대는 전 작전의 리익을 위해서 희생(牺牲)되는 부대다.

시광이 지금 자기에게 그 희생의 임무를 둘러씌우려는데 대해서 학천은 이렇게 반항했다.

<<안 가?>>

시광은 물었다.

<<그래 안 가.>>

학천은 대답했다.

<<왜?>>

시광이 또 물었다.

<<왜?>>

하고 학천이 반문했다.

<<왜 안 가?>>

<<그렇게 가구싶거던 네가 가라!>>

<<내가?>>

<<그래.>>

<<안된다. 그건 네가, 반드시 네가 가야 한다.>>

<<뭐야? 건방지게 네가 뭔데 날더러>>> 하고 학천이 한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시광이 천천히 말했다.

<<나는 너의 상사(上司)다.>>

<<......>>

학천이 추춤했다.

<<나는.>>

하고 시광이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부지대장 김시광 그리고 아까 전달한것은 상사의 명령.>>

학천은 하는수없이 발뒤꿈치를 모아서 억지로 부동자세(不动姿势)를 취(取)했다.

시광이 위엄있게 불렀다.

<<김대장.>>

<<넷.>>

이렇게 대답한 학천의 가슴속에서는 이글이글하는 시뻘건 분노(愤怒)의 불덩어리가 쿡 치밀어올랐다.

<<이놈의 자식 어데 두고보자.>>

그는 속으로 이렇게 웨치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전달한 명령에 충실히 집행할것. 그만 물러가.>>

하고 시광이 의자에 가 걸터앉았다.

<<넷.>>

학천이 경례를 했다. 그러나 시광은 고개만 끄덕여보이고는 테블우의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학천은 한참 그 옆얼굴을 노려보다가 그만 돌아서 나가버렸다.

학천의 저벅저벅하는 성난 구두소리가 차차 멀어져서 들리지 않게 되였을 때

<<흥!>> 하고 시광은 코웃음을 치고 의자등받이에 반듯이 나자빠져 기대고 두다리를 들어서 테블우에 얹고 군복바지주머니에서 화성탕(花生糖-콩엿의 일종)을 한조각 꺼내서 입에 넣고 <<와지작>> 소리를 내며 깨물었다. 그리고 만족한듯이 또 웃었다.


6

총공격(总攻击)이 개시(开始)되였다.

적은 중포(重炮)의 일제사격으로 이것을 맞이했다.

적과 우군 사이에 서로 주고받고하는 중포탄이 공기를 가르고 지나갈 때는 마치 기차가 지나갈 때 내는것 같은 소리를 냈다.

기관총이 매초 열한발 이상의 속도로 간단(间断)없이 불을 뿜었다. 총구에서는 독사의 혀바닥 같은 불길이 날름거렸다.

방어군(防御军)의 진지우에, 공격군의 머리우에 곳을 가리지 않고 날아와 터지는 폭탄의 화광, 번쩍할 때마다 굵게 높게 자주빛 섞인 검붉은 연기와 불길이 맹렬한 속도로 솟아오르고는 했다.

연기와 불길은 방어공사의 부서진 조각과 파손된 무기와 찍겨진 사람의 몸뚱이의 각 부분을 안고 올라갔다가 공중에서 흩어져 버렸다.

전장(战场)은 초연(硝烟)이 자욱하게 끼여서 호흡이 곤난해졌다. 달도 흐려졌다.

오전 네시. 전장은 혼란상태에 빠졌다.

적진의 몇 부분이 돌파되여 공격군이 그 돌파구(突破口)로 조수(潮水)같이 밀려들어간것이다.

우군이 적을 포위하면 또 딴 적이 우군을 포위했다. 서로 에워싸이고 앞에도 적, 뒤에도 적, 갈피를 찾을수 없게 되였다.

어두운 전야(战野)에는 혼전란투(混战乱斗)가 벌어졌다. 도처에서 처참한 백병전이 일어났다. 이리하여 날샐녙까지 맹렬한 싸움은 계속되였다.

동이 텄다. 포성이 차츰 가고 기관총이 입을 다물었다.

격전이 끝났다. 여기저기서 부상당한 전사들의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상처의 고통을 못이겨서인지 우는 소리도 들렸다.

아직도 채 개이지 않고 낮게 전장우에 떠돌고있는 초연을 뚫고 해살이 뻗쳐왔다.

검붉은 피에 끈적끈적하게 젖은 풀잎에 메뚜기가 툭툭 튀여다녔다.

땅이 여기저기 거북잔등같이 금이 가서 쩍쩍 갈라져있었다. 마치 맹렬한 지진이 지나간 때와 같았다. 중포탄이 땅속깊이 파고들어가서 터질 때 생기는 균렬(龟裂)이였다. 그것은 림시참호(堑壕) 대신으로 쓸수 있는것이고 교통호(交通壕) 대신으로도 쓸수있는것이였다.

학천은 란투속으로 전부 흩어져버리고 겨우 여섯명밖에 남지않은 부하를 데리고있던 균렬속으로 적의 눈을 피해서 기여들어갔다. 거기에는벌써 칠팔명의 군인이 들어있었다. 우군의 병정들이다. 그러나 선두(先头)의 학천은 추춤했다. 그것은 그 병정들이 제X대의 즉 시광의 부하들이였던것이며 또 현재 거기에 그 대 대장 시광이 섞여있었기때문이였다.

두 대장의 시선이 부딪쳤다. 잠시 그렇게 서로 마주 쳐다보고 있다가 시광이 저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학천은 말없이 기여서 들어갔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기관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서로 노리고있는 이러한 경우에는 날이 밝아서 시야(视野)가 열리면 목표가 드러나서 꼼짝도 할수 없는것이였다.

학천은 옆의 부하가 가진 총을 달래서 받아가지고 그 총끝에 자기가 쓰고있던 강모(钢帽)를 벗어서 씌웠다. 그리고 그것을 삐죽 균렬우로 내밀었다.

<<뻥>>하고 내밀기 무섭게 어디서 탄환이 날아와서 강모에 들어 맞았다.

<<이크>>

그는 목을 움츠러뜨리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강모를 조사해보았다.

구멍이 하나 빼꼼하게 뚫려져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당최 어림도 없다.>>

하고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학천은 시광과 같이 한곳에 있기는 무엇보다도 싫었지만 하는수 없었다.

시광도 학천과 같이 있기 싫은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하들끼리 서로 말없이 노려보고있다. 그 좁은 균렬속에서도 두 대사이의 간격(间隔)은 가능한 범위내에서 최대한도의 공간(空间)을 이루었다.

오월동주(吴越同舟). 머리우로는 탄환이 <<위잉위잉>>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지나갔다. 균렬밖에 나가볼수가 없으니 적정판단(敌情判断)을 할수가 없다.

우군도 그랬고 적도 그랬고 서로 구멍속에들 처박혀서 날이 어두워지기만 기다리고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해가 땅우에서 겨우 한아뼘이나 기여올라왔을가말가할 때였다.

대륙(大陆)의 살인적혹서(酷暑)-해가 하늘복판에 거의 오니까 그렇지 않아도 채 식지 않았던 땅이 후끈 화덕같이 달기 시작했다.

풀 한포기도 그늘도 없는 땡볕아래서 군인들은 마치 뭍에 끌려나온 메기 모양으로 늘어져서 헐떡거렸다. 땅 갈라진 좁은 틈바구니에 여럿이 겹쳐서 쪼그라뜨리고있으니까 땀냄새, 흙냄새가 질식할 지경으로 호흡을 압박했다. 강모속의 머리는 흡사 뜨끈뜨끈한 떡시루를 들쓴것 같았다. 입술이 바작바작 탔다. 그러나 바람은 없다.

그때 정면의 적이 어떠한 기도(企图)밑에서인지 갑자기 균렬을 향하여 공격을 개시했다.

균렬속의 열세명은 즉시 화망(火网)을 구성(构成)하고 그것에 응전(应战)했다.

실상 이 균렬은 적의 련락선을 차단(遮断)하는 위치에 가로놓여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적은 이 지점을 탈회(夺回)하려고 맹렬한 공격을 반복한것이였으나 균렬속에서는 시광도 학천도 그 부하들도 그 당시에는 자기네가 점령하고있는 위치가 그런 중요한 그리고, 그렇게 위험한 곳인것을 알지 못했던것이다.

적의 공격은 기관총의 엄호사격(掩护射击)을 받아가지고 돌격으로 옮겨졌다.

눈이 부신 여름 한낮 해볕아래 총칼이 번쩍번쩍 빛났다. 위협(威胁)하는 고함소리가 이어서 일어났다.

한줄로 가로 흩어져서 엎드렸다가는 일어나서 뛰고 엎드렸다가는 뛰고 하며 적이 점점 가까이 몰려들어왔다.

균렬속의 열세 사람은 기관총과 소총과 권총으로 전력을 다해서 적의 돌격을 저지하려 했다.

죽음에 직면(直面)했을 때 사람은 엄숙해지고 진지(真挚)해지는것이다. 그들은 더운것과 목마른것을 잊어버렸다. 두 대 사이의 공간이 어느 틈에 메꿔졌는지 알지도 못했다.

적의 잔인스러운 눈깔과 이발이 눈앞에 다닥쳤다. 고함소리가 고막(鼓膜)을 때렸다.

균렬속에서 기관총수(机关手)가

<<악!>>

하고 뒤로 나가 떨어졌다. 적탄을 맞은 두눈사이에서 시커먼 피가 쏟아져나왔다. 즉사였다.

<<오!>>

하고 시광이 사수(射手)가 없어진 기관총으로 달려들었다.

<<아니 그건 내가.>> 하고 학천이 손에 들었던 권총을 집어던지고 그것을 뺏으며

<<동무는 전체(全体)의 지휘를...>>

하고 일초의 지체도 없이 몰려드는 적에게 탄환의 우박을 퍼부었다.

시광은 원래 위치에 돌아가자마자 벼락같은 소리를 질러서 호령했다.

<<제일기관총-목표-좌전방(左前方)->>

비록 적은 병력이지만 통일된 지휘아래 쇠덩어리같이 뭉쳐진 그 힘은 무서운것이였다.

적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 지점을 탈회할 가능성이 없는것을 깨달은것이다.

달아나는 놈의 뒤잔등은 좋은 과녁이였다. 꽁무니를 쫓아가는 탄환에 픽픽 나가 쓰러지는것이 마치 활동사진을 보는것 같다.

단결(团结)-단결이 적을 물리쳤다.

초약(硝药)냄새가 코를 찌르는 균렬속에서 사람들은 <<후유->>하고 한숨을 내뿜었다. 그리고 땀과 흙에 짓이겨져서 새까맣게 된 얼굴을 서로들 쳐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학천과 시광도 서로 쳐다보고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부하들은 그 대장들이 웃는것을 보고 따라서 또 한번 서로들 마주 쳐다보고 웃었다.

시광이 허리에 찼던 수건을 뽑아서 전사자(战死者)의 얼굴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묵도(默祷)를 했다.

학천도 병정들도 따라서 머리를 숙였다. 아무도 말하는 사람은 없다.

머리우에는 싸움터에 늘비한 시체를 파먹으려는 까마귀떼가 날아가고 날아오고 한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는 한낮 조금 지난 해가 이글이글 타고 있다.

누가 <<후>> 하고 한숨을 쉬고 입맛을 쩍쩍 다시였다.

사람들은 펄석펄석 주저앉아버렸다. 잊어벼렸던 기갈(饥渴)이 또다시 더욱 맹렬하게 목구멍을 조이고 찌르고 했다.

7

적의 공격은 또 언제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균렬속의 열두사람은 다 쓰러져서 헐떡헐떡하고있다.

물은 한방울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목구멍은 화저가락으로 쑤시는것 같이 아프다.

해는 쨍쨍 내려쪼였다.

학천이 문득 죽은 사람의 허리에 매달려있는 물통을 생각했다. 그는 슬그머니 기여가서 시체의 허리를 더듬어서 물통을 찾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흔들어보았다. <<찰랑찰랑>> 소리가 났다.

<<오! 물, 물이다.>>

하고 그는 기쁨에 넘치는 소리를 쳤다. 누웠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났다.

<<물?>>

<<어? 물!>>

<<어디?>>

<<여기!>>

하고 학천이 눈앞의 물통을 내들었다. 통속에서 <<촐랑촐랑>> 소리가 났다.

<<오!>>

열한 사람이 감격에 넘치는 소리를 질렀다.

<<자! 돌아가며 한모금씩.>>

하며 학천이 물통의 마개를 <<풍>>하고 잡아뽑았다.

목젖을 울리고 입술을 핥으며 열한 사람이 그리로 시선을 집중했다.

물통아구리에 입을 대고 물을 들이키려던 학천이 멈칫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반통도 못되는 물. 혼자 다 마셔도 시원치 않을것을... 열두사람이...>>

그러나 목젖은 타는것 같이 아프다.

<<그래도 나는 참을수 있다.>>

그는 목이 말라서 헐떡이고있는 전우(战友)들의 얼굴을 또 한번 다시 쳐다보았다. 그는 눈을 딱 감고 그리고 슬며시 물통을 옆에 있는 부하에게 내주었다.

물통은 한 사람 차례로 한모금씩 돌아서 마지막으로 시광에게까지 갔다. 그리고 시광의 손에서 다시 학천에게로 돌아왔다. 학천이 그 물통을 받았다.

해빛은 점점 더 뜨겁게 내려쪼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이 없다. 헐떡거리지도 않았다. 쓰러지지 않았다.

학천의 손에서 텅 비였을 물통이 <<촐랑촐랑>> 소리를 냈다. 물통속의 물은 단 한모금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던것이다.

머리우에서는 까마귀떼가 시끄럽게 <<까욱까욱>>거리며 몰켜서 날으고있다.

이런채로 밤이 되였다.

우군이 엊저녁에 하다가 날이 밝아서 중단했던 공격을 다시 계속했다.

전장은 다시 혼란을 일으켰다.

균렬속의 열두 사람도 밖으로 뛰여나왔다. 그리하야 그 지점까지 진출한 우군부대에 합류(合流)하려 했다.

벌써 어떤 곳에서는 백병전이 벌어졌다.

<<앗!>>

하고 앞에서 총을 놓으며 뛰여가던 학천이 활같이 휘여지며 쓰러졌다.

<<여!>> 하고 시광이 쫓아가서 안아 일으키며 급하게 물었다.

<<어디야?>>

<<다리 대퇴부.>>

학천이 대답했다.

<<좀 참어, 아퍼두.>>

하고 시광이 부상자(负伤者)를 어깨에 둘러멨다.

<<아! 으-음.>>

학천이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며

<<가만 좀 가만있어.>> 했다.

<<뭐야?>>

<<좀 가만... 음- 난 괜찮으니 내버려두구 동무나 어서 무사히...>>

<<무슨 미친 소리야. 좀 참어 아퍼두.>>

이렇게 말하고 학천을 둘러업은채 몇걸음 앞으로 걸어나가던 시광이

<<앗! 응...>>

하고 왼팔을 내려드리웠다.

누릇누릇하게 마른 잔디우에 빨갛고 노랗고 한 나무잎들이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날아와 떨어졌다.

해말간 하늘은 무던히도 높아보였다.

소리개가 한마리 유유히 공중에 커-단 원(圆)을 그리며 떠돌고있다.

봄볕같이 따뜻한 해볕이 내리쪼이는 잔디우에 두 젊은 사람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한 사람은 팔이 하나 없었다.

<<어 이럴 때 수풍금이 있었으면 좋겠는걸.>>

이렇게 말을 건넨것은 다리가 없어진 학천이였다.

<<음 그렇지. 오카리나가 더 좋지.>>

이렇게 대답한것은 팔이 떨어진 시광이였다.

<<허- 내가 잘못헌걸.>>

학천이 탄식하며 사죄하듯 말했다.

<<뭘 피차일반이야..>>

시광이 뉘우치듯이 말을 받았다.

두 사람은 잠잠했다. 생각하면 감회가 깊은 일이였다.

<<여, 인젠 2인 3각(脚)일세.>> 하고 학천이 또 말을 건넸다.

<<아니 2인 3완(腕)일세.>> 하고 시광이 받았다.

<<3각이지.>>

<<3완이래두.>>

<<허- 이 사람 또 우기나?>>

하고 학천이 옆에 놓여있는 지패마대(松叶杖)를 끌어 잡아들이니까

<<임자 고집(固执)은?>> 하고 시광이 막는 형용을 했다.

두 사람은 우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하하...>>

<<어허허.>>

하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공중에서 빙- 빙- 떠돌고있던 소리개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갑자기 홱 하고 몸을 제치더니 쏜살같이 저편 숲속으로 떨어져갔다.

<<어, 시광, 아니 김시광동지, 우리 불구자동맹(不具者同盟)을 결성하는게 어떻소? 단, 이것은 정식으로 제의함이요.>>

하고 학천이 제의했다.

<<좋지, 김학천동지 제의에 정식으로 찬동함- 어때?>>

하고 시광이 찬동했다.

<<하하하...>>

<<허허허...>>

두 사람은 마주 쳐다보고는 소리를 높이여 또 한바탕 웃어제쳤다.

그들의 가슴은 희망(希望)으로 불룩해졌다.

등어리에 내려 쪼히는 해볕은 여전히 뜨거웠다.




<<신문학>>(1946. 4)
서울


부록


创作合评会

<<신문학>> 1946. 6호


때 4월 20일 오후 6시
곳 취산장(翠山庄)
송영(宋影), 윤세중(尹世重),
채만식(蔡万植) 본사
김남천(金南天), 리흡(李洽)
리원조(李源朝), 박영준(朴荣浚)


리흡-8.15 이후의 창작에 대해서 될수 있는대로 작자를 중심한 작품명을 말씀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특히 작가 여러분을 오시라고 한것은 작가의 립장에서 본 진지한 작품평을 원했기때문입니다.


<<龟裂>>(新闻学 1호) 金学铁作

채만식-나는 <<과정>>을 읽지 못했습니다만 그것은 그만하고 감학철씨의 <<균렬>>을 이야기합시다. 내가 이 작품을 읽을 때 순수 문학이니 통속소설이니 하던 일인(日人)의 작품과 꼭같은감을 줍디다.

김남천-일인의 아무개가 쓴것이란 생각과 달리 의용군(义勇军)의 한 사람으로 일본과 싸우다 다리 하나까지 잃고 돌아온 작가를 생각한다면 보는 면이 넓어질것입니다. 의용군이 썼다는것이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리원조-그것은 작품평이 아닙니다. 작품은 어디까지나 작품을 보고 평해야 할것입니다. 전번 문학가동맹 소설부 간담회때에도 이 작품이 론의되였는데 그때 리태준씨는 이 작품을 작가의 손아귀에 넘어가지 않는 작품이란 말을 했습니다. 즉 르포르타즈라고 했습니다. 그 반면 김남천씨는 너무 째였다고 즉 너무 작위적(作为的)이란 말을 했습니다. 나는 두분의 말이 다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리유는 리태준씨가 한 말은 상반부(上半部)를 보고 한 말이요, 김남천시는 하반부(下半部)를 보고 한 말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작품의 중심이 처음과 마지막에 있는것이 아니라 가운데 있다고 봅니다. 즉 시광과 학천 두 지대장(支队长)이 싸우는 장면이 이 작품의 생명이라고 봅니다. 물론 작품의 계기는 <<친>>이란 녀자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장면은 문장도 서툴지만 <<친>>의 소행을 구명시키지 않았는데 리태준씨로 하여금 르포르타즈란 말을 하게 한것입니다.

김남천씨가 작위적이라고 한것은 그 반대로 마지막 장면을 말함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이 작품의 중간에 중점을 두고 또 그 장면을 좋게 봅니다. 소설이란 언제 끝났는지를 모르고 읽을수 있도록 써야 합니다. 읽다가 싫증이 나서 맨마지막 장면을 들쳐보고 읽게 하는 소설은 좋은소설이 아닙니다. 나는 이 작품을 언제 끝났는지 모르고 읽었습니다. 이 작품가운데서 두드러진 장면이란 이제 말한것처럼 두 지대장이 싸우는것 그리고 균렬속에서 물을 나누어 먹는 곳입니다. 그러나 물 나누어 먹는 장면은 조금 과장한듯했습니다. 전쟁의식과 산 개성을 좀더 그리였더면 아래우가 없어도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채만식-나는 이 작품이 인간성을 떠난 인간을 그린것처럼 느껴집니다

김남천-포탄이 터지는 장면은 아름다왔습니다. 마치 내 고향에 포탄이 떨어지는듯한 느낌을 줍디다.

리원조-전번 간담회때 이 소설평이 있은 뒤 작가가 문학하는 리유를 일장 연설했으나 그때 나는 그를 작가라기보다 의용군의 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읽어보니 작가는 확실히 작가로서의 력량을 가지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목가적(牧歌的)인 맛도 있기는 합디다.

송영-작가 자신은 허구가 아니라 생각할는지 모르나 나오는 현실은 목가적인듯한데가 많습니다.

리원조-르포프타즈는 아닙니다.


연길이야기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추천 (3) 선물 (1명)
IP: ♡.245.♡.77
타니201310 (♡.163.♡.41) - 2024/04/23 13:59:01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두 친이라는 여자와 학천이란 남자 나오는 장면 부터 시작하니 막 구미가 당기면서 뒤끝이 궁금해짐돠 ..
서두에서 막 총쌈이나고 사람이 막 죽으면 여자인 나는 졸리면서 읽을수 있었습져...

목이 말라서 헐떡이는 장면 읽을때 울컥 하면서 눈물이 뚤렁~ 떨어집띠다.
그 흔하디 흔한 물을 ...

그것도 잠시,
불구자동맹 읽고 하하하하하 하고 팡 터지게 웃었심더..

웃었다 울었다 하면서 읽심더.

소설가의 글재주에 한번 매료되면서 ..눈물 훔치고 커피 한잔 들고 창밖을 바라 봅니다.

더좋은 래일이 덕분에 좋은 글을 읽을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더좋은래일 (♡.208.♡.115) - 2024/04/23 18:09:02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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