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11회)

죽으나사나 | 2023.12.20 02:46:53 댓글: 0 조회: 347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1659
따스한 봄날이 올까 (11회) 불편해지는 관계

“언니.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아요?“

”왜왜? 뭔 일 있어?“

손님이 줄어든 오후 화영이가 나리 옆에 붙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저쪽이요.“

화영이가 눈으로 가리킨 곳은 레스토랑 밖 화단 쪽이였다.

”저긴 왜… 아…?“

화단에 뭐가 있나 눈을 돌려보니 그때 같이 화단에 물 주고 있는 도진이랑 유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서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티격태격했다가, 빵 터졌다가 하는 게 저번 날이랑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상하죠. 두 분 분명히 저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뭐지?“

화영이가 의심의 눈초리를 쏘았다.

”뭔데? 뭔데? 뭘 보고 있어?“

지나가던 석호가 또 참견하려고 하자 나리와 화영이가 무슨 일이냐는 듯, 홍해를 가르듯이 쫙 갈라져서 자기 할 일을 하러 갔다.

”뭐야~…“

석호는 뭔지는 모르겠으나 뭐가 있나 창밖을 쳐다보기만 했다.

며칠 후 나른한 오후, 브레이크 타임이다. 오늘도 다들 각자 쉬고 싶은 자리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레스토랑의 문이 열리더니

“또각또각 .”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화려한 이목구비에 칼같이 짧은 단발머리를 한 늘씬한 여자가 들어왔다.

“저 죄송한데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이라 조금 있다가 오시겠어요?”

화영이가 미소를 띠며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저 손님이 아니고 도진 선배 찾으러 왔는데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다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들 아는 눈치인데 이제 여기서 근무 한 지 1년이 좀 안 되는 화영이만 눈을 껌뻑껌뻑 거렸다.

“사장실에 있으려나?”

그런 화영을 무시한 채 여자는 빨간 하이힐을 또각거리면서 사장실로 향했다.

“어~ 다미씨. 올해는 좀 늦은 거 같네요. 잘 지내셨죠?”

송 매니저가 사장실에 들어가려는 다미라는 여자 앞에 다가갔다.

“어머. 송 매니저님~. 오랜만이에요. 저 이번에 겨울 때부터 담당했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중간에 사고가 터져서 그걸 수습하느라고 애를 먹었거든요. 그래서 이제야 오게 되었어요. 모두들 잘 계시죠?”

다미는 여기저기서 보이는 얼굴들을 확인하듯 둘러보면서 목례로 인사를 했다.

“근데 도진 선배는 어디에 갔어요?”

“그게…”

이때 레스토랑 문이 열리면서 유나와 도진이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서로 웃으면서 들어온다.

”선배!!“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다미는 도진의 목을 덥석 감싸고 안긴다. 옆에서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하는 유나를 송 매니저가 손짓으로 불러 갔다. 유나는 그한테 가면서도 뒤를 돌아 보는 걸 잊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잘 있었어?“

도진은 아까랑 다르게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자신의 목을 감쌌던 다미의 팔을 풀었다.

” 넌 올해도 어김없이 한가한 가보구나.“

도진의 미지근한 반응에 입이 삐쭉 나온 다미를 뒤를 하고 그는 직원들 주려고 금방 사 온 아이스크림 봉투를 근처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화영이한테 건네주었다.

사장실로 다미가 졸졸졸 따라 들어온다.

“선배. 나 올해 늦게 왔잖아. 내 생각은 안 났어? 보통 드라마에서 여주가 오다가 안 오고 그러면 생각나고 그런다던데. 선배는 아닌가 봐?”

다미는 조금 기대를 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포기했나 생각했지.“

”내가 왜 포기해~ 선배가 다시 날 받아들일 때까지 올 건데.“

아무 감정이 안 느껴지는 덤덤한 도진의 반응에도 다미는 옅은 미소를 흘렸다.

한편, 홀안.

“저 여자는 … 누구예요?”

“음… 저분은 …”

궁금해하는 유나한테 송 매니저가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고민하는 있을 때 뒤에서 조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진이 학교 때 후배.”

조길은 유리창으로 보이는 사장실 안에 있는 둘의 모습을 곁눈질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다미랑 3년 정도 만나다가 무슨 이유에서 인지 헤어졌었다는데 다미가 몇 년 전부터 다시 도진을 찾아오기 시작했지. 해마다 봄만 되면.“

“왜 찾아와요? 사장님이랑 다시 잘해 보려고요?”

화영이도 어느새 끼어들어서 묻는다.

“그렇지.”

“…”

조길의 대답에 유나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은 사장실로 향했다. 다미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유나한테는 조금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

”내일 또 봐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레스토랑 마감이 끝나고 너도 나도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고 유나는 그런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

유나는 저녁 타임에 다미랑 도진이가 같이 외출하고 없는
사장실을 몇 초 쳐다보더니 터벅터벅 2층으로 올라갔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뭐…

여자가 있는 게 당연하지.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넌 이런 하찮은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잖아.

***

”여어~ 내가 요즘 촉이 좋은가 봐. 며칠 전에 다미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바로 오네?“

상준은 어느 작은 와인 바에서 도진이랑 같이 들어오는 다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오빠. 도진 선배랑 다르게 오빠는 날 은근 생각했나 보다. 내 얘기도 한 걸 봐서는!”

다미는 상준이랑 말하면서도 말없이 의자에 앉는 도진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도 도진의 옆에 앉는다. 자꾸 도진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근데 전에는 레스토랑에서 자주 만나더니 이제는 거기서 안 만나나 봐요?”

메뉴 판을 훑어보던 다미가 작년에 레스토랑에서 한 잔 하기를 좋아하던 도진이네가 생각나 질문을 했다.

“아~ 레스토랑 2층에 유나 씨가 살고 있어서 또 가는 거는 민폐지. 근데 유나 씨 가만히 보니까 술 좋아하는 거 같던데. 안 그래? 도진아.“

“… 유나 씨가 누구야?”

처음 듣는 이름에 신경이 쓰이는 듯 다미의 눈썹이 미세하게 들썩이더니 하던 행동을 멈추고 대화에 집중했다.

“오늘 레스토랑에 갔다며, 거기 있었을 텐데.”

상준의 말에 다미는 뭔가 생각하는 거 같더니

“혹시 오후에 레스토랑에 같이 들어왔던 직원?”

도진의 답을 기다린다.

“… 응.“

도진은 단답형으로 입을 여는 듯 마는 듯 대답했다.
사실 아까 낮에 부터 이상하긴했다. 뭔가 가 마음에 거슬린 거 같았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원래도 차가웠지만 작년보다 더 차가워진 도진의 태도. 사실 오늘 그 여직원이랑 들어올 때 똑똑히 보고야 말았다. 자신과 냉랭해지기 전 도진의 그 짙은 눈동자에서 나오는 웃음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상준의 말에 다시 낮에 일이 생각나고 말았다.
"그 직원이 거기서 산다 고요? 숙식 제공한다고는 했지만 거의 처음 아닌가요?"
다미는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졌지만 안 들키게끔 감정을 꾹꾹 누르면서 말을 이어 갔다.
"상준 오빠도 같이 술도 마시는 사이구나."
"아~ 나는 그날 우연히 같이 먹게 된 거고. 도진이 덕분에."
다미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준은 또 도진을 놀리려고 발동을 거는 모양이다.
"그만해 좀. 술이나 시켜."
도진은 기분이 안 좋은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애꿎은 상준이만 타박했다.
"네~네~. 여기 같은 거 두 잔 더 주세요~."
**다음날
"사장님, 오늘 예약 손님 중에 단골손님인 박태진 배우가 오는데요. 이번에 와이프 생일이라고 룸 잡고 알아서 좋은 한상 차리라고 하는데... 저희가 1번 세트 메뉴가 제일 인기잖아요. 근데 저번에 그 여자분이랑 왔을 때도 그걸로 해서... 어떻게 할까요?"
송 매니저가 메뉴 고민으로 사장실에 들어왔다.
"그냥 1번으로 하세요. "
"네."
송 매니저가 나가자 도진은 누군 가를 찾는 듯 홀 안을 자꾸 훑었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유나야. 너 왜 주방에서 뭐 해?"
"아... 나 그게... 주방에 도울 게 없나 해서. 홀은 이미 끝났거든."
석호가 쭈뼛 거리면서 주방에서 왔다 갔다 하는 유나를 발견하고 불러 세우자 그녀는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 마냥 당황해했다.
"왜 그래~ 뭐 훔친 사람처럼. 너 혹시..."
석호가 가재 눈을 하면서 노려보자 놀란 유나가 큰 소리를 친다.
"뭐, 뭐 혹시 뭐,"
"어허. 이거 봐라~ 말도 더듬는 걸 봐서는..."
...봐서는?
"너 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깜짝이야...'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석호의 장난말에 유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농담이긴 한데 그렇게 아니란 표정을 지은 것도 보니 마음이 쓸쓸하네. 유나야~"
눈치는 빠른지 아니면 유나의 얼굴에 모든 게 적혀 있는 건지 석호는 아쉬움에 중얼거렸다.
미안해. 오늘은 왠지 사장님 얼굴을 안 보고 싶어지네.
유나는 착잡한 마음을 안고 다시 홀로 나갔다. 오늘 하루는 그냥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점심이 다가오고 가게엔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저기요."
누군가가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 유나를 뒤에서 불렀다. '네'하고 대답하고 돌아보니 기다란 검은색 원피스에 검은색 챙이 큰 밀집모자를 쓴 젊은 여성이 유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마치 저승사자처럼 온몸에 검은색을 도배 한 느낌이었다. 근데 그보다도 그녀의 정말 새빨갛게 칠해진 입술이 꽤 인상적이었다.
"저 죄송한데 저기 3번 방 있죠? 오늘 저희 배우님 부인 생일인데 깜짝 이벤트 한다고 이 꽃을 본인 아닌 다른 사람이 갖고 들어오는 걸로 해 달라고 하셨거든요."
그러면서 그녀는 유나 앞에 약 백 송이는 되어 보이는 백합꽃을 내밀었다.
"그 박태진 배우가 있는 그 방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아요. 배우님이 지금 화장실에 간 사이 부인한테 갖다 드렸으면 해요.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꽃을 받아 드는 순간 그 여자의 입꼬리가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이 올라갔지만 유나는 별 이상하게 안 여겨졌고 그 길로 바로 3번 방으로 갔다. 그 여자는 그런 유나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오늘부로 그 사랑은 드디어 시들어 비틀어지겠네."
잠시 후,
3번 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박태진 부인이라는 여자가 손에 들었던 백합꽃으로 박태진을 마구 구타하면서 거의 울부 짖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박태진 너 나랑 그렇게 이혼하고 싶었니? 나 아직 안 죽었어. 아직 이렇게 살아 있는데 내연녀가 나한테 편지 넣은 꽃다발을 직접, 그것도 내 생일날에 내 손에 쥐여 주게 만들어?? 뭐 '당신 남편은 어제 나랑 같이 있었다.' 라고?? 너 어제 밤샘 촬영 있다고 하지 않았어? 너 진짜 미쳤구나!!!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박태진!!"
"여보 여보 , 난 아무것도 몰랐어. 나 화장실 다녀 온 동안 저 종업원이 당신한테 이딴 걸 갖다 준 거잖아. 난 모른다고 진짜. 억울해!!"
박태진은 사람들이 기웃거리면서 보고 있는데도 자존심 따윈 버리고 부인한테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인기 배우? 배우의 자존심? 그딴 거 다 필요 없다. 이 여자와의 결혼 생활이 틀어지면 이 모든 게 다 사라질 게 뻔하니까. 지금까지 올라온 것도 돈 많은 이 여자 덕이 크다.
단지 이 자리까지 올라오다 보니 점점하지 말아야 할 짓도 해서 사단이다.
"여보. 제발 진정해. 이건 음모야. 이 레스토랑이 나한테 뭐 안 좋은 게가 있나 봐. 진짜야. 나 제발 믿어줘. 응?"
"됐어! 이혼 서류나 받을 준비를 해!"
무릎 꿇은 박태진의 간절한 애걸에도 부인은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자리에서 씩씩 거리던 박태진은 시선이 구석에서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유나한테로 멈추었다.
"너... 이 씨...!!"
​박태준은 화가 잔뜩 올라 유나한테 성큼 다가가 그녀의 멱살을 거칠게 잡고는 소리 질렀다.

“네가 꾸민 짓이지!! 너 오늘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박태준의 손이 번쩍 올라갔고 유나는 두려움에 찍 소리도 못 내고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아!! 누구야!! 이거 안 놔?”

이미 뺨을 맞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박태준의 외마디 소리만 들려오고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유나는 한쪽 눈을 천천히 떠보다가 앞의 뜻밖의 광경에 두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그녀의 앞엔 박태준의 팔을 옴짝달싹 못하게 잡은 무척이나 화난 얼굴의 도진이가 있었다.
추천 (1) 선물 (0명)
IP: ♡.214.♡.18
22,94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037
단밤이
2024-01-23
2
265
죽으나사나
2024-01-23
1
131
죽으나사나
2024-01-22
3
156
죽으나사나
2024-01-22
2
162
죽으나사나
2024-01-21
1
134
죽으나사나
2024-01-21
2
186
여삿갓
2024-01-20
5
803
죽으나사나
2024-01-20
2
198
죽으나사나
2024-01-20
2
152
죽으나사나
2024-01-19
2
196
죽으나사나
2024-01-19
2
124
원모얼
2024-01-18
1
297
여삿갓
2024-01-18
5
910
죽으나사나
2024-01-18
2
199
죽으나사나
2024-01-18
2
184
죽으나사나
2024-01-17
2
219
죽으나사나
2024-01-17
2
161
죽으나사나
2024-01-15
2
208
죽으나사나
2024-01-15
2
158
죽으나사나
2024-01-14
2
170
죽으나사나
2024-01-14
2
627
죽으나사나
2024-01-13
2
175
죽으나사나
2024-01-13
2
231
죽으나사나
2024-01-12
2
219
죽으나사나
2024-01-12
3
234
죽으나사나
2024-01-11
2
237
죽으나사나
2024-01-11
1
247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