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전 5

나단비 | 2024.02.29 15:11:51 댓글: 7 조회: 594 추천: 4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0697
화랑전 5


"허. 왜 이렇게 무거워."

갑자기 쓰러진 화랑을 일으켜 세우던 이연은 놀라면서 혼잣말했다. 생각 밖의 상황에 머뭇거리던 이연이 다시금 그녀를 들고일어나려던 순간 이연은 화랑의 몸에 닿은 손에 찌릿한 충격을 느꼈다. 화들짝 놀라 손을 떼자 그대로 쓰러질 줄 알았던 화랑이 스르륵 일어났다.
"야. 너 괜찮아?"

화랑은 아무 대답도 없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팔을 잡은 이연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놀람과 동시에 이연에게서 뭔가를 찾아내려는 듯했다. 화랑은 한두 걸음 물러서더니 놀라운 속도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연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쫓아갔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난데없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숨이 차게 달리던 이연의 발걸음은 그녀가 사라진 골목길 앞에서 멈추었다. 두 갈래로 나뉜 골목길 중 어디로 갔을지 알 수 없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골목을 서성이던 이연은 화랑을 찾는 것을 멈추고 걸어 나왔다.


화랑은 설핏 잠에서 깼지만, 여전히 눈은 감고 있었다. 눈이 쉽게 떠지질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가만히 누워있는데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가까이에서. 누구지? 아니, 누군가가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물음표가 연속으로 떠올라서 머릿속을 헤집었다. 화랑은 억지로 눈을 떴다. 뭔가 낯설었다. 기분 탓이 아니고 정말로.

"깼어?"

‘이건 꿈인가?’

“그래. 꿈 맞아.”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화랑은 다시 눈을 떴다. 아무도 없었다.

‘대체 어제 어떻게 들어온 거지?’

어제의 일들이 마치 꿈처럼 희미했다. 이연과의 만남, 술을 마시던 순간까지는 기억이 났다. 문제는 계산하고 나간 이후였다. 계산하고 나온 뒤부터는 기억이 날 듯 말 듯 흐릿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이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알람인가 싶어 핸드폰을 들어서 보이는 버튼을 누르고 난 화랑의 눈이 커졌다.

알람이 아닌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였다.

누구지?

"여보세요?"

"안녕. 나 이연이."

"네? 이연 선배요?"

"그래. 너 어젠 잘 들어갔어?"

"아. 네. 죄송해요. 기억이 잘 안 나서."

"기억이 안 난다고? 너 어제 좀 이상했는데. 알겠어. 이따가 만나서 이야기해."

화랑은 제 할말만 하고 뚝 끊긴 전화에 망연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대체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한 거지? 그리고 이상했다고? 대체 어디가?

화랑은 자기가 어떤 주사가 있었든가 생각해보았다. 별거 없었던 것 같은데.


"하. 알 게 뭐야. 모른다고 하면 돼."


그녀는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갑자기 토기가 올라왔다.

잠시 후 아주 초췌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면서 나온 화랑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속이 아주 쓰렸다. 해장해야 할 것 같았다. 뭐가 좋을까. 머리를 굴리던 화랑은 곧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다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 나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제보다 한층 지쳐 보이는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곧 집 근처에 있는 24시 콩나물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콩나물국밥 하나요."


쥐어짜 낸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화랑은 한숨을 쉬고 빈자리에 앉았다. 이른 시각이라 테이블 대다수는 비어있었다.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듯 콩나물국밥이 빠르게 나왔다.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마셔보니 뜨끈하고 구수했다.


"아. 살 것 같아."

화랑은 아직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혼잣말했다.


이때 짤랑- 하는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결에 쳐다본 화랑은 화들짝 놀라서 숟가락을 떨굴 뻔했다.

그는 성큼 걸어서 그녀 앞에 와서 앉았다.

"이모. 여기 기본 국밥 하나 주세요."


망연히 그를 쳐다보던 화랑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아니. 이연 선배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나. 이 동네 살아. 여기 가게랑도 가깝고."

"뭐라고요? 거짓말이죠."


"내가 이런 거로 거짓말을 왜 해? 근데 너 괜찮아 보이네."


"네? 아. 네. 뭐."

화랑은 괜찮아 보인다는 그의 말에 그가 그녀에게 썩 관심이 없음을 눈치챘다. 화장을 해보려고 해도 피부가 하루아침에 거칠어져서 화장이 뜨는 것 같아 자외선 차단제만 대충 바르고 나온 참이었다. 뭐가 괜찮아 보인다는 건지....

"사실, 나 이 근처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거든."

"네? 아. 그랬군요."

"그래서 말인데, 이 동네 소개 좀 해줄래? 너 시간 있지?"

"시간, 없는데요."
"거짓말. 너 오후 과외잖아. 오전에는 시간이 비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야?"

"아. 그건 어떻게...."

"어제 네가 네 입으로 다 말했잖아."

화랑은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편이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말하다니. 화랑은 저주받은 자기 주사를 새삼 원망했다.


"그렇지만 저도 이 동네 잘 몰라요. 볼 것도 딱히 없어요."

"그래? 그럼 너 사는 집 구경이라도 시켜줄래?"

"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흠칫 놀란 화랑이 소리지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너편 테이블 사람이 흘깃 돌아보고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아."

"공공장소에서 소릴 지르면 어쩌냐 너."

"아. 그게 선배가 하도 이상한 소릴 하셔서."

"장난으로 한 말인데. 몰랐구나."

"장난? 장난이라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장난이라고 응수하는 이연을 원망의 눈초리로 보던 화랑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수저를 들었다.

"맛있게 먹어."


화랑은 이연의 말에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국밥을 먹었다.

이연은 먹느니 마느니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계산대로 향했다. 다시 돌아온 이연이 입을 열었다.


"동네 소개는 다음에 해줘. 나 학교에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해."

"아. 네. 안녕히 가세요."

화랑은 이연이 굳이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게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그가 떠나자 화랑은 다시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 체할 뻔했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선 화랑은 이미 계산했다는 소리에 놀라서 재차 확인했다.


"혹시 아까 저와 밥 먹던 그 사람이 계산을."

"네. 일행 아니었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화랑은 인사를 하고 터벅터벅 가게에서 나왔다. 대체 왜 계산을 해주고 난리지. 얻어먹는 것도 불편하네. 이걸 핑계로 또 밥 사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찝찝한 기분을 뒤로 하고 화랑은 집에 들어가서 오후 과외 교재를 챙겨서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그로부터 며칠간은 별일 없이 흘러갔다. 이연은 한동네 사는 사람치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과가 달라서 그런지 찾을 수가 없었다.

화랑은 서연이 공부하는 학과 건물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서연이 나오는 걸 보자 손을 흔들었다.


"오. 화랑. 어쩐 일이야. 너처럼 바쁜 애가 나 보러 다 오고?"

"아. 그냥 오늘 시간도 좀 나고 같이 밥이나 먹을까 해서."

"잘됐다. 나 너한테 궁금한 것도 있었는데."

서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뭔데 그래?"

"가서 이야기해 우리."


두 사람은 학교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앉았다.


"이연 선배가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아."

"뭐? 그게 무슨 헛소리야."


뜬금없는 소리에 메뉴판을 훑어보던 화랑의 손에서 메뉴판이 스르륵 떨어졌다.







추천 (4) 선물 (0명)
IP: ♡.252.♡.103
런저우뤼 (♡.136.♡.253) - 2024/03/03 09:12:28

단밤님 자작소설이신가요?

나단비 (♡.252.♡.103) - 2024/03/03 09:22:07

네. 자작글이에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3/05 11:12:43

이연이 확실히 화랑한테 관심이 많네요.늘 화랑주위에서 맴도는거보면.집구경 시켜
달라는거 신종멘트네요.이층아저씨는 우리집주소를 물어보더라구요.

어제밤에 저나여러번 오길래 나는또 혈압이 높아서 몸이 불편한가 걱정을 햇더니
톼근후 문자 확인해보니
我送你回家

나단비 (♡.62.♡.175) - 2024/03/05 16:35:20

이뻐서 그래요. ㅋㅋ

뉘썬2뉘썬2 (♡.203.♡.82) - 2024/03/05 21:23:16

그아저씨 너무 외로운가바요.난이젠 골치아픈거 딱 질색인데.

나단비 (♡.252.♡.103) - 2024/03/05 21:26:06

여신님같은 미인을 보면 설레죠.

뉘썬2뉘썬2 (♡.203.♡.82) - 2024/03/05 21:29:20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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