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14회)

죽으나사나 | 2023.12.22 10:53:06 댓글: 0 조회: 315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2783
따스한 봄날이 올까 (14회) 몸살

“너 이런 거 갖고 장난치는 건 심했다. 김다미.“

”… 그래. 알아. 근데 덕분에 도진 선배가 나에 대해 잊은 게 아니란 걸 다시 알게 되었지. 그러면 됐어. “

”야. 그거는…“

거의 무념무상으로 대답하는 다미가 답답한 승준이었다.

“오빠. ”

다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테이블을 치우면서 말을 이어갔다. 

“난 기다렸어. 기다리면 될 줄 알았거든? 근데 어쩌지? 예전의 도진 선배 모습이 보이더라. 나 아닌 다른 여자한테서. … 오빠가 도와주지 않아도 난 이대로 포기 못해. 오빠도 알잖아. 내가 도진 선배를 얼마나…“

”난 솔직히 네가 그만했으면 좋겠어. “

”…“

상준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현관 쪽으로 갔다.

”희진이…“

다미가 부른 이름에 상준은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저번달에 엄마가 됐어. 자기 닮은 귀여운 여자아이를 낳았더라고. ”

승준은 그대로 등을 돌린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행복한가 보구나.”

“응… 오빠가 없어도 이제 괜찮은가 봐. 미안해 오늘은. 오빠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이 희진인 걸 알면서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해 줘.”

승준은 다미의 말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승준한테는 오래전 사랑했던 희진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다미의 친구였고 다미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알콩달콩 잘 만나고 있었는데 승준네 부모님한테 가진 것 없는 희진을 들키게 되었고 부모님의 반대로 어린 나이었던 둘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승준은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터벅터벅 오피스텔 밖으로 나갔다. 

**

“유나 씨, 좀 기다려 봐요.”

도진은 뭐에 쫓기듯이 정신없이 앞으로 가는 유나의 손목을 잡았다. 

“아…”

가는 걸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저도 몰래 도진이가 잡은 손목에 힘이 들어가고 유나는 옅은 아파서 신음 소리를 냈다. 

“아, 미안해요.”

유나는 도진이가 당황해하며 급히 손을 빼버리자 또 앞으로 걸어나갔다. 

“유나 씨. 제 말을 좀 들어봐요.”

도진이가 성큼성큼 걸어가 커다란 몸이 유나의 앞을 막아서자 유나는 발길을 드디어 멈추고 자신보다 꽤 많이 큰 도진은 올려 보았다. 그제야 도진은 유나의 그 가냘픈 표정에 어두운 눈동자를 보았다. 

“왜…”

도진은 그 어두운 빛이 드리운 눈동자를 보고 나서는 무슨 말을 해야 했었는지 잊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도진은 뭐라 해석이 잘 안되었다.

“왜 절 잡으신 거죠?”

 정적을 깨는 그녀의 질문에 도진은 잠시나마 빠졌던 유나의 눈동자에 정신이 들었다. 

“그렇게 급하게 나가니 제가 안 따라올 수가 없잖아요. 다미랑  무슨 일이 있었어요?“

둘만 놔두고 나가는 게 아니었다. 생각이 짧았다. 

”사장님께서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냥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너무 오래 있는 거 같아서 나온 것뿐이에요.“

뭐라고 말은 해야 하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도진을 보고는 유나는 결단을 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사장님. 저를 좋아해요?”

“…네?“

생각지 않은 유나의 도발에 도진이는 아까보다 머릿속이 더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저 좋아하는 거 아니면 저를 잡지 마세요. 다미씨가 오해를 하더군요. 사장님이 저한테 잘해주는 게 저랑 어릴 적 처지가 비슷해서 그렇다고요. 불쌍해서 그런다고. 저 그렇게 사장님이 불쌍하다고 여길 만큼 불행하게 살지 않았고요. 지금은 그냥 , 그냥….“

유나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처지가 비슷하다니?“

그녀가 분명히 똑같은 한국말을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도진이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 어쨌든  동정이든 뭐든 저는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저한테 관심을 꺼주세요.“

유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 도진을 뒤로하고 금방 손님을 내려주면서 멈춘 택시에 올라타고 가버렸다. 

”저…“

택시가 떠나자 정신이 든 도진이가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출발한 뒤였다. 

‘금방 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유나 씨를 동정한다는 게…’

도진은 유나가 무슨 뜻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지 알 리가 없었다. 

그냥 그 말만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멀어져 가는 그녀를 더 잡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장님. 저를  좋아해요?]


**

한편, 

모두가 훌쩍 가버린 오피스텔에서 한참을 멍을 때리듯이 앉아 있던 다미가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정 실장님, 잘 계시죠?”

정 실장. 도진이의 동생을 찾아주고 있는 브로커. 

사실 정 실장은 3년 전에 다미가 소개해 준 브로커다. 다미랑 결별 통보는 했지만 대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픈 도진을 위해  옆에 자주 찾아갔었고  대병원 원장인 아빠를 통해 정신과 의사한테서  그때 동생 이야기를 알았다. 

정신과까지 다닐 정도로 도진은 심신이 많이  망가져 있었고 그런 도진한테 지금의 정 실장을 소개해준 건 다미였다. 

“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김도진 사장님 동생분 때문에 메일로만 주고받아서 목소리는 진짜 오랜만이네요. 아가씨는 잘 지내고 있는 거죠?”

“저야 잘 지내죠 …. 실장님. 도진 선배 동생에 대해서 조금  궁금한 게 있어서요. 보육원을 찾았다고 했었는데 그게 어디에 소재하고 있나요?“

“아 그게,  상동구 도원동에 있었던  보육원인데 현재는 폐업을 한 상태입니다. “

”…!“

역시 거기가 거기였네. 설마 이런 우연이….

”그게 행복 보육원이고요?“

”네. 맞습니다.”

“그때 동생이 선배랑 헤어질 때 몇 살이라고 했죠? “

”5살이요. “

”…“

”근데, 그 동생분에 대해  왜 갑자기 그렇게 관심이 생긴 겁니까?“

정 실장이 의아해하자 다미는 급히 둘러댔다. 

“아. 그게 … 선배 동생일인데 자세히 알고 싶어서요. 그때 보낸 메일을 실수로 삭제했었거든요.“

”그러시구나. “

”지금은 새로 얻은 정보가 있나요?“

“하… 문제가 좀 있습니다. 그 당시에 꽤 잘나가는 40대 부부가 입양을 했다는 정보까지 얻었는데 예전에 살던 곳에 가니까 아예 없더라고요. 부부 중 남자는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그 집안에 문제가 좀 생긴 거 같더라고요. 동생분을 그냥 챙기셨다면 어딘 가에 같이 살고 있을 거 같은데 그 여자분 이름으로는 전입 신고가 안 돼 있어서 찾는 게 좀 걸릴 거 같습니다.”

정 실장은 이번에도 애를 좀 먹을 거 같아서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김도진 사장님은 그래도 좋은 부모님을 만나 잘 지내왔었는데  동생분은 아마 그렇지 않은 듯하네요. 21년 전에 작은 댁으로 경찰 도움을 받아서 다시 돌아가는 것부터 단추가 잘못된 듯 합니다. 그 부부는 진짜 나쁜 사람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 쪼끄만 아이를 비밀리에 다시 밖으로 내칩니까? 수작만 안 부렸다면 보육원을 찾는데 3년까지는 안 걸렸을 텐데… 하… 그러니 천벌을 받고 길바닥에 쫓긴 신세가 된 거 아닙니까. ”

“그렇죠. 나쁜 사람들이죠. …도진 선배는 요즘 이 새로운 정보를 알아요?”

“아유. 이런 부정적인 소식은 잘 안 알려드리죠. 어느 정도 가닥이 있고, 좋은 소식이어야 알려 드립니다. 아니면 많이 힘들어하셔서.”

“실장님은 역시…. 센스가 좋으시니까 아버지가 정 실장님을 많이 신뢰하시는 거 같아요. 우리 아버지는 실장님이 도진 선배 도우고 있는 거 지금도 모르시죠?”

“그렇죠. 제가 그런 머리를 있습니다. 걱정 마시죠.”

“감사합니다. 실장님.”

통화가 끝난 후 다미는 그날 화영의 말이 떠올랐다. 

[…유나 언니 어릴 적에 보육원에서 자랐나 봐요. 그러다 지금의 부모님을 만났고요. 회식날 살던 곳 말하다가 말이 나왔는데 도원동에… 행복 보육원 이랬나…?]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 사실… 도진 선배도 어릴 적에 입양을 통해 지금 부모님을 만난 거라 궁금했어요 .]

[사…장님이요?]

유나랑 신경전을 벌일 때 그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처음 듣는 얘기인 것처럼 놀라 했는데… 쇼 한 건가?

동생도 오빠를 찾고 다녔을 수 있잖아. 

[… 단순 제 과거가 궁금하다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보육원에 버려져서 내 친 부모님 얼굴도 모르고 컸다는 거? 더 궁금한 게 있나요?]

5살쯤이면  어려서 부모님 얼굴이 생각 안 날 수도 있겠지만 신생아 때 버려졌다 했는데… 

앞뒤가 안 맞아. 뭐지…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 거야??

동생이라면 다미한테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말이 안 되게 이렇게 가까운 옆에 있었다고?? 

뭔가 이상하다. 

그냥 우연이라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오늘 유나를 집으로 부른 건 도진이랑 느껴지는 그 분위기를  쳐내기 위함도 있지만 만일 유나가 도진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면 무슨 의도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였다. 

정 실장한테 유나에 대해 말할 가 하다가 자신이 먼저 좀 알아보고 싶은 다미라 오늘은 머리만 복잡한 채 밤이 더 깊어졌다. 

** 다음날.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 유나야. 어제 쉬는 날에 뭐 했어~?“

출근 시간이 다가오면서 하나 둘 레스토랑에 입장 했다. 2층에서 내려오는 유나를 발견 한 석호가 옆에 바짝 붙으면서  묻는다. 

“어제? 그냥 있었어.”

유나는 어제 다미네 집에 다녀온 뒤부터는 천근만근 무거운 몸이었지만 아무일 없는 듯 작은 미소를 띠어 보여주었다. 

”근데 너 오늘 엄청 귀여운 거 같아. “

”응?“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유나가 머리를 들어올려다 보자 석호는 자기 양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너  볼이 빨개. 귀엽긴 한데 어디 아픈 거 아냐?“

”아…“

아까부터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지만 석호가 그런 농담을 던질 정도로 빨간가 보네.

”끼익-“

이때 도진도 레스토랑에 들어오고 그를 발견한 유나는 석호랑 대화를 끝내고 급히 자리를 피해 가게 뒤쪽으로 갔다. 
도진도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사장실로 들어갔고, 조금 이상한 분위기에 서로 다른 곳으로 들어간 둘을 좌우로 번갈아 보던 석호만 머리를 갸우뚱했다. 


”사장님. 올해도 6월 말로 예약을 해요?“

”예약이요?“

송 매니저가  기분 좋은지 활짝 웃으면서 레스토랑 오픈 점검 중인 도진한테 묻는다. 

“네. 야유회 때 펜션이요. “

”아,“

잊었다. 

레스토랑에서는 매년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즉 6월말 쯤에 야유회를 간다. 보통 1박 2일로 산 좋고 공기 좋은 데로 가서 등산도 하고 간단한 운동을 하다가 저녁에는 바비큐도 구우면서 그동안 바빠왔던 직원들에 행하는 행사였다. 

“네. 그렇게 하세요.”

“장소는 그럼 이번에도 저희가 찾습니다.”

“네.”

한편,

“유나 언니, 혹시 몸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레스토랑 홀 안에 냉방을  틀어서 그리 덥지도 않은데 테이블을 닦으면서 식은땀을 뚝뚝 떨구고 있는 유나한테 화영이가 걱정스레 다가갔다. 

“언니 땀 엄청 흘려요. 오늘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 찮아질 거야. 고마워. 화영아.“

유나는 걱정해 주는 화영을 안심을 시키고는 그냥 일을 해나갔다. 

“얼굴색이 말이 아닌데… 입술도 부르텄어.”

화영은 혼자 중얼거리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뭐라고? 입술이 뭐?“

송 매니저가 전달할 게 있어서 주방에 있다가 화영의 혼잣말을 들었다. 

”아… 매니저님. 유나 언니가 오늘 많이 아픈 가봐요. 얼굴빛도 안 좋고 막 식은땀을 흘리고 있어요.“

”그래?“

”아까 나도 봤었는데, 아파 보이는데 괜찮다고 그러더라고요. “

석호도 옆에서 듣고 한마디를 했다. 

송 매니저는 둘의 말에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홀 방향으로 나갔다. 

“유나 씨. 어디 아파?”

송 매니저가 유나한테 다가가 물으면서 유나의 상태를 쳐다본다. 

“진짜 식은땀 흘리네. 오늘 출근은 안될 거 같은데? 유나 씨. 오늘 예약 손님도 그렇게 많은 게 아니니 병원으로 가던지 아니면 위에 가서 쉬든지 해요. 얼굴이 너무 안 좋아.“

”저…“

그냥 버틸까 생각했다. 근데 마침 사장실에서 나오는 도진은 보게 되는 순간 유나는 결심을 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누워 있다가 괜찮아지면 내려올게요. “

”뭘 또 내려와. 병원 가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그냥 몸살이 온 거 같아요. 그럼 저 먼저 실례할게요. 매니저님. “

”어~ 그래. 푹 쉬어요.“

유나는 머리를 푹 숙인 채 송 매니저와 유나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도진의 옆으로 지나가 2층 계단을 밟았다. 

도진은 아무 말 없이 사라져 가는 유나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다가가고 싶지만 … 자신은 다가가면 안 될 거 같다. 

“어디가 아프대요?”

“얼굴색이 안 좋은 게 몸살이 온 거 같아요. 일단 올라가서 쉬라고 했어요. 병원은 괜찮다고 하길래.”

송 매니저는 자신은 유나를 말릴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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