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21회)

죽으나사나 | 2024.01.03 14:58:29 댓글: 4 조회: 355 추천: 3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6837
따스한 봄날이 올까 (21회)  헤어진 이유.

“안 갈 거야?”

현관에서 신발을 먼저 신으려던 도진이가 아직 소파에서 멍을 때리고 있는 유나를 불렀다. 

“네?”

유나는 도진이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며 아직도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어어? 정유나 혹시 너… 안 가려고 그랬던 건 아니지?”

“아, 아니에요!”

도진이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유나는 얼굴이 다시 빨개지며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허겁지겁 일어났다. 

그래,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사장님이 왜 그 사진을 갖고 있겠어. 

유나는 자신의 착각이겠 거니 하고 도진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비가 진짜 끊었네요.”

“그러게. 시간이 가는 줄 몰랐네. 그치?“

 뭔가 의미 부여하는 말투인 거 같아 유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채로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도진은 피식 웃으면서 금방 유나의 옆으로 다가갔고 그녀의 옆에서 손을 살포시 내밀었다. 

유나는 그런 도진과 그의 손을 엇갈아 보다 살짝 부끄러운 미소를 보이며 그의 손에 얹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말이 없이 걸어갔다. 

정확히 금방 일어난 일에 둘 다 머리와 몸이 화끈거려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이제 펜션의 윤곽이 보일 정도로 거의 다 도착한 유나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

도진은 궁금한 표정으로  유나를 쳐다보았다. 

“며칠 뒤에 휴무일인데… 사장님한테 데이트 신청을 해도 돼요?”

이 남자를  오늘 갑자기 좋아하게 된 건 아니지만 마음을 확인 한  지금 이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유나였다. 

유나의 생각지 않은 데이트 신청에 아차 싶은 도진이가 입을 열었다. 

“미안, 그런 말은 여자인 네가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건데.”

여자랑 초밀접하게 된 게 처음도 아닌 데 머리가 하얘진 자신에 비해 언제 데이트까지 생각 한 유나가 조금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정유나. 우리 진지하게 연애해 볼래?“

도진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매단 채 유나를 마주 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유나도 싫지 않은 도진이의 질문에 양 볼이 불그스레 진 채로 대답했다. 

“… 좋아요.”

“그리고… 저번에 저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고 했죠? 그날 다 얘기해 줄게요. ”

도진을 올려다보는 유나의 그 순수하고 맑은 눈빛은  도진으로 하여금 모든 고민 걱정이 사라질 듯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도진은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알았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어?? 여기 계셨네. 다 오셨으면 들어와야지 뭐 하세요~”

전화를 해도 소식이 없자 송 매니저가 마중을 나왔다가 이들과 마주쳤다. 

“아, 매니저님. 죄송해요. 저희가 좀 늦었죠?”

도진은 자연스레 손을 내리면서 술을 빨리 내놓으라고 손을 내미는 송 매니저한테 비닐 주머니를 내밀었다. 

“좀이 아니라 많~ 이 늦었습니다.”

같이 펜션에 들어서니 화영과 나리는 들어가서 자는지 모습이 안 보이고 남자들만 앉아서 조는 사람도, 아직까지 대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 더 마실래? 졸리면 들어가서 자도 돼.”

도진은 많이 늦은 밤이라 아마도 피곤할 거 같은 유나한테 물었다. 

“음… 저는 좀 졸려서 저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아까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가, 긴장이 풀린 지금 졸음이 급 몰려오는 유나였다. 

“그래. 일찍 자고 내일 봐.”

도진은 유나한테 속삭이고는 그녀의 볼을 손등으로 살짝 터치했다. 아까 찐한 스킨십 이후로 손놀림이 과감해진 도진이었다. 

큰일이다. 이런 작은 그의 손길에도 움찔움찔하는 본인이 너무 창피한 유나는 뒤도 안 보고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 유나 왜 저러지? 둘이 혹시 싸웠어요??”

 술기운이 많이 올라온 석호가 앞 부분은 못 보고 정신없이 뛰어들어가는 유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게스름하게 뜬 채 도진을 쳐다보았다.

올해는 술이 조금 모자라서 그런가, 웬일로 아직까지 버틴 게 대단해 보이는 석호를 보고 도진은 씩 웃으면서 아니라고 말하고는 술자리에 앉았다. 

얼른 씻고 화영이의 옆에 자리를 찾아 누운 유나는 밖에서 떠들썩 하는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진정되지 않는 가슴 때문인지 졸리지만 바로 잠이 안 드는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꾸만 아까 그 마당 있는 집안에서 일어났던 순간들이 생각나 머리까지 이불을 홱 뒤집어쓰는 유나다. 

영락없는 연애에 푹 빠진 여자의 몸짓이었다. 

‘맞다. 그거!’

그러다 자신의 목에 손이 닿은 유나가 갑자기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다음날, 

“짐은 다 챙겼지? 가다가 저 놓고 온 게 있어요~라고 해도 떠나 간 버스는 안 온다~ 잘 찾아봐~“

송 매니저의 유머 있는 잔소리와 함께 모두들 하나둘씩 버스로 올라탔다. 

”아놔… 석호 얘는 어데 갔냐? 아직도 자는 거 아냐?“

인원을 체크하던 송 매니저가 코빼기도 안 보이는 석호가 생각나 부랴부랴 펜션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또 빵 터졌다. 

”언니. 어제 비가 많이 왔었는데 어디에서 비를 피한 거예요?  한참 있어도 안 오길래 비를 피하나 보다 생각은 했는데 그 밤에 갈 데가 있나 해서 걱정을 좀 하다가 너무 졸려서 잠든 거 있죠. 헤헤…“

화영은 걱정되는 사람 치고는 유나가 언제 자기 옆에서 자고 있었는지 모르게 너무나 달게 잠든 건지라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어… 피할 데가 있더라고.“ 

”그래요? 다해이었네요.“

유나는 대답하면서 뒷좌석에 앉은 도진이 쪽을 무심코 바라보다 마침 유나를 보고 있던 도진의 눈이랑 마주치자  당황함에 바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도진은 유나의 행동에 혼자 픽하고 웃어버렸다. 
분명히 많이 부끄러워하는 여자인데 시작은 본인일지라도 자신의 목을 먼저 감싼 건 유나였단 말이지.

어디로 튈지 도통 모르겠는 유나 덕분에 가는 봄바람처럼 마음이 설레면서 기분이 좋아진 도진이다. 

버스가 한참을 달리면서 어제 숙취로 인해 모두들 잠이 들어 조용해졌다. 

”띠링.“

도진의 전화에 문자 한 통이 왔다. 

상준이였다. 

< 도진아. 요즘 다미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겠지만 한번 좀 들여다 봐줘. 내 연락을 통 안 받네. 좀 걱정이 돼서. >

그러고 보니 아직 확인하지 않은  어젯밤 문자도 있었다. 

<선배, 자요? 나 지금 많이 아픈데 와줄 수는 없지?>

문자를 확인 한 도진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후, 버스가 시내에 도착했고 다른 사람들은 다 내리고 마지막 종착지인 레스토랑에서 멈추었다. 

“저… 들어가서 커피라도 마실래요?”

유나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도진한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도진이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쩌지. 나 지금 가볼데가 있어서 오늘은 안될 거 같아. 일 끝나고 연락할게.”

“아. 그래요? 괜찮아요. 그냥 말해본 거라 신경 쓰지 마세요. ”

거절당할 줄은 상상을 못했 유나라 당황해하며 속사포로 말을 이어갔다. 

“저도 피곤해서 좀 쉴게요. 내일 봐요. 사장님.”

도진한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레스토랑 안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도진은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오늘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아프다는 다미 상태도 걱정이 되고 또 다미가 여태껏 모르던 그때 일을 이제는 말해줘야 될 거 같았다. 

“딩동-”

오피스텔 벨을 누르고  얼마 안 지나 문이 덜컥 열렸다. 진짜 밤새 많이 아팠는지 얼굴이 많이 초췌해진 다미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아?”

다미는 문을 반쯤 연 채 말이 없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고 도진이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병원은 가봤어? 약은? 상준이 연락은 왜 안 받았어? 걔가 걱정되어서 나한테 문자가…”

등을 돌리고 서 있던 다미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뒤에서 다그치던 도진이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왜 이러는지 물으려고 그녀의 팔에 손을 댔다가 도진은 옅은 한숨과 함께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 했다.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걸 봐서는 우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선배는 내가 걱정되어서 온 거 아니에요?“

한참을 그러고 있던 다미가 도진을 감쌌던 허리를 풀면서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걱정되어서 왔지. 문자는 아까 낮에 확인 했어.”

그의 말에 다미는 만족하다는 미소를 보였다. 

“보고 싶었어요. 선배. ”

다미의 이 말에 도진은 갑자기 오늘 자기가 온 목적이 생각났다. 

“다미야. 나… 유나랑 진지하게 만나 려고 해.”

“…!”

도진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다미는 바로 원망이 섞인 눈으로 도진을 쳐다보았다. 

“진심이에요?”

“… 응.”

다미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러는 도진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픽 하고 거친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선배가 나한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우리가 함께 했던 그 4년이 선배한테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었어요??!“

원망이 가득 찬 고함을 지르던 다미는 급기야 눈물이 터졌고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러는 도진이가 이해가  안 되었고 믿을 수도 없었다. 자기가 알던 도진이는, 사랑하던 도진이는 자신한테 이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절대로!

”미안해…“

도진은 미안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 또한 지금은 아니라도 한때는 지독하게 사랑했던 그녀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그리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 
펑펑 우는 다미 앞에서 마음이 그녀와 같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안하면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되잖아요! 우리 사랑하던 3년 전으로요.“

다미는 벌떡 일어나 도진이의 양손을 잡고 거의 애원하듯이  울먹였다. 

도진은 그런 그녀의 손을 다시 꼬옥 잡아주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사이야.  이제 받아들여. 다미야.”

“… 왜? 우리가 언제 끝났어? 나한테 제대로 된 이유도 안 알려주고 선배의 일방적인 이별이었잖아!“

다미는 믿기지 않는 듯  머리를 강하게 저었다. 

“아니야. 선배는 그런 매정한 사람이 아니잖아. 나한테 얼마나 자상하고 좋은 남자였는지 4년 동안 변함이 없던 게 도진 선배라고…! 누군가 그러더라? 4년 정도면 한 번쯤 권태기가 올 수도 있다고. 그래서 선배를 난 기다렸어.  근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도 몰랐고 또 이제는…”

“다미야.“

도진은 진정을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기까지 하는 다미의 양어깨를 꼭 잡고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거칠던 다미의 호흡이 차츰 차분해지는 걸 봐서는 도진과의 시선에 조금씩 진정을 하는 듯했다. 

”다미야. 3년 전… 내가 왜 사고가 났는지 넌 아직 모르지?“

다미는 생각지도 못했던 도진의 말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도진은 여태 그녀한테  말하지 않았던 그날 일을 꺼내기 시작했다.
추천 (3) 선물 (0명)
IP: ♡.214.♡.18
로즈박 (♡.139.♡.181) - 2024/01/04 06:41:37

어쩐지 사고가 다미네 부모가 일부러 낸거 아닐가 생각도 들고..
유나가 혹 도진의 동생?설마 아니겟죠?정말 그렇다면 스토리가. 너무 잔인한데요..
이와 비슷한걸 오래전에 본 기억이 나서요..
암튼 올리시는대로 열심히 보고잇답니다..
늦엇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죽으나사나 (♡.214.♡.18) - 2024/01/04 07:19:22

아… 뒤에 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그런 사고는 아니에요. 어디에서 비슷한 걸 보셨다니. ㅠㅠ 비슷한 게 있다면 저로선 슬프네요. 머리를 나름 굴려본거라.

죽으나사나 (♡.214.♡.18) - 2024/01/04 07:20:46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재주 없는 글을 읽어주시다니 고맙습니다.

Figaro (♡.136.♡.59) - 2024/01/04 10:23:57

재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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