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27회)

죽으나사나 | 2024.01.09 11:12:03 댓글: 3 조회: 264 추천: 0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8721
따스한 봄날이 올까(27회) 올해의 봄은 여전히 따뜻할 거야. (완결)

"에구구~~ 우리 아가, 아까 거기가 너무 시끄러워서 무서웠쪄~ 미안해~~ 아가가 무서워할 줄을 모르고 데려갔으니 내가 잘못이네~"

"...!"

설마,

황급히 돌아선 도진의 눈앞엔 어린 아기를 달래며 유모차를 끌고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도진이의 시선을 못 느낀 채 여자는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의 옆을 지나가려는 순간, 도진은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아버렸다.

놀란 그녀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도진이랑 눈이 마주쳤다.

몇 초가 흘렀는지 모른다.

"으앵~~~!"

또다시 아기가 큰 울음을 터뜨리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그녀는  아기를 안아서  달래고 있었다.

"... 유나야."

"쉿, 잠깐만."

도진이의 급한 마음을 모르는지 유나는 아기를 눈으로 가리키며 조용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몇 분이 지났나, 아기가 잠들어서 조용해지자 유나는 아기를 살포시 유모차에 내려놓았다.

도진은 유나랑 아이를 번갈아보며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서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던 유나는 그제야 도진이의 시선을 느끼고 손사래를 쳤다.

"내 조카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한 말투였다.

"조카?"

"응. 울 동생네 아기."

"그 혁이라는?"

"걔가 글쎄 사고를 쳐서… 휴. 근데, 오랜만의 만남에 참 ... 모양새가 이상하네."

오랜만의 만남인데  애 엄마로 오해했다는 게 은근 신경 쓰이는 유나다.

"근데 사장님은 왜 여기에 있어?"

유나는 멀리에서부터 걸어오면서 한참이나 자기 집 앞에 서있는 이 남자를 보았었다. 어딘가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도진일 줄은...

"유나 너 근데..."

"응?"

도진은 유나를 다시 만나면 뭐부터 말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 게 우선일까 고민을 엄청 많이 했었다. 분명...

근데 이상했다. 이런 말을 먼저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너 나한테 원래 반말했었니?"

엊 그저께 만났던 사이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져 갔다.


"아... 아니었었나요? 음..."

유나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때 마지막으로 본 기억에서는 사장님이 울기만 했던 거 같아서 혁이 또래로 착각했나 봐요. 죄송해요."라고 했다.

유나의 시큰둥한 대답에 도진은 유나의 말이 도통 이해가 안 가서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가 금방 다시 온화해진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일부러 하는 틱틱거림, 부자연스러운 시선처리...
누구보다 지금 이 갑작스러운 만남을  당황해하는 건  유나라는 걸 느꼈다. 적어도 지금 이 모습으로 만나려고 한 건 아니었다는걸.

"2년 만에 나타나다니... 너도 참 지독하다."

다미의 말이 이거였구나.

[인연이라면 기다리면 언젠가 또 우연하게  만나겠죠.]

도진은 두 팔을 활짝 펴고 그녀한테 내밀었다. 유나는 그런 도진을 몇 초동안 쳐다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보고 싶었어요. 사장님."

사장님, 어떻게 지냈나요?

저는 조금만 힘들다가 나름 바쁘게 지냈어요.

사실… 그날 마지막으로 사장님을 만나고 나서 병원에 있는 엄마한테 갔었어요. 심장수술 날짜까지 잡았었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던 수술이었는데 엄마는 결국 저보다 아빠 곁이 더 좋았나 보더라고요. 엄마는 큰 고통이 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가셨어요. 그게 저한테는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엄마를 아빠가 쉬고 있는 곁으로 보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 살던 곳으로 갔고요. 오랜만에 가서 그런가. 잠깐 있다가 서울로 다시 오려고 했는데 곳곳에 어릴 때 좋았던  기억의 장소들이라 바로 떠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일자리도 찾고 정착을 했어요.

물론 사장님 생각이야 많이 났죠. 전화를 해볼까, 쉬는 날 그냥 불쑥 찾아가 볼까 많은 생각들이 오갔어요.

근데 문득 의문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처음 만나서 좋아하는 마음을 갖기까지 고작 2개월이란 시간이었어요. 이게 그냥 애들 불장난 같은 건 아닌지,  어느 날 흐지부지 아무것도 아닌 채 사라지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드니 도저히 갈 수가 없었어요. 원치 않는 끝을 보느니 차라리 아쉬운 헤어짐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다시 여기를 쉽게 올수 있었던 건 다미 씨의 덕분이에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요?

사장님한테는 얘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어요. 다미 씨가 처음에 나한테 던졌던 그 제안. 엄마를 위해서 나는 받아들였었고 선택은 제가 했어요. 근데 엄마가 그렇게 가버리고 장례식장에 온 다미 씨는 딸인 저보다 더 상심을 하며 울었어요. 그때 저는 엄마가 숨겨놓은 딸이 있었나 할 정도였다니깐요.

다미 씨는 저한테 미안하다고, 이렇게 쉽게 갈 사람을 갖고 그런 제안을 한 자신이 너무 싫다고 했어요. 너무 자책을 하길래 괜찮다고 선택은 내가 한 거라고 그랬었어요. 다미 씨의 제안이 아니라도 그때는 제가 사장님의 옆에 그냥 있을 수도 없었어요. 상황이 그랬어요.

다미 씨한테는 제 상황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약속을 잘 지켜줬더라고요. 다미 씨한테 진짜 고마운 게 많아요.

그리고 원래는 지방으로 내려갈 때 이 집을 빼려고 했어요. 근데 다미 씨가 저 몰래 집주인한테 월세였던 집을 전세로 바꿔버렸더라고요. 집은 절대 빼면 안 된다고. 나중에 돌아올 곳이 있어야 하지 않냐며…

지금 보면 오늘 이런 날을 생각해서 그런 거 같아요. 사장님 레스토랑이랑 가까운 이 동네를 벗어나지 말라는, 그래야 마주치기라도 하니까.

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거 같아요. 다미 씨도 레스토랑 사람들도… 그리고 사장님도요.

또 제일 중요한 건, 오래전부터 그래왔지만 난 우리 엄마를 참 잘 만났다는 거.

유품정리를 하면서 처음으로 엄마 휴대폰을 만지게 되었어요. 비번이 걸려 있어서 그냥 놔둘까 하다가 a/s 센터를 갔었어요.

난 엄마가 아빠를 잃고나서는 나를 싫어한다고만 생각했어요. 엄마를 놓을 수 없었던 건 아빠가 살아있을 때의 엄마 모습을 기억해서였어요.
그런데 비번이 풀린 휴대폰을 보고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폰에는 어릴 때부터 온통 저와의 추억으로 가득한 사진들로 꽉 차 있었어요. 제일 마지막 장에서는 거의 오열을 했죠. 엄마를 이제 피하지 않고 집을 막 드나들 거라고 선전포고 한 이후에 찍은 사진이었어요. 그날 어쩌다가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먹고 제가 정리를 했었는데 저의 뒷모습을 몰래 찍어 저장을 하셨더라고요. 그게 엄마가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어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엄마 폰에 전화를 해보았어요. 뭐라고 저장이 되어있는지,

<사랑하는 내 딸>이었어요.

그제야 알았어요. 저는 한 번도 엄마한테 버림을 받은 적이 없더라고요. 저는 참으로 운이 좋은 아이였어요.

그래서 사장님 같은 남자를 만날 기회도 있었나 봐요.

첫 번째 봄이 지나면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그리워했고 추운 겨울이면 따뜻하게 하고 다닐까 그리워했어요.
두 번째 봄인 현재는 사실…

내일 이쁜 옷에 예쁜 화장을 하고 레스토랑으로 찾아가려고 했어요. 근데 오늘 이렇게 망쳤지만 말이죠.

그리고 혁이는 가장으로서 맨날 회사에 바쁘고 올케인 주리는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바빠서 제가 조카를 가끔 봐주고 있는데 이게 천직인가 봐요.
아기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요즘 아기랑 관련 있는 일을 알아보다가 느꼈는데 웬만하면 다 학력을 보더라고요.

저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 공부를 해볼까 해요.

-아니, 잠깐. 유나야.

-네?

-아기가 좋다고?

-네. 좋아요.

-그럼… 있잖아. 우리 이참에 결혼할래?

-네??? 갑자기 무슨…

-아기가 좋으면 취직 말고 취집해도 아기는 있을 건데…

-취…집이요?

-응!  나한테 시집오라고. 아기는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뭐, 뭐래. 이 아저씨가!!

-아저씨라니.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7년 차이면 아저씨지 뭘~~

-그래서, 시집 안 올 거야? 응??

-그건 뭐… 더 생각해 봐야죠!

-왜?

-아, 몰라!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이게 뭔 프러포즈도 아니고.

-프러포즈? 아… 시집오라고 하면 프러포즈가 되는 거야?

-아, 아니에요?

-아닌데.

-에에??

-프러포즈는 이렇게 대충 하면 안 되지!

-그…런가? 근데… 나 전부터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저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거예요?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에? 거짓말. 그런 게 어디 있어. 첫눈에 반했다는 거야 뭐야…

-응. 첫눈에 반했어.  그러는 넌? 언제부터야?

-난… 비밀이에요.

-뭐야? 너 일로 와봐. 어디 치사하게…

-아앗~ 오지 말아요!!

사실… 나도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사장님의 몸에서 후광이 보였어요. 누가 그랬었는데,  사람한테서 후광이 보이면 콩깍지의 시작이라고 했어요.

저 사장님한테 할 얘기가 참 많아요. 그리고 저에 대해서 그때 말해준다고 하고는 못했었죠? 이제 저에 대해 얘기해 줄게요. 우리 처음부터 시작해요.

그래. 유나야. 우리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야.

***

레스토랑 주차장에 검은색 고급 세단이 들어왔다. 빈틈없이 주차를 깔끔하게 하고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리더니 뒷좌석을 열어주면서 허리를  살짝 굽혔다.

하얀 하이힐에, 화려한 옷을 입은 아리따운 여자가 내렸다.

“아가씨, 같이 들어갈까요?”

보디가드처럼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자 여자는 바로 손을 내밀며 거부했다.

“아니요! 저 혼자면 돼요.”

“띠리리리링.”

여자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웃으면서 바로 받았다.

“하이, 맘~. 돈 워리~. 내가 아직도 애야? 한국이 아무리 오랜만이라 해도 말이 다 되고 내 모국인데 무서울 게 뭐가 있다고. 더군다나 김비서 아저씨도 붙여줬잖아요. … 알았어. 나도 지금 엄청 설레. 몇 년 만인지도 모르겠어. 이제는. 날 알아볼지도 모르겠고. 응. 알았어. 잘할 수 있어. 맘~ 아이 러뷰 투~ 빠이~“

애교가 넘치는 여자는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자 손바닥만 한 작은 가방에 폰을 넣고는 또각또각 레스토랑으로 향해 걸어갔다.

”끼익-“

레스토랑 문이 열리면서 여자가 들어왔다.

”또각또각.“

”어서 오세요~ 손님 예약하셨나요?“

화영이가 제일 먼저 발견하고 다가와인사를 한다.

그녀는 차 안에서부터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입꼬리를 한껏 말아올려서 미소를 지었다.

”손님 아니고요. 사람 찾으러 왔어요. 집엔 없었고 여기 있을 거라 해서 왔는데 ,“

”누굴 찾으시는지…“

”유나! 정유나요!“

”유나 언니요? 근데 그쪽은 누구세요?“

화영이는 사장실에서 한창 오붓하게 데이트를 하고 있을 도진과 유나를 지금 가서 방해할지 말지는 이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판단하려고 했다.

”저요? 음… 지금 내 이름은 정유나가 모를 거고, 그냥… 이렇게 전해주세요. 긴 머리 이지아가 찾아왔다고요.“

”긴… 머리 이지아요?“

”네.“

뭔가 직감이라는 게 있을까. 사장실에서 홀 상황을  신경을 안 쓰던 도진과 유나는 동시에 홀 안을 쳐다보게 되었고 마침 화영이랑 대화하던 긴 머리 지아랑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따스하지 않았던 봄은 여태 없었다.

그러나 그 봄이 우리의 마음까지 따스함을 주기란 쉽지가 않았다.

봄,

추운 겨울이 지나 꽁꽁 얼었던 대지를 녹이고 만물에 생기를 부여하는 계절.

우리한테도 올해의 봄은 많이 따스할까.

그러리라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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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01.♡.215
Figaro (♡.136.♡.201) - 2024/01/09 16:54:08

화이팅예요 ㅎㅎ

죽으나사나 (♡.101.♡.215) - 2024/01/09 17:21:16

쓴 지 좀 된 거라 지금 다시 보니 오그라드네요. 수정하기도 귀찮고.. 으허 ㅠ

Figaro (♡.136.♡.201) - 2024/01/09 17:39:17

하하 그런가요 나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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