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3회)

죽으나사나 | 2024.01.11 12:21:23 댓글: 3 조회: 247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9364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3회) 내가 몰랐던 그녀.

혜주는 얼빠진 사람처럼 동공이 풀린 채 어깨까지 축 처져서는 집 아래 커피숍에서 심건희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다 미간을 확 찌푸린 채 아까 통화 내용을 곱씹어 봤다. 

[엄마라니?? 무슨 소리야??]

[아, 아니, 아줌마가 왜 혜주, 아니, 나한테 전화질이냐고!!!]

당최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얘, 얘를 봐라?! 돈 입금할 때가 되었는데 네가 안 넣으니까 그러지!]

전화기 너머에서도 많이 당황한 듯한 심건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돈이라니! 무슨 돈!!]

[허, 김혜주. 너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꺼내는 심건희 때문에 혼란해진 혜주다. 

[너 자꾸 그러면 나 너네 집 쳐들어 갈수 있다? 가서 깽판을  쳐? 네가 남주혁 우리 아들 꼬시는 여우같은 년이라고!]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이 여자가 어떻게 내가 지금까지 혜주를 만나는 걸 알고! 
그래 안다고 치자. 날 꼬시는 여우 같은 년이라니?! 

그리고 중요한 건 혜주네 집은 또 어떻게 알아???!

여기까지 생각 한 혜주는 전화로는 해결이 안 될 거 같고 심건희를 당장 만나서 뭐가 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할 얘기가 많을 거 같은데, 여길 안다고 했지? 아줌마가 여기로 와. 아래 커피숍에서 만나.]

그래서 여기서 한 시간 째 기다리고 있는데 이 여자는 도통 나타나지를 않는다. 

“띠링~”

언제 오는지 초조해지기 시작할 무렵, 커피숍 문에 달린 방울이 울리면서 문이 천천히 열리고 중년 여자가 들어왔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틔는 저 여자. 오늘 햇살이 그리
강하지도 않는데 얼굴을 반쯤 가리는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 50대 여자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짙은 빨간색 입술, 화려한 호피 무늬의 몸에 딱 붙는 원피스, 그래도 잘 관리된 몸매 때문에 보기 역겨운 정도는 아니다. 누가 뒤에서 보면 30대 여자라고도 생각할 정도? 그리고  몇 센치인지는 몰라도 그걸로 사람을 내리찍으면 바로 사망할 거 같은 높은 힐. 저 여자가 내 엄마다.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그 위로 커피숍 내부를 둘러보던 심건희가 구석 쪽에 앉아있는 혜주를 발견하고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커피숍 안에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심건희는 런웨이를 하는 것처럼 또각또각 걸어서 혜주의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선글라스는 벗어 자기 앞에 내려놓고는  뭐가 급한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 오늘 그날이냐?? 어디서 어른한테 오라 가라야. 네일 하느라 바빠죽겠구만.”

자기 손을 쫙 펴고는 금방 한 네일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다  급하게 마무리하느라 잘 안된 손톱을 발견하고는 더 짜증을 부렸다. 

“너 내가 주혁이 엄마라는 걸 가끔 까먹나 본데. 주혁을 낳은 건 바로 이 심건희. 나야.“

심건희는 의자에 몸을 뒤로 젖히고는 팔짱을 낀 채  입안에는  껌을 잘근잘근 씹으며  혜주를 노려보았다. 

그래, 생물학적으로는 나를 낳았으니 엄마는 맞다. 근데 낳았다고 해서 다 엄마인 건 아니더라.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이 여자는 한 번도 내 엄마 노릇을 한 적이 없었으니,

이 여자는 젊었을 적 그 당시에는 나이에 비해 꽤 유명한 배우였다.  성인도 안되었는데 연기대상도 받을 만큼 연기력도 인정을 받았었는데 20살이 되던 해에 자기를 보필해 주던 매니저의 아이, 즉 나를 임신한 걸 알게 되었다. 

매니저였던 아빠는 당연히 책임을 지겠다고 했고  이 여자는 나를 지우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언론에 공개되었고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당연히 승승장구 할 줄 알았던 인기는 하루아침에 바닥을 쳤고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던 이 여자는 갓난쟁이인 나를 젖도 안 물려보고 술에 쩔어 살다가 밖으로 한번 나가더니 그 뒤부터 다시 치장을 하더란다. 아빠는 이 여자가 다시 일상을 회복하는 줄로만 알고 기뻐했다지… 

얼마 안 지나, 늙다리 유부남 감독이랑 호텔에서 나오는 장면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찍히지만 않았다면… 

아빠의 불행은 그렇게 빨리 시작되지도 않았겠지. 

이 여자는 모든 언론의 공격으로 연예계에서 사실상 영구 퇴출을 당하였고 당연히 아빠와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었다. 

홀아비 혼자서 나를 키우느라 참 고생을 많이 했었던 아빠. 가진 게 없어도 어렸던 나한테 사랑을 듬뿍 주셨다. 
점점 커가면서 이 여자의 끼가 내 몸에도 있었는지 TV를 보면서 똑같이 연기를  하는 나를 보고 아빠는 많이 기뻐하셨다. 엄마를 닮아 연예인을 할 상이라고. 

연예인 따위 처음엔 생각조차 안 했다. 근데 누군가 그러더라. 짧은 시간 내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연예인밖에 없다고 그러더라. 

대박을 차던 쪽박을 차던 연예인은 그렇게 극단적인 직업이라 했다. 매일 밤늦게 힘든 몸을 끌고 들어오는 아빠를 보며 결심을 했지. 연예인을 해야겠다고. 돈을 잘 버는  TOP 연예인 말이다. 

그 길이 물론 쉽지는 않았다. 오디션을 봐도 여기저기 까이기 일쑤고 어쩌다 맡은 작은 배역은 티비에 몇 초만 나오거나 아니면 아예 얼굴을 비추지 않는 게 전부였다. 

그 모든 힘든 시간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준 게 아빠와 혜주였다. 그러나 아빠는 몸을 너무 혹사했던 건지 내가 첫 주연을 맡게 된 드라마 방영을 3일을 앞두고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물론 이 여자는 연락이 안 되었으니 장례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 여자를 잊고 살았다. 근데 내가 이름을 어느 정도 알리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이 내 과거를 캐기 시작하면서 이 여자의 아들이라는 게 밝혀졌다. 너무 부끄러워서 연예인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다. 

근데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 여자의 과거를 알아도 처음엔 좀 쉬쉬하다가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내 인기는 이 여자 때문에 크게 영향을 안 받은 채 그렇게 별 탈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이 여자가 찾아온 것이다. 

아마 내가 자기 아들이란 뉴스를 보고 찾아온 거겠지. 방송국을 직접 찾아와서는 그 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울었지. 보고 싶었다고. 

연기가 녹슬지 않았더라. 엄. 마 .

내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바람을 피우고 집을 뛰쳐나갔으면서 각종 인터뷰에 그땐 어려서 그랬다를 시전하더니 이혼한 건 아빠 때문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기길래 아주 지랄을 했다. 이미 간 아빠를 욕보이지 말라고.

한동안 뉘우치는 듯 잠잠하길래 천륜은 그래도 못 끊는다고 용돈을 보내주었었다. 나보다 고작 5살 많은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를 데려와서 애인이라며, 내가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에 꽂아달라고 하는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너 엄마를 위해서 그것도 못해주니? 너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도 이 엄마가 너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해줘서 그런 거 아니냐!? 고까짓 조연 하나 못 넣어? 이 치사한 놈아!!]

침이 튀겨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이 여자의 말에 참 어이가 없었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 그 기생오라비랑 같이 쫓은 후 그 뒤로 연락을 끊었었다. 

근데, 오늘 또 이 여자한테서 이런 말을 듣네. 

이제야 나타나서 나를 자기가 다 키운 것처럼 말하는 저 여자가 너무 밉다. 

“싸지르기만 하면 다  엄마인가.”

심건희처럼  뻔뻔함의 극치인 사람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 기에 눌릴 혜주, 아니! 남주혁이 아니지.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심건희는 딸같이 어린애한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설령 그게 진짜라고 해도 기분이 언짢아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원래도 글쎄  붙임성이 있는 애는 아니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까칠하진 않았었다. 이상하다. 왠지 꼭 자기 아들을 보는 느낌이 드는 심건희다.
혜주는 또 무식하게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이 여자를  상대하기 싫어졌다. 이제 그냥 마무리를 지어야지 하고 입을 열려고 하는데 심건희가 먼저 뱉었다. 
"너 내가 왜 별 볼일 없는 너를 주혁의 옆에 있게 놔두는지 알아? 주혁이가 그나마 네 말은 듣는 거 같아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너 아웃이야. "
심건희는 혜주를 흘겨보며 비아냥거렸다.
"하..."
심건희의 조롱에 혜주는 픽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말을 잘 들을 거 같다면서 나한테 이런다고? 내가 주혁이한테 다 불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이 여자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호호호호..."
심건희는 혜주의 협박 아닌 협박에 웃겨서 배를 끌어안고 과장되게 웃어댔다.
"네가 주혁이한테 분다고? 넌 못 불어. 왜? 주혁이가 내 얘기만 들어도 힘들어할 거 아니까. 넌 주혁이가 힘든 게 죽어도 싫잖아."
그걸 아는 사람이 나한테 와서 그랬었다고? 이 여자는 진짜 ... 엄마란 탈만 쓴 인간인 걸까?
혜주는 갑자기 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비비다가 아직도 자기 손톱이나 쳐다보고 있는 심건희한테 선전포고를 했다.
"심건희 아줌마, 이제 용돈은 다른데 가서 얻어봐요. 이제 나한테 용돈 달라고 한 번만 더 그러면 주혁이한테 바로 말할 거예요. 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요. 알았어요?"
혜주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 많이 진지하고 차가워졌다. 

"난 네 말을 안 믿는다. 오늘 자정까지 넣어줘. 나 내일 쇼핑하기로 했어"
혜주의 이런 경고는 심건희한테는 애교 수준이었다. 자리에서 벌컥 일어난 심건희는 커피숍을 나가려고 다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돌아섰다.
"오늘  바로 주혁이를 상대할 체력이 되세요? 아줌마가 나가면 바로 주혁이한테 전화할 거예요."
뒤에서 들려오는 혜주의 비꼬는 말에 심건희는 또 심기가 불편해졌지만 이내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돌아서서 혜주를 보며 씨익 웃었다.
"돈이나 넣어."
심건희는 입꼬리를 살짝 더 올리고는 또각또각 요란한 하이힐 소리를 찍으며 커피숍을 나갔다.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다. 혜주도 그래서 돈을 주기 시작했던 건가...
그래도 이제는 안 줄 거다. 아니, 못 줘. 왜 내가 준 용돈을 저 여자한테 갖다 바치냐고.
혜주는 모든 게 막무가내인 심건희랑 오랜만에 독대를 하니 기가 빨렸는지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거 같았다. 방으로 돌아온 혜주는 침대에 털썩 누워 잠이 올듯 말듯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띠리리리링."
갑작스러운 전화벨 소리에 얼마 눈을 못 붙였지만.
"여보세요."
눈을 도저히 뜰 수가 없어서 누군인지 확인도 안 하고 받아버렸다.
"혜주야. 뭐해? 저녁에 만날까?"
"누구... 음? … 민수??"
졸면서 잠꼬대하듯이 말하던 혜주가 갑자기 전화기 너머의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폰을 들여다보니 생각했던 그 사람이 맞다.
하민수. 
나와 혜주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현재는 나의 매니저. 동창친구지만 꽤 오래 연락을 안 했었던 나한테 민수를 매니저로 추천한 건 혜주였었다. 혜주말이라면 아까 심건희 그 여자가 말한 것처럼 거의 다 들었던 나였던지라 민수를 매니저로 들이는 것도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
근데 왜 혜주를 따로 만나, 나한테는 혜주를 만나고 다닌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저녁에 만나서 뭐 하게. 너랑 나랑."
만나자는 민수의 말이 아니꼬운 혜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아… 저번에 네가 가보고 싶어 하던 식당 예약이 되었어.”

“응?”

혜주가 가보고 싶었던 식당이 있었다고? 그게 어딘데. 난 왜 오늘 처음 듣는 얘기가 많냐. 

왠지 엄청 신난 채 얼굴이 상기되어서 말할 거 같은  민수의 말에 주혁은 피가 거꾸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김혜주. 너 도대체 뭐냐?
추천 (1) 선물 (0명)
IP: ♡.214.♡.18
Figaro (♡.136.♡.201) - 2024/01/11 23:08:40

이번화 이부분에 작가님 실력 필력 여러가지가 나름 슴배인 한화가 아닌가
화이팅예요!

죽으나사나 (♡.214.♡.18) - 2024/01/11 23:47:32

하핫. 왜 그런 생각을 하신가요?

모모커피 (♡.245.♡.209) - 2024/01/31 08:40:03

잘보구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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