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31회)

죽으나사나 | 2024.01.26 02:05:29 댓글: 0 조회: 125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3156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31회) 사건의 전말.
주혁이가 갑자기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뛰쳐나가고는 그걸 해명하느라 정신없는 몇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전화도 안 받는 주혁이한테 직접 찾아가서 왜 그러는지 물어야 했다.
그래야 대표님한테도 내일 제대로 된 변명이라도 가능하니.
벌써 혜주네 집 아래서 주차하고 있은 지 2시간이 넘었다.
문 앞까지 찾아갔었다.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낮게 집안에서 들리는 혜주와 주혁이의 속삭임에 그냥 내려왔다.
불법 주차 단속 지역이라 깜빡이를 켜고 있다가 누군가가 차를 비키라고 하면 뒤로 뺐다가 다시 돌아왔다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오늘은 꼭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사실 요즘의 민수는 머릿속에 여러 기억들이 새로 떠올라 머리가 많이 복잡했다.
혜주는 분명히 아니라고 하는데 하얀 원피스를 입었던 혜주의 모습이 최근 들어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리고 또 술에 취해서 하던 혜주의 말도 귀에 그냥 맴돌았다.
[혜주를 좋아한다면 그 죽음을 막았어야지... 등신 같은 주혁이는 그렇다 쳐도 너는 막았어야지... 하민수.]
생각해 보면 최근에 주혁이네 오피스텔에서 둘이서 술을 마신 기억이 없다. 그런 장면이 없었다. 분명...
근데도 그 짤막한 순간이 생각나는 건 뭔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제 돌아가야 하나 싶을 때쯤, 혜주네 집 앞을 배회하고 있는 박성현을 보았다.
행색을 보아하니 이 동네에 그냥 온 게 아니라 왠지 지금 저 오피스텔을 아래위로 훑고 있는 게 우연은 아닐 거라 생각되었다.
주혁을 찾아온 건가? 그때 그 일로? 찾아온 거라면 연락을 하면 되잖아. 
아, 연락이 안 되어서 그러나?
그래도 뭔가 꺼림직해서 한참을 성현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혁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꿈을 꾸었는데 혜주가 죽었었어.]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별 실없는 소리라고 지나갔을 말이었다.
[굉장히 안 좋은 꿈을 꿨구나.]​
그 실없는 말에 응대를 해주고 있었다.
[꿈에서 네가 그랬어. 성현인 거 같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꿈이라고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사실이 아니잖아. 근데...
[혜주를 좋아한다면 그 죽음을 막았어야지... 등신 같은 주혁이는 그렇다 쳐도 너는 막았어야지... 하민수.]
기억에 없어야 할 혜주의 그날 말도 가짜가 아니었던 거 같단 말이지.
[혜주가 그렇게 된 거랑 상관이 있는 거 같았어. 너는 알고 있었고.]
그러니까 주혁의 말로는 지금 성현이가 혜주의 죽음에 연관이 있다는 말인 거 같은데, 지금 저 눈앞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박성현이를 잡아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성현이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 근데 꿈에서 깼네. 내가.]
꿈에서 깼다고...?
깼는데 굳이 나한테 전화를 해서 성현이 얘기를 한다고? 그깟 꿈 얘기를 지금 이 시간에 나한테 한다고? 오늘 갑자기 현장을 뛰쳐나간 그 일에 설명을 해야 할 판인데.
잘 모르겠지만 요즘 이 이상했던 기억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걸 주혁은 어느 정도 아는 듯했고.
그렇다면 혜주가 진짜 죽는다고 가정을 해보면, 박성현은 혜주한테 극도로 위험한 상대다. 그런 위협적인 상대는 혜주 옆에서 아예 떨쳐내야 하는 게 맞다.
그래서, 그래서...
시동을 걸고 페달을 밟아 박성현한테 직진하기까지 몇 초 안 걸렸다.
벨트를 풀고 있었던 민수도 부딪히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주혁이가 어느새 뛰어와 창문을 정신없이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
10월 8일 사건 당일.
심건희는 혜주의 머리를 내리친 트로피를 옷 속에 감춘 채 정신없이 뛰어나왔고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들어오려는  한 사람과 부딪혔다. 자기 얼굴을 보이면 안 된다 생각되어 사과 한 마디 없이 그대로 뛰쳐나갔다.
[하, 뭐야. 저 아줌마는.]
그렇지 않아도 열받아 죽겠는데 웬 아줌마한테 밀치기까지 당하니 기분이 영 아닌 유지태. 
10층으로 가는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꾹꾹 누르고 얼굴에 올라온 짜증도 눌렀다.
혜주네 집으로 갑자기 찾아오게 된 이유는 하나다.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한 통의 문자에 날름 달려왔다.
<옆에 있는 사람을 믿지 마라. 네가 모르는 거래가 있다. USB 원본은 그 사람한테 있다. 뒤통수는 항상 조심.>
확인해야 했다. 원래도 안 돌아가던 머리가 갑자기 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라곤 지금은 혜주밖에 없는데 협박하던 놈이 그걸 알고 그러는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혜주랑 상관있는 일이었던 걸까.
생각하며 다다른 혜주네 문 앞. 초인종을 누르려고 보니 문이 비스듬히 열려있었다.
뭐지? 하면서 천천히 그 집에 발을 들였다.
누구도 없어 보이는 조용한 집안 공기가 흘렀다.
[아...윽....]
두리번대면서 주변를 살피고 있는데 주방 쪽에서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엇! 너 뭐야. 김혜주.]
피가 흐르는 이마를 부여잡고 바닥에서 간신히 일어나는 혜주를 발견했다.
[너 다친 거야? 어쩌다가?]
[하...]
혜주는 말이 없이 티슈를 뽑아서는 이마를 꾹 누르면서 식탁 앞 의자에 앉았다.
[넌 여기 어떻게 왔어?]
우리 집을 알 리가 없는데.
[아, 그게...]
피를 흘리고 있는 혜주를 보며 깜빡하고 있었다. 오늘에 온 목적을.
[김혜주 너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내 뒤통수를 제대로 쳤더라?]
[뭔 소리야?]
[문자가 왔다고. 네가 동영상 원본을 갖고 있다고.]
혜주 앞에 최근에 받은 그 문자를 보여줬다.
힐끗 들여다보던 혜주는 다시 지태한테 폰을 쥐여주며 피에 어느새 흠뻑 젖은 티슈를 버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이딴 것도 믿니?]
[안 믿으면 내가 어떻게 해. 너한테 원본이 있는 게 아니냐고. 따지고 보면 그날 주혁이랑 만났을 때도 다 걔가 자리를 세팅한 거였어. 걔가 아니면 누구야. 네가 머리가 좀 더 좋으니 너한테 다 맡겼나 본데 이딴 식이면 나도 다 까버리는 수가 있어. 어? 주혁이도 그날 그거 하나면 훅 가는 거 아냐? 죽는 게 나 혼자냐고.]
지태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유지태. 너 지금 그거 억지인 거 알지? 나한테 시간을 좀 줘. 확실해지면 너한테 말해줄 테니.]
혜주는 단호했다.
그리고 빨리 이 자식을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픈 이마는 그냥 쏙쏙 찔리는 느낌인데 이 말도 안 되는 투정질을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USB가 여기서 나오는 날엔 너도 죽고 주혁이도 죽는 거야. 알겠지?]
지태한테서 살기가 느껴졌다. 지태한테는 누가 동지이고 누가 적인지 이제는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누군가한테 이 짜증 나는 속을 드러내고 싶긴 했었다. 오늘 그게 혜주였다.
혜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지태는 뒤도 안 돌아보고 현관문을 쾅 하고 차버리고 나갔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그냥 주혁이한테 큰 장난을 친 지태한테 경고를 해주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누군가가 지태를 향해 독을 품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아예 접근을 안 했을 것이다. 그냥 그 한 놈만 쫓으면 되니까.
얼마 전, 지태와 성현이랑 셋이서 어느 카페에서 만남을 가진 날이었다.
그날따라 어딘가 불안해 보이던 성현이가 화장실로 간다길래 몰래 뒤를 밟았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성현이의 의심스러운 통화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너 그 USB 잘 챙겨뒀지? 그 중요한 걸 그렇게 대충 두면 어떡하냐. 쓰레기통에서 찾았으니 다행이지. 하... 절대 누구한테도 들키면 안 되는 거야. 들키는 순간, 너와 나는 죽는다. 알았지?]
뭐냐고 다그친 혜주한테 성현은 당연히 자기 일이라고 상관하지 말라고 했지만 많이 수상했다. 어쩌면 성현이가 협박범이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근데 증거가 없다. 뭔가 더 확실한 게 필요했다.
[근데 지태 너는 성현이랑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된 거야?]
일부러 같이 있는 자리에서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아, 얘? 작년에 술집에서 우연히 만났어. 너도 알잖니. 나 동창에 목말라 있는 거. 얘랑 요즘은 동창 중에 제일 가까운 거 같은데?]
[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는 성현이를 힐끗 쳐다보고는 한마디를 더 얹는 혜주다.
[성현이 너는 우연히 동창을 많이 만나네. 우리 주혁이도 그렇게 만났다면서?]
[어? 어. 그랬지.]
[꼭 일부러 찾아다닌 거 같잖아. 그렇지 않아? 지태야.]
흔들리는 눈동자의 성현을 신경 안 쓴 채 멀뚱해서 앉아있는 지태한테 질문을 던졌다.
확신이 들었다. 성현이가 이번 협박에 관련이 있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안 지나 돈을 준비하라는 문자랑 주혁이랑 만났던 동영상까지 보내졌었다.
많이 급해진 모양이다. 그 동영상으로 아마 마지막 패를 다 쓴 것일 것이다. 오늘 이렇게 지태가 찾아오게끔 주혁이를 의심하게끔 미리 짜 놓은 판 일 수도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는 걸 알 테지만 지태의 그 앞뒤 없이 욱하는 머리로는 충분히 오판을 내기 쉬우니.
성현이의 뒤를 하루만 쫓아가 보았다. 지태는 왜 여태 성현이를 의심을 안 하는지 참 아이러니했다.
그 하루에도 허점이 이렇게 많은 성현이었는데.
먼저 따라가본 곳은 불법 도박장이었다. 모자랑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들어갔지만 생각보다 출입 인원 단속을 안 하는 곳이었다.
근처에 앉아서 들어보니 이미 빚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던 성현이었다. 근데도 도박을 못 끊고 있는 모습이란...
돈이 떨어지니 금방 거기서 나왔고 성현은 다른 곳으로 향해  급히 가더랬지.
누군가를 만나서 뭔가를 주고받는 듯했다.
조력자인가 싶었다.
그 앞에 바로 나서지는 않았다. 어떻게 이걸 정리해서 지태한테 알려 줄지가 중요했다. 주혁이랑 같이 있던 동영상까지 오픈 된 이상 갑자기 성현이를 지목하는 것도 괜한 의심을 살 거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미처 신경을 못 쓴 이마에서 자꾸 떨어지는 피를 지혈할 수건이 필요했다. 
이때 전화가 걸려왔다.
<박성현>이었다.
제 발이 저렸구나. 그렇지 않아도 나도 너를 찾으려고 했어.
[어. 웬일이야?]
[야, 우리 좀 만나지?]
술에 취해 혀까지 꼬이는  성현이의 말투였다.
[취한 사람하고는 상대하고 싶지가 않은데?]
까칠한 혜주의 반응에 전화기 너머 성현이의 실소가 들려왔다.
[난 오늘 너를 꼭 봐야 하겠는데? 아니면 뭐, 내가 남주혁을 찾아가던가 해야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네가 날 안 만나고 배기나 보자 하는 성현이었다.
혜주는 아직 피가 고여있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결심을 했다.
[오늘 내가 나가기는 좀 그러니까 우리 집으로 와. 주소 보내줄게.]
내키지 않았지만 주혁이를 찾아가는 건 더 끔찍한 일이라 오늘 결단을 내리긴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 가 초인종이 울렸고 당연히 박성현이라고 생각했던 거와는 달리 민수가 눈앞에 떡하니 서있었다. 그것도 한껏 취한 모습으로.
오늘은 이 집이 인기가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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