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40회)

죽으나사나 | 2024.03.15 08:08:47 댓글: 6 조회: 257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3973
너를 탐내도 될까? (40회) 누나의 쌍둥이 언니. 
"이게 뭐야?"
정연은 손에 이어 목소리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약 이지."
하정은 최대한 대수롭지 않은 척 그 약 봉투를 정연에게서 뺏으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제 몸 뒤로 숨긴 정연은 두 눈을 똑바로 하정에게 응시하며 곧게 다시 물어왔다.
"이게 뭐냐고, 윤하정."
평소 그녀에게서 들을 수 없는 서늘한 어조에 하정은 괜히 가슴이 쪼들렸다.
"그냥 두통약이야.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처방을 준 거란 말이야."
별게 아닌 것처럼 해명을 했지만 정연의 날선 눈초리는 변함없었다.
"도네페질."
정연의 입에서 나지막이 그 명칭이 튀어나왔다. 치매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치매 치료제.
하정은 속으로 삼킨 한숨과 함께 입안 말캉한 제 살을 꽉 깨물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 약은 잊을 수가 없지. 너도 알잖아. 우리 엄마가 왜 돌아가셨는지."
하정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정연한테마저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얘기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랬다.
몇 년 전에 치매로 꽤 오랜 시간을 앓다가 결국 가족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바깥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돌아가신 정연이 엄마 때문이었다.
자신을 제대로 기억을 못 하는 엄마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던 정연이었다. 
약을 잘 먹으면 꼭 호전될 거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바람대로 병세는 나아지지는 않았다.
온화하던 성격이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난폭해졌고 예민했다. 쩍 하면 화를 내고 집안을 뛰쳐나갔다. 
치매라면 저보다 정연이가 더 무서워할 거란 걸 알기에.
이미 그 병으로 가족을 잃은 정연에게는 또 다른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하정은 정연에게 비밀로 일관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들킬 줄은...
하필이면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잠을 잔 오늘.
이럴 줄 알았다면 죽어도 이 집에서 못 자게 하는 건데.
하정이 후회로 가득해 한숨을 내쉬는 사이 정연은 갑자기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야... 오정연.“
평소 같았으면 징그럽다고 빨리 떨어지라고 소리를 질렀을 텐데 지금은 모깃소리만큼 낮았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 거였구나…. 거짓말이라고 해줘. 우리 나이에 그럴 리 없잖아."
속였다는 거에 크게 화낼 줄 알았지만 정연의 목소리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왜 자신한테 선뜻 얘기를 할 수 없었는지 잘 아는 것처럼.
"그러게. 믿을 수가 있어야지 원."
남의 얘기를 털어놓는 듯 내 입에서 흘러나온 무감한 말은 정연을 자극했다.
"약을 받은 지는 이리 오래되었는데 왜 이렇게 많이 남았어?"
약간 화가 난 말투로 나를 마주한 정연을 대하기가  두려웠다. 꼭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약을 먹어봤자, 쾌차하는 건 아니라고 해서."
난 또 그냥 시냇물이 흐르 듯  휙 뱉어버렸다.
"안 먹으면 더 괜찮아지고?"
미간이 좁혀진 정연의 표정은 진지했다.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놀라움, 슬픔, 저한테 말하지 않은 화를 꾹꾹 누르느라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 정연을 보며 열심히 하던 대꾸도 지금은 적당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그 자리에 조용히 서있었다.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도 한참이나 그랬다.
"어어어엉... 흐아아아... 끄윽... 우리 하정이 어떡해…"
정연은 마치 내가 이미 죽기라도 한 듯 오열을 했다.
난 아직 이리 살아 있는데,
아직 누군가를 못 알아보고 뭘 해야 할지 잊은 적도 없는 거 같은데 오열로 사망 선고를 내린 건 정연이었다.
난 눈물이 나지 않았다. 
홀로 남겨져 있던 이 집안에서 꽤 많이도 눈물을 흘렸었기에 이제는 담담해졌다.
한참을 울다 어느 정도 진정된 정연이가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너 혹시 이것 때문에 대표님을 멀리하는 거야?"
한참을 날 지켜보던 정연이가 갑자기 뱉은 말은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정연아.
그 반대야.
내가 말짱할 날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니 오히려 용기를 낼 수가 있었어. 먼저 찾아가고, 좋아한다는 호감도 표현하고, 같이 있고 싶다고 한 건, 나였어.
정신이 말짱할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을 많이 담고 싶었어.
"아니야. 권대표 말이 왜 지금 나와."
시작을 한 기억도 크게 없지만 이미 끝내기로 한마음에 더 이상 미련을 더 두고 싶지 않았다.
"너 대표님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권대표, 좋아하지.
그러나 그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아픈 내가 무슨 염치로,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바위에 계란 치기를 하겠어. 미친 짓이지.
"아니, 호감은 있었지만 그냥 거기까지야. 어차피 우리랑 엮일 일이 없는 존재잖아."
담담하게, 정연으로 하여금 아주 가벼워 보이게 답했다.
"... 거짓말."
입술을 마구 짓이기며 뱉은 정연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네 부모님은 알아?"
내 양어깨에 손을 올리며 정연이가 그분들을 입에 올렸다.
"아니다. 나한테도 숨기고 있던 네가 그분들한테 당연히 아무 말도 안 했겠지."
입은 떼지도 않았는데 정연이 자문자답을 했다.
"근데, 윤하정."
정연의 눈매가 매섭게 올라갔다. 단박에 알아차렸다. 혼내려는 저 기세.
"너 아프다는 사람이 그렇게 술을 마셔댄 거야?? 미쳤어??"
술은 즐거움을 나타내는 도파민이 발생되어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러나 뇌의 기능을 저해 시킨다.  특히나  뇌의 기능이 떨어질 치매라는 병엔 더욱더 독극물을 마시는 격일 거다.
그런데도 그렇게 마셔댔다는 거지. 더군다나 최근에 들어 전보다 더욱더 많이 마셨다.
왜,
왜 꼭 제 몸을 그리 혹사 시켜야만 하는 거니. 하정아.
넌 온전한 기억으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틸 생각조차 없었던 거구나.
정연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돌아가신 엄마의 생각까지 떠오르자 눈물이 차고 올라왔다.
너무나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하정을 또 끌어안았다.
토닥토닥,
그녀의 등을 두드려줬다.
"노력해 보자. 약도 먹고, 운동도 하면서. 우린 아직 젊잖아."
하정은 답이 없었다. 
"들었어?! 윤하정!!"
제 턱에까지 가득 고인 눈물을 거칠게 팔뚝으로 쓸어낸 정연이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어, 어..."
하정이 움찔 놀라면서 대답했다. 그제야 정연은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려고 입매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걱정 마,
하정아. 내가 옆에 있어줄게.
***
"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회식들 잘 하시고요."
"뭐야~ 진짜 회식 안 가는 거야? 서울 씨가 빠지면 우린 무슨 재미로 술을 마시라고~"
오늘 인사팀에서 전체 회식이 있다. 주말이 지나고 출근 첫날이라 다들 피곤해 보였지만 축하할 일이 생겼다.
영진 그룹에서 대다수의 리더스 직원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보장해 줄 거라는 얘기가 나왔다.
한동안 잘릴까 봐 전전긍긍하던 리더스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오늘 대다수의 팀에서 자체 회식을 가지기로 했다. 
같은 팀 박 대리가 약속이 있어서 회식 참석을 못 한다는 서울에게 아쉬움을 표했다.
"죄송해요. 대신 다음에는 꼭 참석을 할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서울은 예의를 바짝 갖춰서 인사를 드리고는 차를 끌고 회사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슬슬 막히기 시작할 도로를 생각하며 빨리 약속 장소로 가야 했기에 엔진 속도를 올렸다.
[윤하정 한테는 저를 만났단 얘기 말아주세요. 궁금한 거 있으면 저한테 연락 주시고요.]
주말 내내 병원 앞에서 마주한 그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생각해 보았다. 
누나한테 말해줘야 하는가,
근데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누나랑 똑닮은 여자를 만났는데 누나를 알고 있는 거 같다고 얘기해야 할까.
누나를 알고 있으면서 굳이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건,
누나가 알면 안 되는 존재인가 싶으면서도,
이해가 안 갔다. 
왜 누나가 알면 안 되는 거지?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그 여자를 직접 만나 물어야 했었다.
당신은 누구인지. 누나랑 무슨 사이인지.
몇 분만 지체되어도 꽉 막힐 도로를 미리 슬기롭게 헤쳐 나와서 그런가,
생각보다 회사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약속 장소로 금방 도착했다.
많은 인파가 몰려다니는 복잡한 동네 주차장에 주차를 한 서울은 그녀가 알려준 커피숍으로 발을 들였다.
대충 훑으니 가게 끝 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날 밤, 어디가 아픈지 하얗게 질려있던 얼굴은 제 혈색을 찾은 듯했다. 
주말에 찾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아파 보이는 사람에게 그다음 날 만나자는 연락을 하기가 그랬었다.
서울을 발견하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서울도 그녀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가 그 앞자리에 앉았다.
평소의 누나에 비해 꽤 짙은 화장을 했고,
​긴 머리를 거의 풀고 다니는 누나랑은 달리, 병원 앞에서도 그랬다시피 이 여자는 단아한 반올림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강은서 실장님이시라고..."
한참을 그녀를 들여다보던 서울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은서의 고운 입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얼굴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비슷하다.
서울은 이렇게 닮은 두 사람이 쌍둥이가 아니라면 더 놀라워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걸 보고 도플갱어라고 하는 건가.
그러나 그 생각은 바로 접었다.
"윤하정은 제 쌍둥이 동생이에요."
그녀의 입에서 바로 그 의문을 접게 하는 말이 새어 나왔으니.
"쌍둥이 언니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요."
가슴 한 편이 저도 모르게 출렁이었던 서울이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렇겠죠. 은지는 제 존재를 모르니깐요."
은지?
처음 듣는 이름에 서울의 고개가 갸우뚱 넘어가자 은서가 바로 설명을 한다.
"아, 윤하정의 옛날 이름이에요. 저랑 같이 있을 때 이름."
아...
은지,
강은서, 강은지.
쌍둥이 이름이구나.
서울이 속으로 읊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두 분한테 무슨 사연이 있기에 누나한테 그쪽 만났던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한 거죠?"
누나의 쌍둥이 언니인데 '그쪽' 이라고 부르는 게 실례가 되는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딱히 부를 호칭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갑작스럽기도 하고.
"명함에 적혀있는 <k> 라는 가게 검색을 해보았어요?"
일말의 표정 변화가 없는 은서가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네."
텐프로 룸살롱이더군요. 
"은지는 어릴 때 사고로 저를 기억 못 해요. 저를 기억해 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은지는 도통 기억이 안 돌아오나 봐요. 제 직업이 이래서, 선뜻 나서기가 두려운 것도 있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은지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아요."
축 내리뜨리 운 은서의 두 눈은 많이 슬퍼 보였다.
둘은 길게 할 얘기까지는 없었다. 
그녀와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서울은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은지 잘 지내고 있나요?]
누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그 여자는 누나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졌다. 어디로 샐지 모르는 누나의 튀는 성격과 달리 몹시도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누나의 어릴 적 얘기는 알려주지 않았다. 제 머릿속이 복잡해 오늘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휴대폰 번호는 은서라는 그 여자한테 줬다. 오늘은 안 될 거 같으니 누나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처음 알게 된 누나의 쌍둥이 언니에 관한 얘기는 일단 가슴속에 묻기로 결정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누나...
언젠가는 알아야 할 일이겠지만 저 자신이 그리 쉽게 꺼낼 수 있는 말도 아니란 걸 알기에.
누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추천 (1) 선물 (0명)
IP: ♡.101.♡.179
나단비 (♡.62.♡.153) - 2024/03/15 13:39:01

하정이 감당해야할 일이 많네요.

죽으나사나 (♡.101.♡.179) - 2024/03/15 18:29:58

그쵸

힘나요 (♡.50.♡.250) - 2024/03/19 05:48:15

잘 보고 갑니다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19 05:48:26

잘 보고 가요 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19 05:48:30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19 05:48:35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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