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26회)

죽으나사나 | 2024.01.23 10:14:51 댓글: 0 조회: 138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2502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26회)  취중진담.

"그냥 잡아다가 불 때까지 고문을 할까?"

지태의 눈이 이글거렸다.

"야. 그러다 열받아서 괜히 그 자식까지 널 들쑤시면 어쩌려고."

성현이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맞다. 무작정 잡아서 추궁하긴 그렇다.

이 정도로 큰돈을  요구하는 거랑  동영상을 갖고 있었다는 건 짧은 시간 내에 충동적으로 한 게 아니다. 시간을 꽤 들여서 공들인 건데 그리 쉽게 드러내지도 않을뿐더러 잡힌다고 생각할 때는 더 큰 걸 터뜨리겠지.

혜주라면 뭐라고 할까... 하... 내가 이런 머리는 안되는데.

"사람 붙여서 봐봐. 뭐하고 다니는지."

"그건 당연히 얼마 전부터 붙여놨지. 근데 집 하고 스튜디오, 회사밖에 다니는 곳이 없는 자식이더라고."

"아, 그래."

뭐라 할 말이 없다. 미안하지만 내 머리는 이런 쪽에 아무런 반응이 없단다.

결국 지태의 큰 기대를 저버린 채 그냥 그 집에서 나왔다.

사실 유지태가 범인으로 유력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 이렇게 보면 판단이 흐려진다.

내가 그날 보았던 모습이랑 너무 달랐던 지태다. 어떤 게 진짜 모습인 거냐.

하...

머리가 아프다... 하...

"띠리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하민수다.

얘는 잊으려고 하면 이렇게 주변에서 얼쩡거리냐.

"왜."

"혜주 너 어디야?"

퉁명스레 받는 전화에도 민수는 타격감이 없는지 목소리가 차분했다.

"나?"

지태를 만났다고  민수한테 말할까?

"그냥 뭐... 왜?"

아니다. 말해봤자 다 없어질 기억을 굳이 여기 있을 때만이라도 조용히 있고 싶다.

"우리 생각보다 빨리 서울 올라갈 거 같아서. 주혁이랑 같이 한잔할 건데. 너도 올래?"

"술?"

술 마실 기분이...

"그래. 도착하면 전화해."

그래. 지금은 술 마실 기분이다.

잠시 후,

"뭐 대단한데 가는 줄 알았더니 여기냐?"

김 다 새네.

술 마시는 장소가 주혁이네  강남 오피스텔이다.

"근데 주혁은?"

한강이 잘 보이는 테라스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있던 혜주가 주방에서 컵을 찾고 있는 민수한테 물어본다.

"아, 주혁이는  대표님이랑 마무리할 게 있어서 조금 있다가 올 거야. 금방 올 걸?"

"아... 그래?"

혜주는 뭔가를 세팅하는 거 같은 민수의 옆으로 다가갔다.

"뭐 이렇게 많이 주문했대?"

힐끔 쳐다보니 술안주가 종류 별로 다 있다.

"주혁이가 안주 파잖니. 근데 그때그때 입맛이  달라서 그냥 다 주문을 하고 보는 거지."

그건 맞지. 좋아하는 게 많은데 변덕이 심한 건.

잘 아네. 내 매니저답게.

"음~ 이 집 족발 괜찮네."

혜주는 민수가 포장 비닐을 벗기고 보기 좋은 접시에 담아 놓은 족발을 입에 물고는 중얼거렸다.

맛있게 먹는 혜주의 모습을 보며 민수는 픽 하고 웃었다.

"맛있어?"

"어~ 맛있네."

"그럼 이것도 먹어봐."

혜주 입안에 있던 족발이 점점 사라지는 걸 발견한 민수는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새콤하게 무친 골뱅이를 혜주의 앞으로 내밀었다.

뭐야... 이 난데없는 분위기 어쩔...

"그냥 이러고 있어?"

손으로 다시 잡아서 먹기는 손에 묻는 게 싫어서 먹는 거야. 오해 말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눈동자를 굴리며 민수 손에 들린 골뱅이를  한 입 앙 물고는 오물오물 씹었다. 자신의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민수의 시선은 모른 척 한 채.

"어때?"

"맛있네."

배도 고프네.

"혹시 밥 있어? 배도 고파."

"햇반 있을 건데. 먹을래?"

"응!"

햇반 한 개를  까서 다 먹을 때까지 주혁은 안 왔다.

"뭐래?"

주혁이랑 통화를 하고 온 민수를 보며 물었다.

"대표 님한테 잡혀서 조금만 마시고 온다는데?"

"그래? 그럼 우리끼리 라도 먼저 마시자. 술 뭐가 있어?"

"술도 종류 별로 있어. 어떤 거 마실래?  맞다. 혜주 넌 원래 소주 파 아니야?"

"소주?"

민수가 싱긋 웃으면서 혜주 앞에 소주 병을  흔들어 보였다.

"뭐 그래. 소주 하자."

"오케이~"

민수는 꽤 능수능란한 솜씨로 소주 병을 흔들고는 혜주의 잔에 꼴깍꼴깍 소주를 따랐다. 그 모습이 꽤 진지해서 픽 하고 웃음이 나갔다.

"왜?"

혜주의 웃음을 본 민수가 의아해한다. 아까부터 무슨 일인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 혜주가 웃으니까 기분이 덩달아 좋아져서 활짝 웃으면서.

"아니~. 너는 뭐 마실래? 따라줄게."

"아, 난 괜찮아. 캔 맥주 마실 거라."

"그래. 그럼."

"짠~. 너랑 마신지는 좀 된 거 같네. 최근엔 안 마셔봐서."

"그러게."

민수도 술이 고팠는지 혜주의 소주잔이랑 부딪히고는 어느새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혜주도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주혁이 너는 우리가 말을 안 했다고 하지만 옆에 내내 있는 혜주가 무얼 하고 다니는지 아무것도 몰랐잖아.]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던 민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던 민수다.

지금처럼 이렇게 자기 생각은 거의 안 드러낸 채.

"나 오늘 유지태 만났어."

"뭐?"

미소를 머금고 있던 민수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유지태는 왜 또 만났어? 그때 만난 걸로 끝이 아니야?"

네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그렇게 다그치냐. 이렇게도 혜주를 걱정하였던 거구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너는.

"유지태가 왜, 그때 얘기하던 협박 문자 때문에 다시 보자고 하던?"

하, 너는 이때 이미 알고 있었구나.

배신감 쩐다. 이 자식아.

"너 혜주가, 아니, 내가 유지태를 만나러 간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지?"

"응?"

나만 왕따시키고 너희들만 안다 이거지. 그러고 나서 나한테 뭐 아무것도 몰랐네 어쩌네 시전을 하고. 그렇게 깜쪽같이 속이는데 난들 어떻게 아냐.

하, 술이 더 당기네. 오늘은.

혜주가 혼자 잔에 소주를 따르자 민수가 바로 제지했다. 미간을 좁히면서 민수를 쳐다보니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간 민수다.

"내가 따라줄게."

"뭐 그러시던가."

심술 난다. 손을 쓸 새도 없이 혜주를 그렇게 허무하게 보냈으니...

그게 네 탓도 내 탓도 아닌 걸 알지만 적어도 너는 알고 있었잖니. 네가 혜주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나보다는 조금 충격이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또 벌컥 들이켰다. 그에 민수는 또 잔을 채워주었다.

"안주 많이 먹고 술은 천천히 마셔. 채우는 건 내가 해줄 테니."

자상한 말투와 표정도 잊지 않고 혜주한테 날렸다.

쳇. 머리를 홱 돌리고는 또 한 잔을 들이켠다.

뭐에 이렇게 토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귀여워진 혜주라고 생각이 드는 민수다.

주혁이가 오늘 안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근데 민수 너 김민서랑 뭐 있어?"

혜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민수는 캔 맥주를 입에 대려다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왜 그런 질문을 해?"

다시 질문을 하는 민수는 꽤 조심스러웠다.

"그냥... 뭐가 있는 거 같은데?"

그냥 셋이 같이 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어. 민서가 너만 바라보는 느낌. 너도 좀 민서 앞에서는 조금 달라 보이는 행동들.

"요즘 민서 만났어?"

조금 심각해진 얼굴이다. 왜 그런 얼굴이지?

"어... 그냥 물어본 거야. 민서랑도 연락을 하나 해서."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긴 했다. 셋이서 혜주의 죽음을 파헤치고 있었다고 얘기할 수도 없고.

사슴 같은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는 혜주를 빤히 보던 민수가 맥주를 마신다.

저 작은 머리에는 맨날 무슨 생각을 하길래 말도 하다 말고 저럴까. 어떻게 모든 게 얼굴에 드러나는 주혁이랑 이렇게 다른데 그 긴 시간을 같이 있을 수가 있었을까.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유지태는 만나지 마. 협박을 당하는 건 걔 업보이고. 너까지 나설 필요가 없어."

표정이 어두워지고 목소리가 가라앉은 민수다.

"그래~"

나한테 말해서 쓸모가 없단다. 혜주는 또 만나겠지.

시큰둥해서 건성으로 대답하는 혜주가 못 미더운지 민수는 가는 눈으로 쳐다본다.

"알았어~ 안 만나. 됐어?"

이 정도에 취할 내가 아닌데... 혜주의 몸이라 그런가. 소주 한 병에 벌써 머리가 어지럽고 혀가 꼬이는 게 느껴진다.

"야, 하민수."

"어?"

맥주를 홀짝이던 민수가 놀란 토끼마냥 눈이 풀린 혜주한테 시선을 고정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저 자식도 혜주가 그렇게 가고 많이 힘들어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측은해진다.

눈가에 이슬이 또 지려고 한다.

아, 이러려고 마신 건 아닌데.

"너 울어?"

민수의 손등이 어느새 혜주의 눈가에 다가와 진짜 눈물인지 만져보려고 한다. 혜주는 그런 민수의 손을 탁 쳐냈다.

"야, 울긴 누가 울어. 내가 왜 울어!"

"혜주야."

몰라. 질투를 했다가 미웠다가 또 측은했다가 왔다 갔다 하는 내 마음을 어쩌라고.

"네가 나 좋아한다고 했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머리는 그만하라고 하는데 가슴이 자꾸 일을 시킨다.

아무 말 없이 혜주만 바라보는 민수한테 혜주는 거의 울분을 토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혜주를 좋아한다는 자식들이 혜주가 그렇게 죽어나갔는데 범인 하나 못 찾고 그렇게 골골 대냐!  실망이다!  하민수, 남주혁! 진짜 실망이야."

머리가 무거워 테이블에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혜주야. 괜찮아?"

"혜주를 좋아한다면 그 죽음을 막았어야지... 등신 같은 주혁이는 그렇다 쳐도 너는 막았어야지... 하민수."

"너 그게 무슨 뜻..."

이때 도어록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눈이 슬슬 감겨서 제대로 못 보았지만 아마도 주혁이가 온 거겠지.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고는 이 시간에 오냐. 멍청한 자식.
혜주를 볼 날이 얼마 없는데...

"뭐야, 혜주 벌써 취한 거야?"

자신도 알콜로 발개진 얼굴을 하고 들어와서는 테이블에 머리 박고 있는 혜주를 보며 입을 삐쭉거렸다.

"햐, 너희들 나 없을 때 얼마 마신 거야?"

"얼마 안 마셨는데 얘가 훅 가네?"

대충 눈으로 둘러보니 진짜 소주 한 병에 맥주 몇 캔 정도였다.

"그래? 얘가 요즘 몸이 힘드나. 원래 한 병에 이렇게 맛이 안 가는데. 어쩔 수 없지. 혜주는 방에 내가 데려갈게. 우리 따로 더 마시자."

"어, 응."

갑자기 머리 박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 혜주 옆에 가 있던 민수가 뒤로 비켜주었다.

주혁은 혜주를 덥석 안고는 방으로 들어갔고 민수는 방금 술김에 했던 혜주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혜주 네가... 죽을 거라고?"

***

혜주를 방에 눕히고 주방으로 온 주혁이랑은 얼마 못 마셨다. 원래는 내일까지 찍으려던 촬영을 후딱 하루에 끝내느라 에너지를 더 많이 써서 피곤한 것도 있었고 이미 주윤호한테서 많이 마시고 왔는지 거의 정신을 못 차리는 주혁일 보고 그만 마시고 쉬라고 하고 나왔다.

"난 아직 술이 모자란데."

민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연락처를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어느 한 사람에 멈추었다.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 화면을 잠갔다.

"나도 양심이 있지."

어두운 밤길을 유난히도  밝게 비추는 달을 올려다보고는 옅은 한숨을 쉬며 민수는 자기 집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주혁이의 오피스텔이랑 가까운 곳이다.

매니저 일을 한다고 한 뒤로부터 이사를 온 곳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둘을 두고 나온 일이  몇 번일까...

셀 수도 없다.

괜찮을 줄 알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혜주만 볼 수 있으면 될 줄 알았다.

근데 보고 있으니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 같다.

이러려고 다시 만난 건 아닌데 말이다.

오늘도 쓰라린 민수의 마음을 헤아려 줄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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