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29회)

죽으나사나 | 2024.01.25 07:36:33 댓글: 0 조회: 167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2980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29회) 너한테 한 미친 짓.

[딩동 딩동.]

그길로 택시에 내리고는 어떻게 혜주네 집까지 미친 듯이 뛰어갔는지 모른다. 왠지 성현이가 진짜 혜주를 찾아갈 거 같은 불쾌하고 기분 더러운 생각이 들었다. 

덜컥- 하고 문이 열리고 흐릿한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온다. 

혜주다. 

근데… 이마가…

[김혜주. 너 이마가 왜 그래?? 피가 났었어?]

혜주가 수건으로 이마를 꾹 눌렀다가 떼어낸 자리는 많이 붓기도 했고 피가 조금씩 그냥 나고 있었다. 

민수가 깜짝 놀라 하며 혜주의 이마에 손이 갔다. 

[괜찮아. 이 정도는. 근데 갑자기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왔어?]

혜주는 뒤돌아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민수도 덩달아 급히 따라 들어가고 여전히 걱정 어린 시선으로 혜주를 보라보았다. 

[병원 가야 될 거 같은데?]

[괜찮아. 지혈만 좀 하면 돼.]

혜주가 애써 웃어 보였다. 

[회식한다더니 벌써 끝났어?]

[끝난 건 아닌데… 그것보다 이마는 왜 그렇게 된 거야? 혹시 성현이가 다녀갔어?]

민수는 집요했다. 이마가 이렇게 퉁퉁 부어있으면서도 괜찮은 척하는 혜주가 걱정되었다. 

[아.. 괜찮다니까. 아까 아줌마가 와서 또 난리를 치는 바람에…]

혜주는 수건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얼굴에 피곤이 깊었다. 

[아줌마? 심건희 아줌마?]

아줌마가 너한테 이런 거라고? 맨날 멍청하게 주혁이 뒤처리나 하고 다니는 네가 참으로 바보스럽다. 

[혜주야. 너 이런 짓거리 이제 안 하면 안 돼?]

독한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처음으로 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혜주는 대답 대신 미간을 좁힌 채 민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내 말은 그렇게 네 몸을 불사르면서 주혁이한테 헌신을 하는 짓은 그만하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뜻이야?]

혜주가 살짝 언짢아하는 게 느껴졌다. 평소 혜주가 싫어할 거 같은 말은 안 했었다. 근데 오늘은 기어코 해야겠다. 

[나 사실 네가 이렇게 몸과 마음을 다치면서 주혁이  옆에 있는 게 이해가 안 돼. 좋아하는 마음? 백번 천 번 이해한다고 가정해도 너는 일반 여자들을 초월한 행동이야. 이렇게까지 네가 애쓰지 않아도 주혁은 잘 살 거라고.]

네가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어. 난 그거 하나면 족해. 

[하…]

혜주는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민수의 앞에 다가갔다. 

[민수야. 네가 나 생각해 주는 건 알겠는데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 난 충분히 행복하고 좋으니까 이러고 있겠지? 싫으면 절대 못하는 거잖아.]

그러면서 민수의 어깨에 손을 살짝 얹어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위로를 하는 거 같았다. 

[남주혁이 대체 뭔데 그래…]

시선을 바닥에 둔 채 민수는 중얼거렸다. 

[지금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수없이 좌절하고 네가 버팀목이 되어준 걸 알아. 다만 웃긴 게 뭔지 알아? 주혁이  그 자리는 태풍이 조금만 불어도 무너질 수 있는 그런 자리란 말이야. 네가 언제까지 이렇게 뒤에서 주혁을 봐줄 수 있을 거 같아?]

혜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무 반박도 안 하는 혜주가  민수의 어깨에 올렸던 팔을 내리려는 순간, 

마주친 민수의 눈빛이 확 달라지는 걸 느꼈다. 내리려는 혜주의 팔을 확 당겼고 한 손으로는 혜주의 못덜미에 손을 넣었다. 

순식간이었다. 민수가 거칠게 혜주의 입술을 잡아 삼킨 거는. 

민수가 무섭다고 생각된 건 처음이었다. 혜주는 미친 듯이 달려드는 민수를 있는 힘껏 밀쳐내고 손바닥을 쳐들었다. 

[찰싹-]

한줄기의 손바닥 자국이 민수의 얼굴에 찍혔다. 

[너… 미쳤어? 하민수. ]

혜주가  화가 많이 났다. 

큰일 났다. 혜주는 다시는 자신을 안 볼 거라는 걸 직감했다. 

술이 문제였다… 그놈의 술. 

민수는 자신의 입술을 거칠게 닦아내는 혜주를 바라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주혁이 말고 나한테 오면 안 돼? 김혜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을 거야. 나한테로 와. 김혜주. 
네가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어. 나는. 

불안정한 주혁이랑 다른 온전한 삶을 살게 해줄 수 있어. 

무엇보다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해. 김혜주. 

주혁이보다 훨씬 더 너를 생각하고 아껴줄 수 있어. 

[하민수.]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혜주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넋이 나간 민수를 불렀다. 

[네 마음은 고마운데 우리 이러면 안 이러면 안 되잖아. 넌 나랑 주혁이의 친구잖아. 이제 와서 이러면…]​
[친구는 누가 친구야! 누구 마음대로 친구야.]

가지런한 눈썹 아래 민수의 눈빛이 견고해졌다.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난 단 한 번도 너랑 주혁이를 내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너는 내가 10년 넘게 좋아했던 여자고 주혁은 , 주혁은 단지 네 옆에 있다는 이유로 친구인 척을 한 거지.]

독한 소리를 했다. 친구란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했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삐뚤어지고 싶었다.  그냥 혜주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하민수…]

혜주는 어느 정도 충격을 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내가 이 표정을 보려고 했었나… 나를 좋아해서 보는 눈빛은 아니지만 나만 바라보며 측은 감을 가지는 저 표정. 나한테만 보일 그 별거 아닌 관심. 

민수는 거침없이 혜주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또다시 혜주의 입술에 닿으려는 순간, 혜주가 자기 입을 꼭 막으면서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너 또 그러면 차라리 나 죽어버릴 거야.]

민수는 혜주의  독기 어린 말투에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니. 

납득이 안 갔다. 내가 그렇게 싫을까 혜주는. 

혜주는 뒤로 몇 발짝 물러서더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민수한테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사이는 딱 이 정도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러니 더 이상 이상한 소리도 행동도 하지 마. 널 이제 안 볼 수는 없잖니.]

떨리는 눈동자에 갇혔던 민수가 갑자기 쓰게 웃었다. 

[너 이 순간에도 내가 주혁이 매니저라 그런 거지? 내가 이런 짓까지 했는데 안 보겠다는 말을 안 하는 거 봐서는.]

혜주는 더 이상 말을 안 했다. 

[넌 주혁이 때문에 별 짓도 다 하면서 내가 하는 키스 따위에 죽을 거라 말하는구나. 김혜주.]

민수의 얼굴엔 깊은 슬픔이 서려있었다. 

시선을 돌린 채 아무 말도 안 하는 혜주를 뒤로하고 민수는 그 집에서 나왔다. 

김혜주. 이제 다시는 너한테 신경을 안 쓸 꺼야. 네가 어떤 곤경에 처했던 나한테는 상관이 없어. 설령 네가 죽는다 해도. 그건 네가 선택한 거야. 


“빨리 말해. 하민수! 그날 혜주네 집에 가서 뭐 했냐고.”

그날 무슨 정신으로 집에 갔는지 모른다. 깨어났을 땐 잔상들만 남았고 당연히 그게 꿈인 줄 알았다. 그리고 바로 혜주의 사망 소식을 들었으니… 

내가 그날 혜주네 집에 다녀간 일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민수야. 제발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민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민수를 불러댔다. 그의 양팔을 꽉 잡은 채. 

그제야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 민수는 눈물범벅인 민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민수가 아니길 바라면서도 답이 없는 민수 때문에 눈물이 저절로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민수는 살짝 떨리는 팔을 올려 민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마. 네가 생각한 그런 거 아니니까. 혜주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담담한 민수의 말에 민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민서의 품에 들어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다행이야. 진짜 다행이야. 민수야. 짧은 시간이었지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 

사랑을 쟁취하지 못한 네가 그 어느 영화에서처럼 홧김에 혜주를 ….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민서였다. 

민수는 다리 옆으로 축 누러뜨러져 있던 두 팔을 들어 자기 품에서 흐느끼는 민서의 등을 천천히 토닥토닥해주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죽어도 상관을 안 한다고 생각을 했다. 주혁이 바라기인 혜주가 미워서 죽으면 차라리 너희 둘을 떼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자신의 그런 생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데… 진짜로 죽어버렸다. 혜주가. 

그날 성현이 전화를 받고… 

성현이?

민수의 머리엔 번개 치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됐고, 나 지금 혜주 찾으러 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혼쭐을 내야 정신을 차릴 거 같으니까.]

설마, 설마 성현이가???

민수는 흐느끼는 민서를 살짝 밀어내고 급히 휴대폰을 찾았다. 알려야 한다. 

어이없게도 잊고 있었다. 그날 성현이가 전화가 왔었다는걸. 전화기 너머의 성현은 거의 이성을 잃고 있었다는걸. 

한편,

지태가 보낸 주소는 수도권에서 많이 떨어진 한적한 곳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주혁은 조용한 주위를 살폈다. 

“띠리리리링.”

“어, 민수야.”

울린 벨 소리에 확인을 하니 민수였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성현인 거 같아. 박성현.”

“응?”

민수의 급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앞뒤가 없이 뱉은 그 이름에 주혁은 갈피를 못 잡았다. 

이때 어수선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주혁이가 들리는 쪽으로 머리를 돌리었을 땐 많은 검정 무리들이 서있었다. 

”민수야. 다시 전화할 게.”

“왜, 너 어딘데 지금.“

다그치는 민수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건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처리하겠다는 뜻인데? 

한 놈, 두 놈… 일단 보이는 게 다섯 놈이다. 

근데 이걸 왜 세고 있나. 어차피 못 이길 게 뻔한데. 

주혁을 노려보던 상대방은 어찌할지 고민하는 주혁이한테 갑자기  주먹이 날아왔다. 

이 정도는 피할 수 있다. 근데 머릿수가 너무 많다. 

한번, 두 번까지는 잘 피하던 주혁이가 같이 덤비는 상대방을 미처 막지 못한 채  상대방 발에 세차게  걷어채웠다. 

“윽…”

옅은 신음 소리를 내며 주혁은 그대로 몸을 웅크렸고 이제 죽었구나 하며 혼자 중얼거리던 그때, 

“어이~ 치사하게 여럿이서 한 놈만 조지냐? 이건 뭐  깡패도 아니고 동네 양아치 수준이네. ”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잘못 보았나 싶었다. 저 덩치가 요란한 사람은 내가 얼마 전에 교도소에서 만났던 김상혁이 아닌가.

아니, 교도소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주혁이의 의문 가득한 눈길을 읽은 상혁은 어느새 주혁이. 옆으로 다가와 처음 봤던 그때랑 똑같이 빈정거렸다. 

“딴따라 몸은 역시 그냥 여자관상용이네. 그래갖고 어디 목숨이나 제대로 챙길 수 있겠어?”

주혁이 보고는 피식 웃더니 같이 따라온 무리들을 향해 목소리를 깐 채 소리를 높였다. 

“너희들 오늘 저 새끼들 다 때려눕히기 전엔 집에 못 간다.”

“네. 형님.”

일제히 상혁이의 말에 동조를 하는 모습이었다. 

김상혁네 무리가 합류하자 서로 치고박느라 금세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상혁은  잠깐만 들어가 있을 교도소 생활이었다. 이번 습격 사건으로 인해 교도관 한 명이 죽어나갔고 그 일 때문에 조금 지체되었을 뿐. 교도관은 누가 죽였는지 잡을 수가 없었고 살인 피의자로 교도소에 들어왔던 그 재판에서는 살인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원래도 자신이 죽인 게 아니라 누군가를 덮어주려고 나섰을 뿐이었으니. 

그새 주혁이의 뒤를 밟으라고  정우한테 미리 얘기해놓은 상태였고 급하게 외딴 지역으로 오는 걸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정우가 갓 퇴소한 상혁이한테 보고를 했더란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여길 따라오게 된 거고. 

“빚진 거는 꼭 갚아야 하는 성격인지라.”

앞에 있는 상대 놈의 턱을 찰지게 날린 상혁이가 주혁을 보며 씩 웃었다. 대충 뭔지 알겠다는 듯 주혁이도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쪽수로 나  덩치로도 상대가 안 되는 놈들은 거의 후진을 하다가 한 놈이 어디에서 갖고 나온 건지 몽둥이를 집어 들고 주혁이한테로 뛰어갔다. 

“남주혁! 조심해!!”

상혁이가 발견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퍽 하고 둔한 소리가 들리더니 주혁이 뒤통수에서 피가 흘러내리면서 주위가 고요해졌다. 

아니, 주혁이한테만 고요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그 한대에 귀가 안 들리는지 상혁의 입모양만 보였다. 

그 입모양마저  점점 흐릿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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