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38회)

죽으나사나 | 2024.01.29 15:38:09 댓글: 0 조회: 175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3958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38회) 머리와 가슴의 온도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팀장 님. 지금 본사로 출발하실 건가요?”

“응.”

챙겨갈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유 대리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물어온다.

“곧 점심시간인데 드시고 가시죠.“

“아니야. 가서 먹으려고.”

“네. 알겠습니다.”

유 대리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바로 민수의 자리로 갔다.

“민수 씨, 우리 나가서 점심 같이 먹을래요? 요 앞에 돈까스 잘하는 가게가 있거든요. 아, 돈까스 좋아해요?”

이것저것 정리하다 그리 낮지 않은 유 대리의 어딘가 신나 보이는 목소리에 민서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갔다.

유 대리는 자리에 앉아있는 민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몸은 거의 민수한테로 기울어져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 민수는 어색한지 몸을 뒤로 살짝씩 빼고 있긴 했지만 누가 봐도 너무 가까웠다.

“죄송하지만 저 돈까스 안 좋아합니다.”

민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외투를 집어 들더니 저벅저벅 걸어왔다.

아직 이들한테 시선이 꽂힌 민서한테로.

“팀장 님. 제가 태워다 드릴 가요? 빨리 달리면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갔다 올듯해서요.”

“…”

민서는 대놓고 거절을 당해 얼굴이 발개진 유 대리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민서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활짝 미소를 짓고 있는 민수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민수 씨는 저랑 본사 같이 가요. 그리고 유 대리, 우리 외근이니까 늦으면 본사에서 바로 퇴근을 할 수도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요.”

민서의 말에 민수의 입꼬리가 스윽 내려오다가 다시 픽 하고 웃는 걸 느꼈다.

민서는 헛기침을 하고는 서류를 챙기고 얼빠져 서있는 유 대리를 스쳐 지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민수의 옆좌석에 앉았다. 뒷좌석에 앉으려니 민수가 앞쪽에 앉으라고 눈치를 주었다.

”…벨트 하셔야죠.“

민수의 입에서 나지막하지만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

좌석 생각을 하다 잊었다.

민서는 살짝 당황해하며 바로 벨트를 잠갔다.

”근데 팀장 님.“

하… 거슬리네. 그 팀장이라는 말.

“둘이 있을 땐 그냥 이름 불러. 어색해.”

민수가 자신을 팀장 님이라고 따박따박 부르는 게 어색해진 민서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언제는 그렇게 부르라면서.”

”그건…“

민수가 심드렁해서 중얼거렸고 그에 뭐라 반박을 하려고 민수 쪽으로 고개를 확 돌린 민서는 또 여유로운 표정의 민수를 마주했다.

또 저 얼굴.

”됐다. 어쨌든 둘이 있을 땐 편하게 해.“

”그래. 알았어.“

민수는 능숙하게 한 손으로 후진을 하며 좁은 공간에 주차된 차를 뺀다.

옛날이랑 다르게 조수석에 팔을 올리고 뒤돌아보며 빼는 모습은 없었다.

요즘엔 카메라가 잘 되어서 그런다지만 민서는 문뜩 그 두꺼운 팔뚝을 조수석에 올리고 뾰족한 목울대를 두드러지게 보여주면서 후진에 집중하는 민수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에잇,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김민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그래?”

“어?”

어느새 그런 모습이 민수한테 들켜버렸다.

“아, 아니야.”

“아까 고마웠어.“

뜬금없는 고맙다는 말에 민서가 운전에 집중하는 민수를 바라보았다.

“아까 유 대리한테서 떼어준 거 말이야.”

“아, 그거? 난 그냥 택시요금을 아끼려고 그런 건데? 대신 점심은 내가 사줄게.“

”네에~ 그러셨군요.“

툭 던지는 민서의 말이 밉지도 않은지 민수는 시선은 전방에 고정을 한 채 픽 하고 웃었다.

”내일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뭐해?“

”크리스마스이브? 음… 그냥 집에 있을 거 같은데…. 아니, 나 바빠.”

무의식적으로 대꾸를 하던 민서가 뭔가 이상함을 느껴 바로 말을 바꾼다.

“약속 없으면 나 만날래?”

“아니. 바빠.”

“너 좋아하는 가게 예약했는데.”

“무슨 가게?”

“네가 그때 엄청 좋아했던 레스토랑.”

아…

기억하고 있었어?

항상 손님이 미어터져 예약제로만 운영되고 있는 레스토랑. 연말이라 예약도 잘 안될 텐데.

“미안하게 되었네. 난 바빠서.”

진중한 민수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민서가 대꾸했다.

“혹시 너 약속이 없으면 나랑 만나겠냐고 물으면...”

“어, 안돼.”

민수의 말을 끊어버렸다.

뒷말은 안 들어도 뻔했으니...

민수는 뭐라 더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기분이 상했니?

왜 이렇게까지 너한테  철벽을 치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야.

나 자신이 또 상처를 받는 건 싫어서야.

너를 좋아해서 너랑 만났고 짧지만 불타는 사랑을 하였고 그 순간은 진짜 그 누구 부럽지 않게 살았었다. 바보같이 그게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날들도 있었으니...

이제 서른이 넘어가고 이것저것 부딪혀 보니 다른 건 다 참아도 나 자신이 상처를 받는 건 도저히 못 참겠더라.

생각보다 나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더라. 너를 좋아하는 것보다 나 자신이 다치는 게 더 끔찍하게 싫어.

넌 지금은 진심이겠지. 알아. 다
아는데 우리가 쭉 잘 될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 넌 또 재벌 집 외동아들이고...

나랑은 너무나도 다른 너를 이제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대하기엔 너무 멀리 왔고 넌 나랑 너무 다른 세상에 있을 사람이야.

그걸 잘 알고 내 주제도 알고 있으니 너한테 철벽을 칠 수밖에 없는 거야. 알겠니? 민수야.

***

걱정하는 미나를 돌려보낸 주혁은 테라스에 멍하니 앉아 눈이 흩날리는 바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올해의 첫눈인가... 첫눈을 보니 여지없이 생각난 건 혜주의 얼굴이었다.

[주혁아.]

[응?]

주혁의 커다란 품에 폭 안겨서 그와 같이 바깥을 한참을 바라보던 혜주가 나지막이 불렀다.

[너 나중에 성공하면 주변에 예쁘고 대단한 여자들이 많을 텐데, 그때도 나만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가늘어진 눈은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난 있잖아. 네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면 너를 놓아줄 수 있어.]

[... 뭐?]

주혁은 혜주를 안았던 팔을 풀면서 혜주의 얼굴을 마주했다. 당황한 자신에 비해 혜주의 눈은 아주 담담했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주혁이 얼굴에 그늘이 일렁이며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서 야속해 보이는 혜주를 향해  삐딱하게 물었다. 그런 주혁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혜주의 표정이 차츰 밝아지는 걸 느꼈다.

다시 넓디넓은 주혁이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혜주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안 놓는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잖아. 연애는 쌍방이야. 그리고 성공을 하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그러더라.]

혜주도 사실 속으로는 어느 정도 불안했었던 거다. 지금은 이렇게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 주혁이지만 나중에 진짜 성공해서 남들이 다 알아보는 스타가 된다면 그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만큼 자신이랑 멀어지게 될 거라 생각되었다.


그냥 순리처럼... 그렇게 우리는 끝날 수도 있었다. 서로의 노력이 없었다면...

[어? 눈이다!]

어느새 하늘에서는 하얀 눈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김혜주.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마. 난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너를 좋아하고 아끼니까. 그럴 일은 없어.]

한창 흩날리는 하얀 눈에 빠져 바깥에 정신이 팔린 혜주의 귓가로 파고드는 나지막한 주혁의 음성은 약간 불안해졌던 그녀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었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주혁아.]

혜주는 더욱 주혁이 품에 파고들었다.

다음날,

"주혁 오빠. 연말이라 시상식은 빼기가 좀 곤란할 거 같고요. 오빠 말대로 뺄 수 있는 다른  스케줄은 다 뺐어요. 오늘은 그래서 푹 쉬셔도 돼요."

"응. 고마워."

미나의 전달을 받고 주혁이가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려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미나의 부름이 들렸다.

"오빠."

"어."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그냥 집에 있을 건 아니죠?"

나올래요?

"혹시 여자친구 만나요?"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나...

"아니. 그냥 있으려고."

역시...

미나의 생각이 맞았다. 주혁이가 말하는 여자친구는 현재 주혁이의 옆에 없는 게 확실하다. 이유는 뭔지 몰라도 사이가 틀어진 게 틀림없다.

"저도 오늘 혼자인데, 저녁에 저 만나주면 안 돼요?"

"..."

"허튼짓 안 해요."

거절을 할 가봐 급히 말을 보탰다. 그러자 정적이 흐르던 전화기 너머에서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오빠가 웃었다.

"너도 혼자면 저녁에 연락할게."

와!!

미나는 속으로 '예쓰' 를 얼마나 크게 웨쳤는지 모른다.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렇지?

미나의 잔잔한 가슴에 파도가 휘몰아쳤다.

***

이른 밤. ** 술집.

"왔어?"

"오빠!... 어... 이 분은..."

주혁이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그 고운 얼굴에 미소를 듬뿍 담은 채 손을 흔드는 그를 발견했고 미나도 활짝 웃으며 다가가니 그 옆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아, 내 친구. 하민수라고. 오늘 얘도 할 일이 없다길래."

"아..."

민수는 고개를  숙여서 간단히 인사를 했다.

주혁과 민수를 번갈아보던 미나는 그제야 자신이 괜한 기대를 했었다는 걸 느끼고 피식 웃고는 주혁이 옆에 앉았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그럼 그렇지.

김이 새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너 한국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잖아. 친구도 없을 거 같아서 나오라고 한 거야."

주혁이 어깨가 으쓱했다.

네에~ 그렇게 저를 생각해 주니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근데 오빠 친구 분 잘 생기셨다. 오빠랑 이미지는 확 다른데."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미나가 긴장이 풀린 건지 민수의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들여다보더니 뱉은 말이었다.

"원래 친구도 끼리끼리 만나는 건가."

주혁과 민수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미나의 말에 동시에 피식거렸다.

"고맙습니다."

민수도 외모 칭찬은 싫지 않은 지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미나한테 술을 따랐다.

"여자친구 없어요? 왜 이런 날에도 주혁 오빠를 만나는 거예요?"

미나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민수는 술잔에 따르던 행동을 멈췄다.

몇 초 그대로 정적이 흐르자 주혁은 민수 손에 술병을 빼앗아 미나의 잔에 마저 따라주면서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여자는 있는 거 같은데 잘 안되나 봐."

자신은 말한 적이 없는데 왠지 다 아는 듯 말하는 주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지이이잉~"

뭔가를 말하려던 민수한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테이블에 화면을 뒤집어서 놓았던 폰을 들었다.

"안 받아?"

민수는 바로 받지 않고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기다리던 전화가 왔나 보네.

"빨리 받고 찾아가."

주혁은 성가시다는 듯 팔을 휙휙 저으며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민수는  먼저 가보겠다는 인사를 미나한테도 간단히 하고는 나가버렸다.

민서랑 잘 되려나 보네.

처음부터 민수의 애간장을 녹였던 게 민서라는 건 셋이 다닐 때 어느 정도 느끼긴 했었다.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민서가 민수를 보는 시선이나 민수가 민서를 잔잔하게 챙기는 건 오랜만에 갑자기 만난 동창의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어쨌든 잘 되길 바란다. 하민수.

***

길거리는 온통 커플들의 세상이었고 화려한 LED 조명들과 주위를 가득 메우는 캐럴 송이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졌고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스륵-" 하고 자동 센서 문이 열리면서 가게 안에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내부로 들어가니 어둡고 무드 있는 조명에 여러 악기들로 공연을 하고 있는 재즈 바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는 요란하게 울리는 바깥 세상이랑 너무 다른 잔잔한 음악에 다들 심취해있었다.

민서는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아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어?"

민서의 옆자리에 살포시 앉으며 민수가 물었다.

마신지 좀 되었는지 회사에 있을 때랑 완전히 다른 가는 눈을 하고 있던 민서가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왔니."

민서는 자기 앞 술잔에 와인을 가득 채웠다.

"난 네가 불편해."

전화를 해서 오라고 한 사람치고는 너무 당황스러운 발언이었다.

"날에 날을 더할수록 난 민수 너를 비워낼 거야. 이 술잔에 술처럼."

한 템포 쉬었다가 채워진 술잔을 비운 민서는 또 말을 이어갔다.

"다 비워지면 우리가 편하게 만나는 날도 오겠지. 분명."

민수는 그런 민서의 말에 동의도 거부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민서가 다시 잔을 채우려고 든 술병을 빼앗아 그녀의 잔에 따라주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비워. 근데 네가 비우면 내가 다시 채워줄게."

민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민수를 쳐다본다. 얼굴은 발갰고 눈은 게스름했다.

"비우는 건 네 마음인데 채우는 건 내 마음이야."

이런 말에 동요가 될까 모르겠지만 민수는 속에 말을 꺼냈고 민서는 그런 민수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만 보았다.

그러다 하는 소리는 조금 의외였다.

"나한테 왜 연락 안 했어?"

민서의 눈빛엔 작은 원망이 섞인 듯했다.

민수는 대답 대신 고요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참으로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나갈까?"

한참을 그녀를 물끄러미 주시하던 민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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