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완결)

죽으나사나 | 2024.02.01 09:08:50 댓글: 2 조회: 333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4677
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외전) 그들이 몰랐던 뒷이야기



“어?? 선배 님!! 저기 저 커플 중 남자가 그때 포차에 왔던 남자 아니에요?“

긴 머리를 찰랑이며 토끼같이 눈이 동그래진 연아가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는 희연의 팔을 톡톡 건드리며 누군가를 가리킨다.

”누구?“

연아의 손끝에 시선이 멈춘 곳엔 나란히 손을 잡고 가는 커플이었다.

”아…“

희연은 시선은 그대로 한 채 담담한 감탄을 했다.

”그 옆엔 진짜 의뢰인 김민서도 있네? 맞죠? 선배 님!”

뭐 대단한 걸 발견한 듯 옆에 찰싹 붙어 소리를 질러대는 연아 때문에 귀가 째질 거 같은 희연이.

“나도 보이니까 그만 호들갑 떨어. 누구 덕분에 내가 또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데.”

자신을 보고 눈을 흘기며 쏘아붙이는 희연에 연아는 그제야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단 생각에 입을 꾹 닫았다.

‘선배 님 덕분에 저도 똑같이 처벌을 받는 중이잖아요.’

연아의 혼자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그것마저 용납을 못하는 희연은 입을 삐쭉 내밀고 있는 연아를 째려본다.
살짝 화가 올라온 희연의 기운에 냉장고 안에 있던 병과 잔들이 저절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엇, 선배 님 또 제 속을 읽었죠!“

연아는 냉큼 자기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질렀다.

"들키기 싫으면 속으로 말을 말던가.“

심드렁한 말투의 희연은 다시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는 그 커플들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허무한 실수만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여기서 또 이 짓거리를 안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그날 그 일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연아, 무슨 일이야!]

집에서 뜨끈한 욕실에서 스파를 하고 있는데 연아한테서 긴급 호출이 떴다. 보통 업무 수행 중 큰일이 터져야만 호출하는 빨강 신호였다.

[아아, 선배님!!!]

연아는 포차에 급하게 들어서는 희연을 보고 거의 울상을 지었다.

[왜왜!]

그러는 연아를 보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뭔 대형 사고를 쳤는데!

[아윽… 배…]

[어?]

연아는 갑자기 온몸을 배배 꼬면서 배를 끌어 잡고 아픈 신음 소리를 냈다.

[왜? 어디 아파?]

[그게 아니라…. 당장 의뢰인 오기로 시간이 다 돼가는데 제가 배탈이 나서…]

[응??]

연아가  뻥져있는 희연을 힐끔 쳐다보고는 눈을 찡그리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약속 시간인 12시까지 2분밖에 안 남았는데 저 배가 아파 죽을 거 같다고요. 저는 왜 인간도 아닌데 이렇게 인간이랑 똑같이 배가 아프면 화장실을 가야 하는 거죠? 아아아~~]

그거야 연아 넌 아직 9급 신(神)이니까.

[언제 선배 님처럼 5급 신으로 될지. 윽…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선배님, 의뢰인 이름이 민서예요. 저 제시간에 못 올 거 같으니까 선배 님이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야, 이연아! 의뢰인 이름이 뭐라고? 민… 뭐?]

배가 아파 죽으려고 하는 사람 치고는 한참을 떠들고는 정작 희연이가 묻는 말은 못 들은 채 사라진 연아.

맨날 사무실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온 현장이라 뭘 해야 할지 멀뚱멀뚱 서있는 희연이한테 누군가가 포차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맞나?

긴 기럭지의 남자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구석진 의자에 고개를 푹 떨구고 앉았다.

[여기 소주 주세요.]

축 처진 저음이었다.

[네에~]

희연은 소주 한 병을 들고 얼른 그 앞으로 다가갔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혹시 민...?]

뒤에는 제대로 못 들어서 얼버무렸다.

포차에서 무슨 이름까지 물어보는지 남자는 고개를 들어 희연을 바라보았다. 슬픔이 가득한 처량한 눈빛으로.

그 눈을 보는 순간, 희연은 이 사람이 여태 겪은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지독한 사랑꾼이네.

[민수요.]

자기 이름을 툭 뱉고는 민수는 소주 병을 들었다.

혹시나 했지만 이 남자가 맞나 보네.

이 포차는 일반 인간한테는 안 보이는 포차인지라…

소양산 정상에는 경이로울 정도로 아주 큰 바위가 있다. 옛날부터 인간들은 이 바위를 마주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기도 하지만 사실 소원을 빈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선택받은 자만이,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이 포장마차를 찾은 자만이 소원을 이룰 수가 있었다.

혜주한테 몹쓸 짓을 하고 이 포차로 무심코 들어온 민수는 사실 제정신이 거의 아니었다.

"어떤 소원을 들어드릴까요?"

[소원이요?]

풀린 동공이 민수의 눈꺼풀 아래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네. 소원 이루어 드릴게요.]

민수는 픽 하고 웃어버렸다. 무슨 동화도 아니고 포차에서 소원을 이루어준다니...

[진짜예요. 얘기만 하면 이루어드려요.]

비웃듯이 픽픽 웃는 민수의 반응에 왠지 약 오르는 희연이는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금방 민수의 눈동자에서 보았던 이름들을.

[김혜주? 아니면 남주혁?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해주면 될까요?]

실실 웃던 민수가 입꼬리를 슥 내리고 희연이를 여전히 풀린 눈으로 올려다본다.

그러다 주문을 걸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18살이었던 난 그때부터 주혁이가 그렇게 부러웠어.]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 듯, 민수는 여태 마음속 깊이 넣어두고 있던 말들을 꺼냈다.

[가진 건 하나도 없고 쓸데없는 자존심만 셌던 그런 놈이었는데 혜주는 그런 자식을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어린 나이었으니 그러다 언젠가는 헤어질 줄 알았지. 근데 1년, 5년. 10년이 지나도 그냥 만나고 있더라고. 내가 낄 틈이 하나도 없이...]

"그랬군요."

[그 둘을 떨어뜨리고 싶어. 그렇게 붙어 있는 게 너무 꼴불견이야... 다시는 못 만나게...]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너희들도 서로 때문에 힘들어봤으면 좋겠어.

[서로 의지를 못 한 채 괴로움에 허덕이다 상대를 잃은 슬픔에 정신을 못 차리게.]

그러다 혹시 너무 힘들어지면 내가 너희들을 구해줄게. 너희들이 너무 길게 아픈 건 또 용납이 안되니까. 그니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슬펐으면 좋겠어.
못난 생각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봐.

미안하다... 친구들아.

민수는 자꾸 내려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기절을 했다.

[... 저기요?]

희연이가 흔들어 깨워 보았지만 민수는 끄떡도 안 했다.

[어쩔 수 없지. 그냥 진행할 수밖에.]

근데... 김혜주는 어차피 오늘 죽을 건데?  굳이 소원을 안 빌어도 이루어질 일이었는데...

아닌가, 입 밖으로 꺼낸 말만 소원인가, 아니면 내가 들렸던 이 남자의 속마음까지 소원인가?

그나저나 연아는 왜 아직도 안 와. 9등 신(神) 인 네가 했으면 인간 속은 알 리도 없고 이런 혼동이 안 생기잖아.

하아..

[시간이 다 되어가네? 에라, 모르겠다.]

인간이 소원을 빌고 나서 5분 이내로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을 확인한 희연은 민수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드립니다.]

희연이의 주문 같은 말이 끝나자 그녀가 손을 얹은 민수의 어깨에서 파란빛이 크게 반짝이다 사라졌다.

"그니까! 그때 선배님이 민수랑 민서를 헷갈리지만 않았다면 저희 둘이 이렇게 같이 처벌을 안 받겠죠. 잘 모르면 저 올 때까지 차라리 기다리시던가 해야지. 일을 그르치고..."

연아가 언성을 높였다.

그날 화장실에서 거의 죽어가다가 겨우 나와서 포차에 도착했을 땐 선배는 휴대폰으로 깔깔대며 코믹 영화를 보고 있길래 의뢰인이 안 온 줄로만 알았다.

근데 영화를 다 보고 난 희연이한테 들은 소리란...

[의뢰인 잘 생겼더라. 키도 엄청 크고. 내가 인간이었으면 바로 넘어갔을 거 같아.]

그런 남자가 우정과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지.

엥?

키 크고 잘 생긴 사람이었다고??

분명히 여자였는데...

[남자가 들어왔었어요? 여자 아니고요?]

[남자였는데?]

[이름은 물어봤어요?]

[어, 민수래.]

[에?? 민수요? 민서 아니고?]

[민서? 아니야. 민수라고 했어.]

연아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큰일 났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순간이었다. 선배가 실수를 했다.

당연히 이 둘은 징계를 면하지 못했다. 연아는 근무 중 교대를 제대로 안 하고 자리를 이탈한 죄로 8등급으로 승진하려던 계획은 당분간 물 건너갔고  희연은 확인을 제대로 안 하고 엉뚱한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준 죄로 6개월 동안 현장을 다녀야 했다.

"근데, 선배. 김혜주가 어떻게 다시 살 게 된 거예요? 원래는 죽을 운명이었잖아."

연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올해 김혜주한테 살이 낀 해긴 맞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면 무병장수할  팔자야. 그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게 나였다는 건 나도 몰랐지.”

민수의 직접 뱉지 않았던 말까지 다 소원 이루어준답시고 고생이란 고생을 다 했는데 결국 민수가 의뢰인이 아니었다는 BOSS의 말을 듣고 거의 기절을 할 뻔했다.

“그럼 왜 민수만 기억을 싹 잃고 남주혁은 그대로 있는 거예요?”

연아는 진짜 신생 신(神)답게 쓸데없는 질문이 참으로 많았다.

“민수는 인간이 볼 수가 없는 포차를 들어온 것부터 문제가 있으니 소원이 이루어진 그 순간부터 기억을 삭제하는 게 맞아.”

“아…”

연아가 감탄했다.

“근데 선배님.”

“또 뭐!”

희연이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남주혁이 혜주의 몸으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못 하는 게 맞는데 왜 하민수랑 김혜주의 기억에는 남아있었던 걸까요?“

초롱 한 눈빛을 쏘며 희연의 답을 기다리는 연아를 보며 희연은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인간은 참 이상하다는 거야. 그렇게 연약한 육체를 갖고 태어났으면서 머릿속에는 기억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어. 그러니 몰라야 할 기억도 떠오르고 그러는 거고.
문제는 그 육체가 그리 온전치는 못해서 다 기억을 못 하는 게 문제지. 듬성듬성 떨어져 나간 퍼즐처럼 조금씩만 기억하지. 그래서 가끔은 분명히 일어난 적 없는 일인데 머릿속에서 맴돌 땐 그냥 꿈인가 보다.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고.“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라 눈만 껌뻑대던 연아가 한마디를 뱉는다.

“그럼 남주혁 기억은 왜 안 지웠어요?”

“쉿!”

희연은 큰 비밀이라도 들킨 듯이 연아의 입을 꼭 막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민수한테 내 기(氣)를 많이 써서 남주혁 기억까지 없애려면 시간이 걸려. 근데 지금의 남주혁을 봐서는 굳이 내 기를 써가면서 안 지워도 될 거 같기도 해. 어디 가서 떠벌릴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 보스가 이걸 몰라.“

”에??”

담이 크신 걸까. 우리 선배.

그러다 나중에 들키면 어쩌려고…

에잇. 나도 몰라. 선배 덕분에 난 내년에도 9등 신(神) 이니까. 나도 진짜 신처럼 살고 싶다고요!!

연아는 혼자 하는 말이 또 희연이한테 들킬 가봐 고개를 재깍 딴 데로 돌려버렸다.

왜 그러는지 모르는 희연은 고개만 갸우뚱했다.

“저… 영업하시는 거죠?”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어느새 포차에는 누군가가 이미 들어왔었고 그런 둘한테 조심히 걸어들어왔다.

의뢰인이다!

“네! 가능합니다.”

연아는 당찬 목소리로 바로 대답했고 메뉴판을 들고 자리에 앉은 그녀한테 종종걸음으로 급히 갔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름은 왜…”

“아, 갑자기 죄송해요. 저희가 여기에 보다시피 키링을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는데 여기 오시는 손님들한테는 무료로 이름 각인을 해주고 있거든요. 저희 사장님이 손님께서 술 마시는 동안 금방 뚝딱 만들어요.“

연아는 포차 천막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름 각인이 되어있는 여러 모양의 키링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보여줬다.

”와아… 대단하시네요. 제 이름은…“

”네.“

”김미나라고 합니다.“

”아~ 김미나~. 알겠습니다. 제일 예쁜 걸로 뚝딱 만들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미나한테 싱긋 미소를 띠고 희연한테 돌아선 연아는 윙크를 하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이번엔 진짜 의뢰인 맞아요. 선배!

4개월 전,

[엇!  김 대리님, 여기 보세요. 이 바위 엄청 크지 않아요?]

간만에 같은 부서 박 대리랑 같이  꽤 멀리까지 운전을 하고 등산을 한  민서.

정상까지 올라와보니 진짜 박 대리의 말대로 엄청 큰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다.

[김 대리님. 소양산 바위의 전설 아세요?]

[모르는데요.]

[저 바위를 마주 보고 소원을 빌면 무조건 이루어진대요.]

어디서 주워들은 미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박 대리는 제법 진짜인 것처럼 떠들어댔다.

민서는 알겠다고 하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옆에서 자꾸 소원 하나 빌어보라는 박 대리에 못 이기는 척 바위를 마주 보고 속으로 소원을 말했다.

‘민수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 끝.
추천 (2) 선물 (0명)
IP: ♡.101.♡.75
Figaro (♡.136.♡.111) - 2024/02/01 13:29:56

작품 완결 축하드립니다.두 작품이나 완결을 냈다는것은 어마한 경험일것입니다.앞으로 계속하여 건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죽으나사나 (♡.101.♡.75) - 2024/02/01 14:07:00

ㅠㅡㅠ 고맙습니다. 나름 힘들었어요. 근데 뭔가에 집중한다는 게 좋아서 하다보니 완결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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