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8회)

죽으나사나 | 2024.01.13 03:29:48 댓글: 0 조회: 178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9977
내 여자친구가 살해 되었다. (8회) 어차피 없어질 기억.
해가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아침이다. 무언 가에 가슴이 눌려 숨이 막혀 밤새 악몽을 꾼 혜주는 짜증을 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왠지 어디에선가 바람이 부는 거 같이 혜주의 한쪽 볼에 머리카락이 움직여서 간질거렸다.
뭐지? 눈을 겨우 뜬 혜주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마주한 건 그녀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다리까지 그녀의 무릎에 올리고 자는 주혁이의 얼굴이었다.
"와아 아악!!!"
미쳤다!!!!
혜주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발딱 튀어 일어났다.
"뭐 뭐 뭐, 무슨 일이야??"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주혁이도 벌떡 일어나서 눈을 비벼댔다.
이 자식이 언제 내 옆에서 이렇게 자고 있었냐고! 어제 생각이 많아서 좀 늦게 잠이 들어서 그런가, 옆에 사람이 온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잤네!!
"아, 아니야. 안 좋은 꿈을 꿔서. 그냥 자."
혜주는 아직 몽롱한 정신으로 게슴츠레 눈을 뜨고는 자신을 쳐다보는 주혁을 안심시키며 등을 살살 내리쳤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침대에서 멀리 빼고는 허리만 구부정해서 못 만질 물건이라도 만지 듯이  검지로만 그를 툭 밀어 침대에 다시 눕게 만들었다.
주혁은 새벽 늦게 들어온 건지 뭐라 더 대꾸를 안 하고  돌아눕더니 이내 쌕쌕거리면서 자는 거 같았다.
혜주는 놀란 가슴을 쓱 내리쓸며 타는 목을 축이러 주방으로 향했다.
저런 시한폭탄 같은 자식을 두고 내가 혜주의 몸으로 뭘 알아낼 수나 있을까?
잠시 머리를 굴려보니 나 혼자보다는 누군가 같이 도와줘야 하는 건데 저 자식보다는 그래도 민수가 낫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옷장으로 향했다.
민수를 만나야 한다.
* 어느 커피숍.
"허이~ 여기야."
민수네 집 근처 커피숍에  일찍 도착해서 기다린 혜주는 방금 커피숍으로 들어와 두리번대는 민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뛰어온 건지 금방 씻은 머리가 아직 덜 말라 휘날렸고 가쁜 숨을 내쉬는 민수였다. 이러고 보니 이 자식 금방 씻고 나와서 그런가, 꽤 멀끔하게 생겼네. 여자들이 꽤 좋아할 만한 얼굴이 긴 하네. 그 방송을 탔으면 연예인을 할 수도 있겠는데? 
이런 생각까지 하다가 내가 지금 뭔 이런 생각을 하나 싶은 주혁이다. 
아직도 숨이 차서 심호흡을 하는 민수를 보니 짜증이 났다.
이 자식은 역시 혜주 바라기네. 하.. 그동안 내가 눈치를 못 챘다니. 위험한 놈이 옆에 있는 줄 모르고.
혼자 읊조리며 중얼대다가 민수가 혼자 뭔 말을 하고 있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하고는 본론에 들어갔다.
지금은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일단 혜주가 뭘 하고 다니고 어떤 사람이랑 만나는지 알아야 한다.
그걸 민수랑 같이 알아가야 하는 거고.
"민수야."
"응."
갑자기 그렇게 자기 이름만 부르고 뚝 끊어버리니 왠지 가슴이 살짝 쪼여오는 민수다.
그런 맘을 아는지 마는지 가재 눈으로 민수를 노려보던 혜주가 이 방법밖에는 없다면서 머리를 혼자 끄덕였다.
"너 언제부터 날 좋아했니?"
"... 어??"
뭔가를 마시고 있었으면 다 뿜어 나갔을 혜주의 말이었다. 
이렇게 물어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혜주를 어느 정도로 좋아하는지 그게 정말 중요했다. 그래야 혜주가 언제 죽을 거라고 도와달라고 말해도 될 거 같으니.
"어..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민수는 시치미를 뚝 뗐다. 
햐... 이놈 봐라? 그 눈으로 시치미를 떼?
쉽지 않을 거란 건 알았다.
"내가 맞추자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때 내가 좀 예쁘긴 했지?  청초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이야기가 점점 산으로 가는데?
거의 도발에 가까운 혜주의 발언에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던 민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자기 가슴 앞에  팔짱을 느슨하게  낀 민수가  몸을 앞으로 스윽 빼면서 입을 열었다.
"왜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햐~ 이거 고단수네? 질문에 바로 답을 안 하고.
민수는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거야! 저번에 같이 갔던 식당에서 나를 향한  네 노골적이 시선을 보았지! "
모르겠다. 뚫린 입이니 막 뱉자.
"식당? 어느 식당에서?"
"뭐야, 식당에 간 것도 모르쇠야?  저번에, 아니, 저번달에 뭐 내가 가고 싶어 했다던 식당에 데려가서 스테이크도 썰고 그랬잖아!  짧은 하얀 원피스를 입은 나를 보고 예쁘다 했잖아!"
민수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모르쇠에 일관하는 민수 때문에 화가 잔뜩 난 혜주는 분통 터져서 씩씩거렸다.
그냥 혜주로 아는 민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이 발개지는 걸 보고는 혜주가 화를 내니 이런 귀여운 모습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혜주는 참 이상하다.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과 갑자기 언제부터 자기를 좋아했냐고 묻다니... 혜주가 원래 이렇게 보이는 그대로 다 말하는 성격이었나?
적어도 민수한테는 한 번도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던 혜주인데. 항상 담담하던 표정과 말투. 딱 친구로만 대하는 태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제일 앞자리에서 맨날 시험만 보면 1등을 하던 혜주가 궁금했다. 자기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5등 안에밖에 못 들어갔는데 저렇게 얼굴도 작고 예쁜 여자애는 뇌도 작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할까 생각을 했었다.
자꾸 보니 예쁜 건 물론 가끔 자기와의 작은 신체 접촉에도 화들짝 놀라는 혜주가 재미있었다. 귀여웠다. 용기가 없어 고백은 못 하고 졸업 전에는 얘기할 수 있겠지 하면서 혼자 끙끙 앓았다.  그러다가 2학년이 되었을 땐  민수와의 친구 관계는 지속되었지만 ​​  갑자기 혜주의 시야에 남주혁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민수의 계획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다.
민수와 혜주랑  정반대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진 남주혁. 어른들이 말이라면 거역할 줄 모르던 이들이랑 다르게 주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수철 같았다.
민수는 그런 주혁한테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그냥 멀리서 혜주의 입에 자주 올라오던 남주혁에 대해 듣기만 했었다. 민수는  혜주를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행동은 너무 소극적이었다.
그때 그 둘을 어떻게든 떼어 놓았어야 했나 싶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혜주만 보면 기분이 좋고 미치겠는 걸 보면.
너무 후회된다.
"야! 하민수! 내말 듣고 있냐?  하... 너 어떻게 저번 달에 나랑 식당 갔던 걸 잊을 수가 있어?"
네가 그러고도 혜주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 엉??
하얀 원피스를 입은 혜주를 보고 침을 흘렸으면서!
잠깐 옛날 생각에서 헤쳐 나온 민수는 또 한 번 입꼬리를 올리며 뭘 주문할지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거긴 우리 아직 안 갔잖아. 그렇게 가고 싶어?  저번달에 겨우 예약한 걸 그날 네가 급하게 일이 생겨서 못 갔잖아. 그 후에 잡은 예약이 다음 주인데 그것도 못 참겠어?"
"... 뭐?"
이게 뭔 소리지? 간 적이 없다고??
내 머리가 기억하는데? 간 적이 없다고??
"거짓말. 너 이런 걸로 장난치지 마라. 나 화낸다. 인정하기 싫으면 인정을 하지 마. 짜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나 하고."
민수는 자기를 흘겨보며 투덜대는 혜주의 얼굴 앞으로  몸을 더 가까이 가더니 나지막하게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널 좋아하는 건 맞는데 안 간 걸 안 갔다고 하지 어떻게 갔다고 하니?"
민수의 저돌적인 접근에 혜주는 흠칫 놀라며 몸을  재빨리 뒤로  뺐다.
그 모습에 민수는 역시 재미있는 그녀의 반응에 혼자 속으로 웃었다. 나이 서른 넘고도 어떻게 저렇게 소녀 같을까 싶었다.
그 속이 진짜 혜주가 아니란 걸 모른 채 말이다.
지금의  혜주는 민수가 어떤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던 관심이 없었다. 
분명히 갔는데 안 갔다고 우기는 민수가 도리어 이상했다.
"너, 내가 입은 하얀 원피스 기억 안 나??"
테이블을 그리 힘을 안 준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민수의 답을 기다렸다.
"원피스? 혜주 네가 원피스를 입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네가 치마를 입은 모습은. 근데 상상해 보니 예쁠 거 같다.
혜주는 민수의 반응에 놀라서 입이 안 다물어졌다.
설마, 설마!!!
제발 아니길! 제발!!
혜주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하고는 왜 그러냐는 민수의 질문에 답을 못한 채 커피숍을 뛰쳐나와 집으로 향했다.
아닐 거야, 진짜 내가 생각한 대로라면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택시에서 내려 급하게 1층 엘리베이터를 눌러 집으로 들어갔다. 
왠지​ 오늘 집에서 나오기 전에 뭔가 빠진 거 같다는 생각했다. 그냥 착각이겠거니 하고 신경을 안 썼다.
이제 그 이유를 알 거 같다. 
현관에 들어선 혜주는 신발도 제대로 못 벗은 채 옷장을 향해 뛰어갔다. 
활짝 연 옷장에는 그 어디에도 혜주가 찾는 옷이 없다. 
아, 신발.
굽이 낮은  구두! 
또 급히 신발장으로 뛰어 가 신발들을 뒤졌다.
없다. 여기도 없다.
혜주는 좌절감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혜주야. 왜 그래?"
이 모든 소란을 다 지켜보던 주혁이가 다가오면서 묻는다.
혜주는 넋이 나간 얼굴로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주혁을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올려다보았다.
남주혁아, 남주혁.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혜주가 4개월 후면 죽는단다. 
갑자기 과거로 오게 되어서 내가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인 줄 알았다.
근데 착각이란 걸 오늘, 방금 알게 되었다.
저번에 혜주로 들어와서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없던 일로 되었다. 나란 존재가 아예 여기에 없었던 것처럼.
누구도 어차피 나를 기억도 못 하고 있다.
그러면, 그러면 내가 4개월 뒤 혜주가 죽을 거라고 누구한테 얘기를 한들 ,
내가 현실로 가는 그날로 다 잊힐  건데!
하나님, 무교인 제가 오늘 한번 여쭙습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
"후르릅~ 쭈웁~"
심란한 혜주에 비해 옆에서 매운 라면을 아주 신나게 먹고 있는 주혁을 보고 있으니 긴 한숨이 나온다.
"맛있냐?"
"음? 맛있지~ 누가 끓여준 건데."
맛있게 후루룩 면발을 치는 주혁은 과음했던 속이 이제야 좀 내려가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그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짠해졌다.
지금의 너는 모르지. 너의 그 혜주가 죽게 된다는걸.
어쩌면 제일 행복한 시간이지.
네가 나고 내가 너인데. 4개월 뒤 슬퍼할 너를 생각하면 ...
에휴...혜주는  긴 한숨이 나갔다.
"왜 그래?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들어와서 그래?"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쉬는 혜주를 발견 한 주혁이가 라면 국물까지 들이키고는 묻는다.
"아니야."
영혼 없이 대꾸한 혜주는 주혁이가 다 먹은 라면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가려고 자리에 일어섰다.
"아앗!"
갑자기 주혁이가 같이 일어나면서 그릇을 잡으려고 뻗은 혜주의 손을 확 당겨서 자기 품에 끌어안았다.
"뭐, 뭐 하는 거야!"
혜주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해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 두꺼운 팔뚝과 어깨를 가진 주혁을 밀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냥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허우적 대기만 할 뿐.
"민수한테서 들었니? 나 괜찮아. 걱정 마. 어제는 좀  괴로웠는데 술도 마시고 너를 끌어안고 자고 나니 괜찮아졌어. 넌 나의 만병통치약이잖아."
아... 이 자식은 자기가 김기석 감독한테 까인 걸 듣고 내가 기분이 안 좋아진 걸로 생각하는구나.
그게 아닌데... 더 큰 문제가 너를 위협해 오고 있는데.
혜주가 아무 말이 없자 그제야 꽉 안았던 몸을 천천히 풀어주던 주혁은 그녀의 팔을 잡고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혜주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남주혁, 너 어느 날 혜주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응?"
듣긴 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근데 이상한 말을 들었다.
"음... 만일 네가 나보다 빨리 죽는다면... 난 살 이유가 없을 거 같은데?  아빠도 안 계시는 마당에."
혜주는 그런 말을 하는 주혁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제법 진지한 눈동자로 혜주를 응시하고 있는 주혁이의 표정이었다.
"나도 같이 죽을래."
주혁이의 보탠 한마디에 혜주는  놀래서 입이 쩌억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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