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12회)

죽으나사나 | 2024.01.15 05:07:53 댓글: 0 조회: 210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0430
내 여자친구가 살해 되었다. (12회)   발인.

“예빈아~ 결혼 축하해~ 오늘 너무 예쁘다. ”

“고마워. 은연아~”

천사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친구들의 칭찬에 부끄러운 듯 양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시선은 자꾸 신부 대기실 밖을 내다보았다.
입장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 얼굴을 안 비추는 거 보면 역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와 실망이 오가는 얼굴이었다.

이때 밖에 갑자기 소란해지더니 누군가 대기실로 들어오는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부터 그려지는 그 실루엣은 오빠랑 비슷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근데 살집이 많은 오빠랑은 완전히 다른 몸…
오빠는 아니다. 점점 그 실루엣이 벗겨지고 뚜렷해지니 오빠랑 너무 다른 얼굴을 한, 어디선가 익숙한 얼굴이 뚜벅뚜벅 예빈이의 앞으로 걸어들어왔다.
숯을 올린 듯한 검고 짙은 눈썹, 우물처럼 깊어 보이는 눈동자, 칼같이 우뚝 솟고 뾰족한 코. 날선 턱선 끝엔 이슬을 머금은 듯 어딘가 투명으로 살짝 반짝여 보이는 입술에서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녹여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혼 축하해요. 김예빈씨.“

“남… 주혁?”

설마, 남주혁이 내 앞에??

“네. 맞습니다.”

곱게 차려입은 검은색 슈트가 유난히 잘 어울리는 주혁이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어머머… 진짜 남주혁이야? 여긴 어떻게 나타났대?”

“와… 저 기럭지 봐. 저 얼굴 사이즈는 또 어떡하고~..”

분명히 하객들이 저마다 속닥속닥하는 거 같은데 다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남주혁 씨가 여긴 어떻게…”

어안이 벙벙해진 예빈은 눈만 껌뻑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아, 김상혁. “

”저희 오빠요?“

예빈이의 눈이 반짝이었다.


“상혁이 형이랑 친한 사이입니다. 예빈씨 결혼식에 사정이 있어서 참석을 못 하니 제가 이렇게 대신해서 오게 되었고요.”

“우리 오빠를 안다고요?? 남주혁 씨가?”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이다. 오빠는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을 밥 먹듯이 해대는 아빠 밑에서 도저히 못 견딘 채 사춘기 때 집을 뛰쳐나가고는 쭉 한 길만 걸어갔었다.

깡패… 어둡고 침침한 뒷골목. 말려도 보고 욕도 해보고 그랬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기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 했다. 그래서 오빠가 아는 사람들도 다 그 부류. 딱 그 정도였다. 근데 어떻게 TOP 배우인 남주혁이 오빠랑 아는 사이일 수 있냐는 거지.

도저히 믿지 못하는 예빈이의 표정을 보고는 주혁은 멋쩍은지 목덜미를 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알겠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요즘 감방에  며칠 있었지 않습니까. 거기서 친해진 형이 김상혁이에요. “

알죠. 뉴스가 엄청나게 나와서요.

예빈은 말없이 주혁의 말을 경청했다.

“상혁이 형이 동생 생각을 많이 하는 거 같더라고요. 사정이 생겨서 못 오게 되었지만 전해줄 말이 있다고 했어요. ”

“뭐…라고 했는데요?”

기대를 하는 예빈의 시선에 주혁은 헛기침을 한번 했다.

“사랑한다고요. 동생 예빈 씨를 많이 사랑한대요.”

주혁이의 말에 예빈이의 눈동자가 점점 커져갔다. 그러다 반달 모양으로 그려진 눈으로 안심의 한숨을 옅게 내쉬었다.

“고마워요. 제 결혼식에 다 직접 와주시고.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식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주혁은 혼자 조용히 예식장을 빠져나왔다. 상혁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럼 동생한테 해줄 말은?]

무심코 던진 주혁이의 말에 어릴 때 동생이랑 같이 찍은 유일한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상혁이가 시선을 주혁한테 옮겼다.

[해줄 말 없냐고. ]

또 한 번 주혁이가 재차 확인하자 상혁이는 사진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없어. 그런 거. ]

[뭐?]

잘 살면 되지. 이 오빠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없는 사람처럼 잊고 새 신부답게 행복한 일만 생각하면서 살면 되지. 나 같은 게 뭔 해줄 말까지. 낯간지럽게.

곰탱이 같은 상혁이의 말에 자기 혼자 지어낸 말이었다.

한편, 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으로 바로 떠나는 예빈은 공항으로 가는 길에 아까 주혁이가 하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사랑한다고요. 동생 예빈 씨를 많이 사랑한대요.]

거짓말…
우리 오빠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어릴 적 시궁창 같은 집에서 혼자 뛰쳐나온 거에 죄책감을 가진 오빠는 나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런 말은 절대 입 밖으로 안 내지. 맘은 여려도 절대 입 밖으로는…

사랑한다는 말은 진짜 올해 들어서 제일 재밌는 말이었어요. 고마워요. 남주혁 씨.

예빈은 열심히 달리는 차 창밖을 내다보면서 싱긋 웃었다.


예식장에서 나오고 주혁은 급히 차를 빼고 어디론가 향했다.

[김혜주가 사망 당일 저녁 7시쯤, 김혜주네 집으로 찾아온 심건희를 본 목격자가 있습니다.]

취조 당시 했던 최반장의 말을 생각하면서  심건희를 찾으러 가는 길이다.

교도소에 나오면서 틈만 나면 전화를 하는데 최반장 말대로 전화기는 쭉 꺼져있다.

엄마,

아빠와 나를 무참히 버리고 떠난 그날부터 당신은 내 엄마가 아니었지만 제발 마지막 남은 미운 정도 버리게 하지는 말아 줘.
제발… 제발 당신이 혜주의 죽음이랑 상관이 없기를 바래.

“지이이잉…”

운전 중에 주혁이의 전화가 진동이 울렸다.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아줌마>라고 떴고 그걸 확인 한 주혁이는 바로 갓길에 차를 멈추었다.

바로 받아야 하는데 손이 말을 안 들었다. 몇 초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통화 버튼을 누른 주혁이.

“여보세요?”

“어… 주혁이니?”

“… 네. 아줌마.”

“뉴스 봤다. 네가 아니란 거쯤은 알고 있었다. ”

“죄송합니다.”

“내일… 혜주 발인 날이야. 올수 있겠니…?“

”…!!!“

혜주의 엄마다.

주혁이한테는 많이 두려운 상대. 아줌마.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들을 봐왔던 아줌마라 더욱 그렇다. 주혁의 머리속엔 그때 그 시절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주혁아, 아줌마가 제발 이렇게 빌게. 응? 제발 우리 혜주 놔주면 안 되겠니?]

[저희 서로 좋아합니다. 아줌마. ]

[너랑 혜주는 달라도 너무 달라. 혜주는 내 말을 거역할 애가 못된다고. 너를 만나고 나서 혜주가 사람이 변해가고 있어.]

우리 둘을 반대를 많이 했었던 아줌마. 무서울 게 없이 다 지르고 보는 나에 비해 조심성이 많고 조용했던 혜주였으니 같이 있으면 안 된다고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혜주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포기를 하셨었다.

아줌마는 속이 상하셨는지 멀리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딸인 혜주하고도 멀어지게 되었었다.

홀로 혜주를 키우면서 혜주밖에 모르던 아줌마한테서 내가 혜주를 빼앗았다.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했었다.
분명히…
분명히 그랬다.

다음날 이른 아침, x 장례식장.

몇 년 전 아빠의 장례식 이후로 처음 발을 디디게 된 장소.
영영 죽을 때까지 오기 싫은 이곳.
특히나 보내야 할 사람이 혜주일 줄은 …

크나큰 죄인이 되어버린 주혁은 왜 바로 발인을 하는 건지 물을 수가 없었다. 친척 중 한 분이 어제 아줌마가 경찰 측에 혜주의 몸을 그만 괴롭히고 빨리 돌려달라고 하셨단다. 장례식 3일 절차를 무시하고 온전치 못한 육체로 힘들어할 혜주를 위해 그냥 마지막 발인을 하기로  결정을 하셨단다.

그냥 그렇게 들었다. 갑자기 한 결정이라 그런지 조문객은 몇 명 없었다. 운구를 할 몇 분의 친척과, 아줌마는 혜주의 영정사진은 주혁의 품에 넘겨주었다.

화장장으로 가는 길에 누구도 큰 소리로 우는 사람이 없었다. 주혁은 염치없이 애처럼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혜주의 빈자리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봐야겠다.
손을 뻗으면 항상 닿을 거리에서 환하게 웃고만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아줌마한테서 그렇게 10년을 넘게 혜주를 빼앗아 가고 지키지도 못하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초래한 본인이 무슨 염치로 울 수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면서 입술은 꽉 깨물어서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지만 화장로에 혜주의 시신이 들어가는 걸 본 순간, 자꾸 새어 나오는 눈물을 끝내 참지 못하였다.

아줌마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세차게 내리치면서 혜주의 이름을 안타깝게 불렀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혜주의 유골은 아줌마의 뜻에 따라 바다에 보내기로 했다.

혜주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패기가 넘치던 10대의 주혁은 없었다. 모든 결정은 아줌마 의견에 따랐다. 혜주의 마지막 길은 아줌마의 뜻대로만 움직였다.

요트는 어느새 바다 중간에 정박을 하였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는 건지 늦가을의 차디찬 빗줄기가 조금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동하면서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아줌마가 먼저 조심스레 바다에 뿌렸다. 그렇게 주혁이, 친척들까지 혜주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이 모든 게 점심도 되기 전에 다 끝나버렸다.

모든 게 다 끝나고 친척들이 다 가고 나니 아줌마랑 주혁이만 남았다.
아줌마한테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 주혁은 시선은 바닥에만 꽂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주혁아.”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아줌마의 나지막한 부름이 있었다.

주혁은 천천히 머리를 들어 아줌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5년도 넘은 거 같다. 너무 힘들어 보이는 초췌한 얼굴을 한 아줌마가  발인하는 내내 깨물어 혈흔이 바짝 말라붙은 주혁이의 입술을 한참 쳐다보더니 그의 양손을 모아서 잡아주었다.

”참느라 고생했다. 주혁아. 아줌마 마음 못지않게 너도 많이 힘들 거란 걸 알아. 혜주한테나 너한테나 서로 전부인데,  네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이렇게 혜주를 보내서 미안하다.“

”… 제가 … 아줌마를 뵐 염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눈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죄송하다는 말로 풀릴 일이 아닐 거란 걸 알지만 그 말 외에는  전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힘들 때거나 슬플 때 옆에 혜주가 있기만 하면 다 위로가 되었었다.
아빠의 발인 날도 처음부터 끝까지 혜주랑 한 몸이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버틸 수가 있었다.
근데 그 버팀목이 사라져 버렸으니 난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위로를 드려야 하는데 아줌마의 따뜻한 손끝에서 난 혜주의 그림자를 찾아 또 이렇게 아이처럼 그 자리에 서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혜주가 살고 있던 오피스텔에서 경찰들이 철수하였다는, 이제 들어가도 된다는 연락을 받은 건 아줌마랑 헤어지고 얼마 안 된 시간이었다.

주혁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그녀랑 추억이 가득한 그 오피스텔에 발을 들였다.

혜주의 온기와 사랑으로 가득 찼던 집안이 많은 경찰들이 오고 가면서 어수선하고 어두운  집안으로 변해 버렸다.
주혁은 그냥 뭐에 이끌린 듯 신발을 신은 채 뚜벅뚜벅 혜주랑 같이 지내던 방으로 들어갔다.

두 개의 베개. 한 개의 이불.

우린 부부나 다름없었다. 10년이란 세월은.

여기서 얼마나 많은 기쁨과 슬픔이 깃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기쁨과 슬픔은 항상 주혁이 위주로 돌아갔었다.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땐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주혁이한테 토닥토닥 혜주의 위로를. 처음 영화 촬영 계약을 따냈을 때 기쁨의 포옹을. 첫 연기대상을 받았을 때는 또 ….

주혁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눈을 뜨면 항상 있을 혜주의 빈자리를 손으로 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아직 그녀의 온기가 있는 것처럼  왠지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니 그 느낌이 더욱 생생했다.
처음 혜주의 옆자리에  앉았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자꾸 자신한테 이것저것 관심을 갖는 그녀가 조금 귀찮을 정도였다. 내가 배우가 될 거라 했을 때  뭔가 모를 감격으로 가득 차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혜주의 그 눈빛에 의아했고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주혁아, 나 너 좋아해.]

혜주의  고백으로 난 어느 순간부터 마냥 생기발랄하기만 한 그녀한테 깊이 스며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

[아줌마는 너를 이제 미워하지 않아. 처음에는 무작정 너한테 혜주를 뺏겼다고 생각해서 어린 너한테 모질게 굴었었다. 엄마인 나랑 있을 때 혜주는 사실 많이 어두운 아이였는데 너를 만나면서 밝아졌고 그제야 그 나이에 걸맞은  아이의 모습들이 보였었지. 그걸 인정하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단다. 너한테는 내가 항상 마음의 돌덩어리처럼  느껴졌을 텐데 아줌마가 이 얘기를 못해줘서 미안했다.]

헤어지기 전 아줌마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혜주의 그 환한 미소가 나 때문이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항상 나만 보면 웃었던 혜주라 원래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혜주야…

나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겠니.

너를 한 번만 더 사랑하고 싶어. 딱 한 번만 더…
추천 (2) 선물 (0명)
IP: ♡.218.♡.55
22,94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044
죽으나사나
2024-02-05
3
565
나단비
2024-02-05
2
329
죽으나사나
2024-02-04
3
857
여삿갓
2024-02-04
3
602
죽으나사나
2024-02-02
0
475
죽으나사나
2024-02-01
2
333
죽으나사나
2024-02-01
1
157
죽으나사나
2024-01-31
1
172
죽으나사나
2024-01-30
1
184
죽으나사나
2024-01-30
1
154
죽으나사나
2024-01-29
1
175
죽으나사나
2024-01-29
1
181
죽으나사나
2024-01-28
1
173
여삿갓
2024-01-28
3
530
죽으나사나
2024-01-28
1
162
죽으나사나
2024-01-27
1
160
원모얼
2024-01-27
8
979
죽으나사나
2024-01-27
2
157
죽으나사나
2024-01-26
2
183
원모얼
2024-01-26
5
722
죽으나사나
2024-01-26
1
127
죽으나사나
2024-01-25
1
151
죽으나사나
2024-01-25
1
168
죽으나사나
2024-01-24
2
166
죽으나사나
2024-01-24
2
163
원모얼
2024-01-23
3
341
죽으나사나
2024-01-23
1
140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