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13회)

죽으나사나 | 2024.01.17 14:43:40 댓글: 0 조회: 164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1042
내 여자친구가 살해 되었다. (13회) 민수와 민서.

“삐.. 삐삐…”

혜주와의 여러 추억을 생각하다가 지쳐서 침대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린 주혁은 현관 쪽에서 들리는 도어록 비번을 누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삐삐삐…”

비번은 그냥 틀려서 오류음만 떴다. 

누구지?

여긴 올 사람이 없는데…

혹시 혜…주?

주혁은 의문을 품은 채 현관으로 다가가 그대로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죄송합니다.“

웬 시커먼 모자를 꾹 눌러쓴 남자가 문이 갑자기 열리니  흠칫 놀라더니 이내 평정심을 유지한 목소리로 사과를 하고 급히 돌아섰다. 

”누구세요?“

얼굴에 웃음기가 확 가신 주혁이가 도망치려는 남자의 팔을 꽉 잡았다. 

남자는 주혁이의 누구냐는 두 번째 질문에도 답도 없이 앞을 보면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누군지 자세히 보려고 모자로 손이 가는 순간, 자신의 팔을 잡은 주혁이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거기 서!!“

주혁은 놓칠세라 뒤를 바짝 쫓았지만 어느새 쥐새끼처럼 사라진 그 남자는 찾을 수가 없다. 

주혁은 가쁜 숨을 내쉬며  그 남자를 못 잡은 아쉬움에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았다. 

이상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분명히 이 집에 침입하려는 자다. 

근데 무슨 이유로?

경찰들이 철수하자마자 왜 혜주네 집으로 들어오려고 했을까.

****

“ 못 들어갔습니다. 안에 사람이 있더군요.”

검은 모자를 쓰고 도망친 남자는 어느 한구석에 숨어서 가쁜 숨을 내쉬며 아직도 자신을 찾고 있는 주혁을 주시하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아 씨X. 남주혁 그 새끼겠네. 지 여친 죽어나간 거긴 왜 다시 쳐들어간 거야! 또라이 새끼.”

전화기너머엔 온갖 짜증에 발악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누군가가 있었다. 

“하… 그거 못 찾으면  아빠한테 죽은 목숨인데. 그게 대체 어데 있다는 거야!!! 돌아버리겠네!! 다시 연락할게. 당분간 거기 가지 마.!”

귀청이 째지라 소리만 지르던 남자는 날선 말투로 검은 모자 남자한테 명령조로 말하고는 대답도 안 듣고 통화를 툭하고 끊었다. 
검은 모자 남자는 이런 일은  이미 일상인 듯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주혁을 한참 쳐다보더니 유유히 그 자리를 떴다. 

한편,

“하민수.”

자신을 감추는 듯 어두운 계열의 운동복을 입고 모자까지 꾹 눌러쓴  남자가 조용히 자기 집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다. 

“주혁이 말로는 네가 연락이 안 된다길래 여기서 기다렸어. 여기는 올 거 같더라.“

“여기 1층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을 텐데.”

민서의 말이랑 다르게 거의 혼자 말하다시피 낮은 민수의 목소리였다. 

“그렇지. 근데 다행히 경호원 아저씨가 기억력이 좋더라? 날 지금까지 기억하더라고.”

민서는 민수의 앞에 한 발짝 다가가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다가 금방 다시 내렸다. 

오늘 민서가 민수를 다시 만난 건 4년 만이다. 민수가 술에 취해  기억을 못 하는 만남은 빼고.
헤어지자는 말은 분명히 민서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저린 건 민서 혼자였고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진 민수를 원망도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가슴이 꿈틀대는 건 뭔가 싶은 그녀다. 

민서는  오늘 아침  혜주의 발인에 참석을 했었다. 바다까지는 안 갔지만 혜주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말로만  혜주가 죽었다고 했지 실감이 하나도 안 났는데 불길 속에 들어가는 혜주를 볼 때는 정신이 아찔해졌었다. 이제 진짜로 혜주가 간 거 같아서 너무 슬펐다. 

“들어와.”

민수의 짧고 어둑한 한마디에 민서는 몇 초 서있다가 문이 닫히려는 찰나, 현관문을 잡았다. 

여긴 웬만해선 안 오고 싶었다. 적어도 민서한테는 기억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파지는 곳이라…

모자를 벗어 테이블에 올린 민수는 거실로 걸어가 소파에 힘든 몸을 젖혔다. 두통이 있는지 양손은 눈을 감싸고 머리까지 뒤로 젖혀버렸다. 그런 민수의 모습을 본 민서는  고개를 돌려 잠깐이나마 살았었던 이 집안을 천천히 눈으로 훑었다. 그대로다. 

민수는 지금 주혁이만큼, 아니면 주혁이보다도 더 힘든 나날들이겠지. 

혜주의 전화 한 통에 바로 나를 그렇게 버렸으니…

안다. 민수한테 혜주는 어떤 존재인지…

참 무심도 하지. 내가 그때 샀었던 커플 컵은 그냥 있네. 

민서는 주방 테이블 끝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컵을 발견하고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17살 고등학교를 처음 입학하고 모든 게 낯설었지만 그렇게 설레었다.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만남, 지루했던 여중 시절이 끝나가고 남녀공학으로 온 민서는 남녀가 어우러져 있는 이 학교 전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반을 배정받고 처음으로 그 반에 들어선 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하민수를 처음 보았다. 

그렇게 어둡지 않은 구릿빛 피부, 10대 답지 않게 떡 벌어진 어깨, 일어서니 키도 1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장신이었다. 외모로는 첫눈에 반했고 후에 지내보니 딱 민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공부를 잘하지, 주혁이처럼 쓸데없는 자신감과 오기도 없었다. 늘 그 자리에 조용히 있는 듯한 민수가 멋있었다. 

애들은 다 주혁이를 멋있다고 얘기했었지만 민서는 사실 이해가 잘 안 갔다. 지금은 나이도 어느 정도 먹고 배우 생활을 하느라 그때랑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의 주혁은 얼굴이며 몸이며 온통 뽀얀 애송이 같았다. 근육 하나 없는. 
그랑 정반대인 민수는 민서의 최애 이상형이었다. 

그런데 민수의 시선은 늘 한 사람한테 가 있는 걸 보고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좋아한다는 말을 못 했다. 그러다 드디어 졸업하는 날, 이제 말을 안 하면 더 이상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얼굴을 붉히며 민수한테 고백을 했다. 

[날 좋아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보기 좋게 단칼에 거절을 당했다. 그런데 사귀려고 한 고백이 아니었으니 민서는 나름 괜찮았다. 자기 맘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니. 친구들이랑 거리가 꽤 되는 대학에 가서도 민수를 잊지는 않았다. 민서한테는 민수가 지독하게도 잊기 힘들다는 첫사랑이었으니까. 

그렇게 대학교도 졸업하는 내내  동창회를 제외하고는 민수는 거의 따로 못 봤었다. 그때도 변함없이 잘 생긴 민수였다. 

그러다 26살이 되던 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대기업에 운이 좋게 입사하게 되었다. 거기에 입사하려고 밤낮을 눈을 잡아뜯어가며 짧은 시간 내에 딸 수 있는 자격증은 거의 다 땄다. 

자기 인생은 노력만 하면 다 되는 거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김민서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들!]

사회 초년생답게 허리를 굽혀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머리를 들어 앞을 보았을 땐 깜짝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마음 한구석에 항상 차지하고 있던 그 사람, 하민수가 민서 앞에 떡하니 서있었다. 잘못 봤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때도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섹시하게 느껴지던 민수가 더 남자가 되어 민서 앞에 나타났다. 아니, 따지고 보면 민서가 민수 앞에 나타난 것일지도. 민수는 민서가 들어간 팀의 팀장이었다. 

[팀… 장님. 안녕하세요.]

아직 계약직인 말단 직원이랑  팀장의 직급 차이 때문에 알은척을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처음으로 건넨 민서의 말이었다. 앞만 주시하고 있던 민수가 민서의 공손한 인사에 픽하고 웃었다. 

[오랜만이야. 김민서.]

고개를 돌려 민서를 향해 싱긋 웃었다. 그 미소는 민서로 하여금 오랫동안 잠재워져 있던 짝사랑의 불씨를 태워주었다. 

하민수. 우린 운명인 거 같아. 

[남들 없을 땐 그냥 이름 불러.]

[그…래도 될까?]

[응.]

조심스레 되묻는 민서에 자꾸 피식 거리는 민수다. 

[근데 너 이 나이에 어떻게 벌써 팀장이 된 거야? 너무 대단하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되었는데 그 자리까지 갔어? ]

말이 트이니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갔다. 민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민서의 끊이지 않는 수다에 다시 꾹 담아버렸다. 

[우리 고등학교 때 그런 소문이 돌았는데, 민수 네가 대성그룹 유일한 후계자라는 소문 말이야. 웃기지 않아? 너야 공부를 워낙 잘했으니 여기 들어오기 쉬웠겠지. 난 진짜 죽을 듯이 노력했어. 근데 너를 여기 대성그룹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그거 그냥 소문 아닌데.]

[응?]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민수의 말에 그때 알았다. 하민수는 대기업 회장의 유일한 아들이었다는걸. 밑바닥부터 다지는 중이라고 했다. 일반인들한테는 팀장도 밑바닥은 아닐 테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니 남들한테 이 얘기는 굳이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왜 그럼 3년 내내 친하게 지내는 동안 얘기를 안 해줬냐고 물었었다. 답은 간단했다. 직접 물은 적이 없다고….

그렇게 끝나간 것만 같았던 민서의  첫 짝사랑은 직장에서 다시 만나 자주 보는 얼굴이라 더 가까워지는  사이가 되었다. 

[민서 씨, 내일 출장 일정 잡혔는데 같이 갈래요?]

남들 있을 때는 이름 그대로 안 부르고 꼭 뒤에 씨를 붙였었다. 없을 때는 바로 민서라고 불렀다. 좋아하면 무얼 하든 다 멋있어 보이는 걸까. 이것마저도 자기들만의 비밀 같아서 민서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나. 
무더운 여름의 어느 밤, 자기 앞에서  맛있게 밥을 먹는 민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수가 생각지 않은 말로 민서를 놀라게 하였다. 

[김민서. 우리 연애할래?]

그때는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분명. 이 집에서. 

여기까지 생각한 민서는 지금 이런 추억에나 빠져있을 때가 아니란 걸 자각하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민서는 아직 소파에서 무거운 한숨을 쉬고 있는 민수한테서   시선을 고정하고 무거워진 입을 열었다. 

“오늘 혜주의 발인 날이었어.“

그녀의 말에 미동이 없던 민수의 눈썹이 떨리기 시작하면서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연락을 했는데 도통 통화가 되어야지. 아줌마랑 주혁이가 혜주를 잘 보내주었어.“

나도 힘들지만 하민수 너의 그  세상이 무너진 듯 비치는 그 얼굴이 너무 싫다. 
친구로서 당연히 혜주의 죽음이 안타깝고 눈물 나고 그렇다. 
근데 너는 죽도록 사랑하던 자기 여자가 죽은 것처럼 그러는 게 너무 싫다.

민서는 그냥 여기서 나갈까 생각을 했다가 억울하게 죽은 혜주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눈을 찔 끈 감고 민수의 앞에 있는 1인용 소파에 조용히 앉았다. 

”힘든 거 알아. 나도 그렇고 주혁이도 그래. 근데 우리는 이 슬픈 마음을 빨리 추스르고 혜주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해.“

민서의 말에 민수는 말이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민서는 그런 민수랑 시선을 맞추며 말을 이어갔다. 

“너도 혜주가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찾고 싶을 거 아냐. 그래서 주혁이 매니저 일을 때려치운 거 아니야?”

민서는 왠지 원망 섞인 말처럼 쏘아붙였다. 말하고 나니 아차 싶어서 다시 정정하려고 하는데 민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경찰도  수사 종결한다는 걸 우리가 무슨 수로 범인을 잡아.”

“무슨 소리야 그게?”

말이 안 되잖아. 범인도 못 찾았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 얘기하는 걸 들었어. 주혁이 때문에  혜주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 경찰이 혜주가 자살이라고, 그래서 수사 종결했다고 아까 저녁에 발표했다더라.”

민수의 말은 너무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았다.
추천 (2) 선물 (0명)
IP: ♡.101.♡.207
22,94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045
죽으나사나
2024-02-05
3
566
나단비
2024-02-05
2
329
죽으나사나
2024-02-04
3
858
여삿갓
2024-02-04
3
603
죽으나사나
2024-02-02
0
477
죽으나사나
2024-02-01
2
333
죽으나사나
2024-02-01
1
157
죽으나사나
2024-01-31
1
172
죽으나사나
2024-01-30
1
185
죽으나사나
2024-01-30
1
155
죽으나사나
2024-01-29
1
175
죽으나사나
2024-01-29
1
181
죽으나사나
2024-01-28
1
173
여삿갓
2024-01-28
3
530
죽으나사나
2024-01-28
1
163
죽으나사나
2024-01-27
1
161
원모얼
2024-01-27
8
982
죽으나사나
2024-01-27
2
158
죽으나사나
2024-01-26
2
183
원모얼
2024-01-26
5
723
죽으나사나
2024-01-26
1
127
죽으나사나
2024-01-25
1
151
죽으나사나
2024-01-25
1
168
죽으나사나
2024-01-24
2
166
죽으나사나
2024-01-24
2
164
원모얼
2024-01-23
3
341
죽으나사나
2024-01-23
1
140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