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가 살해되었다 (14회)

죽으나사나 | 2024.01.17 14:44:12 댓글: 0 조회: 220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1043
내 여자친구가 살해 되었다  (14회) 미심쩍은 수사 종결.

<속보입니다. 오늘 밤 6시경 서현 경찰서에서 긴급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떠들썩했던 김혜주 살인사건 관련해서 새로운 수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서현 경찰서는  TOP 스타 남주혁을 애초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구속수사를 진행했었지만 경찰 최 모 씨의 단독 횡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아래 브리핑 현장 내용 들어보시죠.>

민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던 민서는 바로 TV를 틀었고 TV에서는 마침 혜주에 관련해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앞서 이번 사안으로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를 드립니다. 초동 대응과 수사 과정에서의 미흡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경찰의 책임자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직책이 높아 보이는 경찰 관계자가 나와서 말을 이어갔다.

< …저희가 조사한 결과는, 앞서 고인이 직접 쓴  편지와 타인의 흔적이 전혀 없는 부검 결과를 근거로 하여 김혜주는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말도 안 돼…

<김혜주의 죽음은 안타까우나 자살로 인한 사망이니 저희 서현 경찰서는 김혜주 사망 사건에 관해서는  수사를 종결합니다. 그리고…>

민수는 더 이상 보기 싫다는 듯 TV를 확 꺼버렸다.

“민수 너 설마 저 말을 믿는 거야? 혜주가 자살이라고?”

주혁이한테 들었었단 말이야. 목 졸림으로 인한 타살이라고!!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구르는 민서에 비해서 민수의 표정은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편지는… 네가 준 거라며?”

그녀를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던지는 민수의 말에 팔딱팔딱 뛰던 민서의 가슴이 차디찬 얼음을 뿌린 듯 굳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맞다. 방금 편지 내용을 근거로 자살 결론을 냈다고… 했지.

그게 근데 어떻게 자살로…

<나는 왠지 있잖아. 이 세상에 오래 있을 사람은 아닌 거 같아. 그냥… 그럴 거 같아. 놀라지 마. 최대한 버텨볼 건데. 안된다면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난 내가 이 세상에 없어지는 게 사실 두렵지가 않아. 나 때문에 슬퍼할 주변 사람들이 걱정이 되는 거지.>

문득 편지 내용이 어렴풋이 생각이 나서 민서는 저도 모르게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설마 그런 글 때문에… 말도 안 돼. 그게 어떻게 유서로 보이냐고!!

자기 때문에 혜주의 죽음을 자살로 종결을 지은 거 같은  민서는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 듯한 민수랑 더 이상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간단한 인사만 하고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밖으로 옮겼다.

혜주야. 난 내가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편지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경찰서로 달려갔고  주혁이한테 그걸 공개하자고 했어. 네가 사랑하던 사람이 곤경에 처하면 안 되니까. 너의 마음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근데… 어떻게 이런 결과를…

마음이 착잡했다.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는 민서였다.

일단 주혁이한테 전화를 해야 될 거 같았다.

“응. 민서야.”

전화기 너머 가쁜 숨을 헐떡이는 주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혁아!!!”

주혁이의 목소리가 들리니 갑자기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는 민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김민서!!”

검은 모자 남자를 놓쳐 여기저기 쑤시고 있는 와중에 전화가 와서 무심코 받은 건데 전화기 너머엔 갑자기 엉엉 울고 있는 민서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깜짝 놀란 주혁이다.

“그게… 그게 있잖아. 내가 준 편지 때문에 .. 어흑… 흑… 경찰이 혜주가 자살이라고… 으흑… 수사 종결을 한 대.”

“뭐???!”

어린아이처럼 왕왕 우는 민서를 걱정하지 말라고 무슨 일인지 직접 경찰서에 가볼 거라고 달래고  나서 주혁은 서현 경찰서로 향했다.

[김혜주 시체 부검 결과 사인은 목 졸림에 의한 사망.  욕조에 빠져서 익사로 사망한 걸로 발견되었지만 실제로는 사망한 후에 누군가 욕조에 빠트린 걸로 추정됩니다.]

그때 주혁이를 취조하던 그 키 작은 경찰이 분명히 혜주는 타살이라고 했다. 근데 이제 와서 갑자기 자살로 수사 종결 한다고??  말도 안 돼.

주혁은 심하게 꿈틀대는 눈썹을 꾹꾹 누르며 운전대를 잡았다.


“띠리리리링…”

또 전화가 왔다.

화면에는 < 김상혁 동생 >이라고 떴다.

“여보세요?”

“어, 남주혁 씨죠? 그 주변을 알아봤는데 그날 밤 거기에 불법 주차를 한 차량이 있었더라고요.”

여전히 쇠로 바닥을 긁는 듯한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이렇게 전화를 한 거는 그 차량 주인을 찾았다는 거지?”

“와아… 성격 한번 급하시네. 맞습니다. 차량 주인을 찾았는데 그 동네 뒷골목 옛날 빌라에 살고 있던 백수더라고요. 그날도 술을 퍼먹고 운전을 했는데 주차할 자리가 없어 그 앞자리에 불법 주차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주혁이의 틈을 안 주는 다그침에 허스키한 남자는 전화기 너머에서 껄껄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점심쯤 일어나고 보니까 누군가의 신고로 인해 이미 차는 밤중에 끌려간 상태라고 했고요. 화가 나서 아직까지 차를 찾으러 안 갔답니다.“

”차량 주인 지금 어디 있습니까?”

유일한 증거일 수도 있다. 그 차에 달린 블랙박스가.

“자기는 지금 지방 쪽에 일하러 갔다고 모른다고 하길래 견인 된 보관소를 알아봤거든요. 거기 내가 좀 아는 사람이 관리하는 데라 차량 주인 말고 다른 사람이 갈 건데 가면 블랙박스 좀 보여주라고 말해놓았습니다. 주소 보낼 테니 거기로 가시죠. 곧 있으면 문 닫을 거랍니다.“

그러고는 바로 견인 보관소 주소가 문자로 날아왔다.

빨리 경찰서에 가서 무슨 영문인지 따져야 하는데 주혁이한테는 어찌하여야 할지 고민이 생길 무렵, 끊어진 전화가 또 울렸다. 민서였다.

“주혁아. 미안해. 아까는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서. 사실 민수를 찾았다고 전화한다는 게… ”

전화를 받자 아까보다는 많이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민서야. 너 지금 어디에 좀 다녀와야 될 거 같은데. 난 지금 일단 서현 경찰서로 가야 해서. ”

“응?”

잘 됐다. 나를 취조했던 그 경찰은 직접 만나야 한다. 퇴근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일단 가서 번호를 알아내던지 뭐든 해야 한다. 혜주가 자살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주소 보내줄게. 혜주 오피스텔 앞 불법 주차한 차량 블랙박스 챙겨서 좀 있다가 만나.”

“으응. 알았어.“

”혼자는 좀 그럴 수 있으니… 금방 민수를 찾았다고? 민수랑 같이 가. 부탁한다. “

”어? 응…“

민수를 찾았다고는 했지 옆에 없다는 말을 할 새도 없이 전화는 뚝 끊겼다. 자살로 수사 종결을 짓는다고 했으니 주혁이가 정신이 없는 건 이해를 하는데 그의 말에 난처해진 민서는 끝이 안 보이는 고급 오피스텔 위를 올려다보았다.

민수랑 같이 가라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냥 혼자 가고 말지.

아까 편지 말을 꺼내면서 서늘해진 그 표정을 보았는데 민수를 더 찾아가기에는 뭔가 두려웠다. 그러다 문자를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손에 갑자기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전화가 왔다. 민수한테서.

뭐지? 하면서 머릿속에 의문을 가진 채 조심스레 민수의 전화를 받았다.

"아깐 미안했어. 너 때문이 아닌 거 아는데 내가 실수했어."

얼었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는 것처럼 녹아내렸다. 민서는 아직도 민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정이 좌우되었다.

"같이 알아보자. 혜주가 네 말대로 자살은 아닐 테니."

담담한 민수의 말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지만 그 한마디에도 불안했던 마음이 싹 가시는 민서다. 그러면서 주혁이가 말했던 장소가 생각났다.

"저기 민수야, 나 지금 혜주 일 때문에  가야 할 데가 있는데 같이 갈래?"

바로 내려온다고 흔쾌히 대답하는 민수에 안도감과 동시에 어딘가 씁쓸함이 깃들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혜주를 상대로 질투를 한다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만일 지금 없는 사람이 혜주가 아니고 자신이라면 민수나 주혁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10대의 마지막을 거의 이 셋이랑 지냈었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매일 연기 연습을 한다고 장소 불문하고 영화 대사를 읊어 대는 주혁이, 그런 주혁이를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해주며 같이 연기 상대가 되어주던 혜주, 또 그런 모습을 보며 또 재밌다고 피식피식 웃어대는 민수, 그의 그윽한 시선 끝에는 항상 혜주가 있었지만 그때는 그런 그들하고 같이 있을 수만 있어도 너무 다행이고 고마웠다. 적어도 좋아하는 남자랑 친구랑 다 같이 마음 편히 볼 수 있었으니.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 달라졌다. 직장에서 다시 만난 민수는 민서의 생각과는  다르게 혜주의 연락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직접 먼저 연락하는 걸 못 봤었다. 당연히 이제는 혜주를 잊은 줄로만 알았고 그래서 민수를 다시 만난 건 자기한테 기회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직장에서 마주칠 기회를 찾았고 또 많이 다가갔다. 동료가 민수가 그렇게 좋으냐고 거의 그림자처럼 쫓아다닌다고 물어볼 정도로 말이다. 눈에서 자주 보이면 마음도 가까워질 거라 생각했다.

진짜 그랬다. 거의 연인처럼 밥도 자주 같이 먹고 영화도 보고 아주 가끔은 바람 씌러 먼바다도 갔었다. 점점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남자를 갖고 싶다. 내 남자였으면 좋겠다. 직장 내던 밖이던  항상 그런 마음으로 민수를 만났었다.

그 간절한 바람이 민수한테도 닿은 걸까, 처음으로 자기 오피스텔에 밥 먹자고 부른 민수가 건넨 말은 1년 넘게 마음 졸이던 민서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끓게 했다.

[김민서. 우리 연애할래?]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밥을 입안에 마구마구 퍼 넣다가 그 자리에서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앞에서 여유 있는 표정을 하고 있는 민수랑 시선을 마주했다. 그렇게 몇 초 쳐다보는데 갑자기 민수의 손이 민서의 얼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깜짝 놀라서 저도 몰래 눈을 찔끔 감아버린 민서.

음? 느낌에 볼 옆을 슬쩍 스쳐 지나가고 만 민수의 손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밥풀을 휴지에 싸고 있는 민수를 발견했다.

아.. 지저분하게 얼굴에 묻혔나 보네.

얼굴이 화끈거려서 뭐라 말은 못 하겠고 입안에 남아있던 음식을 덜 씹은 채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

1, 2, 3, 딱 3초가 지났다. 민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시선을 못 맞추고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있던 민서의 턱을 손으로 살짝 잡아 올렸다.

"언제 다 삼키나 기다렸네."

혼자 나지막이 내뱉던 민수의 말, 그리고 예고 없이 그대로 다가왔다. 민수의 그 말캉한 입술이. 아직 음식 냄새로 진동할 거 같은 민서의 부끄러움은 안중에 없는 듯 쓰나미처럼 막 밀고 들어왔다.  그게 막 거칠거나 그런 건 아니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힘으로  꾹 담은 민서의 입안을 헤쳐나갔다.

그렇게 민서가 민수를 좋아한 지 9년 만에 그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너무 행복했다. 그 뒤로 거의 민수네 오피스텔에서 살다시피 했다. 출퇴근도 같이 하고 여느 연인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혜주의 전화만 아니었다면.

민서랑 있으면서 민수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었다. 참으로 자상하고 멋있는 듬직한 남자친구였다. 나이에 비해 마음도 성숙했던 민수가 혜주의 전화를 받고 나서는  애처럼 좋아했다. 혼자 실실 웃지를 않나 흐트러짐이 없던 그가 차 키를 집에 둔 채 주차장으로 가지를 않나. 그렇게 흐트러지는 민수는 처음 보았다.

약속시간은 야속하게도  출근시간대로  잡았다. 민서가 갈 수 없게 일부러 그랬는지 모른다.

혜주랑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가끔 달에 한 번 정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고   민수를 만나고 있다는 말은 아직 하지 않아서 사실 무작정 같이 만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냥 시간이 그때밖에 안돼서 그때로 약속을 잡았겠거니 했다.

그날 밤 혜주를 만나고 돌아온 민수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도 답이 없던 민수였다. 다음날 출근인데도 침대에서 꿈쩍을 안 하는 민수를 왜 그러냐고 다그치니 그때에야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털어놓은 민수.

[뭐? 혜주가 너보고 주혁이 매니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기가 찼다. 아니, 그런 부탁을 한 혜주한테 기가 찬 게 아니라 분명히 번듯한 직장도 있고 더군다나 대기업 유일한 후계자라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혜주는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말한 적이 없어서 몰랐을 테고 또 관심도 없었을 테니…

[하겠다고 했다고 그래서? 민수 네가?]

민수는 대답 대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때 확실하게 느꼈다. 민수는 혜주를 잊고 지낸 게 아니라 혜주가 자기한테 연락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는걸.
민서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고 이미 커져버린 자신의 마음을 하나도 신경을 안 쓰는 민수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럼 지금 회사는, 그건 어떡할 건데.]

[아버지한테 얘기할 거야. 굳이 자리를 안 지키고 있어도 열심히 배울 거라고. 뒤처지지 않을 테니 열심히 할 거라고 하면 이해해 주실 거야.]

[뭐 하러 가냐고 물으면?]

민서의 질문에 민수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한마디를 했다.

[새로운 체험.]

담담한 눈빛으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뱉는 민수를 보면서 민서는 문득 그한테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권.

[안 가면 안 돼? 난 지금의 우리가 좋은데.]

민서의 간절한 바람이 섞인 말투와 흔들리는 눈빛을 마주하던 민수는 어느새 그의 팔뚝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가볍게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은 이미 끝났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열기를 뿜으면서 사랑을 속삭이던 민수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거 같았다.
아닌가, 원래의 민수로 돌아온 건가. 친구로 지낼 때도 민수는 항상 민서한테서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자리에 있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자리에서. 지금도 그랬다. 한발치 뒤로 물러선 그 자리.

[기어코 가야 한다면 나랑...  끝내.]

민서의 말은 민수한테도 살짝 의외였다. 자신을 절대 놓을 거 같지 않았던 민서의 입에서 먼저 끝내자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토끼처럼 동그랗던 눈이 가늘어지고 이슬 같은 눈물이 그 고운 눈에서 흘러내렸다.
민수도 알고 있다. 민서가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학생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걸.
항상 자신을 바라보던 눈이 얼마나 빛났는지 그때도 알았었다. 단지 민서의 그 눈빛을 받아줄 여력이 없었던 거지. 단 한 사람, 혜주 때문에.

[나 주혁이랑 사귀기로 했어. 우리 어제부로 1일. 오늘은 2일 차 커플이야.]

학교 앞 분식 집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상큼하게 웃으면서 내뱉은 혜주의 말이었다. 그 녀석의 입안에 떡볶이까지 넣어주며 애정 공세를 벌이고 있었다.
가슴이 뻐근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혜주가 그 녀석을 좋아하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사귀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 주혁은 그놈의 배우만 하고 싶어 했지 혜주한테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으니까. 그랬던 둘이 연애를 시작했단다. 원래도 붙어 다니던 둘은 연인이 되어 더 바짝 붙어 있었고 졸업하는 그날까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었다.

졸업하고 몇 번을 더 봤었나... 각자 자기의 새로운 삶에 바빠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더니 어느 날부턴가는 아예 연락이 끊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몇 개월 전 주혁이의 아빠 장례식 때 잠깐 만났었다. 민서도 그때 갔지만 힘들어하는 그 둘 앞에서 우린 그냥 위로의 말을 전하고 바로 나왔었다. 나중에 와주어서 고맙단 인사만 전화로 하고 끝이었다.
장례식에서도 힘들어하는 주혁의 옆에서 한 몸인 것 마냥 떨어지지 않고 보다듬어주는 혜주를 보니 이제 마음을 확실히  접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쉬울 거라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혜주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 주위에서 맴맴 도는 민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일 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자기 속을 숨기지 못한 채 민수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민서를 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혜주랑 다르지만 또 비슷한 구석이 있는 민서한테 마음을 주기로 했다. 그래서 몇 년째 자신을 좋아하는 민서를 만나면서 혜주는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나름 민서랑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지낸지 2개월 정도 되었나.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에 거대한 해양의 파도를 일으킨 건 혜주의 만나자는 전화 한 통이었다.

민수는 아직도 그녀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자기 앞에서 슬프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민서의 마음을 헤아릴 얄팍한 동정심마저 없었다.

[민서 네가 끝내도 괜찮다면 그렇게 해.]

나름 배려가 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이 먼저 민서를 버리지 않았다는 책임감을 회피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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