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9회)

죽으나사나 | 2023.12.19 08:24:31 댓글: 1 조회: 378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1152
*따스한 봄날이 올까
(9회). 유나.

“나 이 동네가 너무 좋아. 조용한 데 있을 건 다 있어서 말이야. 서울엔 이런 곳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잖아. 인프라가 잘 되어 있으면 사람 많고 복잡하고~“

태만이가 중얼거린다.

”그건 그렇긴 한데 조용한 건 지방이 그래도 더 좋지~”

송 매니저가 술을 비우면서 한마디를 한다.

“그래요? 난 서울 토박이라 지방은 잘 몰라서요. 매니저님은 광주 쪽이라고 하셨나요?“

”응. 그렇지. 지방이 더 인정이 많고 맘이 편하긴 해. 다만 일자리가 많지 않지. 서울보다. ”

“그렇구나~ 다들 고향이 어딘지는 알고 , 유나씨는 고향이 어디예요? 서울이에요?”

태만이가 술잔을 비우고 있는 유나한테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을 껌뻑이던 유나가 대답했다. 

“고향이… 어디라고 해야 하지? 어릴 때는 서울 쪽에 살긴 했었거든요.”

“서울 어디에 살았는지는 기억나요? 난 쭉 도원동에 살아서…”

“저도 거기였는데….”

“띠리리리링….”

이때 도진의 전화벨이 울리고 휴대폰 화면엔 ‘정 실장’  이라는 이름이 떴다. 도진이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도원동에 살았다고요? 와. 고향 사람이네.“

태만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릴 때 산 거라 …”

“도원동 어디쯤에 살았는데요? 나 어릴 때 꽤 인싸라 도원동에 아는 친구들 많았는데.”

“ 근데 저는 아주 어릴 때 다른 데로 이사 간 거라… 음… 흥안 슈퍼라고 알아요? 거기서 쭉 위로 가면 언덕이 있는데 그쪽에 살았어요.”

“흥안 슈퍼 알죠. 그 근처에 살진 않았지만 되게 오래된 슈퍼잖아요. 근데 그 슈퍼 쪽 언덕이라면 거긴 주택이 별로 없는데…? 내 기억으로는 이미 폐업한 보육원밖에 없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건가.”

“보육원 맞아요.”

유나의 말에 떠들썩 하던 자리가 조용해졌다.

“아… 내가 실수한…건가?”

태만이도 조심스레 유나의 눈치를 살폈다. 이목이 집중되자 유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실수는 뭘요. 어릴 때 거기서 좀 살았었지만 좋은 부모님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는데요 뭘,“

”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치? 하하. 하하하…“

태만이는 또 호들갑을 떨었고 또 유나의 대수롭지 않아 하는 말투에  정적이 흐르던 분위기가 다시 좋아졌다.

“그래. 좋은 부모님 만났으면 되었지.”

송 매니저도 한 술 떴다.

유나는 그런 동료들을 보고 웃으면서 술을 또 들이켰다

행복했었지…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유나는 술처럼 쓴 자기 마음을 들키지 싫어서 다시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한편, 밖으로 나간 도진은 정 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보육원 원장님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꽤 오래전에 지인 보증을 섰었는데 그게 잘못되고 나서 사채 빚도 생기고 보육원 자리를 뺏겨서 멀리 이사를 갔었더라고요. 그래서 찾는데 좀 애를 먹었고요. 겨우 연락이 닿은 원장님 자녀분이랑 내일 오후 만나기로 했어요.“

”내일 저도 같이 가요. “

지아에 대해서 직접 듣고 싶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들 술을 많이 마신 상황이라 이제 마무리를 짓거나 2차로 움직여야 할 때였다.

"우리 저번처럼 2차로 레스토랑으로 돌아가서 와인 좀 마셔볼까? 사장님도 회식 때 가능하다고 허락하신 거잖아. 난 우리 레스토랑 와인이 그렇게 맛있더라~ 중요한 건 그 비싼 걸 이때 아니면 언제 마시냐는 거~"

"아, 난 이제 안돼요."

"아 왜~ 내일 가게 문도 닫는데 끝까지 달리자고~"

나리의 거부를 신경도 안 쓴 채 태만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레스토랑 방향으로 끌어갔다.

"아, 안되는데. 나 내일 약속 있단 말이에요~~"

"가자 가자~!"

나리는 입으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어느새 레스토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하.. 쟤네 뭐야. 저러다 사귀겠다."

"그러 게요."

조길과 송 매니저가 웃으면서 뒤따라 갔다.

"유나야. 너도 2차 갈 거... 맞다. 넌 거기서 사니까 강제로 2차 가는 거네?"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던 유나한테 석호가 바싹 붙었다.

"아... 응. 그렇지. 하하..."

이미 평소 주량을 넘은 유나가 기분이 많이 업 된 듯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미 많이 마신 석호도 알아차릴 정도까진 아니었다.

"유나 너는 남자친구 있어?"

"나? 집까지 뛰쳐나왔는데 있겠어? 있으면 그 집에 눌러 살지."

"아~ 그런가? 하하 하하..."

"헤헤..."

둘은 화기애애했고 앞서 걷던 도진은 대화 내용은 못 듣고 그런 둘을 뒤돌아 보았다.

**

"와...나 더 이상 마시면 안 돼. 이제 갈게. 모두들 휴일 잘 보내시고요. 저 먼저 갑니다~"

레스토랑에서 어느 정도 마시고 난 지금 나리는 질긴 태만이한테 또 잡힐 세라 그가 화장실로 간 사이 급히 가방을 챙기고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

"아, 나도 가야겠다. 사장님. 저도 갈게요. 언니. 같이 가요~"

도진이가 인사할 새도 없이 유나도 바로 뒤쫓아 나갔다.

아까 송 매니저랑 조길은 와인은 도저히 안 맞다면서 따로 2차를 가버렸고 현재 남은 사람은 석호랑 태만이랑 유나, 그리고 도진이가 남았다.

"모야... 그 새 다 튄 거야?"

화장실 다녀온 태만이가 투덜대면서 휴대폰을 집었다.

"나도 이만 가야겠네. 사장님.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유나 씨도 모레 봐요. 아, 얘는 여기서 뭐하냐~"

혀 꼬인 소리를 하면서 가려 던 태만이가 테이블에서 이미 엎드려 자고 있는 석호를 발견하고 깨운다.

"어이 어이~ 석호야, 그만 자고 이제 가자. 너 여기서 자면 안 되지."

"아... 몰라요. 힘들단 말이에요. 저 여기서 그냥 자면 안 돼요?"

석호는 깨운 게 귀찮다는 듯 못 간다고 앙탈을 부렸다.

"어허, 이놈 봐라. 여기 지금 유나 씨가 살고 있잖아. 남자인 네가 오늘 자고 간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어. 그만하고 나랑 가자."

혀는 꼬여도 어느 정도 정신은 있나 보다. 가기 싫다는 석호를 잡아당겨서 태만은 같이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유나랑 도진이뿐.

처음부터 얼마 안 마셨던 도진의 시선은 유일하게 남은 유나한테로 시선이 갔다.

유나도 소주에 와인까지 갈아타니 이제 맛이 갈대로 간 상태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유나를 바라보던 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남은 안주들을 정리하려고 했다.

“아. 뭐 하시는 거예요!”

조는 것 같던 유나가 대뜸 화를 내면서 도진의 손을 잡았다.

“아직 다 못 먹었단 말이에요~”

“쿵-!”

그러고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기절한 유나를 보고 도진은 깜짝 놀랐다가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설마… 또 업고 올라가야 되는 거야?

도진은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머리를 절레절레 젓다가 유나의 어깨를 살짝 툭 건드렸다. 

“유나 씨! 정신 차리고 잠은 2층에 올라가서 자요. 여긴 내가 정리할 테니까.”

“네? … 아 , 다들 집에 간 거예요? 에이… 난 아직 모자라는데…”

도진의 부름에 갑자기 머리를 번쩍 든  유나는 모두가 가고 없는 테이블을 두리번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어…?”

“쿵—“

”아!….“

‘아, 내 머리….’

유나는 술기운에 자기 몸을 못 가눈 채 휘청거렸고, 그런 유나를 잡으려다가 중심을 잃은 도진이도 같이 뒤로 자빠졌다. 

“유나 씨, 유나 씨 괜찮아요?”

아픈 뒷머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도진은 유나를 불렀다. 유나는 대답이 없었지만  다치지는 않았을 거다. 딱딱한 바닥을 그대로 드러누운 거는 도진이였고 도진을 침대 삼아 그 위로 같이 넘어졌으니…

“유나 씨. 정신 좀 차려요.”

도진은 바로 일어나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을 빼고 자기 위에 자빠진 성인 여자를 쉽게 밀쳐내긴 어려웠다. 

“음…”

유나는 진짜 도진이를 침대로 생각했는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막 비비고 있었다. 

“유나 씨. 일어…”

“네…? 뭐라고요?”

유나가 뭐에 놀란 듯 갑자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시선은 이 상황을 무척이나 난처해하는 도진이랑 마주쳤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유나 때문에 도진은 시선을 대체 어디에 둬야 할지를 몰랐다. 

정유나는 정말 하얀 피부를 가졌고 눈이 참 많이 까맣고 동글동글했었구나… 코는 오똑하고… 입술은, 입술은…

“…”

그렇게 몇 초간 정적이 흘렀고 유나는 대뜸 생각에 잠긴 도진의 양볼을 세게 꼬집었다. 

“아앗. 뭐, 뭐 하는 거예요!”

도진은 아파서 소리 질렀고 그런 모습이 재밌는지 유나는 실실 웃었다. 

“헤헤… 사장님 이러니까 드디어 못 생겨졌다. 볼 때마다  그 얼굴은 대체 어떻게 하면 못생겨 질까 생각했었는데 … 크흐. 못생겨졌네. ”

약간 실성한 여자 같았다. 도진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유나를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유나의 손이 도진의 눈과 눈 사이 미간으로 향했다. 습관처럼 약간 찌푸린 미간 주름을 꾹 누르며 유나는 취중 고백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여긴 맨날 이렇게 주름이 가네. 무슨 고민거리가 그렇게 많길래… 내 손으로 확 펴주고 싶다. 확 펴져라. 주름아~~~!”

“찰싹, 찰싹.”

“아!!”

유나는 도진이가 아프든  말든 미간 주름을 펴준답시고 손바닥으로 그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도준은 아파서 외마디 소리를 쳤고 유나는 씨익 웃더니 다시 머리를 도진의 가슴에 틀어박아 버렸다.
"지이이잉~"
어디서 전화가 왔나?
도진이는 어디에서 느껴지는 진동 소리에 찾으려고 일어나려다가 갑자기 또 머리를 번쩍 들어 올린 유나의 이마에 드리 박고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아..."
"…어~ 누구세요~~"
유나는 희한하게도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술에 취했어도 기계처럼 폰을 받는다. 
"누나. 요즘 어디에 있는 거야?"
도진이랑 너무 가깝게 있는 자세라...
전화기 너머엔 어디선가 들어 봤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요즘 일하는데? 왜애애~~."
갑자기 앙탈을 부리는듯한 유나의 목소리에 도진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유나씨. 제발 좀 일어나서..."
"울 사랑하는 혁아~ 누나 보고 싶었쪄~?"
도진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전화기에 대고 애교까지 부리는 유나.
도진은 기가 차서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았다.
"어디 나가서 놀 생각만 말고 공부 열심히 해. 짜샤~ 누나가 너만 바라보고 있는 거 알쥐~??"
"알았어. 누나가 요즘 조용하길래 뭐하나 해서 전화해 봤어. 밤이 늦었으니 일찍 자."
"어~~ 아이 러 뷰~ 혁아~ 쪽~"
통화가 끝나고 다시 머리를 틀어박고 잠을 취하려는 유나다.
아니,
그 쪽 아래에 있는 게 사람이라고요. 침대 아니고요.
꼭 이런 자세로 있으면서 통화를 해야겠냐고요.
"애인 있으면 애인한테나 갈 거지, 왜 집을 나와서 맨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거야. 사람 신경 쓰이게..."
머릿속으로 생각 한다는 게 그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었고 도진은 유나가 들을까 봐 자기 입을 막았다. 그러나 유나는 도진이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애인은 무슨... 혁이가 무슨 애인이야... 내 가족인데… 나도 애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아~~~"
"드, 들었어요?"
당황한 도진이가 놀라서 말조차 버벅거렸고 반응이 없는 유나는 또다시 숨소리가 쌕쌕 거리는 것이 아마 잠든 거 같았다. 

놀란 가슴 추스르며 그렇게 가만히 진정하고 있어보니 그녀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당황해서인지, 아니면 남자도 아닌 여자랑 요상한 자세로 있어서 그런지 심장 뛰는 속도가 달라진 도진에 비해 유나의 심박수는 일정하고 고요했다. 

술 주정 한 번 요란하게 하네.

하… 
근데... 금방 뭐라고? 동생이라고? 그럼 그때...
편의점 앞에서 일부러 시비를 걸었던 게... 동생이었어?...
아...

그랬구나. 

이대로 더 있었다간 안될 거 같아서 도진은 힘을 한 번 더 크게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한번 유나를 업고 침대에까지 눕히고 나서 도진은 레스토랑으로 빠져나왔다. 

불이 꺼진 2층을 올려다보면서 술에 취한 유나의 말이 생각 난 도진은 피식  웃었다. 

[… 볼 때 마다 그 얼굴은 대체 어떻게 하면 못 생겨질까 생각했었는데…]
왠지 기분이 무척 좋아진 도진이다.
추천 (2) 선물 (0명)
IP: ♡.214.♡.18
Figaro (♡.136.♡.174) - 2024/01/07 13:48:12

아주 그냥 순정만화네요.재밌어요.평소보다 쉬는날이라 그런지 몰입이 되고 잘 읽혀지네요.
만화를 보듯 드라마를 보듯 푹빠져 재밌게 잘 봤어요.여자의 주태,술내가 막 진동하는것 같아 따라 취하는거 같아요.
마지막장면은 진짜.이녀석이 진짜 너무 멋진척 하는거 아냐 하며 봤어요ㅋ 그랬어요 재밌어요.잘봣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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