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10회)

죽으나사나 | 2023.12.20 02:46:03 댓글: 0 조회: 286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1658
따스한 봄날이 올까 (10회) 모두의 바람.
다음날 오후.

”…이 분이 저희 의뢰인인데 이지아 라는 동생을 찾고 있거든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성남의 어느 아파트에 들어 가게 된 정실장과 도진이. 그 집엔 보육원 원장님은 없었고 원장님 딸만이 있었다.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도움이 많이 될듯 한데 어쩌죠…? 사채 빚에 시달리면서 몇년 간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저번 달에 돌아가셨어요. 아직 엄마 유품 정리를 제대로 못했긴 했는데 어제 좀 찾아봤어요. 다는 아닌거 같고 21년전쯤으로 보이는 보육원 입소 기록부요. 여기요. “

가족을 보낸 지 얼마 안 된 원장님 딸은 얼굴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지만 애써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도진은 그녀한테서 기록부를 받았고 한장 한장 펼쳐 보았다. 그러다 몇번째 인지 거기서 이지아의 이름을 발견했다. 도진의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사진이 많이 작으면서 흐릿했고 마지막 그 애와 헤어질 때랑 옷차림이나 머리 길이가 바뀌었지만, 동생 지아가 맞는 거 같았다. 아니, 맞을 거라 확신을 했다.

“지아야…”

“저희 엄마가 보육원 자리를 뺏기고 애들을 뿔뿔 이 다른 곳으로 보내면서 많이 아파하셨어요. 이렇게 가족이 찾아 오기도 하는 걸 생전에 보셨으면 많이 기뻐하셨을 거 같아요. 제가 다 고맙습니다. ”

원장님 딸은 보육원 원장님 대신 고마워했다. 고마운 건 도진이가 더 고마웠을 테지만.

아파트에서 나온 정실장이 지아의 기록부를 받아 가면서 도진이한테 말한다.

“사장님. 이걸 토대로 열심히 마저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자책을 그만하고 두 다리 쭉 뻗고 주무셔도 될 거 같습니다.”

“제가 실장님한테 신세가 많아요. 감사해요. ”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정 실장은 도진의 인사에 말 대신 눈 인사를 살짝 건네고 자리를 먼저 떴다.

도진이도 그런 정 실장을 바라보다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진짜 끝을 향해 가는 건가.
지아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 다른 무엇도 필요 없을 거 같아.

도진은 지아를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하면서 한편 지아가 자기를 잃어버린 오빠를 받아줄지 걱정되기도 하였다.

어찌 되었던 잘 살고 있던, 못 살고 있던 지아는 내 동생이고 남은 생은 그때의 큰 잘못을 만회하여 지아한테 다 보상해 주고 싶었다. 제발 이 모든 게 늦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도진은 이 기분 좋은 날 술이 갑자기 생각났다. 지아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 잔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주방에서 컵을 찾아 두리번대고 있는데 2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제야 2층에 유나가 살고 있다는 게 생각난 도진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왜 이 중요한 걸 까먹었지.'
도진은 쉬고 있는 유나가 방해될까 봐 조용히 나가려고 홀로 나왔다.
"어? 사장님?"
들켰다.
"아... 그게, 유나 씨가 있다는 걸 깜빡하고 문 닫은 시간이라 왔네요. 금방 갈게요."
도진은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한잔하러 오신 거예요?"
"아... 음... 네."
도둑고양이가 된 듯 도진이가 머뭇거렸다.
"그럼 여기서 마셔요. 근데 혼자 마시 게요?"
'혼자?'
"끼익-"
레스토랑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도진은 아까부터 뭔가 중요한 걸 잊은 게 있다고 생각 했는데 이제 생각 났다.
상준을 여기에 불렀다...
"어...누구...?"
망했다... 저 자식이 무슨 말을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
"아~ 여기 다시 들어온 직원분이시구나~"
어쩌다 보니 셋은 한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상준은 도진과 유나를 번갈아 보면서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 끄덕하였다.
"이야. 어쨌든 인연이 깊네. 나가고서 다시 마주치기 쉽지 가 않은데. 이 동네에 다시 오게 된 건 뭐 지인 때문?"
"그게..."
"상준아. 너 내일 일찍 회사 나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제 갈 시간 안 됐어?"
도진은 유나한테 자꾸 질문하는 상준이가 실수라도 할까 봐 집에 그냥 보내고 싶었다.
"아까 회사에 연락했어. 내일 회의 참석 못 한다고. 알았다던데? 야,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냐. 친구가 그렇게 오매불망 찾던 동생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잠깐 엉덩이를 붙이고 가냐. 아니에요?"
끝 질문은 또 유나한테로 향하는 상준이.
이 정도면 이 자식... 일부러 도진이를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거 같다.
난 왜 여기 있다는 걸 잊고선...
"동생을 찾다니요?"
유나는 도진의 동생에 대해 처음 듣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음... 자세한 건 좀 그렇고 얘가 어릴 때 헤어졌던 동생이 있는데 3년이나 찾았거든요? 근데 이제 찾을 수 있대요. 희망이 생긴 거죠."
"아아~... 다행이네요. 축하해요. 사장님."
도진은 유나의 축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동생의 일은 유나한테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모르겠다. 마음이 그랬다.
"저 유나 씨, 혹시 남자친구는 있어요?"
상준이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하려고 발동을 걸자 도진은 입술을 꽉 깨물고 하지 말라는 시늉으로 그의 팔을 꽉- 잡았다. 상준은 아팠을 텐데 신음 소리 한번 안 내고 꾹 참은 채 앉아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없으면 왜요? 소개해 주게요?"
유나가 반문했다.
"오호~ 그러시구나~. 없으시구나~. 없으시면 이제 찾아야겠네. 당연 필요하면 내가 소개해 줘도 되고."
상준은 도진을 또 힐끗 쳐다본다. 더 이상 있으면 안 되겠다 싶은 도준이는 벌떡 일어났다.
"오늘 술이 좀 안 당기네. 상준아, 너 이제 집에 가자. 내가 너 대리 부르는 동안 같이 있어줄게. 나가자."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는 유나를 뒤로하고 상준을 급히 끌고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다.
상준은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있는 도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한 마디를 던졌다.
"이제 동생의 그늘에서 벗어나. 찾을 수 있을 거 같다며. 너 전에도 한 여자만 만나고 끝났었고, 기억을 찾고 나서는 동생 찾는 데에 반쯤 미쳐서 자기 자신은 신경도 안 쓰고 살았잖아. 느낌이 올 때 누구든 만나라도 봐. 꼭 뭐 결혼하라는 게 아니잖아. 난 네가 행복 했으면 좋겠다."
상준의 진심 어린 말에 도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상준이도 도진이한테 바라는 건 하나인 걸 안다.
"근데, 이제 그 애가 올 때가 지나지 않았냐? 올해는 안 올려고 그러나?"
상준은 뭔가 생각이 났는지 생각에 잠긴 도진한테 질문하다 혼자 중얼거렸다.
다음날,
레스토랑의 문이 열렸고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직원들도 다 도착했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픈 준비를 하고 있고 도진은 사장실에서 매출 관리 장부를 보고 있었다.
"똑똑."
"네."
노크 소리와 함께 송 매니저가 들어왔다.
"사장님, 저번 회식 때 식자재를 많이 써버렸나 봐요. 주방장님께서 모자라는 게 많다는데요. 원래는 제가 가야 하는데 지금 준비해야 될게 많아서 유나 씨를 보내고 싶은데 혼자는 좀 그래서 사장님이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알겠어요. 제가 가도록 할게요.”

“네. 사장님. ”

그렇게 되어서 도진은 유나는 서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같이 시장으로 향하는 길이였다.

[… 볼 때 마다 그 얼굴은 대체 어떻게 하면 못 생겨질까 생각했었는데…]

단둘이 있으니 또 유나가 술에 취해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뭐 얼굴 잘 생겼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 보았는데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리고…

넘어져 도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자던 유나 때문에 심박수가 힘차게 올라간 것도 떠올랐다.

“후…”

도진은 그날이 생각나서인지 조금씩 막혀 버리는 가슴에 숨을 고를 겸,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민거리가 있어요?”

“네? 아니요.”

“그날 회식 때 말인데요.”

“…왜요?“

”… 아, 아니에요. 제가 이상한 꿈을 꾼 거 같아서요.“

”어떤 꿈이요?“

”그게…“

유나는 말하려다가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아니에요. 꿈이니까.“

’혹시… 그날 일이 생각난 건가?‘

도진은 유나를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유나 씨. 그날 레스토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무, 무슨 일이요?“

유나가 당황해서 키 큰 도진을 놀랜 토끼처럼 올려다 봤다.

‘아, 꿈인지 아닌지 지금 헷갈리는 단계구나.’

도진은 유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놀리고 싶다.

”무슨…일이 있었나요?“

대답 없는 도진에 애가 탄 유나가 다시 묻는다.

“뭐,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아… 그렇구나. 다행히…”

“뭐라고요?”

“아, 아니에요.”

결정타를 줘야 하겠네.

“편의점에서 봤던 그 남자, 남자친구인 줄 알았는데 동생이라면서요?”

“…!”

도진은 씨익 웃으면서 유나의 반응을 살폈고 유나는 그제야 꿈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는 얼굴이 빨개서 앞으로 급하게 걸어갔다.

“어, 직진 말고 오른쪽이요!”

도진의 외침에 뒷모습으로 본 유나는 멈칫하더니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서 급하게 걸어갔다.

도진은 그런 유나가 귀엽게 느껴졌다.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유나씨! 길 모르잖아요. 같이 가요!”

**

시장에서 식사재를 사는데 유나는 가격을 엄청 열심히 깎는다. 자주 오는 시장이라 굳이 안 깎아도 다들 가격을 내려서 주는 건데 말이다.

“사장님. 요 양파 두 개만 더 얹어주면 안 돼요?”

“아유~ 뭔 이런 똑순이 직원이 들어왔대~? 레스토랑 사장님 좋으시겠네. 원가 절약해 주는 직원도 생기고. ”
도진은 약간 창피함에 뭐라 말은 못 하고 급히 돈을 지불하고 양파를 하나 더 집어서 주머니에 넣는 유나를 끌고 그 가게에서 나왔다.

“아, 왜요~. 하나를 더 넣어야 되는데.”

유나는 양파를 더 못 넣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면서 투덜거렸다.

“그걸 뭘 굳이 더 넣으려고 그래요?”

“ 아니, 가격은 못 깎아 준다고 하니까…“

”지금 그 뜻이 아니잖아요.“

”네에… 근데, 손은 언제 놓을 거에요?“

아.

그제야 급히 나오느라 누가 도망칠세라, 꼭 잡았던 유나의 손을 놓는 도진이. 당황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유나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고 도진이도 유나를 마주 보고 피식 웃었다.

”아니, 무슨 얼굴이 17살 고등학생처럼 그렇게 빨리 빨개져요? 30대 맞아요? 듣기론 34살이라는 거 같던데.“

”그러는 유나 씨는 아까 왜 그렇게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개져 갖고 도망갔는데요? 길도 모르면서.“

”그건…!“

도진의 반박에 유나는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됐어요. 그럼. 우리 둘 다 창피한 게 있었으니 그걸로 퉁치죠.“

”뭘 퉁 쳐요?“

”아, 그날, 그 꼬집은 거요!“

유나는 눈을 찔끔 감고 거의 소리 지르듯이 뱉었다.

근데… 뭐라고 하고도 남을 도진이의 말이 안 들린다.

이상함에 유나는 감았던 한쪽 눈을 천천히 떠 보았다.

”… 헙!“

숨을 들이켰다.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에, 상대방의 모공이 다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도진이가 유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글쎄 저 얼굴에는 자기 육안으로 보이는 모공 따위는 없지만. 그렇게 유나의 눈을 몇 초 빤히 쳐다보던 도진이가 몸을 뒤로 빼더니 유나 손에 들려있는 작은 장바구니까지 뺏어서 앞장서서 걸어갔다.

”뭐, 얼굴 쉽게 빨개지는 건 자기도 비슷하면서.”

유나한테 다 들리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치. 깜짝 놀랐네.“

뒤늦게 숨이 트인 유나는 자기한테 장난을 친 도진을 노려 보더니 그가 점점 멀어져 가자 헐레벌떡 뛰어 갔다.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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