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15회)

죽으나사나 | 2023.12.22 10:53:42 댓글: 0 조회: 325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2784
따스한 봄날이 올까
(15회) 널 좋아해.

“화영 씨,”

아까 갑자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던 도진이가 주문을 한 음식을 테이블로 나르던 화영을 불렀다. 화영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받아 가면서 한 손으로는 그녀한테 검정 비닐 주머니를 쥐여 주었다.

“이게 뭐예요?”

“몸살 약인데 유나 씨한테 갖다주세요. 약도 없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이 말은 해야 할지 머뭇 거리던 도진이가 다시 입을 연다.

“약은 화영 씨가 갖고 있던 거라고 하세요.”

도진의 알 수 없는 뒷말에 화영은 눈만 껌뻑껌뻑 하다가 약을 받아 쥐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갖다 줄게요. 이거 4번 테이블이에요~”

유나는 곧바로 2층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똑똑.“

”언니. 자요? 나 화영인데 잠깐만 들어갈게요~“

”네에…“

화영은 노크를 하고는 문을 빼꼼 열어서 유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 약은 먹었어요?“

화영이는 누워서 힘들어하는 유나의 침대 끝자락에 앉았다.

“안 먹었죠? 물 여기 있어요. 이거 지금 먹고 한잠 푹 자요.”

화영은 부스럭거리면서 도진이가 준 약을 꺼내 들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산 거예요?”

유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게… 사실은 사장님이 저보고 갖다주라고 했는데… 왜 내가 갖고 있은 걸로 하라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바로 진실을 말하라고 전한 말은 아닐텐데 화영은 그대로 술술 불었다.

“…”

유나가 말이 없자 화영은 약과 물을 건네주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금 홀에 손님들 계셔서 저 내려갈게요. 약 꼭 먹고 내일은 나아야 돼요. 알았죠?“

”아… 고마워요. 화영 씨. “

나가려던 화영이는 유나의 인사말에 고개만 돌리고 한마디를 하고는 나가버렸다.

”음… 인사는 나중에 사장님한테 해도 될 거 같아요. “

유나는 손에 쥐어 든 약과 물을 몇초 응시 하더니 꿀꺽 삼켜버렸다.

[도진 선배가 요즘 유나 씨한테 꽤 친절하고 잘해 주고 그러죠? 그게 다 유나 씨가 입양아라고….]

아픈 몸보다 자꾸 어제 다미의 말이 생각나서 마음이 더 괴로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이이잉…”

약을 먹어서 그런지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는데 갑자기 느껴지는 진동 소리에 눈을 뜬 유나. 휴대폰 화면에는 혁이한테서 온 전화였다. 

“응. 혁아. 왜…?”

“누나!”

받자마자 혁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래, 혁아?”

유나는 안 좋은 예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가 쓰러졌었대. 병원에서 연락 왔는데 지금 대병원으로 가고 있거든?  누나도 거기로 와.”

“뭐??!!”

안돼…

유나는 더 지체할 것 없이 자리에서 부랴부랴 일어나 대충 가방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쿵—”

“아!…”

너무 급하게 계단을 내려와서 그런지 발이 꼬이면서 유나는 계단에서 큰 소리와 함께 그대로 넘어졌다. 

“아…”

신음 소리와 함께 머리를 숙인 채 급한 마음에 아픔을 무릅쓰고 일어서는데 누군가의 손길이 다가왔다. 

“괜찮아요? 왜 이렇게 급히…“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많이 아팠을까,
아니면 엄마 때문일까 …
고개를 든 유나의 얼굴에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 유나 씨."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하는 도진의 손을 와락 잡은 유나가 울먹이면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 죄송한데 .... 대병원으로 좀..."
도진은 왜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유나의 말에 서둘러 차 키를 챙기러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유나는 도진의 부축하에  차를 타고 급히 사라져갔다.
"갑자기 왜 저러지?"
그걸 지켜본 화영이가 중얼거렸다.
"왜 무슨 일이 있어요?"
금방 가게로 왔다가 화장실을 먼저 다녀온 다미가 화영이한테 물어본다.
"아... 금방 유나 언니랑 사장님이 급하게 어딘가로 갔는데 유나 언니가 우는 거 같았어요."
"운다고?"
다미는 별안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차를 운전하면서 도진은  조수석에서  심하게 부들부들 떨면서 불안해하는 유나를 걱정스레 가끔씩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유나 씨. 저한테 말해 줄 수 있어요?"
도진의 말에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려고 한숨을 천천히 내쉬던 유나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엄마가 쓰러지셨대요. 엄마가... 심장이... 많이 안 좋으시거든요. 내가 옆에 있어 줘야 하는 건데... 그런 건데... 흑... 흑..."
말하면서 유나의 감정은 격해져서 어깨를 심하게 들썩였다.
자신의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만 있는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던 도진은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도진의 온기에 조금은 위로라도 되는지 심하게  부들부들 떨고 있던 유나도 조금씩 조금씩 옅은 떨림만 남았다.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게 둘은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병원에 도착했고 유나는 정신없이 응급실부터 뛰어갔다.
" 쓰러져서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 있을까요? 이름은 장희애고요. 1958년생이에요."
유나는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 한 명을 급하게 붙들고 엄마를 찾아달라고 했다.
"누구요? 장희애 환자분이요?"
간호사가 가던 발길을 멈춰서 재차 확인을 한다.
"네!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저희 엄마인데 괜찮은 건가요?"
"그분은 아까 집에 가신다고 갔는데요."
"...네??!"
**
반쯤 정신 나간 얼굴로 유나는 병원 앞 비치되어 있는 벤치에 털썩 앉았다.
도진은 옆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아까 유나랑 혁이의 통화를 듣고는 대체 자신이 뭐라고 위안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뭐? 너 지금 그게 말이라고...!]
[미안해, 누나. 나도 집에 간다는 엄마를 말리느라 누나한테 전화할 겨를이 없었어. 지금은 그래도 방에서 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미안해, 누나. 나 다시 전화할게.]
[그래도 아픈 사람을 데리고 그렇게 가면 어떻게 해!!!]
유나는  넋을 잃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입가에 서늘하고 쓸쓸한 미소가 번졌다. 

“하… 하하… ”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실실 쪼개기까지 한다. 

“웃기지 않아요? 딸이 그렇게 엄마를 위해 별 짓을 다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끝까지 딸을 실망시키는 거. 우리 엄만… 내 피를 말려 죽일 셈이에요. 내가 죽는다 해도 잘 죽었다 할 사람일걸요…“

”무슨 말을 그렇게…“

”뭘 그렇게 말하냐고요? 오늘도 봐요. 분명히 내가 미칠 걸 알면서 내가 꼴 보기 싫어서 도착도 하기 전에 죽어라 도망갔어요. 미쳤어… 이건 미친 짓이야. 진짜 미쳤어…“

유나의 눈물샘이 뚫리기라도 한 듯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가슴이 조여와 끼어끼어 쉰 소리도 낸다. 

”진짜 우리 엄마 너무 싫어요. 아빠가 그렇게 간 게 어떻게 모두 내 탓이냐고요!! 나도 아빠를 잃은, 가족을 잃은 피해자였다고요…흐윽…“

누구한테 울부 짖는지 유나는 알 수 없는 말을 혼잣말로 그냥 쏟아 부었다. 

아픈 가슴을 막 쥐어뜯고 있는 유나를 도진은 한참이나 말이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기는 도진이도 마찬가지였다. 

… 이 여자가 무너졌다. 

그렇게 밝고 당당하던 여자가 무너진 걸 보니 어떻게 대응을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죽었어야 했어요. 내가…!“

”정유나!“

도진은 참다 참다 자책하는 유나를 확 끌어안았다. 유나가 누군가에 기대를 할수 있다면 지금 그 사람이 도진이 자신이었으면  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잘은 몰라도 지금은 네 탓을 할 때가 아닌 거 같아. 넌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마.“

정신없이 하소연하고 떨던 유나의 몸이 도진의 긍정 어린 위로에 차차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있었다. 


”진정이… 좀 되었어?“

흥분했던 유나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도진은 꼭 감쌌던 그녀의 몸을 살포시 풀어서 묻는다. 

“정유나…?”

반응이 없는 유나는 식은땀을 많이 흘리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유나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대보던 도진이는  깜짝 놀라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해열제랑 링거 맞고 있으니까 괜찮아질 거예요.”

간호사가 유나를 살피더니 도진한테 상태를 전달하고 다른 환자를 보러 갔다. 

도진은 약간의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아직 정신이 안 돌아온 유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는데… 아프지 마. 아프면…”

내 마음이 이상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나 좀 신경 안 쓰이게 하라고. 정유나.“

”으음…“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도진의 말이 들리기라도 한 듯 유나의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면서  옅은 신음 소리를 낸다. 

”유나?“

유나가 눈을 천천히 힘없이 떴다. 그녀의 시야에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이마가 거의 맞닿을뻔한 도진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아..!“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도진이의 이마를 박은 유나가 외마디 소리와 함께 아픈 이마를 감쌌다. 

”아니, 왜 이렇게 얼굴을 코앞에 대고선… 깜짝 놀랐잖아요!“

아픈 사람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유나의 짜증 내는 목소리가 확 커졌다.

3초간은 어이가 없어서 물끄러미 유나를 쳐다보던 도진이가  픽-하고 웃었다.

아까는 괴로움에 미쳐가다가, 또 힘들어서 죽어가는 거  같았던 유나가 그한테 인상을 쓰면서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걸 보고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웃어요, 지금?”

“응. 살아나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

짜증이 난 유나를 개의치 않아 하는 도진을 노려보던 그녀는 다시 침대에 털썩 누워 버렸다. 

“왜? 정유나. 어지러워?”

도진이가 또 호들갑을 떨면서 일어서자 유나는 그한테 등을 돌린 채 이불을 머리까지 쏙 뒤집어썼다. 

그 모습에 도진은 옅은 미소를 띠며 밖으로 잠깐 나가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등 뒤에는 유나의 나지 막지만 또렷한 인사말이 전해왔다. 

병원 옥상으로 올라온 도진은 시끄러운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옥상의 공기가 탁 틔여서 그런지, 
그는 얼마 전까지 혼란스러웠고 답답했던 마음이 지금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불현듯 편의점에서 처음 만났던 유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마워요. 제가 살게요. 얼맙니까?]
[ 아, 아니에요! 이건 제가 먹으려고 산 게 아니라 여기 찾아오시는 분들한테 필요하시면 드리는 거예요!]
유나가 눈에 들어오고 신경 쓰이기 시작한 편의점,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작은 얼굴, 하얀 피부에 까만 눈동자… 도진을 보고 너무나도 밝게 활짝 웃던 그녀한테서 마치 한줄기 희망의 빛이 드리운 거 같았다. 
도진은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 
자신이 생각해도 우습지만 첫눈에 알아보았다.
여기서 피하지 않으면 도진한테 큰 파장을 일으킬 여자라는걸.
힘들게 홀로 걷고 있던 사막에서 만난 유일한 오아시스 같은 여자였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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