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전 2

단밤이 | 2023.12.25 09:24:04 댓글: 4 조회: 435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3735
화랑전 2




"지화랑, 너 여기서 뭐해?"

화랑은 강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나타난 서연을 보던 화랑은 빠르게 멀어져가는 어떤 기억을 쫓으려다가 포기했다.

"뭐지? 꿈을 꾼건가?"

서연은 아직도 어딘가 멍한 시선으로 중얼거리는 화랑을 재촉했다.

"무슨 꿈? 다음 수업 늦겠다 빨리 가자."

"알았어."

화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연의 뒤를 따라나섰다.

수업이 끝나고 화랑은 여전히 뭔가 놓친 듯한 기분이 들면서 찜찜했다.

"화랑, 오늘 저녁에 우리 과 회식 하는데 갈래?"

"뭐? 나 너네 과에서 너 말고 친한 애들도 없는데 거기를 왜 가?"

"복학한 선배가 밥을 산다고 해서, 너도 이참에 얼굴도 좀 익히고 겸사겸사 맛있는 것도 얻어 먹으라고."

"맛있는 거? 그게 뭔데?"

"소고기."

"갈게."

화랑은 더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저녁 화랑은 서연과 같이 가게에 들어섰다.

같이 교양 수업을 들은 적 있는 학생이 몇몇 보이긴 했지만 그리 친하게 지내진 않아서 조금 서먹했다.

자리에 앉고 얼마 안되어서 누군가 그들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안녕. 다들 온 거야? 못 보던 얼굴도 있네."

고개를 들어서 목소리의 출처를 확인한 화랑은 몇 초간 사고가 정지했다. 훤칠하니 잘생긴 남자가 그녀를 향해 약간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살짝 얼타고 있는 그녀를 본 서연이 씩 웃으며 화랑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번에 복학한 윤이연 선배야. 잘생겼지?"

"응. 어.. 그런 것 같네."

"확신의 센터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역시 머글들이란.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비주얼이다 이말이야."

화랑은 그저 웃어보였다. 신경 안 쓰는 척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따금씩 이연을 향했다. 그러다 문득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온기가 없는 시선이었다. 빠르게 시선을 피한 화랑은 순간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네. 왜 꼭 어디서 본 느낌이지?'

분명 처음 본 사람이고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그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어떤 장면이 스쳐갔다. 무엇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스쳐간 장면이라서 화랑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그런 그녀를 한 번 더 슬쩍 쳐다본 이연은 아무렇지 않게 옆에 앉은 후배와 잔을 부딛쳤다.

화랑은 서연이 재촉하자 마지못해 술잔을 비워냈다. 이상하게 소주맛이 썼다. 안주를 먹으려니 속이 더 울렁거렸다. 앞에 샐러드를 한 입 맛 본 그녀는 물로 입가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람이라도 좀 쐴까 싶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니 거리는 찬 바람이 휭 불고 있었다. 화랑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얼마 안 지나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리더니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애들과 여자애 한 명이 나왔다. 그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가까운 골목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곧 바람에 날린 담배연기가 그녀에게도 휙 불어왔다. 기침이 나온 화랑은 한숨을 쉬며 다시 가게로 들어가려 문을 잡았다가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너 뭔데? 귀신이라도 봤어?"

마침 가게 문을 확 열고 나온 이연이 의아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말에 부정하고 싶었지만 화랑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런거 아니에요. 그냥 놀라서...."

뒤늦게 답한 화랑은 말끝을 흐리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뭐지? 내가 왜 꼭 죄라도 지은 것처럼 이러는 거지?'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무감하게 지켜보던 이연이 하!짧은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주위를 한 번 쓱 둘러보다가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화랑은 가게에 들어서고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심장은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화랑, 왜 그래? 어디 아파?"

"응? 아니. 오늘 그냥 좀 술이 안 받네."

"그래? 그럼 마시지마. 먼저 들어가봐도 되고."

"어.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나 가볼게."

화랑은 냉큼 대답하고 가방을 챙겼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 그녀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어. 저 사람 왜 저기에 있지?'

머뭇거리다가 정류장으로 걸어간 화랑은 그린 듯이 정류장에 서 있는 윤이연을 흘끔 보고 고개를 숙였다.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

"네?"

화랑은 생각지도 못하게 그가 말을 걸어오자 흠칫 놀랐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는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속이 좀 안 좋아서요."

"어디 아픈거야?"

"아. 그게 오늘 식사를 걸러서요."

"뭐가 그렇게 바빠서?"

"과외가 겹쳐서 시간이 좀 없었어요."

처음과는 다르게 조용한 말투로 물어오는 그에게 술술 대답하고난 화랑은 스스로 놀랐다.

'아니, 처음 본 사람에게 왜 이렇게까지 캐 묻는거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연은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뒤로는 더 말을 걸지 않았다.

버스가 오고 화랑은 버스에 올라탔다. 그녀의 뒤를 따라 이연도 버스단말기에 카드를 찍었다.

버스 안은 좌석이 널널했다. 화랑은 내리기 편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뒤 따라 온 이연은 그녀를 지나쳐서 뒷 좌석으로 걸어갔다.

'자리도 많은 데 왜 굳이 뒷자석에 가는 거지?'

화랑은 슬쩍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이러다가 또 정류장 지나치는 거 아니야?'

전광판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전전 정류장이었다. 또 멍하니 보던 그녀는 내려야 할 정류장이름이 뜨자 바로 벨을 눌렀다.

다급하게 내리는 그녀를 보던 이연이 뒤늦게 내렸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져가는 화랑의 뒷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천천히 그녀가 사라진 골목으로 걸어가던 이연은 누군가가 뒤 따르는 걸 느끼고 돌아섰다.

"여기는 왜 또 온거야?"

"네가 또 사고 칠 것 같아서 와봤지."

"내가 뭘?"

"너 지금 여기 온 것 부터가 문제인데?"

이연은 한참 어린애 보듯 그를 바라보는 의문의 인물을 보고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아니야. 그런거. 그저 지켜만 보려고."

"뭘 지켜봐? 지금의 너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잖아."

이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끝난 일이야. 너는 지금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살아야 해."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래. 나의 잘못이긴 하지. 최대한 신경 써준다잖아 그래서."

"필요없어. 그전으로 돌려놓던가. 아니면 내 일에 관심 끄던가 둘 중 하나만 해."

"둘 다 안 되는 걸 알잖아."

"그건 네 사정이고 나는 모르는 일이야. 아무튼 둘 중 아무도 들어주지 못할거면 내 일에 신경 꺼."

이연은 발걸음을 돌려서 횡단보도쪽으로 걸어갔다.

멀어져가는 이연을 바라보던 의문의 인물은 나직하게 탄식했다.

"두번 째 기회를 잘 잡아야 할텐데. 그게 되려나?"

횡단보도를 건너간 이연이 다시 맞은켠을 바라봤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아무일도 없는듯이 잊으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윤이연은 어릴 때부터 많이 아팠다. 그리고 악몽에 시달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차츰차츰 잊혀져갔지만 어느 날. 그러니까 조금 전에 마주친 의문의 인물을 마주친 순간 그 모든 미스테리가 풀렸다.

그 날은 뭔가 이상한 날이었다. 평소보다 10분 늦게 일어났고 그리고 10분 늦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분명히 보행자 신호에 걸려서 걸어갔음에도 그는 길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커다란 트럭을 마주했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달려오는 트럭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왠지 모르게 고요해서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길 한복판이 아닌 멀리 떨어진 보행자도로에 서 있었다. 그리고 섬뜩한 소름이 돋았다. 그의 옆에는 금발머리의 한 여자가 서 있었는데 몸에서 푸른색의 불꽃이 일렁거리는 게 보였다.

"누구세요?"

"너. 죽을 뻔 했어 오늘."

"제가요?"

"그래. 너 뭔가 꼬였어. 전생부터."

"전생이라니 무슨 소리에요?"

"이대로라면 너 얼마 못 가서 죽어."

"저기요? 혹시 사이비에요?"

"정신이라도 멀쩡하길 바랐는데 그것도 아닌가?"

"야!"

참지 못하고 이연이 소리 지르자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시끄럽다. 살려줘도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누가 살려달라고 부탁했어?"

분에 못 이기고 버럭 화를 내는 이연을 본 그녀는 쓰게 웃었다.

"너 참 건방진 아이구나. 만난김에 선물이나 받아."

그녀는 이연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의 이마에 바람을 훅 불었다.

간지럽기보단 소름이 확 돋았다. 이연은 머릿속이 윙윙 울리는 걸 느꼈다.

"내일. 다 기억 날거야."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휙 사라졌다. 말 그대로 눈 앞에서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상상밖의 일을 마주치자 그는 자기가 귀신에게 홀린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 답지 않게 수업에 지각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날일은 전조에 불과했다.

이튿날. 잠에서 깬 이연은 자기도 모르게 거친 말을 내뱉고 스스로도 놀랐다. 아직도 꿈인지 뭔지 모를 영상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만 같았다.

몇 시간 못 잔거 치고는 꽤 긴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만난 한 여자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름이.... 화랑?"

그 이름을 입에 담자 순간 오싹해났다. 마치 담지 말아야 할 이름을 담은 듯이.

이연은 한 동안 그 여자와 연관된 꿈을 연속으로 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감이 왔다.

사고를 당할 뻔한 날. 의문의 여자가 한 말 중에 나온 전생에 관한 꿈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꿈을 노트에 기억나는 대로 적으면서 정리해보니 전생에 화랑이라는 여자와 엮이면서 그의 인생이 제대로 꼬인 것 같았다.

'전생의 원수? 대체 왜 이런 걸 기억하게 된거야?'

혼란스러운 와중 그는 그날 만난 여자를 다시 만나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에 가서 찾을 것인가. 그런 의문이 무색하게도 그 의문의 금발머리 여자는 얼마 후 또 그의 앞에 나타났다.

"휴학 해."

대뜸 나타나서 하는 말이 휴학하라니. 이연은 도서관에서 나오다가 갑자기 맞닥뜨린 그녀를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휴학을 할 이유가 없는데?"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뭐가 아니라는 건데?"

"너 죽고 싶어? 살고 싶으면 내 말 대로 해."

"그건 그렇고,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너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

피식 웃으며 답한 그녀를 보던 이연은 또 뭔가 확 치밀어 올랐다.

"제대로 대답해. 아니면 나도 들어줄 마음 없으니까."

"너의 수호신이라고 해두자. 어쨌거나 나는 너를 돕기 위해서 이 곳에 온 거니까."

"수호신? 악마는 아니고?"

"불경하다. 무슨 새파랗게 어린 애가 그런 말을 입에 담아?"

이연은 자기보다 키도 작고 어려보이는 여자애가 하는 말에도 왠지 모르게 한기를 느꼈다.

"휴학, 그래. 알겠어. 대신 물어볼게 있어."

"뭔데?"

"내가 아무래도 전생을 기억하게 된 것 같은데. 그거 혹시 저번에 네가 한 이상한 짓 때문이야?"

"전생을 기억하게 됐다고? 이번에는 빨리도 알아차렸네."

"이번엔? 혹시 그 전도 있었다는 거야?"

"그래. 그런데 그것까진 알 건 없고. 약속은 약속이야. 휴학 해."

그녀는 그의 답을 듣지도 않고 사라졌다.










추천 (2)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1/01 07:12:04

소설초반에는 항상 꿈이야기를 섞어서 동화처럼 몽환적으로 시작하네요.전생의웬수가
현생의 생명의은인? 전생과 현생의 스토리가 이어지면 넘나 흥미진진하겟네요.

단밤이 (♡.252.♡.103) - 2024/01/01 07:16:10

꿈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꿈에서 단서를 많이 찾고 있어요.
전생 믿는건 아니지만 소재로 적당하죠.

닭알지짐닭알지짐 (♡.25.♡.121) - 2024/01/04 19:19:38

너무 흥미로운데요 ㅋㅋㅋ 어느덧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화랑이.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별 다를바없는 평범한 주부에게 다가온 첫사랑 ...그냥 지나간 추억으로 남은줄로만 알앗던 감정엔 어떤 사연이 있었을가? 왠지 범상치 않아보이는 이 전개는 뭐죠? ㅋㅋㅋㅋ

단밤이 (♡.252.♡.103) - 2024/01/04 19:58:33

현대소설에서 돌쇠랑 도련님 나오는 사극으로 가려면 조금 다르게 가야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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