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22회)

죽으나사나 | 2024.01.05 20:26:56 댓글: 0 조회: 237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37655

따스한 봄날이 올까 (22회) 집착을 버려야 할 때.​

[나 출근하러 갈게. 다미 너도 좀 누워 있다가 밥 먹고. 알았지?]

출근 준비를 마친 도진이가 아직 이불 안에서 꿈틀대는 다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으음.. ]

작은 신음 소리를 내던 다미가 눈도 못 뜬 채 말 대신 입술을 삐죽 내밀며 신호를 주었다.

그걸 본 도진은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입술에 가벼운 뽀뽀를 해준다.

[나 갈게. ]

[응~]

도진의 서비스에 만족한 다미는 여전히 이불 안에서 꿈틀대며 돌아누웠다.

[후두두…]

비가 온다는 말이 없었던 거 같은데 밖으로 나온 도진은 갑자기 거세게 쏟아 내리는 비에 그냥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집으로 향했다.

우산이 어디에 있었더라…

[드르륵-]

신발장에 있던 걸로 알던 우산이 안 보이자 도진은 방에 누워 있는 다미의 방으로 걸어갔다.

[아니, 엄마. 걱정하지 말라니까.]

어? 깼네? 어머님이랑 통화를 하나 보네.

통화 중이라 그런지 집에 도진이가 들어온 걸 모르는 다미는 그냥 통화를 이어갔다.

[내가 미쳤다고 어디에서 굴러온 지도 모르는 입양아랑 결혼까지 생각하겠어? 잘 생기기도 했고 나밖에 모르는 멍청이라 그냥 데리고 사는 거야. 나 이다미를 몰라서 그러냐고!]

[…!!!]


다미를 놀래 줄 생각에 해맑은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려던 도진이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이때 통화를 하던 다미가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거실로 나왔다. 그러나 이미 밖으로 나간 도진을 못 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통화를 이어갔다.

[… 라고 말하면 엄마는 기분이 날아갈 거 같겠지만 난 그게 안되는 걸 어떡해. 내가 그 잘 생긴 입양아를 사랑해서 죽겠다는데. 엄마가 아무리 도진 선배를 밀어내도 난 꼭 결혼까지 할 거야. 엄만 나 못 막아.]

다미는 협탁 위에 놓여 있는 도진이랑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말했다.

[에휴… 엄마 아빠가 자식이라곤 너 하나라, 너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열심히 산 건데 네가 이러면 어떡하라고 그래. 그 회장 댁이야 우리랑 격이 맞지만 그건 친 자식일 때 하는 소리고!]

[엄마. 난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사람만 좋으면 됐지, 그 집에서 태어난 건지 아닌지가 왜 그렇게 중요해?? 도진 선배는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딸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자야. 물론 아빠 다음으로. 그러니 이제 다시는 선을 보라네 그런 쓸데없는 말은 꺼내지도 마. 알았지?]

[으휴. 알았어! 끊어!]

전화기 건너편 다미 엄마는 오늘도 딸을 설득 시키지 못한 채 짜증을 내며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만나는 4년 내내 이러는 엄마가 이제 지겹기도 하고 도저히 지칠 줄 모르는 그 끈기에 대단함을 느끼며 다미는 피식 웃어버렸다.

한편,

우산이 없이 길거리에 나선 도진은 거센 비 사이를 넋이 나간 얼굴로 터벅터벅 힘겹게 걸어나갔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를 그렇게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자신의 모든 걸 다 주고 싶었고 비밀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연애 초기 자기가 어릴 적 입양되었단 얘기를 털어놓았었다.

다미는 처음 듣는 입양아란 얘기에 별로 놀라지 않아 했다. 자기가 사랑한 남자가 어떤 사람이었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그녀를 더욱더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도진이는 좋은 부모님 밑에서 비싼 음식, 비싼 옷을 입고 비싼 교육을 받으면서 그게 당연한 줄을 알았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친구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더라면.

[야야, 너 그거 아냐? 도진이가 글쎄 입양 아래. 13살 때 지금 부모님이 기억을 잃은 도진을 데려와서 키운 거래. ]

[뭐? 진짜? 넌 그건 어떻게 알았어?]

[울 아빠가 예전부터 그 집이랑 좀 아는 사이잖아. 애가 없던 집에 갑자기 10대나 되는 애가 생겼대. 그때 도진이 모르게 해달라 해서 다들 쉬쉬한 거고.]

[와… 대박.]

엿듣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그 말들이 그렇게 도진이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잘 들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자신이 부모님의 친 자식이 아니었다는걸…

그래서 잠시 힘들었었다. 어린 마음에 당장 달려가서 묻고 싶었지만 자신을 그렇게 이뻐해 주는 그분들한테 굳이 물어야 하나, 물어보면 무얼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혼자 끙끙 앓다가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었다. 나중에는 그냥 이분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살면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입양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냥…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냥 딱 그 정도였다. 입양아라는 걸 말했던 그 친구도, 들었던 친구도 도진이 앞에서는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근데,

근데 마음속 깊이 자신도 못 느꼈던 입양아라는 타이틀에 얽매 혀 있었나 보다.

사랑하는 여자한테서 그런 말을 듣고는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미쳐버릴 줄은…

이제 그녀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이제 자신은 어떻게 이걸 풀어나가야 할지 머릿속은 하얗기만 했다.

[빵——]

요란한 경적소리가 도진이의 귀를 뚫어 버릴 듯이 울려댔다.

그렇게 해서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사고가 난지 열흘 뒤,

다행히 다친 데라고는 갈비뼈 몇 대 부러진 것과 차량과 부딪히면서 자극이 된 머리… 큰 부상은 없었다.

두 뇌가 자극이 되면서 어릴 때의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왔다.

그 기억은 가히 말할 수 없을 만큼 도진이한테는 더욱 큰 충격이었고 찾아오는 다미를 신경 쓸 새도 없이 과거에 얽매 혀 한참을 헤맸으니…

그러다 보니 다미한테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점점 식어 버렸다. 단지 어디에서 굴러온 지 모르는 입양아라고 말해서가 아니었다. 기억을 찾은 도진한테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자신은 어디에서 막 굴러온 사람이 아니었고 자기를 무척이나 사랑해 주던 부모님이 계셨다는 걸 기억나게 해주었으니… 다미한테 사실 고마워해야 했다.

그냥 그랬다… 기억이 돌아와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건 맞지만 그냥 여느 연인들처럼 헤어지기 위한 절차였을 뿐이었다.

“뭐…라고?”

이런 얘기는 처음 들은 다미의 얼굴이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렸다.

“그때 선배가 다시 들어왔던 거야?”

도진은 대답 대신 그냥 다미를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선배, 그건 그때 엄마를 놀리려고 말한 거야! 진짜가 아니라고! 하필이면 왜 그때 들어와서…”

”다미야.“

진정을 못하는 다미의 손을 꽉 잡은 도진이.

”그래. 처음에 금방 들었을 때는 내가 들은 게 전부일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너에 대한 실망이 컸던 거고. 근데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잘 아는 다미라면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

얼굴에 눈물범벅인 다미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도진은 말을 이어갔다.

“커플들이 헤어질 때 다들 여러 핑계 때문에 헤어지지… 우리도 그냥 여느 커플들처럼 사랑을 하다가 헤어질 때가 되어서 헤어진 거야. 그냥 그걸 이유로 갖다 붙인 거지. 나중에 생각을 해보면 그냥… 헤어질 때가 되었던 거야. 정신없던 그날만 빼고 너를 원망한 적은 없었어. 나는 김다미를 많이 사랑했었고 김다미도 나를 사랑했었다는 그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이 되니까. “

”선배…“

”난 그래서 너를 오래전에 놔줬어. 너도 이제… 나를 놔줘.“

”못 하겠어…“

”할 수 있어. 다미야. 3년을 찾아오면서 너도 사실 알고 있었잖아. 이제 가망이 없다는 걸. 너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거지. 너도 날 이제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일 뿐이야. 딱 거기까지야. “

다미는 더 아무 말도 안 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도진은 그녀한테 휴지를 손에 쥐여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도 먹고 기운 차려 이제. 난 이제 네가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야.”

그러고는 돌아서서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도진 선배… 하나 물어볼 거 있어.”

”응…“

도진은 등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때 선배가 안 들어왔다면… 우린 지금도 사랑을 했었을까.“

”…“

몇 초 정적이 흐르고 도진이가 돌아서서 다미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언젠가는 또 다른 이유로 헤어질 거야. “

”그럼 유나 씨하고는 안 헤어질 거 같아? 헤어질 이유가 없을 거 같아?“

”…“

다미의 다그침에 응답을 안 한 채 도진은 그렇게 나가버렸다.

다미는 꾹 닫힌 문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한편,

레스토랑 2층 방에서 침대에 누운 유나가 도진한테 문자를 보낼까 말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요? 보고 싶…>

아니야, 아니야.

쓰다가 지우다가를 반복하면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지이이잉~”

“깜짝이야.”

갑자기 울린 전화 진동에 유나는 깜짝 놀라서 침대 위에 휴대폰을 거의 던지다시피 내려놨다. 도진한테서 온 전화인 걸 확인하고는 바로 받는다.

“여보세요?”

“응… 뭐 하고 있었어?”

“저… 그냥 있었죠. 사장님은요?”

문자를 하는 중이었다는 말은 못 하겠던 유나다.

“그래. 어제 늦게 자서 힘들지?”

“뭐… 좀? 사장님도 힘들 거 같은데. 그렇죠?”

“응. 오늘은 좀 피곤하네. ”

전화기 너머 도진이의 옅은 한숨이 들리는 거 같았다.

“오늘은 보고 싶긴 한데 … 우리 다 피곤하니까 쉬고 내일 레스토랑에서 만나자. ”

“네. 알겠어요. ”

“… 유나야.”

“네.”

“보고 싶긴 하다.”

“…”

“그럼 끊을 게. 내일 봐.”

“……저도 보고 싶…”

“뚜——”

한참을 머뭇 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유나가 말이 없자 끊긴 줄 안 도진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나도 보고 싶은데…”

유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아쉬운 마음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맞다. 오늘은 찾으러 가야겠네. 맡겨둔 지 너무 오래됐잖아.”

유나는 뭐가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일어나 외출복을 입기 시작했다.

다음날,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푹 쉬고 돌아온 직원들이 하나 둘 밝은 얼굴로 인사하며 들어온다.

”잘 쉬고 왔으니 오늘도 열심히 해봅시다~“

송 매니저의 기합에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손님은 여전히 많았고 그렇게 바삐 점심을 보내고 오후 브레이크 타임.

”언니, 어제까지만 해도 목이 뭐가 없었는데?“

유나의 가느다란 목에 안 보이던 목걸이 줄이 보이자 둘이 같이 커피를 마시던 화영이가 유나의 목을 가리켰다.

”아, 이거?“

유나는 옷 속에 감춰진 목걸이를 꺼내 보여줬다.

“와, 핑크 곰돌이! 너무 귀여운데요? 만져 봐도 돼요?”

“응.”

화영은 앙증맞게 작은 곰돌이 문양을 보고 흥분하며 만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뒤편에 적힌 이니셜을 발견했다.

“뭐라고 적혀있죠? 언니 이름? 근데 유나가 아닌 거 같은데?”

“아, 그거. 나 보육원에 있을 때 이름. 이지아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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