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3회)

죽으나사나 | 2023.12.06 18:51:39 댓글: 0 조회: 287 추천: 3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26120
*따스한 봄날이 올까 
(3회)  - 몰랐던 이야기, 

“드르륵-”

도진이네 부모님 댁 현관문이 열린다.

“도련님! 회장님. 사모님. 도진 도련님이 오셨어요!!”

문 열리는 소리에 뛰쳐나온 집사가 반가운 마음에 주방 쪽에 소리를 질렀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주방에서  부모님이 나오신다.

“잘 계셨죠?  아버지. 어머니.“

도진은 예의 깊게 부모님한테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는 도진을 보자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고는 바로 도진의 어깨를 끌어안아주셨다.

”보고 싶었어. 도진아.“

아버지는 도진을 보고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전이랑 똑같이 자상한 미소를 지으셨다.

“얼른 들어와. 마침 저녁 먹으려고 했으니까.“

”네. 아버지.“
기억을 찾은 지 3년... 그 뜻인즉 집을 나온 지도 어언 간 3년이 거의 되었단 말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찾아오던 이렇게 무작정 집 나간 아들을 반겨 주시는 이분들이 너무 나도 고맙고 따뜻하다.

**
”똑똑.“

“네.”

식사 끝나고  도진은 서재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아버지한테 찾아갔다.

“엄마랑 얘기 안 하니?  너 엄청 기다렸는데.”

“아, 지금 저 준다고 주방에서 집사님이랑 과일 자르고 있어요. 괜찮다고 했는데…“

도진은 아버지 앞 소파에 앉았다. 차를 마시던 아버지가 
뭔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의 도진을  쳐다보고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놨다.

”도진이 너 나한테 할 말이 있구나.”

그제야 도진은 3년 간 묵혔던 궁금증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사실 기억을 다시 찾은 후부터 항상 궁금했어요. 21년 전의 그때 저를 구하고서 왜 입양까지 생각하셨는지…”

도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버지는 도진이를 몇 초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몸을 뒤로 젖혀 소파에 살짝 기댔다.

“기억을 찾고 나서 3년 만에 드디어 묻는구나. 기다렸다.“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푹 떨구는 도진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말을 이어갔다.

”죽으려는 걸 보았으니 구하는 건 당연하였고, 아무것도 기억을 못한 채 한 달 만에 눈을 뜬 네가 환하게 웃으면서 처음 했던 말이 ‘엄마 아빠’ 였단다. 죽으려고 했던 아이한테 차마 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어서 깨어난 걸 그저 축하해 주었단다.“

아버지는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들이켰다. 

“한편으론 네가 그 나이에 왜 거기서 죽으려고 했는지 너의 가족을 찾아보았고 네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너의 작은 집에서는 네 이름을 꺼내자마자 우릴 문밖으로 쫓아버렸지. 우린 잠깐 한국에 들어온 거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은 너를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지인한테 부탁해 입양 절차를 밟고 미국으로 가게 된 거야.”

“…”

“도진아.“

아버지는 한 템포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린 너한테 늘 그늘이 없는 햇살이 되어 주려 했다. 너의 그 밝은 미소만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근데…지나고 보니 너를 키우는 내내 그 햇살은 우리가 아니라 너였다는 걸 알게 되더구나.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사실 나날이 암흑이었지. 특히 너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자신을 그렇게 미워했단다. 그때도 네 어머니 기분 전환 겸  한국에 잠깐 들어와서 쉬는 거였단다.“

자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도진의 마음속엔 더욱더 미안함이 몰려왔다.

도진은 몰랐었다. 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자기 자신이 이분들한테 이런 존재였는지…

도진은 그저 3년 전 접촉사고로 머리를 다치면서 기억이 돌아온 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부모님 그리고 자신이 잃어버린 동생 지아까지 잊은 채,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았던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었던 이분들한테도 서운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이분들이 왜 그랬는지 사실 알고 있으면서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이 분들을 뿌리치고 홀로서기를 시작했었다. 아니, 홀로서기도 아니다. 좋은 가르침,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게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성장할리도 없다. 다 알고 있었다. 

단지… 단지…,

누군가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던 거 같다.

“죄송해요. 아버지…”

도진은 머리를 툭 떨구었다.

”미안은 무슨. 우리 잘못도 있지. 네가 상처받을 가봐 크는 내내 너에 대해서 말을 안 해주었으니… 우리도 네가 집을 나간 후 마음이 그냥 안 좋았단다. 그래도 이렇게 해명할 시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도진아.”

아버지의 말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부모님을 원망했던 자신을 할 수만 있다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쑤셔 넣고 싶었다.

“그때 네 동생도 찾았으면 네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진 않았을 텐데… 찾다가 포기해버린 우리한테도 잘못이 있지.”

끝까지 못 찾은 자신이 미운 듯 아버지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동생 말인데요.”

도진은 떨구었던 머리를 들고는 입을 열었다. 내내 어두웠던 도진의 눈빛이 살짝 빛나 보였다.

“정실장한테서 연락 왔는데 찾을 수 있을 거 같다네요.”

”정..말??!“

갑자기 문쪽에서 떨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미안해요. 들으려고 한 게 아니라 과일 먹으러 나오라고 얘기하려고 왔는데 문이 열려 있어서 듣게 되었어요.“

어머니는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곤 바로 도진한테 시선을 돌렸다.

”동생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는 게 진짜니? 도진아.“

”네. 어머니. 보육원까지 찾아냈는데 폐원을 해서 거기 있었던 사람 찾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참 다행이야.“

어머니는 도진의 옆에 앉아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곧 좋은 소식이 들리겠구나. 도진아. 어머니가 네 걱정을 많이 했단다. 동생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같이 기뻐하고 아니었을 땐 같이 슬퍼했단다. 네 어머니도. 오늘처럼 이렇게  가끔 같이 식사도 하고 그러렴.“ 

”네. 아버지.“

“여기서 이러지 말고 거실에서 과일 먹어. 도진아. 오늘 이렇게 올 줄 알았으면 저녁밥도 내가 차리는 건데…“

”어머니.“

도진은 아쉬워하는 어머니를 불렀고 이에 어머니가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저 이제 자주 찾아뵐게요.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그렇게 아쉬워 하지 않아도 돼요.”

도진의 말에 감동 먹은 어머니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도진을 안아주었다.

“고마워. 도진아. 그리고 미안했어.”

“…제가 미안했죠.”

“이제 서로 그만 미안하다 하고 나갑시다~ 날을 새겠어요~”

아버지는 서로 자책하는 둘의 등을 떠밀면서 서재를 나왔다.

**
[오늘 자고 갈 거니?]

[아…]

[자고 가렴. 네 방은 항상 깨끗이 청소하고 있어.]

[네. 그럴게요.]

오랜만에 여기 침대에 누워 본 도진은 아까 과일을 먹으면서 자고 가라던 어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때랑 똑같다. 간단한 짐만 챙겨서 나갔으니 물건 배치는 다 그대로다. 얼마나 청소를 열심히 했는지 먼지 한 톨도 안 보인다. 어머니는 항상 도진이를 기다렸던 거다. 그 생각에 도진은 또 마음이 아려왔다. 자기만 힘든 것이 아니었을텐데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방을 여겨보던  도진은 옷봉에 걸려있는 양복에 시선이 꽂혔다. 뭐가 생각 났는지 아까랑 다르게 짜증이 확 올라온 얼굴이다.

[근데, 도진아. 너 혹시 요즘 레스토랑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니?]

[그건 아닌데… 왜요?]

양복을 들고 도진 방에 들어온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도진은 의아했다.

[아니… 네가 아까 식사때 벗어 놓은 양복에 머리카락이 많이 묻어 있길래. 네가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머리카락이요?]

도진은 머리를 갸우뚱하다가 

[아. 그건 그 여자가,]

[그 여자?]

어머니의 시선이 뭔가 더 말하려다가 끊은 도진이한테로 향했다.

[아, 아니에요.]

어차피 다신 만날 일도 없는 여자를 어머니 앞에서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가 않았다.

도진은 아팠던 머리를 만지며 그 여자가 다시 떠올랐다.
약을 줄 때는 그렇게 밝은 미소를 가진 여자였는데 어떻게
한순간에 그렇게 돌변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도진의 주위에는 없었다. 

‘지아도 이제 어엿한 20대 아가씨겠지. 뭐하고 살려나. 결혼했으려나? 아,아닐 거야.‘

도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혼은 벌써 안 했을 거 같고 남자친구는 있을 수 있겠네…근데 그 여자처럼 그런 남자나 만나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 생각 말자.’

도진은 상상만 해도 끔찍해졌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내일 주말이라 바쁠 텐데 일찍 레스토랑에 가야지.’

한편,

편의점에서 쫓긴 유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낑낑대면서 낡은 주택 계단을 힘겹게 올라간다.

“하.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혁이가 사장님이랑 마주칠 일이 없었고 그러면 혁이가 사장님한테 화를 안 냈을 거고 난 이렇게 쫓길 정도까지 아닐 텐데. 다 그 사람 때문이야. 아아아!!!”

유나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열만 더 받아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그쪽이 사장이면 다야?? 그쪽이 뭔데 울 누나한테 삿대질이야!! 엉??]

[뭐, 뭐?]

[혁아. 하지 마. 조용히 해. 혁아!!]

당장 편의점 사장을 때릴 기세로 달려드는 혁이를 말리느라 힘들었던, 낮에 그 일이 떠올라 유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는 근데 왜 혁이를 건드렸을까? 편의점 들어왔을 때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는데. 얼굴만 멀쩡하지 이상한 사람이네!!‘

그렇게 유나가 생각에 잠겨 어느새 도착한 곳은 301호 문 앞이다. 이상한 손님 때문에 화가 나서 온갖 인상을 쓰던  유나의 표정이 점점 차분하게 변해갔다. 들뜨던 가슴을 먹먹해 지게 만드는 이 곳. 여기밖에 올 데가 없다. 

”딩동~ 딩동~“

벨을 눌렀지만 안에  사람이 없는 듯 조용하다.

”쾅. 쾅“ 

”엄마, 엄마 집에 있는 거 알아. 문 열어줘.“

초인종에 아무 반응이 없자 유나는 문을 두드리고 안에 있는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유나 목소리만 복도에 울리고  안은 여전히 아무 소리가 안 들렸다. 유나는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엄마!! 엄마! 엄,“

”쾅-“

문이 갑자기 확 열리고 그 안에선 많이 초췌한 모습의 나이 많은 여자가 나왔다. 엄마였다. 유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입을 열였다.

“엄마. 나 있잔…“

“가. 보고 싶지 않으니까. ”

“쾅-”

유나한테 시선조차 제대로 안 준채 나지막하지만 무거운 한마디만 하고 엄마는 다시 들어가 버렸다. 유나는 문을 더 두드리려고 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이럴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실망감에 옅은 한숨을 쉬던 유나는 문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갑자기 찾아와서 화났어? 나 오늘 그냥 엄마 얼굴 보려고 온 거야. 이제 봤으니 됐어. 어차피 나 좀 있다 친구한테 가야 돼. 나보고 자꾸 오라네. 그럼 몸 잘 챙기고 잘 있어. 엄마!”

어차피 이렇게 문전 박대 당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단지 혹시나 하는 그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유나는 무거운 캐리어를 다시 질질 끌고 계단을 내려와서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그 집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도 스스로를 괜찮다고 다독이는 밤이었다.

“지이이잉-”

주머니 속 유나의 전화 진동소리가 들렸다. 혁이였다.

“응. 혁아.  나?  지금 집 근처지. 응.  엄마 얼굴은 봤어.  안에는 못 들어 갔지만 괜찮아. 뭐?  너한테 오라고? 어이구. 됐네요. 너 혼자 사는 하숙집도 아닌데 뭘. 걱정 마. 누나 갈 데 많아. 공부나 열심히 하고. 끊어.  응~.  그래.”

”드르륵드르륵.“

골목길에  유나가 끌고 있는 캐리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어?“

한 가게 앞에서 유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게 창문에는 구인공고가 붙어 있었다.

<홀 서빙 구합니다. 필요하시면 숙소 제공.>

”이게 웬일이야? 여기에 언제 이런 가게가 생겼지?“

유나는 가게 전체를 훑어보았다.

‘하긴 내가 여기서 살지는 못했으니 알 리가 없지… 하.. 일단은 오늘 밤은 찜질방에 가야겠네.‘

**다음날.

“안녕하세요!”

영업 준비로 분주한 가게에  크고 우렁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24살 홀 막내 화영이가 다가왔다. 유나는 활짝 웃으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유나라고 합니다. 아직 직원 더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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