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4회)

죽으나사나 | 2023.12.07 09:22:43 댓글: 0 조회: 369 추천: 4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26356
*따스한 봄날이 올까
(4회)
피하고 싶은 인연. 

자기 몸통만 한 큰 캐리어까지 끌고 온 유나를 아래 위로 힐끗 훑어보던 홀 막내 직원 화영이가 반색하며 기뻐한다.

”홀 지원하러 오셨어요? 잘 왔어요! 오늘 그렇지 않아도 한 명 빠지게 되어서 걱정이었는데…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사장님?’

화영은 말을 하다 금방 레스토랑에 발을 내 디딘 사장을 발견하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 소리에 분주하던 직원들이 모두 얼굴만이라도 비춰 큰 소리로 인사를 하기도, 목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바삐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유나도 분위기에 뒤질세라 입구 쪽으로 돌아서서 밝게 인사하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사장이랑 눈을 맞췄다.

“어? 그 남자다!”

유나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고 사장도 유나를 단번에 알아봤지만 입 밖으로는 소리를 안 냈다.

’그 여자다!’

하…다신 안 만날 줄 알았는데 저 여자는 왜 레스토랑에 와 있는 거지? 그리고 저 자기 몸통만 한 캐리어는 또 뭐고?

도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나를 노려 보았다. 근데 유나도 거의 똑같은 표정이었다.

“우리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에요?”

레스토랑 송 매니저가 어느새 주방에서 나와 도진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니요!” “아니요!”

둘은 같이 짜기라도 한 듯 이구 동성으로 부정했다. 그 소리에 분주하던 직원들이 다시 머리를 쏙- 내 밀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나 기웃거렸다.

“아…모르시는구나. 반응이 왠지 아는 거 같은데… 구인공고 보고 오신 거죠? 사장님 마침 오셨으니 오늘은 직접 면접 보실 거죠? 그럼 전 이만 바빠서…“

”아, 송 매니…“

송 매니저는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도진의 부름에도 못 들은 척 얼른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할 일도 많은데 면접 같은 건 사장 보고하라는 거였다.

‘하… 송 매니저 하기 싫은 일엔 또  못들은척 하네.‘

보아하니 이번이 처음은 아닌 거 같다.

도진은 송 매니저가 급히 도망가 버린 주방 입구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아놔… 하필 저 사람이 사장이라니… 망했네. 세상이 좁긴 진짜 좁구나.‘

유나는 허탈감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겉으론 아무 일 없다는 듯 조금 가식적인 웃음을 흘리며 도진한테 한 발짝 다가섰다.

“사장…님이시죠? 여기 구인한다고 해서…”

“네. 그거요. 오느라 고생했는데 어쩌죠? 사람 이미 찾았는데.”

도진은 그런 유나의 말을 싹둑 자르고 자기 말을 뱉었다.

‘저 여자가 여기서 일하는 건 못 봐주지.’

“안됐지만 다른 데 알아봐야 되겠는데요.”

그리고 한 마디를 더 해 쐐기를 박았다.

도진 본인은 못 느꼈겠지만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다들 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도진과 유나의 홀 상황을 다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아…그러세요? 근데 아까 저분은 한 명 빠졌다고, 잘 왔다고 했는데…요!“

유나는 근처에서 테이블을 닦으면서 엿듣고 있던 화영이를 가리켰고 제뿔에 화들짝 놀란 화영은 일부러 시선을 돌려 모른척했다. 누가 봐도 사장이랑 아는 여자 같았고 이 상황에 끼여 들면 안 될 거 같았다. 그걸 막내 화영도, 다른 직원들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저 친구가 막내라 잘못 알고 있나 본데 여기 직원 필요 없어요.“

”아니, 저…“

도진은 화영이를 힐끗 쳐다보고는 아직 뭔가 할 말이 있는 유나의 말을 들은 체도 안 하고 태연하게 한마디를 더 얹었다.

”그럼 천천히 가세요.“

”사장님! 잠깐 만요!“

주방에서 송 매니저가 뛰쳐나와서 헐떡였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일단 해야 될거 같은데요. 금방 연락 왔는데 온다고 하던 알바도 오늘 못 온대요! 홀에 달랑 막내랑 나리 둘이서는 힘들어요!“

그 말에 도진의 표정은 쓴 약이라도 들이킨 듯 일 그러졌고 유나는 한쪽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앗싸~ 구직 성공!‘

**
어찌 되었던 예약 손님이 많은 주말이라 일단 유나를 하루 쓰기로 한 도진은 사장실 의자에 앉아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홀 쪽을 심기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한창 바닥을 닦고 있는 유나한테 꽂혀 있었다. 그러다 아까 유나의 말이 생각나 또 한 번 코웃음을 쳤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 캐리어는 어디에 둘까요?]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집 나왔어요? 이렇게 큰 캐리어를 갖고 다녀요?]

송 매니저가 궁금해서 물으며 유나의 캐리어를 만졌다.

[아, 그게… 여기서 숙식제공도 한다고 하길래 들고 왔죠.]

[아…]

송 매니저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일단 캐리어를 직원 휴게실에 넣죠.]

[네!!]

유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는 도준을 힐끗 쳐다보고 간단한 목례를 하고는 신나는 표정으로 냉큼 송 매니저 뒤를 쫓아갔다.

‘필요하면 숙식제공을 한다고 하긴 했지만 누가 면접 보러 오는 첫날에 자기 짐을 갖고 오나?

그리고 내 머리를 그렇게 잡아 뜯고도 내가 사장인 걸 알면 알아서 나가야지 여기가 어디라고…!‘

약간 어딘가 뻔뻔해 보이는 유나가 꽤 얄미웠다. 도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뭐라도 결심한 듯 사장실에서 나가 유나한테로 향했다.

“아까 이름이..?”

“네? 아…유나요! 정유나!”

갑자기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있는 도진에 살짝 당황한 유나가 대답했다.

“유나 씨? 바닥 그만 닦고 홀 앞에 유리창을 다 닦죠. 여기, 저기, 저~쪽까지.“

도진은 드넓은 레스토랑의 유리창을 가리켰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사장실로 들어와서 기분 좋은 듯 작은 소리로 흥얼 거리기까지 하면서 의자에 털썩 앉아 뒤로 몸을 젖혔다.

”똑. 똑.“

얼마 안 돼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송 매니저가 들어왔다.

”사장님. 유나 씨가 유리창 닦고 있던데 유리창은 우리가 내일 하기로 하지 않았…“

”내가 시켰어요.“

”아~ 네.“

송 매니저는 뭔가 더 할말이 있었지만 포기하고 도진의 뜻을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나갔다.

**

“저기 유나 씨. 이쪽도 닦으세요. 되게 더럽네.”

도진은 눈에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얼룩을 발견하고 한쪽에서 유리창을 닦고 있는 유나를 불렀다.

“거긴 아까 닦은 자리인데…“

“닦은 자리라고? 다시 닦아야 될 거 같은데요.”

“어디…”

도진은 뭔가 말하려는 유나의 말을 들은 체도 안 하고 자기 말만 하고 홀 뒤쪽으로 가버렸다. 

’하.‘

그 모습에 유나는 슬슬 열받아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람이 이상한 것만 아니라 좀생이같은 인간이네! 사장이라니 내가 참는다. 정유나 난 보살이다 보살이다…‘

유나는 기분 나쁜 생각을 접고 더러워진 물을 바꾸러 양동이를 들고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화장실 근처에 마침 도진이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이것저것 점검하고 있었다.

유나는 그런 도진을 힐끗 쳐다보면서 오고 있었고 서로 가까워질 때쯤 유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도진이도 마침 일어나면서 둘은 서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그 거리는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숨결이 다 들리는 것 같았다.

’뭐야.‘

가까운 거리에서 생각지 않게 유나를 보게 된 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자리를 비키려고 하는 찰나,

“어어,”

“꽈당-”

바람에 안 넘어지려고 버티다 버티다 맥없이 꼬꾸라지는 허수아비처럼 도진은 무언가에 걸려 결국 바닥에 철퍼덕 무릎을 꿇고 말았다.

“풋! …”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유나는 저도 모르게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가 바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도진이가 바로 뒤돌아서 가자미눈으로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도진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벌떡 일어나 이를 물고 나지막하게 유나한테 다그쳤다.

“지금 일부러 그런 거죠?“

”네??? 아니요!“

유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과장되게 대답했다.

아까 넘어지는 꽈당 소리와 금방 유나의 큰 소리에 레스토랑 안 직원들은 또 슬금슬금 이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걸 느낀 도진은 유나의 귀쪽으로 다가가 낮게 한마디 했다.

“지금 일부러 발 건 거잖아요. 누가 모를 줄 알아요?”

“아닌데.”

유나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 바닥을 훑어보더니 입술을 삐쭉거렸다.

“여기 바닥에 물이 많네. 사장님 조심해야겠어요.”

그러고는 머리를 홱 돌려 화장실로 쏙-하니 들어가 버렸다.

‘저 여자가!’

도진의 속은 또 부글부글 끓었다.

어제 그 애인을 좀 혼내주었다고 아직 맘에 걸려서 복수한 게 맞는 거 같다. 왜 혼냈는지도 모르면서, 멍청하긴!

도진은 답답함에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는 사장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 모습을 힐끔힐끔 지켜보던 화영이가 마침 근처에 서 있던 송 매니저 옆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아무래도 둘이 아는 사이인 거 같죠?”

"너도 그러니?"

사실 송 매니저도 안보는 척 하면서 다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근데 사장님 이상하지 않아? 저 유나 씨한테 엄청난 반감을 갖고 있는데? 사장님 저렇게 화내는 모습 처음인데?”

“매니저님이 처음이면 저는 더 모르죠. 웬일이래?”

“둘이서 뭘 속닥거려요?“

”아, 깜짝아야!“

수상해 보이는 화영과 송 매니저 사이로 어두운 얼굴이 스윽- 들어왔다.주방 보조 입 빠른 석호였다.

“ 어, 저쪽 아직 준비 안 끝났네.”

“아, 나도 깜빡하고 안 한 게 있는데.“

둘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뿔뿔이 흩어졌다.

”뭔가 있는 데?“

석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내던지며 중얼거렸다.

**

그렇게 어느 정도의 준비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점심시간도 거의 다가와 손님들이 속속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 오늘도 고객님들 입맛을 꽉 잡아 보는 하루가 됩시다~“

”네엡!!“

송 매니저의 힘찬 독려와 함께 다들 자기 자리로 가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저 23살인데 저보다는 언니죠?”

메뉴판을 들고 가던 화영이가 유나의 곁에 잠깐 멈추었다.

“아. 그렇죠. ”

“그러면 제가 유나 언니라고 부를게요. 언니는 오늘 첫날이니까 주문은 받지 말고 테이블 정리 도와줘요.“

”네. 알았어요. 화영 씨.“

”어? 제 이름을 그새 기억했어요?“

”저기요.“

화영은 생각 지도 못했다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활짝 웃으며 화영을 부르는 손님한테 급히 갔다

‘자 그럼 오늘 열심히 해볼까~’

그 모습을 보던 유나도 어깨에 팍 힘을 주고 열심히 해서 꼭 여기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숙식제공은 큰 메리트였다. 적어도 갈 집이 없는 유나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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