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이 올까 (6회)

죽으나사나 | 2023.12.13 19:43:26 댓글: 0 조회: 338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28963
*따스한 봄날이 올까
(6회) 잠깐의 위기

모두가 퇴근하고 많이 늦은 밤. 레스토랑의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여어~ 어제 나한테 삐지고 간거 아니었어? 오늘엔 웬일로 네 가게로 부르냐?”

심란한 이 밤에 같이 술을 마시면서 넋두리를 할 사람은 상준뿐이었다. 상준은 홀로 한잔하고 있는 도진의 앞에 털썩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어디 오늘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 봐. 친구란 게 뭐냐. 친구가 심란할 때 옳고 그름을 도와주는 거지. 어제 말하던 알바생 때문에 그래?“

”…어떻게 알았어?“

”뭐 이런 걸 가지고. 내가 너를 안지 얼만데.“

상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도진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자기 잔에 와인을 따랐다.

”놀라긴, 나 정도는 이제는 네 머릿속을 다 꿰뚫고 있지.“

도진의 반응에 재밌어진 상준은 와인을 한잔 음미한다. 그러다 살짝 쓴 와인 맛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는 도진을 다그쳤다.

“빨리 말해 봐. 무슨 일인데.”

“오늘 걔가 사고를 쳐서 내쫓았어.”

말을 꺼내면 이 자식한테 왠지 자신의 속마음이 헐거 벗은 거 같이 다 들킬 거 같지만 상준이 빼고는 마땅히 불러서 얘기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던 도진은 옅은 한숨을 쉬며 와인 한 잔을 꿀꺽 다 들이켰다.

“무슨 사고를 쳤길래 맘이 가는 여자를 내 쫓았어?”

상준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맘이 가는 여자긴 무슨…”

“네네. 아니라고 하죠. 김도진 사장님. 뭔 일인지 얘기해 봐.”

**

[잘못하긴 했네. 그 애 말고 김도진 너. 그 애는 실수를 했지만 넌 실수가 아니잖아.]

상준이랑 헤어지고 집에서 샤워하던 도진이는 아까 상준의 말이 생각났다.

[나라면 그렇게 매정하게 쫓지는 않았을 거야. 더군다나 마음이 가는 여자라면. 아, 또 아니라고 우기려나? 어쨌든 그렇게 내보내는 건 좀 경솔했다.]

도진은 욕실 수증기 때문에 뿌옇게 된 거울을 손으로 닦았다. 거울 속에 비춘 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함이 가득한 도준의 얼굴이었다.

다음날,

“띠리리리링…”

출근 준비로 넥타이를 매고 있던 도진의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네. 어머니.”

“아들~”

전화기 너머엔 언제나 그렇듯 부드러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혹시 레스토랑 꼭 가야 하니?”

“어, 그건 아닌데 무슨 일 있나요?”

“오늘 원래 너네 아버지랑 같이 등산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 생겨서 못 가게 되었지 뭐니… 그래서 도진이 네가 오늘 시간이 되면 오랜만에 이 엄마랑 같이 갈 수 있나 해서. 전에는 자주 갔었는데 너무 오래 못 갔더라.”

어머니는 사뭇 아쉬웠던 최근을 회상하는 거 같았다.

”같이 가시죠. 어머니. 근데 어데 잠깐 다녀와야 돼서 조금 기다려 줄수 있죠?“

”어, 당연하지. 고마워. 아들~“

고맙기는요…

도진은 원래 시간만 되면 부모님이랑 같이 등산을 해왔었다. 집을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도 당연했던 일인데 이제는 어머니가 도진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게끔 한 게 너무나 죄스러웠다.

도진은 먼저 병원으로 향했다. 어떤 사죄든 더 해야 맞겠고 보상도 해주고 싶었다. 소녀는 위기는 벗어났지만 일단 입원을 해 있는단다. 소녀의 엄마는 냉랭한 태도를 일관하였다. 도진은 이제 필요하게 될 입원비를 미리 계산하고, 따로 돈 봉투를 내밀었다가 더 화가 나 있는 소녀의 엄마를 뒤로 하고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나왔다.

얼마나 걸렸을까. 어느새 다다른 산 정상에서 어머니는 꽃이 활짝 핀 5월의 아름다운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울 아들이랑 등산은 진짜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이제 종종 와요."
무심코 던지는 말에 도진이가 받아 주니 한껏 기분이 좋아진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이런 날도 오니 기분이 너무 좋다. 도진이 너도 벌써 34살이 되었네. 전에는 그렇게 마냥 밝은 아이 같았는데 이제 진짜 어른 같구나. '엄마'라고 부르던 네가 언제부턴가 어머니라고 불러서 좀 속상했지만 우리 도진이가 진짜 이제 컸구나 하고 생각되니 받아들여지더구나."
평소에 말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닌 오늘 기분이 좋은지 도진의 옆에서 그동안 마음에 두었던 얘기들을 꺼냈다.​

”네가 지아 때문에 그늘 속에서 사는 거 알아. 지아도 너처럼 좋은 사람들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왔을 거야. 엄마는 그렇게 믿어. 엄마는 도진이 네가 아프지 말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어. 맘에 드는 여자 만나서 사랑하면서 알콩달콩 잘 살았으면 좋겠어.”
말을 안 해도 자기 속을 다 아는 것 같은 어머니…
어머니의 따뜻한 한마디 한마디가 굳어있던 도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이는 거 같았다.

알아요. 어머니. 3년간 앞만 보고 달렸어요. 기억을 찾은 후 세상이 무너질 듯 아팠는데 난 빨리 추스르고 해야 할 게 있었어요. 그때 그곳으로 지아를 찾으러 갔었죠. 뒷일은 어떻게 처리 했는지, 잘 보내줬는지 궁금했는데 사고로 이 세상에 없을 줄 알았던 아이가 지아가 아닌 남자아이였다는 걸 알았을 때 희망이 생겼어요. 내 손으로 잃어버린 지아 찾기, 홀로서기… 그 어느 것도 쉬운 게 없었어요.

부모님한테 기대 고도 싶었어요. 쉬운 길은 있었으니까. 다 놔버리고 싶기도 했지요. 근데… 지아는 어떻게 살지도 모르는데 나만 그 행복을 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럴 수가 없었어요. 난 아직 행복하면 안 되지 않을 가요? 적어도 지아를 찾기 전에는… 어머니. 죄송해요….

도진은 얼굴에 아들 걱정으로 가득한 어머니를 살포시 안아드렸다. 마냥 자기 걱정만 하는 어머니한테 너무나도 고마우면서도 또 그걸 풀어드리지 못해 미안했다.

** 산 아래

”띠리리링…“

“네. 매니저님. 무슨 일이시죠?”

이제 식사하러 가려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송 매니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너머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송 매니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큰일 났어요. 아무래도 어제 일이 인터넷에 퍼진 거 같아요. 손님들이 예약을 취소하고 있어요.”

통화를 끝내고 미간이 접힌 도진을 본 어머니가 한마디를 했다.

“레스토랑에 일이 있나 보구나. 식사는 나중에 같이 해도 되니까 가게에 가보렴. ”

“네. 저 일단 가봐야 될 거 같아요. 어머니.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래. 너도 조심해서 가. ”

어머니의 인사를 뒤로하고 도진은 레스토랑 방향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

“어떻게 된 거예요?”

도진이가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땐 한창 바빠야 할 점심시간…그러나 홀 안에는 이미 식사를 끝내고 간 한 테이블만
덩그러니 남았고 화영이가 그걸 치우고 있었다.

조용했다.

“사장님. 이거 좀 보세요.”
도진을 발견한 송 매니저가 그한테 휴대폰을 보여주면서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아침에 동네 카페에 우리 레스토랑 저격 글을 올렸어요. 처음에는 어제 손님 중에 한 명인가 싶었는데 내용이 좀 많이 자극적이라 제 생각인데요. 근처 저희를 항상 아니꼽게 여기던 블랙 레스토랑 사장네 아닌가 싶어요. 아이디도 항상 이상한 글 올리던 그 아이디에요.“

도진은 그 내용을 읽어 보았다.

< 맨날 잘난 척 우쭐대던 꼴이 보기도 좋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한테 그렇게 치명적인 실수를 하다니!! 아니, 실수가 맞기나 한 걸까? 이건 분명히 살인 미수다. 각성하라. 성수동 하얀 간판 레**랑 이들!!!>

아이디가 ‘들끓는 악‘이라… 사실 레스토랑 앞 골목에는 오래된 또 다른 터줏대감 블랙 레스토랑이 한 집 있다. 너무 잘 되는 가게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유지는 되었었는데 도진이네 가게가 들어서고 나서는 거의 파리만 날아다닌다는 소문은 들었었다.

그래서 고의는 아니었지만 미안함에 볼 때마다 인사를 드리지만 돌아온 건 항상 아니꼬운 시선이었고, 그 사장은 종종 동네 커뮤니티인 카페에 올려서 레스토랑을 깎아내리곤 했었다. 그래도 큰 영향은 없었다.

근데 어제는 손님이 많은 시간대였고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몰랐어도 구급차가 다녀가는 걸 목격한 사람들이 많았으니 저런 글에 동요를 한거 같다. 아래 댓글엔 카더라식의 추측들이 난무했다.

<- 일부러 넣었다는 게 사실이야? 무서워.

- 어딘데? 그 키 크고 젊은 사장인 그 레스토랑?

- 거기 나름 유명한 데잖아. 배불렀나. 진짜. 실수던 어찌던 무서워서 이제 못 가겠네! … >

도진은 글을 읽다가 송 매니저한테 폰을 돌려주었다.

“어쩔 수 없죠. 일은 터졌고 흔들릴 필요 없어요. 우린 평소랑 똑같이 하면 되니까.”

“네. 알겠습니다.”

송 매니저는 사장실로 들어가는 도진을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우리 괜찮으려나…”

동네 카페의 힘이 셌나 보다. 그렇게 북적이던 도진이네 가게가 너무 조용해서 민망할 정도로 손님이 확 줄었고 직원들도 자기 생계를 걱정해야 하나 고민할 쯤,

가게의 문이 열리고 나리는 어쩌다 들어오는 손님에 반기며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세…. 어?!”

가게에 낯익은 얼굴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저 유나 언니 찾으러 왔는데 유나 언니 어디에 있어요?“

그 소녀다. 며칠전에 쓰러졌던 그 소녀.

”유나 씨… 그만두고 나갔는데요. 근데 이제 몸은 괜찮은 거예요?“

송 매니저가 어느새 소녀의 앞으로 다가 갔다 .소녀는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그녀의 질문에 관심 없이 자기 말만 했다.

“아… 왜요? 혹시 그날 사고 쳤다고 쫓은 건 아니죠?”

소녀의 질문에 뜨끔해진 송 매니저는 허공을 쳐다보다가 다시 되물었다.

“근데 유나 씨는 왜 찾는 거예요?”

“아… 그게요.”

소녀는 그제야 여기에 온 목적이 생각났는지 말을 이어갔다.

“요즘 병원에 있으면서 몰랐는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여기 그날 저 때문에 안 좋은 소문 터져서 가게가 거의 초상이라고요.“

사장실에 있던 도진이도 유리창으로 홀 안에 들어와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홀 쪽으로 걸어왔다.

소녀는 도진이를 발견하고 간단한 목례를 했다.

”사장님이시죠? 그날 고마웠어요. 제가 알러지가 좀 심한데 친구들이 여기가 맛있다고 해서 욕심을 좀 냈어요. 뭐, 실수로 사고는 있었지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전 이해해요. 얼마 못 먹었지만 진짜 맛있었어요.“

소녀는 아직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레스토랑 안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 일로 쫓겼다면 진짜 속상한데… 유나 언니 때문에 왔어요. 레스토랑이 문제 생겼다면 그 언니가 난처해질 가봐요. 요 며칠 저희 엄마한테 구박받으면서도 입원해 있는 내내 찾아와서 제 옆에서 재밌는 이야기도 해주고 과일도 깎아주고 제 친구처럼 같이 있어주고 그랬어요. 결국 엄마 마음도 풀어졌고요. 저의 엄마 여기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대요. 카페에 올라 온 글 저도 봤었는데 너무 자극적이더라고요? 제가 반박 글을 쓰긴 했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소녀의 말에 홀 안에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소녀는 할 말이 끝나자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레스토랑을 나갔고 남은 사람들은 생각지 않은 얘기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한 사람만 빼고…

“저… 사장님.”

며칠 내내 맘을 졸이며 불안해하던 화영이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쭈볏쭈볏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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