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속에 내가 산다면 1~2

단차 | 2023.11.15 10:13:11 댓글: 4 조회: 632 추천: 3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17719
1. 미술관에서의 조우


prologue.


미술관 안으로 발을 내딛자, 외부와는 다르게 어둡게 느껴졌다. 

벽에만 조명이 작품을 밝히고 있었고 그 외의 조명은 은은히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만 있을 만큼 비치고 있었다. 

내부는 심플하기 그지없었다. 벽은 길게 늘어진 캔버스 같았다.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있는 의자는 더 이상 덜어낼 수 없을 만큼 디자인이 간결했다. 

흰 벽에 드문드문 걸려있는 작품들은 서로의 세계를 간섭하지 않은 채 저마다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푸른 빛이 일렁이는 바다 그림을 지나면 본연의 형체를 탈각한 조형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부드러운 조명 아래 사람들은 발걸음 소리를 줄인 채 천천히 걸어 다녔다. 

따로 또 같이 온 사람들 사이에서 서연은 혼자 느리게 작품명과 작가소개를 눈으로 읽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새로운 자극을 찾아온 이곳은 그녀를 그 전의 세상에서 오려낸 듯 색다른 분위기에 던져넣었다.

미리 찾아보고 온 작품을 먼저 보고 난 뒤 별 감흥 없이 걷던 서연은 커다란 캔버스 앞에서 멈춰섰다. 

온갖 색채가 어지럽게 뒤섞인 그림이었다. 조금씩 뒤로 물러서서 바라봐도 어떤 익숙한 형체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다시 가까이 가서 작품명을 읽어보았다.

“꿈과 현실.”

나지막이 읽어보고 다시 작품을 쳐다보았으나 파랑과 노란색의 물감을 더 많이 끼얹은 것 같다는 감상 외에는 따로 드는 생각이 없었다.

너무 다른 세상에 와버린 걸까. 서연이 자리를 뜨려던 찰나 누군가 성큼 그 옆자리에 걸어왔다.

무심코 돌아본 서연은 그를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뭔가 섬광이 스쳐 갔다.

그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그는 그림을 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서연은 그림과 그를 번갈아 보았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무언가를 잡아내려 애썼지만 제대로 잡히는 건 없었다.

서연의 시선을 눈치챈 그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서연은 1초가 늘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의 앞머리에 살짝 덮인 깊은 갈색 눈동자는 꼭 순정만화에 나오는 주인공같이 촉촉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순간 의아한 빛이 스쳐 갔다. 

서연은 급히 시선을 돌리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보니 그는 여전히 그 그림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저 그림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서연은 단순한 궁금증이 일었다.

처음 본 사람이고 평소 그녀가 좋아하던 스타일은 아닌데, 왜 이 정도로 호기심을 가지는 건지 서연은 자신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언뜻 헷갈리게 만드는 어깨선을 살짝 덮는 긴 헤어스타일에 범상치 않은 패션까지, 범접할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잣말하던 서연은 그런 자신에게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다시 작품들을 감상하려고 애썼지만, 왠지 집중되지 않았다. 서연은 한숨을 내쉬며 빈 벽 아래 놓여있는 긴 벤치에 앉았다. .

긴 회랑을 걷는 사람들은 평일임에도 꽤 많았지만 의외로 조용했다.

멀리서 그가 출구로 걸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던 서연은 문득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그가 오랫동안 보고 있던 그림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섰던 자리에 서서 한참을 보고 있으니 그림의 색채가 천천히 섞이는 듯한 착시까지 느껴졌다.

서연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파란색의 물감이 그녀를 향해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제야 의식의 수면위로 무언가 확실하게 떠올랐다.

“맞아. 그 사람이야.”

그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머릿속에서 안개가 걷히며 흐릿하게 무언가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지낸 어느 한 장면이었다.




2.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


라이브 바의 간판의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들어가도 되는 걸까. 서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라이브 바에 들어서자, 테이블과 좌석이 놓여있는 곳은 여러 색의 조명이 번갈아 켜지기는 했지만, 그리 밝지 않아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무대에만 조명이 환히 켜져 있었다. 마이크 켜는 소리가 들려오자, 서연은 소리의 출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잔잔하게 음악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고 누군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부드럽게 얼굴선을 타고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고개를 젖혀 털어 넘긴 그는 마이크를 고정하고 그 앞에 섰다.

왜 아무도 없는지 의문을 가질 만도 했지만, 서연은 별생각 없이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너무 빨리 온 걸까?’

“……
알 수 없는 너와 나의 사이
한 번 더 바라볼 순 없는 걸까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미래에서 우린 만났을 거야
벌써 나는 너를 만난 것 같아
모른 척 말아줘 네 마음속에 사는 날
꿈속에서 우린 또 만날 거야
지금도 네 두 눈이 말해주잖아 
너도 나를 기다려 왔다고 말이야
……”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오롯이 비추고 있었다. 
그의 부드럽고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의 목소리가 무대에서 그녀가 앉아있는 곳까지 서서히 번지듯 퍼져오며 점점 그의 감정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음악이 흐를수록 마음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그는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노래가 듣기 좋았다. 혼자 들은 게 아쉬울 만큼.

서연은 아직도 휑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리를 뜨려고 일어난 서연은 다시 나타난 그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잘 들었다고 인사라도 하려고 서연은 머릿속에서 말을 고르고 있었다.

“저기,”

그러나 뭔가 말을 꺼내려던 서연의 말이 도로 삼켜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술에 짧게 닿은 촉감을 느끼고 그를 밀쳐냈다. 

그는 더 다가오지 않았지만,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장되었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빠르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서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이 사람 혹시 미친 걸까.'

그의 표정에서 찰나의 실망 또는 체념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눈에서 미처 감추지 못한 감정이 일렁였다.

 “이번에도 아닌 거구나.”

담담히 중얼거리며 그는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 그에게서 조금 전의 동요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저기요, 지금 제정신이에요?”

“미안.”

짤막한 답변에 서연은 당황스러움에 분노까지 치밀었다. 

그녀는 그를 뒤로하고 복잡한 미로같이 놓여 진 테이블 사이를 지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선가 또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익숙한 음악이었다.

지긋지긋함에 몸서리치며 눈을 뜨니 어느새 밝아지기 시작한 방안이 보였다.

서연은 알람을 끄고 일어났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잠을 털어내며 화장실로 들어간 서연은 세수하려다 말고 아직 생생한 꿈을 돌이켜보았다.

다시 돌아져서 나온 서연은 책장에서 노트를 꺼내서 꿈을 기억이 나는 만큼 간단히 메모했다.

오랜만에 그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분명히 일정 기간을 두고 그녀의 꿈에 나타나는 그 얼굴이 맞았다.

그가 꿈에 나온 것은 과연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까. 

아니야. 서연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건 개꿈이 분명해.

다시 화장실에 돌아간 서연은 칫솔에 치약을 듬뿍 짜서 올렸다.

화한 민트맛이 입안을 자극했다. 순한 맛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서연의 칫솔질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동안 너무 심심하게 살았나? 별거 아닌 거에 의미를 찾기나 하고.’

세수하고 나온 서연이 빛이 깜빡이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언니, 이번 주 토요일 시간 돼?’
‘오랜만에 언니 얼굴 보고 싶어서.’

개강하고 나서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하은의 연락이었다.

서연이 하은과 친해지게 된 계기는 평범했다.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고 잠깐 일하던 가게에서 마침 하은이 방학 때 단기로 일하러 온 적 있었다. 

그녀보다 나이도 어리고 성격이 달라서 친해지기 어려울 거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하은의 놀라운 친화력으로 얼마 안 지나서 둘은 빠르게 친해졌다.

하은에게서는 다소 정적인 그녀와는 상반되는 명랑한 기운이 넘쳐났다. 

서연이라면 생각지 못할 톡톡 튀는 언행이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학생과 사회인의 미묘한 간극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둘의 사이에서는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하은과의 만남은 꽤 즐겁고 환기가 되었다. 굳이 단점이 있다면 아직 한창인 하은의 체력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 정도였다.

어쩌다가 같이 쇼핑하러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이튿날까지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일요일도 아니고 토요일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서연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모른 채 긍정의 답을 보냈다.

그녀는 이때 전혀 몰랐지만, 호수처럼 평온하던 서연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조우가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하니, 하은이 그녀에게 소개팅남으로 과 동기를 데려올 줄이야.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사건을 몰고 오는 시작에 불과했다.




추천 (3)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1/17 05:53:26

꿈에본 남자를 현실에선 만나지 않는데 만나게 하는것이 또 소설이지요.

민트맛 치약은 나두별로예요.나두 하은이처럼 오프라인 쇼핑을 열나게해
서 나랑같이 다니는 사람은 개고생해요.ㅋㅋ

단차 (♡.252.♡.103) - 2023/11/17 06:13:09

네, 그게 바로 소설의 묘미죠. 저도 꿈에서 영감을 얻어서 써본 소설이에요.
서툰 제 소설 읽으러 와주셔서 기쁘네요.
여신님 감사해요.ㅋㅋ

황금보배 (♡.104.♡.102) - 2023/11/25 10:26:16

미술관에서의 인연이라 어떻게 전개가 될지 ....

단차 (♡.252.♡.103) - 2023/11/25 10:56:26

미술관에서 영감을 얻어서 프롤로그 장소를 미술관으로 선택해봤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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