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속에 내가 산다면 11~12

단차 | 2023.11.17 06:28:08 댓글: 2 조회: 285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18228
11. 꿈속에서 만난 너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온 바람에 커튼이 펄럭이며 아침 햇살이 지민의 눈을 간지럽혔지만, 그는 여전히 잠에 빠져있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헤매이던 지민은 그의 얼굴을 살며시 쓸어주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다.

곧이어 부드럽고 말랑한 촉감이 볼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지민 씨, 이래도 안 일어나요?”

봄바람처럼 살랑이듯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곧 저벅저벅 걸어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느리게 눈을 뜬 그의 시야로 부드럽게 늘어진 긴 머리를 한 여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눈을 스르륵 감은 지민의 정신은 다시 잠에 끌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일순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동안 침대에 앉은 채 멍하니 방안을 둘러보던 그는 꿈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서도 쉽게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귓가에 생생한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떠오르자, 지민은 그저 꿈일 뿐이라고 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졌다.

인정하고 나면 그만큼의 불필요한 것들이 이자처럼 들러붙을 것 같았다.

라이브 바에서 좌석에 앉아있던 서연을 처음 발견했던 때를 떠올렸다.

부드러운 시선으로 조용히 무대의 그를 쳐다보던 그 모습이 떠오르자, 이름 짓기 어려운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걸 느꼈다. 

그녀에게 지민은 최악의 첫인상일게 뻔했다.
그는 그날의 자신의 언행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다. 

늘 그러듯이, 상대방은 호의적으로 대하건 말건 그만의 방식으로 선을 그은 것뿐이었다.

지나간 건 돌이킬 수 없고, 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며 그 안의 또다른 그가 냉소적으로 자문했다. 게다가 고작 두 번 본 사람일 뿐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예민하게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는 씻으러 들어갔다.



일요일임에도 지민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외주 받은 일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벌 수 있는 돈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었다.

적성 무시하고 무작정 시작한 일은 익숙하기는 했어도 즐거울 순 없었다.

어릴 때부터 해오던 취미가 그나마 꽉 막힌 일상을 터주기는 했다.

처음에는 야외 공연장에서 거리공연을 했었지만, 재현의 소개로 라이브 바에서 일주일에 두 번 공연하게 되었다. 

일을 마무리한 지민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는 인터넷 창을 켜고 검색창에 유럽 여행을 입력했다.

여행사 파워링크가 수두룩하게 상단에 떴다.

스크롤을 따라 내용을 훑던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진동 소리를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지민은 방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나왔다.

재현에게서 단톡방 초대 메시지가 와있었다. 

지민은 별생각 없이 참여하기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지민이 여행 리뷰를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는 화면 속에 펼쳐진 여러 명소를 넘겨보면서 머릿속으로 그 여행지에서 돌아다니는 자신을 상상해 보다가 여행사 사이트에 가서 가격 비교를 해보고 나서 현지 숙소 리뷰를 찾아보았다.

낮은 별점 순으로 읽던 그는 갑자기 모니터 앞에 뛰어오른 고양이를 보고 살짝 앞으로 기울였던 몸을 뒤로 당겼다.

바니는 아예 키보드수납 거치대 위에 드러눕더니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더 이상의 컴퓨터 이용은 불가할 것 같았다.

지민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바니의 귀가 잠깐 쫑긋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지민은 컴퓨터를 끄고 일어났다.

도로 침대에 누워버린 지민은 배달앱을 켜고 배달을 시킬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연속으로 톡 알림이 떴다.
재현이 새로 초대한 대화방에서 온 알림이었다.

미처 알림을 끄지 않은 게 생각난 지민은 상단에 뜬 메시지를 클릭하고 들어갔다.

‘좋은 아침~’
‘다들 뭐 하세요?’
‘나 지금 일어났는데 같이 밥 먹을 사람 손!’
‘3’
‘2’
‘1’
‘땡~’
‘나는 착하니까 기회를 더 주겠음.’

왠지 모르게 음성지원 되는 말투에 프사를 보니 어제 본 하은이었다.

채팅방 멤버를 확인해보니 그 이외에 하은과 재현, 그리고 서연으로 보이는 추정되는 대화명이 보였다.

지민은 바로 대화방 알림을 끄고 뒤로 가기를 눌렀다.

이런 식으로 초대받아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단톡방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지민은 살짝 질린 표정으로 옆에 찍힌 숫자들을 보다가 앱을 닫았다. 이미 손을 댈 수 없는 어딘가로 가버린 것들이었다.

다시 배달앱을 켜고 둘러보았으나 너무 자주 시켜서 마땅히 먹을만한 것이 없었다.

집에서 먹자니 냉장고에는 물밖에 없었다.

가까운 가게에서 혼밥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은 했지만, 그는 여전히 침대에서 등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형, 만나서 밥 먹을래?’

의식의 흐름대로 여행 브이로그를 보던 그는 재현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찰나,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어디서 먹을 건데?’
‘대화방 투표 한 번 확인 해줘.’



지민은 좁고 긴 골목을 지나 가장자리에 위치한 라멘 집에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라멘 향기가 났다.

가게 벽에는 나무로 된 메뉴판에 일어로 된 메뉴명이 적혀 있었다. 읽으라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직원의 활기찬 인사를 눈인사로 받은 지민이 재현을 찾았다.

가게 내부는 톤 다운된 우드 컨셉으로 민 것 같았다. 
해가 잘 들지 않아서인지 낮임에도 조명이 구석구석 밝히고 있었다.

손짓하는 재현을 발견한 지민이 옆에 가서 앉았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메뉴판을 보니 일어와 한글이 병기 되어있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나는 뭐 늘 먹던 걸로.”

“주문은 하은이랑 누나가 오면 할게.”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입구 쪽을 한 번 쳐다보았다. 

재현은 메뉴판을 유심히 보았다.



“안녕 재현 씨? 지민 오빠, 안녕하세요.”

명랑한 인사에 고개를 드니 하은과 서연이 보였다.

서연은 그에게 알릴듯 말 듯 한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재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녕, 재현아.”
"누나, 안녕."

인사 타이밍을 놓친 지민이 재현과 인사를 주고받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연은 바로 재현의 맞은 편에 가서 앉았다.

'나한테서는 인사받기도 싫다 이건가?'

지민은 기분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저 넘길 수밖에 없었다.




12. 눈이 마주친 순간


부드러운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2층 카페에서 네 명은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았다.

큰 창문을 통해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카페 내부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시원했다.

“언니는 안 물어봐도 되겠고, 재현 씨는 뭐 마실래? 지민 오빠는 뭐 마실래요?”

“나는 아이스 바닐라 라테에 시럽 추가해 줘.”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할게요.”

재현에 이어 지민이 답하자, 하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문하고 돌아와서 앉은 하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영수증은 이따가 톡에 올릴게요. 혹시 오늘 다른 일정들 있으신가요?”
“누나랑 하은씨는? 나는 일정 비워뒀지.”

재현이 하은의 말에 답하고는 옆의 지민을 돌아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지민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오, 좋은데? 우리도 없는데. 다음 계획이 차질이 없겠어.”

하은이 잠깐 서연에게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역시 하은 씨는 다 계획이 있었어. 그 계획 나도 좀 알면 안 돼?”

재현이 하은의 말에 웃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하은이 뭔가 대답하려는 찰나 진동 벨이 울렸다.

서연이 일어서려 하자 재현이 그녀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했다. 그리고 지민을 향해 눈짓하고는 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단 쪽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던 하은이 서연을 쳐다보았다.

“언니, 어때? 이제 좀 편하지?”
“글쎄, 아직 잘 모르겠어.”

“응? 여럿이 놀면 두 배로 재밌는데. 혹시 지민 오빠 때문에 그래?”
“뭐 편한 스타일은 아니잖아.”

하은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해도 나쁜 사람 같진 않던데, 그거 알아? 언니도 처음엔 진짜 무뚝뚝했어.”
“아, 그랬었나?”

서연은 하은과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묵묵히 일만 하던 그녀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온 건 하은이었다.

“그래도 나는 딱 알아봤잖아. 언니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하은이 눈을 반짝이며 뿌듯하게 말했다.

“재현이가 가깝게 지내는 거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런가? 너는 참 긍정적이야. 다 좋게만 보려 하고.”

“아니야, 나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하은이 조금 억울한 듯 말끝을 길게 늘였다.

“그리고 지민 오빠는 가만히 있어도 그림 같잖아.”

하은이 서연에게 가까이 몸을 기울여 비밀스럽게 속닥거리고는 쿡쿡 웃었다. 서연은 뭐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 사람한테 관심이라도 있어?”

“아, 언니.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난 잘생긴 사람 안 좋아해!” 

하은이 살짝 곤란한 듯 말을 늘이더니 곧이어 단호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럼 어떤 사람이 좋은데?”
“나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좋아. 그리고 성격 좋은 게 최고야!”

서연의 머릿속에 자연히 하은이와 티키타카가 잘 되던 재현이 떠올랐다.

“아. 재현이처럼? 걔도 성격 좋잖아.”
“재현 씨 성격 좋지, 근데 내 스타일은 아니야.”

하은이 별 고민 없이 바로 답했다.

“아, 또 다른 뭔가가 더 있는 거야?”

“나는 활발하면서도 재밌고, 근데 진지한 면도 있어야 하고, 다정하고 배려심이 있지만 너무 세심하지는 않은 사람이 좋아.”

“아. 또 관심사가 같아야 하고 취미생활이 비슷해야 해. 패션 감각이 좋아야 하지만 너무 꾸미는 것도 안 돼. 나보다 더 이뻐 보이면 곤란하니까. 그리고 내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서연은 나름 진지하게 줄줄이 답하는 하은의 말을 듣고 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저번에 들었던 이상형의 조건보다 추가조건이 훨씬 더 늘어나 있었다.

“아, 그렇구나. 진짜 특별한 사람이겠네.”
“어딘 가에 있긴 하겠지? 분명히 있을 거야.”

하은이 즐거운 듯이 흥얼거리며 카페 내부를 둘러보았다.

카페 곳곳에 놓여 진 크고 작은 화분들이 원목 테이블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가까운 벽면에는 커피 그라인더 사진과 몬스테라 그림이 크게 걸려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음료 잔을 두 개씩 들고 돌아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하은이 딸기 요거트 스무디를 한입 맛보았다.

“아까 말하다 말았는데, 따로 가고 싶은 곳 있어? 있나요?”

하은이 재현을 향하던 시선을 지민에게 옮기며 말을 덧붙였다.

재현이 어느새 반쯤 비워진 음료 잔을 내려놓았다.

“혹시 코인 노래방 좋아해?”
“오, 정답! 역시 재현 씨야. 한 번에 맞추는군.”

하은이 신나게 답하며 서연을 돌아보았다.

“언니, 괜찮지?”
“응, 괜찮아.”

“좋아, 스트레스 풀어야지. 나 요즘 장난 아니야. 으윽”

하은이 뭔가를 떠올린 듯했다.

“곧 졸업 준비 들어가야 하거든. 아직 일 년이나 남았는데.”

재현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덧붙였다.

“일 년밖에 안 남은 거지. 지금부터 준비해도 기한 맞추기 어려울걸?”
“으악! 너무 싫다.”

하은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지금은 놀고 봐야겠어. 그런 말도 있잖아. 오늘 놀 것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다시 눈빛이 살아난 하은이 ‘명언’을 내뱉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서연은 겨우 웃음을 참았다. 하은과 같이 있다 보면 방심할 수가 없었다.

“그, 지민 오빠는 노래하는 거 좋아해요?”
“네, 뭐.”

“다행이다. 그럼, 다 같이 코노 가는 거로 결정!”

역시나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지만 하은은 개의치 않았다.

재현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은 노래 잘하지.”
“아, 좀 기대가 되는데? 그러는 너는 노래 못해?”

하은이 묻자, 재현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가보면 알지 않겠어?”
“뭐지? 뭔가 좀 불안한데.”

그 둘을 보던 서연은 우연히 지민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이상하게 주변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시선을 곧바로 피하는 것도 어쩐지 지는 기분이라 서연은 눈을 피하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먼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건 지민이었다. 그는 늘 그러듯이 표정에서 어떠한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워 보였다. 

3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왠지 더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테이블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어서 마시는 그를 보던 서연은, 자기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티 나지 않게 천천히 숨을 내쉬며 서연은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걸 느꼈다.




추천 (2)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1/23 06:57:13

原来这猫也很粘人啊。

여행브이로그,대화방초대,배달음식 시키기,
카페가기.딱 현시대 청년들의 삶그자체네요.

아 여기서도 코노 나오네요.

단차 (♡.252.♡.103) - 2023/11/23 07:00:26

고양이는 사랑이에요.
.
20대 청년들의 삶이죠. 생동감 있었나요?
추억을 회상하며 썼어요. 제 친한 동생들 만나면 코노는 꼭 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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