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쪽배

로란 | 2002.09.20 11:15:04 댓글: 3 조회: 380 추천: 0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887
그날 우리는 다른 친구 둘과 함께 노래방에 모였다. 그날저녁 그가 몇번이나 간절하게 만나자고 전화를 해서야 그곳에 간 나였다. 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너무도 간곡하게 한번만 만나달라는 바람에 그만 마음이 약해져서 또 만났다.
거의 10년만에 우연히 이 대도시에서 다시 만나 시작했던 사랑이었다. 10년전의 소년과 소녀는 서로 마음속으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가 제 살길을 찾아 헤어졌던 것이다. 만나자마자 사랑의 불꽃이 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그런데 연애를 시작한지 몇달이 안되는 반달전, 즉 5.1절에 그는 함께 모처럼 생긴 휴가일을 재밌게 보내자는 약속을 어기고 <갑자기 출장가게 됬으니 돌아와서 보자>라는 메시지만 달랑 남기고 외국에 열흘너머 있다가 돌아왔다. 그것도 만나자고 약속한 날이 지난지 나흘이 되서야 이 메시지를 보냈다. 핸드폰은 줄곧 꺼져있었다. 나는 그동안 약속을 어긴 그가 너무도 야속하고 미워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남들이 가족끼리, 연인끼리 행복하게 쇼핑하고 여행다니고 할때 나는 그가 어디에 간줄도 모르고 외롭게 혼자서 눈물을 흘렸다.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는지 몰랐다. 나를 이렇게 무시하다니,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절대 너를 거들떠 보지 않을 것이다.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그가 나한테 전화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내가 많이 화가 난줄 알았는지 그뒤로 며칠동안 전화가 없었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닷새쯤 지난 어느날 저녁에 홀로 외롭게 책을 보고있는데 그한테서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한 목소리로 자기가 생일이니 제발 와 달라는것이였다.
“네가 참 보고싶어!”
라고 끝을 달았다.
<저 지금 바빠서 못가겠는데요.>
<나 생일인데 네가 없으니 참 허전하다. 꼭 와줘!>
그러나 나는 <미안해요. 못가겠어요.>
하면서 힘차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한참 지나서 또 전화를 걸어왔다. 그 자존심 강한 사람이 이렇게 3번이나 전화를 걸자 나는 자신이 너무 한것 같아서 만나고 말았다. 기실 나도 그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미우면서도 죽도록 그리운 사람, 밤마다 꿈에 만났던 그이였다. 사랑이 바로 이런걸가? 사랑에 빠지면 여자는 백치가 되여 버린다.
만나서도 나는 계속 토라져있었다. 그동안 너무도 보고싶어 한참이나 꼼짝 않고 내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이의 뜨거운 눈을 외면하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나나를 집어 입에 넣어주는 것도 거절했다. 그의 따스한 손이 내 손을 쥐려하자 웃으면서 살짝 빼내고…
이러는 나에게 그이는 최대의 인내심과 자제력을 보여주었다. 화가 나는 것을 가까스로 참는것이 좀 안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절대 나를 무시했던 사람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이가 단념한듯이 과일접시를 자기앞으로 끄당겨서 뭔가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다.
쪽배모양으로 자른 하미과에 이쑤시개로 삼각형모양의 수박조각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접시에서 뭔가 찾고 있었다. 보니 반달모양의 작은 사과조각을 이쑤시개로 살짝 찍어내어 정성들여 하미과에 고정시켜놓는 것이었다. 그 다음 뭘 하는가 조용히 지켜봤더니 술에 취해서 말을 듲지 않는 손으로 빨간 방울토마토를 주어들고 이쑤시개로 꼭 박아넣는 것이였다. 나는 그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알았다. 바로 이때 그가 손을 멈추고 나를 향해 히쭉 웃었다. 마치 무슨 큰 일이나 한것처럼 시뚝해하는 개구쟁이같은 모습이였다. 남들과는 항상 엄숙하고 원칙적인 그가 내 앞에서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천연덕스러운 개구쟁이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의 참모습을 내 앞에서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빨간 방울토마토를 노란 반달같은 사과조각과 가지런히 꽂아놓았다. 그는 달과 해가 실린 쪽배 한척을 만들었다. 그다음엔 예쁜 종이꽃 한송이도 꽂아놓았다. 그는 이 모든것을 그렇게도 열심히 해내는 것이었다.
깜찍하고 예쁜 파르스름한 쪽배에는 분홍색 돛을 달고 노란 반달님과 빨간 해님이 타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열심히 만든 이 작품을 두손에 조심히 받쳐들고 나를 그윽히 바라보았다. 아, 사랑의 쪽배!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세차게 설레임을 느꼈다. 참으로 진한 감동을 느꼈다.그는 이렇게 나에대한 사랑을 표달하고 있었다. 한번도 사랑한다고 직접 말한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는 묵묵히 그 과일쪽배를 나한테 내밀었다. 그 작지만 머루처럼 까만 눈으로 나를 그윽히 바라보면서. 그것을 받아쥐면서 그 순간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이것은 내가 받은 가장 귀중하고 특별하며 잊을 수 없는 선물인것이다. 그 순간 그에 대한 모든 원망과 오해가 한꺼번에 봄눈 녹듯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 후에 그이는 나의 생일을 여러번 물었다. 나한테 생일을 쇠주고 싶고 선물을 사주고 싶어서 였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이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을 이미 받은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둘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파란만은 인생의 풍랑을 헤가를 것을 약속하는 사랑의 쪽배를, 사랑하는 사람이 늙고 병들고 빈궁해도 변함없이 사랑하면서 인생 끝까지 함께 할 것을 다짐하는 우리들의 사랑의 쪽배, 그것은 영원히 나의 마음속에 아름답게 남아있을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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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108.♡.35) - 2002/09/20 12:13:59

아주 행복한 모습이네요. 추카합니다!!!
이후에도 좋은일만 있으시길...

로란 (♡.135.♡.144) - 2002/09/22 00:14:06

고맙습니다.

karen (♡.108.♡.65) - 2003/01/21 09:45:21

진짜 행복한 모습이네요~~
행복하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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