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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 신화서점 조선말 도서

사람속으로 떠나는휴가...............

대한민국 | 2002.08.27 18:57:24 댓글: 0 조회: 407 추천: 2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791
나는 물질에 대한 욕망지수가 낮은 편이다. 그러나 책과 가방에 대해서만은 예외다. 이상하게도 책과 가방을 향한 나의 마음은 욕망이라기보다는 거의 사랑 혹은 흠모의 경지에 가깝다.


교보문고에 가면 나는 한 귀퉁이에 책상을 갖다 놓고 그곳에 있는 책을 다 읽고 싶다. 그리고 이동백화점 비슷하게 많은 것을 짊어지고 다니는 나는 큰 가방을 좋아한다. 나의 이런 취향을 잘 아는 후배가 몇 년 전 근사한 가방을 선물했다.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매일 그 가방만을 들고 다녔다. 과로에 지친 가방이 드디어 나에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열고 닫는 개폐 장치가 고장난 것이다. 나에겐 하루도 없으면 안 될 소중한 가방이 고장난 것은 고민 중에서도 약간 격이 높은 ‘VIP급 고민’이었다.


나는 전철역 앞 구두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중년의 남자가 앉아서 구두 뒷굽을 갈고 있었다. 내 가방을 보더니 그는 망치로 후다닥 두들겼다. 그리고 불과 5초도 안 돼서 고쳐버렸다. 나의 고민을 순식간에 해결해준 그에게 존경의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며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수술비 얼마 드려요?”


그는 싱겁게 웃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돈을 받습니까”


생면부지의 남자와 나는 약 5분간 승강이를 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 나는 기세가 꺾여 얌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욱 하는 성격에 주먹부터 나가는 흠이 있긴 하지만 돈 욕심은 안 부리고 살아왔습니다. 이까짓 것쯤이야 언제든지 고쳐 드릴테니 자주 오기나 하세요”


호기심의 천재인 나는 똑똑똑…, 그의 인생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뭐하고 사셨는데요?”


지방 소도시에서 주먹 가지고 싸움깨나 했다는 용감무쌍한 대답. 과연 그의 주먹을 보니 ‘과다 사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기분은 사뭇 경이로웠다. 무더운 여름철, 나는 흡사 저 먼 바닷가 시원한 새벽 숲이라도 산책하고 온 것은 아닐까.


무슨 무슨 게이트로 해가 떠서 해가 지는 우리나라. 돈이라면 네것 내것 가리지 않고 덥석 베어 물기부터 하는 하이에나들의 천국에서 그의 존재는 얼마나 청량한가. 나는 며칠 후 과일 봉지를 들고 그를 찾아갔다. 내가 찾는 그는 없고 낯선 여자가 홀로 앉아 구두를 닦고 있었다. 코스모스처럼 가냘픈 모습이었다.


“아저씬 어디 가셨나요?”


“몸살 때문에 오늘 하루 집에서 쉬어요”


그의 아내와 나는 50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이산가족처럼 다정하게 과일을 나눠먹었다. 유통업을 하다 부도를 맞고 난데없이 구두 닦는 일을 하고 있다는 부부.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여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업할 때 남편은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어요. 오손도손 사는 요즘이 진짜 부부 같아요”


그 후로도 나는 시간만 되면 괜히 그곳을 찾아갔다. 바야흐로 휴가철 아닌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휴가는 ‘음악+명상’이다. 쉼표 같은 휴식.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오히려 정반대의 풍경이 해마다 반복된다. 콩나물 시루 같은 유명 관광지에 가서 고생만 실컷 하고 집에 돌아올 땐 거의 그로기 상태. 나에게 최고의 휴가는 사람 여행이다. 사람을 만나 그의 인생 속으로 떠나는 여행. 내가 맡긴 구두를 때 빼고 광내기 위해 열심히 손놀림을 하는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하루 종일 있으면 답답하지 않으셔요? 마음껏 활개치고 살던 때가 그립지 않으셔요?”


바보같은 내 질문에 그는 껄껄 웃었다.


“사실 밤 무대를 누빌 때 몸뚱이는 활개를 치고 살았죠. 그러나 늘 쫓기며 살았어요. 차라리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 쪽방에 갇혀 살아도 마음은 훨훨 갈매기죠”


그를 만나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특별한 휴양지에 다녀오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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