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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기]무우의 주거변천사(3)

네로 | 2002.01.17 10:04:53 댓글: 0 조회: 1226 추천: 0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446
5,처음으로 갖게된 혼자만의 보금자리

다소 불편은 했지만 얼마동안 있으니 시골집도 정이 들었는데 쌀쌀한 겨울이 돌아오자 부득불 집을 옮겨야 했다. 온돌도 없는 집에서 겨울을 날수가 없었고 전기난방기로 버틴다고 하더라도 씻을데가 없어서 더이상 버틸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천이라는 도시로 이사가기로 하였는데 같이 일하는 팀 대부분이 부천에 거주하고있기때문에 출퇴근시 차를 같이 얻어탈수가 있기때문이였다. 두루두루 부천역근처에 있는 복덕방(일명 부동산사무소라고 하는데 가옥매매나 세를 놓는것을 대신 취급하고 수수료를 밭는곳)을 돌아다닌결과 100만원 저당금에 월세 14만원짜리 세방을 얻게 되였다.

수수료는 저당금의 5%를 받았는데 정확히 5만원이 들었다. 불법체류지만 절차상의 어려움은 별로 없었고 집주인이나 부동산사무소나 크게 신경쓰는것 같지도 않았다. 계약을 작성하자 나에게 집열쇠가 차례졌다.

집은 작지만 아담하고 정갈했다.작은 주방도 딸렸고 거실에는 자그마한 다락이 있어서 자질구레한 물건을 넣어둘수도 있었다.바로 아래는 반지하방이라서 내가 살고있는집은 1층도 2층도 아닌 1.5층인셈이였다. 화장실은 실내에 없고 반지하에 있는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했다.

맘에 든건 집이 가스보일러라는것이였다.여기서 가스보일러에 대해 짚고넘어가야겠다.한국에서도 워낙 연탄으로 실내난방을 많이 하였지만 공기오염이 심한탓에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실내보일러를 대폭 보급하였고 지금에 와서는 장작이나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집이 없어졌다.물론 시골이나 달동네(빈민굴)은 제외다.

실내보일러는 기름보일러와 가스보일러 두가지가 있는데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가스보일러는 난방비가 기름보일러의 몇분의 1정도밖에 들지 않는다.실제로 있어보니까 난방비가 한달에 2만원도 들지 안았다.마음껏 더운물을 사용하고 가스렌지(煤汽爐)도 도시가스를 쓰는데도말이다. 가스렌지도 일반 부탄가스버너보다 연료비가 싼데다가 화력도 좋아서 요리하는데 편리했다.(연길에도 도시가스가 사용하기 시작한지 몇년 됐다는데 지금쯤 도시가스보일러를 사용하고있는지?내가 올때까지만 해도 도시가스는 아직 개설중이여서 일부 여유가 있는집에서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있을뿐이였다.그런데 연변지역은 혹한이라 연료비가 무지하게 많이 든다.기름도 드럼으로 구입해야 할 정도로ㅡ.ㅡ)

겨울에도 나의 자그마한 아지트는 항상 따스했고 처음으로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할수 있게 되였다.(만세다!드디여 나만의 공간이 생겨따,아...용솟음쳐나오는 감동의 눈물..츄르륵...)아직은 집안이 텅 비여있어서 필요한 가정기물을 돌아다니면서 구입해야 했다. 그때는 월수입이 100만원을 넘었으므로 돈을 좀 과감하게 썼다. 수납장을 구입하고 헹거를 구입하고 수건이나 거울,밥상에 이르기까지 집살림에 필요한 물건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나로써도 깜짝 놀랐다.

퇴근할때마다 집근처의 마트를 기웃거리면서 커다란 비닐백에 필요한것들을 잔뜩 구입해서 두손으로 들고 귀가하군 했다. 이쁜 그릇이나 수저를 만지작거리면서 주부들이 살림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화장실용 고무빨판을 구입하면서 생활의 준엄함을 느끼기도 했다.ㅋㅋ

아무튼 자질구레한 휴지통이나 빗자루,수세미로부터 좀 큰기물이라 할수있는 조립식 수납장,이불장,싱크대,가스렌지,전기밥솥,미니냉장고까지 필수품목만 구입하는데도 거의 일주일이 걸렸고 보름정도의 월급을 과감하게 투자해야 했다.

집도 그즈음에는 차츰 모양새가 갖추어지고 윤기가 돌기 시작했으니 가끔 놀러오는 사람마다 농담조로 "이제 여자만 있으면 되겠네"라고 골려주며 같이 기뻐해주었다.
드디여 나중에는 큰결심을 내리고 30만원을 투자하여 그렇게도 부럽던 컴퓨터를 중고가게에 가서 구입해놓았다.

무우의 수기는 대부분 그 시절 그 컴텨로 씌여졌다.가끔 밤에 잠이 안오고 답답할때면 토드락토드락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썼으니까.
불행하게도 컴퓨터는 사양이 낮아서 게임이나 기타 요즘프로그램을 사용할수가 없어서 단순한 타자기로 사용하였다.(요즘은 주변에 집에다가 팬티엄쓰리를 구입하고 전용선까지 설치한 조선족친구들도 가끔 있다.대부분 사용용도가 게임+챗팅이다.ㅋㅋㅋ)

티비는 5만원정도이면 중고를 구입할수 있었으나 구입하지 않았다.필경은 한푼이 아쉬운데다가 인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 물건이라고 판단했으니까.(독한놈.)

집을 세맡고 사니까 다소 골치아픈 문제도 있었다.별로 부담가는것은 아니였지만 도시가스 요금고지서같은것이 날아올때 납부가 힘들다는것이였다.지로통지서(요금이 적혀있는 고지서인데 가까운 은행에 가서 납부하면 된다.)가 날아올때마다 머리가 아팟는데 주인집이 다른동에에 있다보니 부탁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한국에서는 세금이나 각종요금을 통장자동이체로도 할수 있는데 매월 개인통장에서 자동으로 빠지므로 편리하긴 했으나 나는 불법이라 그 혜택을 누릴수가 없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로통지서를 선택하는수밖에.

아무튼 은행이 문열기전에 출근하고 은행이 문닫은뒤 퇴근하는 삶이라 나에게는 요금납부가 골칫덩이였고 이웃들과도 거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살다보니 부탁한다는것도 힘들었다.아무튼 이사람저사람 부탁하여 그럭저럭 굼때웠다.

타지인데다가 아는사람이 별로 없는터라서 손님도 없다시피 했다.다만 방문판매나 이상한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기는 하지만,(이런사람들은 문을 두드릴때 집에서 누구세요?라고 물으면 절대로 대답하지 않고 계속 두드리기만 한다.말했다간 문을 안열어줄게 뻔하니까.)

한번은 XX일보의 지역판매담당이라는 분이 찾아오셨는데 그야말로 강적이셨다.내가 아무리 본인은 신문구매의 의사가 없으며 여하여하하게 살림이 구차하고 또한 사회참여의식도 결여하고 지식에 대한 욕구도 없는 페물같은 인간이라는것을 여차여차하게 설명해주었지만 전혀 자리를 뜰념을 안하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신문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역할과 필수성,그리고 본지에 대한 자랑으로 줄기차게 이어나갔다.

필경 그냥 문을 "쾅"하고 닫아버릴정도로 마음이 독하지 못한지라 나는 거의 어쩔바를 모르다가 한마디 조용하게 물었다.<추워서 문을 닫고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그분은 갑자기 내가 이런 고난이도의 방법을 사용할걸 예상못했는지 흠칠 놀라더니 이내 나의 입장도 그못지 않게 견결하다는것을 눈치채고<네.>라고 대답하고 돌아서서 나간다. 참 사람이 살아갈려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세일즈맨은 되지 말아야지.

그밖에도 불청객들로는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니까 구원을 받으라는 XX교의 신도도
있었고 집을 잘못찾아온 분들도 계셨다.가장 황당한 손님은 한 가출소녀였는데 춥고 갈데가 없으니까 잠간 들어가도 되냐는것이였다. 순간 머리가 커지는것 같아서 대답한번 변변히 못하고 문을 닫아버렸다.휴,조선시대같으면 지나가던 길손들을 며칠씩 재워주고 먹여주고 극진히 모셨다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찾아온 손님을 이상한 사람취급하게 됐는지? 후회중이다...지금 다시 찾아온다면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더운물이라도 한컵 대접하는건데...

6,또다시 기숙사로

겨울이 되고 추워지니까 갑자기 일거리가 사라졌다.눈코뜰새없이 부지런히 일했는데 어느 하루아침에 갑자기 실직자가 된 나자신을 발견하였다.좀 지나면 일감이 생기겠지 라는 생각으로 한두달 기다렸으나 도저히 일감이 다시 생길것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드디여 같이 일하던 팀도 뿔뿔이 흩어졌다.나머지 월급도 깨끗하게 처리를 못해 개운치못한 뒷맛을 남긴채...

그리하여 정든집을 뒤로 하고 저 멀리 충청북도로 일감찾아 떠났는데 역시 외딴곳에 자리잡은 공장은 다행히 기숙사와 식당이 있었다. 모두들 땜쟁이(용접공)이라 다소 지저분하기는 했지만 기숙사는 새로 지은 건물이라 상당히 있을만했고 화장실과 세면실도 별도로 있어서 사는데 불편함이 없었다.불만이라면 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맛이 별로인것만 빼고.

두팀이 같이 일하고있었는데 팀별로 기숙사가 따로 있었다.오야지(팀장?)도 일군들과 같이 먹고자고 하였다.하루에 8시간씩 일했는데 퇴근하면 바로 기숙사로 직행이라 여유시간이 아주 많았다.불행이도 시골이라 티비마저 잘 나오지 않아서 정력이 쏟아넘치는 사나이들은 저녁이면 안절부절 못하고 헤매였다.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고 장기를 두는것도 나중에는 심드렁해서 장기쪽으로 알까기(손가락으로 장기쪽을 튀겨서 대방의 쪽을 장기판밑으로 떨어뜨린다.마지막에 남는자가 이긴다.)를 하기도 하였으며 가끔은 몇키로 떨어진 읍내로 가서 비디오를 한아름씩 빌려다가 보기도 하였다.

집안에서 지글지글 돼지고기를 굽고 막소주(일감이 적을때라서 주머니가 얇아서 병소주대신 막소주를 마셨다.)를 먹기도 했고 밤새면서 포카판을 벌리기도 했다.뭐니뭐니 해도 돈버는 재미가 최고인지 이놈의 포카판은 시작만 하면 새벽까지 계속돼서 나는 여간만 시끄럽지 않았다,포카는 할줄도 모르고 취미도 없는데 밤새 불켜고 떠들어대니 잘수가 있어야지? 아무튼 포카판이 끝나면 돈딴사람이 족발이나 치킨을 사서 또 술판이 펼쳐지고... 나는 한쪽구석에서 애매한 책장만 벌컥벌컥 번지면서 시간을 에때우다가 흐릿해서 잠이 들곤 했다.

7,1.5층에서 0.5층으로

아무튼 충청북도에서도 별로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체불임금만 남긴째 서울에 있는 한 시민단체에 다니게 됐다. 그동안 비워뒀던 부천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전철로 출퇴근을 하게 되였는데 처음에는 그나마 좋았으나 날마다 뻐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다니려니 차비도 차비거니와 아주 피곤하고 힘들었다. 게다가 1년계약이 다 되오니 주인집에서 14만원씩 하던 집세를 16만원씩 내란다.

생각끝에 거처를 옮기기로 하였다.세집을 또 구하려니 서울근처는 워낙 집세도 만만치 않지만 보증금도 많이 요구하기에 차라리 고시원에나 들려고 수소문하던중 가리봉에 살고있는 형님이(나와 같이 연수생으로 온 형님) 술집으로 취직하면서 집을 비우니까 나를 보고 있으라고 했다.나는 얼씨구나 하고 집을 싸매고 가리봉으로 이사왔다.그리고 현재까지 여기서 살고있다.

형이 세맡은 집은 보증금 100만에 월 14만원짜리 집인데 반지하였다. 울안을 향한 자그마한 뙤창이 딸랑 하나 있어서 대낮에도 불을 끄면 집안은 어둑시그레 했다. 지하라서 빨래를 널곳이 마땅치 않은 불편함이 있었고 다소 눅눅했다. 제일 골치아픈건 주방천정이 다락이다보니 높이가 170센티정도밖에 안되였다. 밥을 한때 할려고해도 주방에서 내내 머리를 푹 수그리고 있어야 하니 골치가 아팠다. 뭐 그렇다고 집에서 때시걱을 자주 하는것은 아니였지만...

집에는 냉장고며 티비,선풍기및 기타 가정기물이 구전하게 갖추어져있어서 나는 그냥 옷 몇벌만 챙겨가지고 들어왔다.부천에 있는 집은 다른 형님이 근처에 취직하게 되니까 넘겨줘버렸다.

울안에 들어서서 약간은 어둑시그레한 반지하복도로 들어서면 쪽방이 4개 있었는데 이웃들은 다 한국인인것 같았다. 나는 일명 4번방이고 달마다 전기세나 수도세같은것이 나올때마다 집에 돌아와보면 종이쪼각에 받아야할 액수가 적혀서 출입문에 테이프로 붙여진다. 다행히 이번에는 주인집이 바로 윗집이라 썩 편리했다.

여기도 다행히 가스보일러인데 보일러 한대를 5집에서 공용으로 쓰고있었다.요금은 분담인데 사람당으로 계산하는지 아니면 가구당으로 계산하는지 여부에서는 잘 모르겠다.아무튼 많지는 않은 액수였다.이번달에는 전기세가 많이 나왔다.집안에 전기를 쓸만한 녀석이라곤 냉장고밖에 없는데 전기요금이 1.7000원이 나왔다.

가리봉(서울에 있는 지명)에는 워낙 쪽방이 많고 집세도 싼 까닭에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었다.현재는 심지어 조선족타운으로 불리고있는데 우리동네를 돌아다니면 이곳이 연길인지 한국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간다. 우리집 문앞에는 만주풍미(滿洲風味)이라고 이름지은 한족음식점이 있고 그옆은 연길구육관(延吉狗肉館)이다.노래방에 들어가면 중국노래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길가에는 중국말간판들이 즐비하다.

연길은 그래도 의무적으로 중국말과 한글간판을 같이 다는데 여기는 아예 중국말로만 간판을 걸어놓은데도 수두룩하다.연길에 있는 풍무뀀점(豊茂串店)이 여기도 있고 룡정에서 유래된듯한 룡정미식가반점(龍井美食街飯店)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음식점도 눈에 뜬다.뭐니뭐니 해도 제일 쇼킹한건 영옥간이음식점(英玉小吃部)이다. 小吃部까지 여기와서 자리잡다니?

아무튼 길가에 다니는 사람은 하나건너 조선족이요,상점에서는 절인 오리알과 썩두부,건두부에다 고수풀(香菜)같은 중국음식은 물론 석림(石林)이나 홍탑산(紅塔山)같은 중국담배에다가 중국술도 파는데 공통점이라면 한국담배 한국술보다 훨씬 비싸다는것이였다. 한국에서 제일비싼 담배는 한국담배도 아니고 서양담배도 아닌 중국담배다,맨날 중국산을 싸구려로 몰아붙이는 한국에서는 아이러니컬하지 않을수가 없다.북경이과두(北京二鍋頭)도 여기서는 한병에 만원씩하는 고급술이다.(소주는 한병에 천원 채 안됨)

아무튼 중국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는 동네에서 살지만 그점만 빼고 달라진건 별로 없다.그냥 혼자 출퇴근하고 퇴근하면 나를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티비가 고장난지도 꽤나 됐고 유일한 소일거리는 이렇게 컴퓨터로 글이나 조금 쓰거나 책을 좀 읽는것뿐...뙤창으로 벌써 땅거미가 어둑어둑 져온다.

2001년 12월 16일(일요일)   서울 가리봉동 세방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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